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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장 5절
제1장 지휘봉을 내려놓은 사람
정해원은 자신이 지휘봉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날을 정확히 기억했다.
2013년 12월 두 번째 주일.
성탄절을 앞둔 송구영신 예배였다.
그는 갈색 가죽 케이스에서 지휘봉을
꺼내 들고 성가대석 앞에 섰다.
42년 동안 쥐어온 지휘봉이었다.
교회 성가대장을 맡은 것이 37살
때였으니,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 자리에서 보낸 셈이었다.
그날 찬양이 끝난 뒤 해원은
지휘봉을 케이스에 넣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오지 않았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한 사람이 전화를 했다.
담임 목사였다. 그러나 목사의 말은
붙잡는 것이 아니었다.
"집사님, 오랫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잘 쉬세요."
그 말을 해원은 침대 옆에 앉아서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손에
수화기를 쥔 채 있었다.
창밖에는 겨울비가 내렸다.
경산의 겨울비는 차갑고 소리가 없었다.
해원이 성가대장직을 그만두게 된 것은 성가대원 김복순 권사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김복순 때문이 아니었다.
해원 자신 때문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는 몇 년이 걸렸다.
김복순은 칠십 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교회 창립 때부터 성가대를 지켜온,
해원보다 십 년 선배였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매주 연습에
나왔고, 머리카락이 빠지면서부터는
수수한 가발을 쓰고 나왔다.
음정은 늘 조금 낮았다. 숨이 달려서
고음을 처리하지 못했다.
해원은 몇 년 동안 그것을 참았다.
그러다 어느 날, 참지 않았다.
"권사님, 죄송한데요.
3절 올라갈 때 호흡이 너무 짧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전체 소리가
흐트러져요."
연습실에 스무 명의 성가대원이 있었다.
모두 들었다.
김복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악보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다음 주에 그 권사는 입원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해원은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그해 겨울 자신도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다.
고혈압과 협심증이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그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했는가.
그러나 그 생각은 너무 불편해서,
빠르게 다른 생각으로 덮었다.
그 후로 해원은 지휘봉을 들지 않았다.
아내 순임은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말이 없었다.
순임은 늘 말이 없는 쪽이었다.
해원이 성가대 이야기를 꺼내면
밥을 퍼주거나 창문을 닦거나 했다.
그것이 순임의 방식이었다.
해원은 그것이 동의인지 외면인지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다.
순임이 떠난 것은 그로부터
사 년 뒤였다.
위암이었다.
진단 후 다섯 달이었다.
해원은 임종을 지켰다.
순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순임의 손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냥 가벼웠다.
평생 무언가를 들고 일하던 손이,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가벼웠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첫날 밤,
해원은 거실에 불을 켜지 않고
앉아 있었다.
오래 그렇게 있었다.
소리가 없었다.
냉장고 모터 소리도,
위층의 발소리도,
아무것도.
그 고요 속에서 해원은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알았다.
성가대도, 지휘봉도, 아내도.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다른 무언가를.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제2장 딸과 아들, 그리고 빈 식탁
딸 소연은 일주일에 한 번 왔다.
대구에서 왔다.
사위와 손자 민준을 데리고
올 때도 있었고,
혼자 올 때도 있었다.
혼자 올 때는 대개 평일 오후였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확인하고,
욕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밥 한 끼를 차려두고 갔다.
해원은 그 일련의 동작을 바라보다가,
소연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소연아."
한 번은 불러 세웠다.
"왜요, 아빠."
소연이 현관에서 돌아섰다.
해원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냥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부끄러웠다.
일흔 넘은 아버지가 딸한테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조심해서 가."
소연이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아들 재원은 미국에 있었다.
애틀랜타에서 의료기기 회사를 다녔다.
전화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였다.
화상통화를 할 때면 재원의 뒤로
미국 아파트의 흰 벽이 보였다.
재원의 목소리는 늘 바쁜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밥은 드시고요?"
"응, 잘 있다."
"소연이 누나가 자주 가죠?"
"응."
"다행이네요.
저도 이번 추석에 들어가려 했는데
또 일이 생겨서요.
다음에는 꼭 갈게요."
다음이 언제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해원도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 편한 쪽으로 통화를
마무리하는 데 능숙해져 있었다.
해원은 재원이 작을 때를 생각했다.
아들이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다.
악보를 보지 않고 귀로 들은 것을
그냥 쳤다.
선율은 맞았지만 박자가 느슨했다.
해원은 매번 고쳐주었다.
재원은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재원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해원은 그것이 아들이 음악에 소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닐 수도 있었다.
