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 제자 女弟子
한쪽에선 아직 진척 進陟이 없다.
난감해진 이중부는 할 일 없이, 한준의 체벌 體罰을 구경하고 있다.
“사부님”
백사장에 엎드린 말괄량이가 또, 사부를 찾는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아닙니다, 절 제자로 받아들일 때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건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테니 일단 일어나 앉아”
“넵! 그럼, 제자로 받아들이는 거로 알고 일어나겠습니다.”
말괄량이는 일어나자마자 “사부님,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
하더니, 이중부를 향해 정중히 재배 再拜를 올린다.
놀란 이중부.
절을 말리고자, 말괄량이가 재차 엎드리려고 앞으로 내민 양손을 급히 잡는다.
말괄량이의 손등을 잡아당기는 순간, 부드러우면서도 뭉클한 손 감촉에 깜짝 놀라 손을 놓아버린다.
갑자기 심장이 찌릿해지며 ‘쿵쿵’ 소리를 내는 것 같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손바닥은 뜨거운 감자를 쥔것처럼 후끈거린다.
그런데,
손을 잡고 당기다가 놓아버리니, 오히려 양손으로 말괄량이를 미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말괄량이가 뒤로 벌러덩 넘어진다.
‘아차’
이중부는 얼른 다가가, 이번에는 넘어진 말괄량이의 손목을 건너뛰어, 양 팔꿈치 곡지혈 曲池穴 윗부분 팔뚝을 양손으로 잡고,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러자,
이중부가 말괄량이를 안는 모양이 되었다.
이중부의 부축으로 일어나던 말괄량이가
돌연, 이중부의 겨드랑이 사이로 이미 들어가 있던, 양손을 중부의 등 뒤쪽으로 돌려 깍지를 꼭 끼더니,
어깨로 이중부의 상체를 밀면서 오른발로 안다리 걸이를 시도한다.
순간,
중부는 완벽하게 ‘안다리 걸이’ 기술에 걸려버린 것이다.
팔과 어깨 다리가 삼위일체 三位一體가 되어 상대방을 얽어 압박 壓迫한다.
이렇게 얽혀버린 자세에서는 제아무리 힘이 세고, 씨름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피할수 없는 외통수에 걸려버린 것이다.
말괄량이의 씨름 솜씨가 노련하다.
이번엔 무방비 상태의 이중부가 도리 없이 백사장 위에 넘어져 누워버린다.
말괄량이 소녀의 한판 승이다.
완벽한 승리다.
말괄량이 소녀의 씨름 기술도 상당한 실력이다.
그리고 말괄량이는 이중부 위에 엎드린 그 자세에서 도톰한 입술을 중부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인다.
“사부님”
어이가 없는 이중부는 백사장에 누운 체 얼떨결에 “왜!”하고 고함을 버럭 지른다.
“사부님은 제자가 이토록 마음에 드십니까?”
그러고 보니,
아직도 중부는 말괄량이 소녀를 양손으로 안고 있는 모양새다.
기습공격을 받고 넘어질때 대책없이 혼자 넘어지는 바보는 없다.
얼떨결에 안고 넘어질 당시 모양새 그대로인 것이다.
이중부는 할 말이 없다.
얼른 양손을 풀어 모래바닥에 팔 '八'자로 펼쳐 놓는다.
그리고,
“오냐, 그래”
신경질적으로 내뱉는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런 후,
말괄량이는 얼른 일어나더니, 궁상각치우 합창단원들을 보고 큰소리로 외친다.
“너희들 봤지? 들었지?”
"..."
합창단원들은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를 못 한다.
궁상각치우 합창에 신경을 쓰느라 아니, 사실은 한준의 막대기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다만,
말괄량이가 먼저 넘어지더니, 잠시 후에는 이중부가 넘어지고, 그 위에 말괄량이가 같이 엎어지는 것은 곁 눈길로 얼핏 보았다.
그게 다다.
그런데 뭘 또 들었다는 이야기지?
보통 계집애들 같으면 이런 상황을 부끄러워해야 하고 숨기려고 함이 마땅한데, 도리어 큰소리로 소문을 야기 惹起시키고 있다.
이제 주위의 모든 시선 視線이 말괄량이에게 집중되고 있다.
“나를 봉술 사부님의 첫 번째 제자로 받아 주신 데”
“....”
그러더니 한준에게 다가가 지휘봉을 빼앗듯이 낚아채더니, 매서운 눈초리로 한준을
노려 보면서 카랑카랑한 큰 소리로 외친다.
