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8. 숭고한 죽음 고명원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도장, 도장께서 지니고 있는 정순한 의술로도 설마하니...] 현천도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너무나 어렵소. 빈도의 경맥이 여덟 가닥이 끊어졌으니 어찌 다시 이 을 수가 있단 말이오?] [설마하니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요?] 현천도장은 힘없이 말했다. [지금 세상에서 의술이 뛰어난 사람으로는 빈도를 제외하고 단 한 사 람...] 고명원은 급히 물었다. [단 한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누구인지요?] 현천도장은 맥없이 말했다. [부질없는 노릇이오. 지금 어떻게 그를 찾을 수 있겠소!] [누구인지 이야기를 한번 해 보시지요. 어쩌면...] 현천도장은 대답했다. [귀의(鬼醫) 공손수(公孫輸)요. 천하에 오직 그만이 생근속맥고(生筋續 脈膏)를 가지고 있어 경맥이 끊어진 증세를 치료할 수 있소. 그러나 그는 이미 십오 년 전에 실종되고 말았는데 어디 가서 그를 찾는단 말이오?] 고명원은 귀의 공손수란 말을 듣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검남 을 위해서 강호를 떠돌며 귀의를 찾은지 십년이 넘었으나 결국에는 찾아내지 못했는데 지금 어디 가서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귀의 공손수는 의술이 신통해서 죽은 사람을 살려 놓을 수 있고 백 골에 살이 돋아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두개골을 깨고 뇌에 박혀 있던 암기를 뽑아낸 적도 있었고, 차 한 잔 마실 시간 안에 떨어진 두 팔을 붙여 놓은 적도 있었다. 그의 신기한 의술에 강호 사람들은 그에게 염왕수(閻王愁)라는 별호 를 지어주었다. 이것은 죽을 사람이 그를 만나면 생명을 되찾고 염라 대왕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 때문에 염라대왕마저도 걱정한다는 뜻이었다. 귀의 공손수는 십오 년 전 무슨 연유인지 강호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했다. 고명원은 공손수 를 생각하자 할말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그는 물었다. [도장, 그 현청이 어째서 몇 사람과 결탁해서 도장을 해쳤는지...] 현천도장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모두 빈도의 잘못이오. 천령보도(天靈寶圖)를 무당으로 가져오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일을 당하지...] 고명원은 흠칫 놀라 급히 물었다. [아니, 천령보도라면 백 년 전에 천령상인이 남겼다고 전해져 오는 보 물지도를 이르는 말씀 인가요?] 현천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보도이오.] 고명원은 다시 물었다. [도장은 언제 그것을 손에 넣었나요? 어째서 불초는 조금도 몰랐을까 요?] 현천도장은 쓸쓸히 웃었다. [강호에서 이 사실을 알았다면 무당산은 이미 평지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오...] 그는 깊이 한숨의 내쉬고 말을 이었다. [빈도는 다섯 달 전에 종남산으로 가서 약을 캐려고 했소. 아! 그것은 바로 아우님을 만나 본 후 일어난 일이었소. 아우님이 해남으로 떠난 후에 나는 검남을 위해 구정속명금단을 연성하기 위해 종남산의 음곡 (陰谷)에서 약초를 캐게 되었소. 바로 그 때 빈도는 오래된 동굴을 발 견하게 되었소...] 거기까지 말하다가 그는 잇따라 몇번 기침을 하더니 한 모금의 선혈 을 토해냈다. 고명원은 안색이 변했다. [도장,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 먼저 운공해서 상처를 치료하고...] 현천도장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빈도는 죽을 때가 다 되었소. 아우님, 당부할 일이 있으니 아우님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구려.] 그는 소맷자락으로 입가에 묻은 핏물을 닦아 내고 계속해서 말했다. [빈도가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빈도는 동굴 안에 대여 섯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소. 틀림없이 무림 사람들이 었소. 그들은 동굴 안에서 싸우다가 동귀어진(同歸於盡)한 것 같았소. 어떤 자는 등골이 무거운 장력에 박살나고, 어떤 자는 장검에 가슴을 관통당해 있었소. 석벽에 깊은 손자국과 검흔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 서 그 몇 사람은 모두 고수들이었소. 빈도는 그 참상을 보자 속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묻어 주려고 하다가 문득 한 구의 시신 의 손에 한 장의 양피지가 쥐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소.] 고명원은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 한 장의 양피지가 천령보도입니까?] 현천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무림에 백 년 동안 전설처럼 전해지던 천령보도였소.] 