밥상 앞에 혼자 앉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순임이 있을 때는 식탁이 작았다.
같은 식탁인데 둘이 앉으면
작게 느껴지고,
혼자 앉으면 넓게 느껴졌다.
해원은 가끔 건너편 자리에
밥공기를 하나 더 올려놓기도 했다.
그러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채고는 치웠다.
그것이 슬픔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해원은 평생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었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었다.
교회는 계속 다녔다.
순임이 다니던 교회였다.
예배 시간에 해원은 성가대석을
바라보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자신이 있던 자리.
지휘자가 새로 왔다.
젊은 청년이었는데
성가대를 잘 이끌었다.
소리가 풍성해졌다.
해원은 그것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좋다고 해야 하는지,
씁쓸하다고 해야 하는지.
주일 예배가 끝나면
해원은 빠르게 나왔다.
누군가 붙잡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싫었다.
나이 드신 집사님,
요즘 어떠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냐고 물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그런 어느 날,
교회 게시판에서 팸플릿 하나를
발견했다.
경산시립합창단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
제목은 '강과 강이 만나는 곳'이었다.
국악과 서양 관현악의 협연,
창작곡 초연.
해원은 팸플릿을 내려놓으려다가
멈추었다. 지휘자 이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만수.
제3장 강과 강이 만나는 곳
이만수는 해원이 성가대장으로 있을 때 교회 청년부를 다니던 청년이었다.
이십 대 초반이었고,
음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성가대 반주를 맡고 싶다고
해원을 찾아왔었다.
해원은 시험을 보게 했다.
바흐의 코랄 전주곡을 쳐보라 했는데,
이만수는 악보를 보면서도 군데군데
버벅였다.
해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요.
더 연습하고 오세요."
이만수는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그 후로 보이지 않았다.
교회를 옮긴 것인지,
청년부에서도 나온 것인지
해원은 확인하지 않았다.
그냥 잊었다.
그가 경산시립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해원은 팸플릿을 주머니에 넣었다.
반신반의였다.
가고 싶다기보다는,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그 이름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공연 날, 해원은 일찍 도착했다.
맨 뒷줄 중앙 자리를 택했다.
소리가 고르게 퍼지는 자리라고 믿었다.
실제로는 마음이 불편하면 조용히
나올 수 있는 자리였다.
공연이 시작됐다.
현악 사중주가 먼저 나왔다.
해원의 귀는 즉각 일을 시작했다.
제1바이올린 A현이 약간 높다.
첼로 활이 좀 더 들어가야 한다.
입술이 가늘게 움직였다.
그런데 무대 왼편에서 퉁소 하나가
등장했다.
그 소리가 해원의 귀를 멈추게 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굴뚝 속에서 바람이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서신이 소리를 낸다면
그럴 것 같기도 했다.
퉁소 연주자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 눈꺼풀 위에는 무언가를 오래 참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무게가 얹혀 있었다.
현악과 퉁소가 만났다.
해원의 귀가 계산을 멈추었다.
두 소리는 서로를 교정하려
하지 않았다.
바이올린은 퉁소의 음역으로
내려가려 하지 않았고,
퉁소는 바이올린의 음계 체계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함께 있었다.
그 함께 있음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해원이 평생 들어온 어떤 화음과도
달랐으나, 명백히 화음인 무언가를.
장고가 들어왔다.
꽹과리가 들어왔다.
판소리 가수가 강물 같은 목소리로
어떤 슬픔을 쏟아냈다.
테너가 옆에서 이탈리아어로
같은 슬픔을 받아 안았다.
두 슬픔은 달랐으나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린이 합창단이 나왔을 때,
그 투명하고 작은 목소리들이
모든 소리 위에 얹히는 순간,
해원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눈을 깜빡였다.
늙어서 눈물샘이 약해진 탓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이 눈물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휘자 이만수의 손이 움직였다.
해원은 그 손을 보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손이었다.
그러나 그 손이 올라가면
소리들이 숨을 들이켰고,
내려오면 소리들이 터졌다.
퉁소가 잠들면
바이올린이 깨어났다.
꽹과리가 정점에서 물러서면
소프라노가 그 여백을 채웠다.
누구도 자기 자리를 잃지 않았다.
누구도 남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다.
각자가 지휘자의 손을 향해 있었다.
서로를 향해 있지 않았다.
서로를 향해 있지 않으면서도,
하나였다.
마지막 음이 사라지고 침묵이 왔다.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었다.
박수가 터졌다.
해원도 손을 쳤다.
처음에는 습관처럼,
그러다 진심으로.