“너는 이제, 나를 사저 師姐로 모셔야 한다”
황당한 표정의 한준
“그게 무슨 말이야?”
“사저는 사형 師兄과 동격 同格이다”
“그런데?”
“내가 첫 번째 제자니까 너의 선배가 된다는 말이다”
“? ?”
“너도 좀 전에 사부님에게 봉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가르치는 사람은 사부고, 배우는 사람은 제자 아닌가?”
“그~ 으 런 데?”
“아직 젊은 사람이 귀가 어둡냐?, 이해력이 늦네, 늦어”
“으 음...”
“어 허,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머리가 나쁘군, 머리가 나빠….”
“뭐가?”
“봉술을 가르쳐 달라고 했으니 당연히 사부로 모신다는 거잖아?”
“아!~, 그건 친구끼리 하는 말이었지”
“어 허, 그건 아니지, 아무리 친한 동무지간이라도, 가르치고 배우고 하면 사제지간인 거야”
듣고 있던 한준.
가만히 생각하니 말괄량이의 말도 일리 一理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지만, 친구 지간인데...”
“어~휴, 내 복 福에 사제 복 舍弟 福은 없는 모양이네, 머리 나쁜 사제는 평생을 두고두고 속을 썩이는데…. 휴~ 아이고, 내 팔자야”
갑자기 혼자서 한숨을 크게 내쉬며 신세타령을 하던 말괄량이.
“어 허, 이거 안 되겠군, 내가 선배로서 후배 교육을 제대로 해야겠다.”
“??”
말괄량이는 백사장에 멍하니 앉아 있던, 이중부를 향해 양손을 겹쳐 쥐고, 포권의 자세를 취하면서 고개를 숙여
“사부님, 오늘 수제자 首弟子인 제가 머리 나쁜 후배에게 교육 좀 하겠습니다”라며,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인사한다.
그리고,
두 눈을 치켜뜨며 제법 위엄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오른손에 든 봉으로 자신의 왼 손바닥을 ‘탁탁’ 치면서 한준을 째려보면서 큰소리로
“바~로” 한다.
어이가 없는 한준은 ‘픽’하고 웃으며 엉거주춤하게 그냥 서 있다.
그러자 말괄량이는 막대기로 한준의 양쪽 어깨를 재빠르게 세 번씩 가격한다.
“궁 상 각 치 우, 황 태 중 림 남” 크게 외치면서 때린다.
그러나, 말괄량이의 재빠르고 변화무쌍한 언행에 얼이 빠진 한준은 봉을 피할 생각조차 못하고 멍청이 맞고 있었다.
여섯번 째, 마지막으로 내리치는 막대기의 위력은 상당하다. 맞은 어깨가 얼얼하게 제법 아프다.
그러더니 말괄량이는 한준에게
“오늘은 첫날이니 이쯤하고 다음에 보자, 그리고 사제는 말귀가 어둡고 머리가 나쁘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야.”라고 상냥하게 말하며, 사저의 도리를 다하였다는 뜻이 득의 得意의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중부를 바라보고는
“사부님. 이틀 후, 이곳에서 정식으로 가르침을 받겠습니다”하고 양손으로 포권을 취하고 깍듯이 예를 갖추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중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말괄량이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
말괄량이의 얼굴이나 생김새는 뚜렷한 이목구비 耳目口鼻를 갖추어 눈동자는 맑고 흰자위는 희고 깨끗하며, 입술은 붉고 도톰하니 이쁘고 늘씬한데, 하는 짓거리는 맹랑 孟浪하고 방자무기 放恣無忌하기 짝이 없다.
하는 짓이 예측불허 豫測不許다.
아니,
오히려 이후의 행동은 또,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싸움에 졌으니,
그것도 여러 명이 한 사람에게 호되게 당했으니,
조용히 자숙 自肅하며, 상대의 처분에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괄량이 계집애는 혼자서, 비상식적인 엽기적인 행동으로 관중 觀衆들을 휘어잡고, 모든 눈길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며, 좌중 座中의 분위기를 주도 主導해 버린다.
좌중의 시선 視線을 사로잡아 버리는 대단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런 대범하고 시원시원한 행동에 감히, 어느 누구도 제동 制動을 걸 수가 없다.
아니, 한 수 앞선 화려한 재빠른 행마 行馬에 바라보는 관중들의 사고 思考는 경직 硬直되어버리고, 눈길이 따라가기 바쁘다.