그는 고통스러운 듯 뺨을 한참 동안 실룩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몇 명의 무림인들은 그 보도를 발견하자 서로 차지하려고 보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추살하게 되었고,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한바 탕 격전을 벌리게 된 것 같았소. 다만 빈도는 다섯 사람이 어떻게 해 서 모조리 죽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소.] 고명원은 생각해 보고 입을 열었다. [폐파에는 중상을 입은 끝에 적과 동귀어진하는 무공이 한가지 있습 니다. 그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그와 같은 무공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보도를 쥐고 있던 사람이 그런 무공을 익혔는지 모 르지요.] 현천도장은 탄성을 발했다. [아! 아우님이 그와 같이 말씀하시니 이해가 되는구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설명했다. [당시 나는 그 보도에 손대고 싶지는 않았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때, 천령상인은 일대 호걸이고 그 보도에는 보물을 숨겨 둔 곳이 적혀 있었소. 훗날 인연이 있어 그 숨겨진 보물을 파내게 된다면 천하의 가 난한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소.] 고명원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도장의 인자한 마음은 도저히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습니다. 불초는 정말 탄복했습니다.] 현천도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런데 화근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 되었소.] 그는 잠시 동안 말이 없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빈도는 보도를 가지고 무당으로 돌아온 후에 즉시 화로에 불을 피우 고 연단(煉丹)에 들어가게 되었소. 단실에서 꼬박 마흔 여드레 동안 지 켰소. 드디어 하룻밤만 지나면 단약을 꺼낼 수 있게 되었소. 그런데 뜻밖에도 그날 밤, 반역도가 들어와 나의 온 정신이 화롯불에 쏠려 있 는 틈에 뒤에서 암습을 가했소. 빈도가 정신을 차렸을 때, 화로의 불 은 이미 꺼졌고 연단은 이미 망가졌으며, 현청과 현법 두 사람이 공동 파의 장문인 오도장과 한 패가 되어 천령보도가 어디에 있는지 다그 쳐 묻는 것이었소...] 그의 어조는 침통했다. [다행히 빈도는 산으로 되돌아온 후에 장보도(藏寶圖)를 이 석실에 숨 겨 놓았소. 그들이 수차에 걸쳐 닥달했으나 빈도는 실토하지 않았소.]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늘 아침, 그들은 아우님이 산 위로 올라온다는 전갈을 받고 나를 이 영동(靈洞)으로 옮겼소...] 고명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초는 암산을 당할 뻔했지만 다행히 포위망을 뚫고 이곳에 이르러, 가까스로 모든 진상을 알게 된 셈이지요.] 현천도장은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빈도는 죽을 때가 얼마 남지 않았소. 보도가 악인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우님에게 맡기고자 하오.] 고명원은 놀람과 기쁨에 사로잡혔다. [저는...] 현천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빈도가 죽으면 아우님은 다섯번째의 돌로 된 관을 열고 그 안에서 그 보도를 꺼내도록 하시오. 그 석관은 바로 본문의 제구대 장문이었 던 황엽도인의 영해(靈骸)가 담겨 있는 것으로 관에 도호(道號)가 새겨 져 있소.] 그는 마치 무척 중대한 결심을 내린 듯 길게 한숨을 토해 내었다. [빈도가 가장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검남의 절증(絶症)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는 것이오. 다행히 곤륜(崑崙)의 종선생(鍾先生)은 빈 도가 준 한 알의 구전속명금단을 지니고 있소. 그러니 아우님은 주과 를 검남에게 복용시킨 후에 곤륜산으로 올라가 종선생에게서 속명금 단을 얻도록 하시오. 그 후 일년 안으로 한 알의 설련을 복용한다면 깨끗이 나을 것이오.] 고명원은 다시 한 가닥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더군다나 옛날 사도 제일 고수였던 천령상인이 남긴 장진도(藏珍圖)를 선물받게 되니 너무 기쁜 일이었다. 그는 광주리 안에서 고검남을 끌어냈다. [얘야, 현천도장께서 다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도록 해라.] 고검남은 땅바닥에 엎드려 현천도장을 향해 세번 큰절을 올렸다. [고검남이 도장 백부님의 커다란 은혜에 큰절을 올려 감사드리는 바 입니다.] 현천도장의 인자한 얼굴에 한 가닥 미소가 떠올랐다. [얘야, 이리 오너라. 빈도가 너를 좀 자세히 봐야겠구나.] 