제4장 내가 쥐고 있던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해원은 걸었다.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타지 않았다.
경산의 가을 밤은 서늘했다.
그의 발소리만 보도블록 위를 두드렸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자꾸 퉁소 연주자의 눈을
생각했다.
감은 눈.
그 눈은 바이올린을 보지 않았다.
관객을 보지 않았다.
지휘자의 손을 보았다.
퉁소는 자기 소리를 버리지 않았다.
다만 지휘자를 향해 열려 있었다.
그것이 화음의 이유였다.
해원은 걸으면서 오래된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김복순 권사.
그 권사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매주 성가대 연습에 나왔다.
음정이 낮았다.
숨이 짧았다.
해원은 그것을 고치려 했다.
왜 고치려 했는가.
소리가 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이 이유였는가.
아니면 자신의 귀에 거슬렸기 때문인가.
자신이 이끄는 성가대가
완벽해 보여야 했기 때문인가.
그 권사의 낮은 음정이
하나님께는 어떻게 들렸을까?
그 질문이 갑자기 해원을 멈추게 했다.
골목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밤이었다.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순임도 떠올랐다.
순임이 찬양을 부를 때
해원은 늘 못마땅했다.
음이 낮았다.
박자가 느렸다.
한 번은 실제로 말했다.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텔레비전에서 찬양 프로그램이
나올 때였다.
순임이 따라 흥얼거리자
해원은 말했다.
"당신은 원래 그런 소리야.
굳이 따라 하지 않아도 되잖아."
순임은 잠시 웃었다.
그 웃음의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해원은 그때 보지 않았다.
그 후로 순임은 해원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불렀을 것이다.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자기 소리로.
해원이 없는 곳에서.
나는 무엇을 쥐고 살았던가.
해원은 그 말을 소리 내지 않고
입술로만 빚었다.
지휘봉이었다.
그것이 물건으로서의
지휘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
다른 사람은 자신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확신.
그것이 지휘봉이었다.
그것을 그는 평생 쥐고 살았다.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성가대원에게도.
바이올린을 퉁소 앞에 세우면서,
퉁소에게 바이올린처럼
소리를 내라고 했다.
찬바람이 목덜미를 지났다.
해원은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김복순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발을 쓴 얼굴.
악보를 내려다보던 고개.
그 고개가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제는 알았다.
그 권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해원은 그날 밤 처음으로 알았다.
그것은 가슴 한가운데
돌을 놓는 것 같았다.
치울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는 돌.
제5장 낮은 곳
다음 날 아침,
해원은 교회에 갔다.
주일이 아닌 평일 아침이었다.
교회는 열려 있었다.
청소 당번인 경비 집사가 마루를
닦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원도 고개를 끄덕이고
본당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본당은 달랐다.
예배 시간의 본당과는
온도가 달랐다.
예배 때의 본당이 여럿이 함께
내쉬는 숨의 공간이라면,
지금 이 본당은 혼자서
숨을 들이켜는 공간이었다.
해원은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순임의 자리였다.
나무 등받이가 차가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기도를 해야 하는지,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해원은 평생 교회를 다녔지만
기도를 제대로 해본 기억이 흐릿했다.
기도란 바른 언어로 하는 것이라
여겼다.
순서가 있고,
형식이 있고,
닫는 말이 있는 것.
그런 기도는 주일 예배에서
목사님이 하는 것이었고,
해원 자신은 눈을 감고
그 기도를 들었다.
지금 그에게는 형식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으로 말했다.
'나는 평생 남을
내 기준에 맞추려 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성가대도.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공연에서 봤습니다.
퉁소는 바이올린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휘자를 봤습니다.
저는 지휘자가 되려 했지,
지휘자를 바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거기서 멈추었다.
무엇을 더 말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뒤에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순임이가 보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눈가가 뜨거워졌다.
해원은 손등으로 눈을 눌렀다.
일흔 넘은 남자가 빈 예배당에서
혼자 우는 것이 멋쩍었다.
그러나 멋쩍음과 잘못됨은 달랐다.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구역장 박 권사였다.
육십 대 초반의 여성으로,
청소 봉사를 맡은 모양이었다.
손에 걸레를 들고 서다가,
해원을 보았다.
해원은 얼른 손을 내렸다.
박 권사는 아무 말 없이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말을 걸지 않았다.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냥 앞에 있었다.
그 침묵이 해원에게는 고마웠다.
"집사님,
정 집사님 많이 힘드셨죠."
한참 뒤에 박 권사가 말했다.
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며 말했다.