말괄량이는 그러더니 궁상각치우 합창단들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큰소리로,
“자, 이제 우리도 가자” 하더니 봉을 하늘로 치켜세우고 씩씩하게 앞장서더니,
“궁 상 각 치 우, 황 태 중 림 남~”하며 크게 노래 부르며, 백사장을 벗어나 갈대밭 오솔길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말괄량이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대범하며 거침이 없다.
궁상각치우도 각자 막대기를 챙긴 후, 중부. 한준과는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애써 눈길을 피해가며, 얼른 말괄량이의 뒤를 바삐 쫓아간다.
이중부와 한준은 얼이 빠져 멀거니 서서 보고만 있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니, 여섯 명의 소년 소녀는 마른 갈대숲으로 사라지고 없다.
“궁 상 각 치 우, 황 태 중 림 남~, 궁 상 각 치 우, 황 태 중 림 남~”
메아리만 바람결에 흩어진다.
늦가을 발해만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양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제서야 이중부와 한준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말괄량이에게 속임을 당했다는 느낌이 서서히 든다.
싸움에 이긴 승리자가 패배자들에게 ‘가라 오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니 말할 겨를이 없었다. 싸움에 진 패배자들이 이긴 자의 처분이나 의견을 무시한 채, 먼저 시비를 건 잘못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이, 저희 마음대로 그냥 가버린 것이다.
‘이런 괘씸한 일이...’
더구나, 이중부는 말괄량이에게 무방비 상태로 안다리 걸이를 당해, 모래판에 완벽하게 뒤로 넘어져, 깨끗하게 한판승을 헌납 獻納했으며, 한준은 멍청히 서서 말괄량이의 막대기에 여섯 대나 얻어맞았다. 더구나 '말귀가 어둡니',' 머리가 나쁘니' 하는 조롱까지 들어가면서….
상대가 여섯 명이니까 사람 머릿수만큼 여섯 대를 때린 것 같다.
마치, 한편의 변화무쌍 變化無雙한 일인극 一人劇을 본 느낌이다.
싸움에서 이겨, 잡아 놓은 전리품 戰利品 포로 여섯 명은 종적 蹤迹이 묘연 妙然하다.
사라진 포로들의 이름도 출신도 아무것도 모른다.
오늘의 결과는 호주머니의 잣 알만 사라지고 없다.
발해 래주만 바닷가 하늘에는 갈매기 대여섯 마리가 나지막이 선회하며, 두 소년을 보고 “끼~룩 끼~룩” 놀리듯이 울더니 먼 바다로 시원하게 날아가 버린다.
사흘 뒤.
정오 무렵, 중부는 말괄량이가 봉술을 가르쳐 달라며, 일방적으로 정하고 통보한 일자가 지나쳐 버린 것을 깨달았다.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정한 억지 약속이며, 답도 하지 않아 어겨도 ‘그런 약속이야.’ 하며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문득,
모래밭에 넘어진 말괄량이를 일으켜 세우려 손목을 잡았을 때, 순간적으로 짜릿하면서도 뭉클했던 이상야릇한 그 느낌이 불현듯이 생각났다.
‘어! 그 느낌이 뭐였지?, 벼락을 맞으면 그런 짜릿한 느낌이 들까?’
‘동무들과 놀 때, 동네 계집애들의 손을 잡기도 하고, 손목을 잡고 당기는 장난도 여러 번 하였으나, 그런 느낌은 전혀 몰랐었는데….’
툇마루에 앉아 한참 고민한다.
마침, 마당에서 슬비가 혼자 소꿉놀이하고 있었다.
중부는 여동생 슬비의 흙 묻은 조그만 손을 슬며시 잡아보았다.
다른 동무들의 손보다 동생의 손이 더 부드럽다는 촉감을 느낀다. 그러나 말괄량이의 손을 잡았을때, 찰나적으로 느꼈던 그 짜릿한 감촉은 없었다.
슬비가 이상하다는 듯 오빠를 빤히 쳐다본다.
이상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동생의 눈길을 무시해 버리고, 중부는 이번엔 정지로 들어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자, 부지깽이를 들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어머니는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기특한지,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다른 손으로 중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역시 엄마의 따뜻한 손의 감촉은 언제나처럼 정겹고 포근하다.
그러나,
또래의 말괄량이 계집애의 손목을 잡았을 때의 그 뭉클하면서도 짜릿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상하네’
자꾸 말괄량이의 기다란 손가락과 희고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말괄량이 계집애, 이름이라도 물어볼 것을….’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싱숭생숭한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마루 한 켠에 걸어두었던, 봉을 집어 들고는 마당에서 봉술을 시전 해본다.
슬비는 오빠의 막대기를 피해, 얼른 정주간의 어머니 곁으로 피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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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네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