고명원은 어린애를 현천도장의 품에 넘겨주며 말했다. [도형, 이 아이를 제자로 삼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현천도장은 가볍게 고검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어찌 임종을 맞는 이 마당에 제자를 거둘 수가 있겠소? 더군 다나 자제분은 절세의 기재요. 훗날의 성취가 한량없는데 어찌 빈도가 가르칠 수가 있겠소?] [과찬이십니다.] 현천도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빈도는 어릴 적에 도문(道門)으로 들어와 한 평생 고달프게 도를 닦 았으며 성심 성의로 무당파를 위해 일했고, 수천만 백성들에게 복을 안겨주려고 노력해 왔소. 그러나 뜻밖에도 사서지배(蛇鼠之輩)들이...] 고명원은 재빨리 말했다. [도장, 그 간특하고 교활한 자들을 처치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고검남이 입을 열었다. [도장 백부님, 제가 크면 틀림없이 무당산으로 찾아가 도장 백부님을 해친 사람들을 깨끗이 죽여 없애겠습니다.] 현천도장은 몸을 흠칫했다. 두 눈에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빛을 쏘 아내며 멍하니 고검남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서 갑자기 두 방울의 눈 물이 흘러내렸고 그의 입에서 나직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하늘의 뜻이로다!] 고명원은 현천도장의 표정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해지자 그 의 눈길을 따라 자기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순간 그는 그만 진저리를 치며 속으로 섬뜩함을 느꼈다. (저 애가 언제부터 저렇게 짙은 살기를 띠게 되었을까!) 그는 고검남을 꾸짖었다. [어린애가 철없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느냐?] 현천도장은 고검남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얘야, 너에게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느냐?] 고검남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도장 백부님, 무슨 일인지요?] 현천도장은 무거운 얼굴빛을 했다. [나는 네가 훗날 나의 얼굴을 봐서 우리 무당파를 도와주는 셈치고 본문의 후대(後代)들을 잘 돌봐주길 바란다.] 고명원은 웃었다. [도형, 어린애의 말을 어찌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시는지요. 그의 터무 니없는 말을 듣지 마십시오.] 현천도장은 정색했다. [아니오. 빈도의 말은 결코 장난이 아니고 폐부에서 우러나온 말이오. 이 아이의 훗날의 성취는 아우님이나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뛰 어날 것이며 무당파는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오.] 고검남은 좀 미안해졌다. [도장 백부님, 저는 그 현청이라는 사람을 죽여 없앨 뿐, 결코 무당의 다른 사람들은 죽이지 않을 것을 약속 드리겠어요.] 고명원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속으로 근심과 더불어 희열이 교차되 는 것을 느끼면서 꾸중했다. [검남, 너는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느냐?] 현천도장은 얼굴에 흐뭇한 빛을 띄웠다. [아우님은 어째서 뒤로 가시어 그 장진도가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 살 펴보지 않으시오?] 고명원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그건 급하지 않지요. 도장께서...] 현천도장은 느릿한 어조로 그 말을 가로챘다. [빈도의 기억에 의하면 첫번째 줄의 다섯번째 석관(石棺)은 빈 관이오. 그 속에 지하도가 있어 뒷산 산자락으로 통하게 되어 있으니 아우님 은 잘 살펴보시오. 어쩌면 빈도의 기억이 잘못될지도 모르잖소!] 고명원은 탄성을 발했다. [아! 그러면 불초가 한번 가보기로 하지요.] 현천도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명원이 뒤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 보았다. 곧 그는 고개를 돌리고 고검남에게 당부했다. [얘야, 너는 장래에 너의 아버지처럼 으뜸가는 무림고수가 되어 천하 사람들의 주시와 존경을 받고 싶지 않느냐?] 고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는 자기의 마비된 다리를 바라보며 다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저의 다리가...] 현천도장은 가볍게 고검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상한 어조로 말했 다. [얘야, 영원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음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적에 너는 무척 유쾌하게 모든 외부에서 오는 타격에 맞설 수 있고, 영원히 우뚝 버티고 서 있을 것 이며 좀처럼 쉽게 쓰러지지 않게 된단다.] 