"순임 집사님이 참 좋은 분이었는데.
저도 많이 보고 싶어요."
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냥 앞을 보았다.
강단 위에 놓인 십자가를 보았다.
해원은 그것을 수십 년 보아왔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 그것은
그냥 걸려 있지 않았다.
무언가를 향하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좁게 들어왔다.
붉고 파란 빛이 나무 바닥 위에
얼룩처럼 고였다.
물은 가장 낮은 곳에서
하나가 된다.
해원은 그 말을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의 말 같았다.
자신이 높은 곳에 있으려
했기 때문에 혼자였다.
낮아지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그것은 위험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앞에 권사가 있는 것처럼,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앉아 있었다.
제6장 처음으로 내는 소리
그 주 수요일,
해원은 이만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들고 내려놓기를
세 번 반복했다.
네 번째에 눌렀다.
"여보세요."
이만수의 목소리가 났다.
해원은 순간 아무 말도 못했다.
이만수가 다시 말했다.
"여보세요?"
"이만수 씨.
나야, 정해원이야.
예전에 교회 성가대 있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아, 정 집사님!"
이만수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갑자기 어려진 것 같았다.
"공연 봤어. 아주 훌륭했어."
해원은 말하면서 자신이 이 말을
얼마나 오랫동안 하지 않았는지 알았다.
남의 음악을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
심판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것.
"감사합니다,
집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만수의 목소리가 잠깐 흔들렸다.
"퉁소 부분이 특히 좋았어.
어떻게 그렇게 했어?
국악이랑 관현악이 그렇게
어울리기 쉽지 않을 텐데."
이만수가 잠시 웃었다.
"비결은 없어요.
그냥 각자한테 맡겼어요.
바이올린한테 퉁소처럼 하라고 하거나,
퉁소한테 바이올린에 맞추라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방향만 잡아주면
각자가 알아서 찾더라고요,
자기 자리를."
해원은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전화기로 한 번,
마음속으로 한 번.
"그래. 잘 봤다."
"집사님, 혹시 시간 되시면...
저희 단원들 만나보시겠어요?
선생님께 배우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요."
해원은 잠시 멈추었다.
가르치는 것.
오래 떠나 있던 자리.
그러나 지금이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의 해원은
자신이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방향만 잡아주면 된다는 것을.
각자가 자기 자리를 찾도록.
"생각해볼게."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해원은 전화를 끊고 나서,
가슴 어딘가의 돌 하나가
조금 이동한 것 같다고 느꼈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위치가 달라졌다.
그날 저녁,
해원은 소연에게 전화했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딸의 목소리에는
늘 그 물음이 먼저였다.
아버지가 먼저 전화하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
해원은 그것이 서운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임도 알았다.
"아무 일도 없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기 너머에서
소연이 잠시 멈추었다.
"아, 네..."
소연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아주 조금.
"밥은 드셨어요?"
"응, 먹었다. 너는?"
"저도요.
민준이가 아빠한테 전화하고
싶다는데, 연결해줄게요."
손자 민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섯 살짜리였다.
"할아버지!"
"그래, 민준아."
"할아버지 집에 언제 와요?
우리 언제 가요?"
해원은 웃었다.
거의 웃지 않던 얼굴로,
웃었다.
"빨리 와라.
할아버지가 기다린다."
전화를 끊고 해원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옆 서랍에
순임의 성경책이 있었다.
꺼내 든 적이 없었다.
이제 꺼냈다.
낡고 손때가 가득 묻어 있었다.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로마서 15장이었다.
순임이 마지막으로 읽던 자리였다.
해원은 그 자리에 서서 읽었다.
소리를 내어 읽었다.
발음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박자가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속 읽었다.
자기 목소리로.
창밖에 경산의 밤이 고였다.
아파트 불빛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켜져 있었다.
어떤 것은 밝고
어떤 것은 흐릿했다.
그러나 모두 제자리에서 빛났다.
아무것도 다른 빛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해원은 성경책을 덮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소리, 자신이 방금 낸 소리가
아직 방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낮고,
흔들리고,
완전하지 않은 소리.
그러나 그것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소리였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소리가 아니었다.
판단받지 않으려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자기 소리였다.
해원은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오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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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릴 수 없는 소리들이
지휘자의 손 아래에서
화음이 되는 장면은,
우리가 서로 다른 악기임에도
예수 그리스도 지휘자의 손을
따라 조율될 때,
비로소 하나가 된다는
신앙의 은유입니다.
물은 가장 낮은 곳에서
하나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도 낮은 곳으로 향할 때,
비로소 진정한 화음이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