고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현천도장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네가 총명한 어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장래에는 틀림없이 영 원히 우뚝 버티고 서서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네가 훗날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고 위엄을 사해에 날리게 될 날을 나는 볼 수 없지만 언제나 날 잊지 말고 내가 당한 일을 잊지 말기 바란다.] 고검남은 새까만 눈동자로 현천도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도장 백부님, 조금 전까지 저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음을 잃어서 는 안된다고 말씀하시고 이제 어째서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지요. 저는 도장 백부님이 돌아가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왜냐하 면...] 현천도장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냐하면 무엇이냐?] 고검남은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도장 백부님은 인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옛사람들은 인 자(仁者)는 수명이 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훌륭한 말이다.] 현천도장은 감탄하듯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영원히 네 말을 명심해 두겠다.] 고검남은 여전히 밝은 표정이었다. [나중에 도장 백부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산을 내려가셔서 몸조리를 하고 상처를 치료한 후에 다시 올라와 그 악인들을 죽여 없애도록 하 세요.] [좋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 현천도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얘야, 너는 너의 아버지가 해남도에서 취득한 주과를 어디에 놓아 두 었는지 아느냐?] 고검남은 대답을 했다. [바로 저 대나무 광주리 안에 놓아두고 있어요.]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 대광주리는 바로 저의 집과 마찬가지에요. 저는 아버님이 매일 저 의 집을 떠메고 다녀야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요. 저는 달팽이가 자기의 집을 업고 기어가는 것을 볼 때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지요. 아버지는 정말 달팽이보다 더욱 고달퍼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져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집이 아니라 나와 내 집이니까 요.] 현천도장은 그와 같은 어린애의 말에 깊이 마음이 움직였다. (아! 천하에 오직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만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는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얘야, 너는 영원히 너에 대한 영존(令尊)의 사랑을 명심하고, 영원히 그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해드려야 한다!] 고검남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우리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 아버지의 말을 들을 거예요. 장래에 제가 크면 영원히 영원히 아 버지에게 효성을 다할 거예요...] [좋다!] 현천도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정말 훌륭하구나!] 그는 혼자서 중얼거리듯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더욱 너를 도와주어야겠다.] 고검남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무어라고 하셨어요? 무엇을 도와준다고 하셨어요?] [그렇다!] 현천도장은 설명하듯 말했다. [나는 너를 도와서 네가 장래에 천하무적이자 온세상 사람들이 흠모 하고 감탄하는 고수가 되도록 해주겠다.] 고검남은 눈에 어리둥절한 빛을 띄웠다. [제가요? 제가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럴 수 있고 말고!] 현천도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틀림없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얘야, 너는 내 말을 들어라!] 그는 두 눈에서 매서운 광채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너는 눈을 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나중에 네 몸안으로 어떤 뜨거운 기운이 흘러 들어가고 배가 화끈거려 괴롭더라도 너는 절대로 참아야 하며 꼼짝도 하면 안된다 알겠느냐?] [알겠어요.] 고검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러나 왜 그러는 거죠?] 현천도장은 말했다. [왜냐고 묻지 말아라. 훗날 너는 알게될 것이다. 그때 너는 내가 방 금 한 말을 잊지 말고 기억하도록 해라.] 고검남은 대답했다. [저는 영원히 도장 백부님을 잊지 않을 거예요.] 현천도장은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다면 나의 고심(苦心)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두 눈에 조금 전의 매서운 빛을 되찾으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너의 몸에 느끼던 그 기운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 너는 몇 걸 음 시험삼아 걸어 보아라. 그때 네가 명심할 것은 즉시 대광주리 쪽으 로 가서 그 안에 있는 주과를 삼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하겠느냐?] [네, 기억했어요.] 고검남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는 한번도 걸음을 걸은 적이 없는데 그럴 수 있을까요?] [있고 말고!] 현천도장은 설명했다. [최소한 몇 걸음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얘야, 명심해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고검남은 반신반의했다. [알겠어요!] [좋다!] 현천도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눈을 감아라.] 고검남은 그 말대로 눈을 감았다. 즉시 현천도장의 한 손이 자기의 머리 위에 얹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한 손은 자기의 등뒤에 갖다 대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정수리와 등뒤에서 갑자기 두 줄기의 뜨거운 기운이 몸안으로 와락 스며들었다. 그 뜨거 운 두 줄기의 기운은 몸안으로 스며들자마자 즉시 하나는 위로 하나 는 아래로 두 갈래 다른 길을 따라 앞으로 슬금슬금 나아가기 시작하 는데 그 기운이 이루는 곳마다 마치 불에 굽는 듯해서 대뜸 그의 이 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게 되었다.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없는이를 악물고 견뎌 냈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몸에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몇 차례나 그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그는 현천 도장이 방금 그에게 당부한 말을 생각하고 이빨을 꼭 깨물고 억지로 견디어 냈다. 두 줄기의 다른 방향으로 그의 경맥 안에서 운행되던 진기는 그의 구미(枸尾)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 후에 다시 한줄기로 합쳐서 그 의 두 발 쪽으로 들어갔다. 고검남은 내공을 익힌 적이 없었고 한 쌍의 다리는 태어날 때부터 마비되었기 때문에 그 뜨거운 열기는 잇달아 몇 번이나 뚫고 들어가 려 했지만 시종 다리의 닫혀진 혈도를 뚫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두 다리에 모여 있던 음한지기(陰寒之氣)는 그 뜨거운 열기에 와락 밀 리듯 흩어져서 고검남은 두 다리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운 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이때, 그는 자기의 부친이 별안간 큰소리로 부르짖는 소리를 들 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그 말소리가 석실에서 흐느적거리며 울려퍼지고 귓가에서 그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고검남은 어느덧 등뒤의 현천도장이 길게 숨을 내쉬며 두 손을 맥없이 떨구는 것을 느꼈다. 대뜸 고검남의 몸 안의 뜨거운 열기는 마치 응결되어버린 것 같았다. 바로 그의 아랫배의 단전이 있 는 곳에서 엉켜버린 것 같았다. 그는 어리벙벙해져서는 놀라 두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니 현천도장의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고 두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떨구고 있었으며 두 가닥의 비근(鼻筋)이 콧구멍 아래에 매달려 있을 뿐 아무 런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고검남은 놀라 부르짖었다. [도장 백부님!] 고명원은 그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는 듯이 달려왔다. [얘야, 무슨 일이냐?] 고검남은 대답했다. [이 분... 도장 백부님께서...] 고명원은 경악해마지 않으며 옥근(玉筋)이 드리워진 현천도장을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지?] 고검남은 소리내어 울부짖었다. [도장 백부님께서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다구?] 고명원은 망연히 말했다. [그 분이 이토록 빨리 돌아가셨단 말이냐?] 고검남은 그 창백해진 얼굴을 바라보자 갑자기 현천도장이 조금 전 에 자기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많은 일을 고려해 보지도 않고 몸을 일으키고서는 대광주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고명원은 아연해서 고검남이 한 걸음 한 걸음 대광주리 앞으로 가서 손을 뻗쳐서 그 주과를 담아 놓은 옥합을 꺼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 다. 그는 자기의 눈을 믿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얘야, 너는...] 고검남은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다. [왜요, 아버지?] 고명원의 얼굴에는 경악과 희열, 그리고 의아함이 착잡하게 얽혀 있 었고 목소리도 떨려 나왔다. [네가... 걸을 수 있단 말이냐?] [제가요?] 고검남은 그제야 자기가 걸음을 옮겨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신을 흠칫했다. 그는 한참만에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는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는 놀람과 기쁨에 얽혀 큰소리로 다시 한번 외쳤다. [나는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컸다. 마치 온누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이미 걸을 수 있게 된 것을 알리려는 것 같았다. 대뜸 석실 안은 그가 외치는 소리로 메아리치게 되었고 그 메아리치는 소리는 고막이 터질 것처럼 윙윙거리는 충격을 주었다. 고명원은 나는 듯이 달려가 덥석 자기의 아들을 안고 참지 못해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얘야, 어찌 되었던 간에 걸을 수 있게 되었구나!] 고검남은 이미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자꾸 부르기만 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면서 그 역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그들 부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광경을 누가 보았다면 덩달 아 눈물을 흘렸으리라.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광 경이었다. 잠시 울고 난 후 고검남을 외쳤다. [아버지, 저를 내려놓으세요. 제가 다시 몇 걸음 걸어 보게요.] 고명원은 기쁘고 흥분되어 고검남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얘야, 천천히 걸어라. 차분히걸어야지. 너무 서두를 것 없다.] 고검남은 몇 걸음 옮기더니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웃었다. [아버지, 저는 꽤 잘 걷지요?] 고명원의 눈길이 어린애의 몸에서 현천도장의 뻣뻣해진 유체 쪽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그 순간 대뜸 깨달았다. 그는 중얼거렸다. [고맙소. 도형, 고맙소...] 그제야 그는 현천도장이 한평생 고되게 수련한 현문 내공을 고검남 의 몸안에 주입하여 두 다리의 음한지기를 몰아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니... 이와 같이 위대한 박애(博愛)의 정신에 그는 오체 투지(五體投地)할 정도로 감동했고 마음속으로 느끼는 고마움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상념은 고검남의 뾰족한 부르짖음에 중단되고 말았다. [아버지, 나는 또 걸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는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고검남의 두 다리에 맥이 빠진 듯 어느덧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황망히 달려가 고검남을 부축해 일으켰다. [얘야, 어떻게 된 일이냐?] 고검남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걷다 보니까 두 발이 지각을 잃게 되었어요. 마 치 내 것이 아닌 양...] 그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말했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도장 백부님의 말씀대로 즉시 주과를 먹지 않아 서...] 고명원은 말했다. [그럼 빨리 먹어라.] 고검남은 곽의 뚜껑을 열고 안에 있는 한 알의 거위 알 크기의 새빨 간 주홍빛 과일을 입속에 넣었다. 그 주과는 달콤해서 마치 수밀도 같 았으며 입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금새 녹아버렸다. 고명원은 초조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얘야, 다시 걸어 보도록 해라.] 고검남은 두 발로 일어서자마자 맥이 빠진 듯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얼굴이 새빨개졌으나 한 가닥의 힘조차 쓸 수 없었고 자기의 두 발을 제대로 세울 수 없었다. 고명원은 위로했다. [급하게 생각 말아라. 천천히 다시 시험해 보자!] |
|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