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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미, 해학성의 맥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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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익영(미술평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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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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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1745~)는 영조,정조간에 활동한 조선 후기의 화원화가로서 정조의 어용화가로 발탁되어 어진을 그린 후 그 공로로 충청도 연풍 현감까지 지냈던 대가였다. 당시는 이미 서양 문화가 들어오고 서양화 기법이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설경(雪景) 산수(진경산수, 서경산수)가 크게 대두되는 때였다. 풍속화 역시 사경 산수화 못지 않게 유명했는데 이 경향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발단하여 거의 같은 때에 사라진다. 단원은 이 두 영역에서 독특한 필적을 남긴 인물이다.
단원의 실경 산수화는 흔히 선대의 겸재(1676~1759)와 비교되고, 풍속화는 후대의 혜원(년대 미상)과 비교되고 있다. 이동주는 그의 『한국회화소사』에서 말하기를, 겸재가 기본적으로 현실 풍경을 묵색으로 파악한데 반해 단원은 필선을 취함으로써 서로 묵법과 필법으로 대립된다고 했다. 풍속화도 혜원과 특징을 달리하여 혜원이 춘화에 유명했다면 단원은 실경 산수를 배경으로 한 서민 풍속화로 명성을 얻었다.
혜원의 풍속화가 거의 도시의 세련된 서민들의 로맨스를 주제로 삼았던 반면, 단원의 풍속화는 농, 공, 상에 걸치는 넓은 시야에서 생업의 즐거움을 그의 특유한 익살과 구수한 맛으로 엮어 나갔다(목수, 미장이, 기와장이, 도부꾼, 머슴살이, 대장장이, 주모, 엿장수, 마부, 뱃사공, 어부 등) 그의 풍속화 중에는 배경 없는 인물 중심의 풍속화와 산수인물화 풍의 풍속화가 있는데 후자를 소위 ‘산수 풍속화’라 한다. 이런 산수 풍속화 속에 민정의 기미와 해학의 묘미를 표현했다.
단원은 또한, 여전히 중국 산수화의 본을 답습하던 당시의 화단 풍조 속에서, 우리의 풍토감각이 짙은 한국 산수화의 한 정형을 세웠던 화가이다. 그 뿐만 아니라 풍속화의 주제는 거의 서민 사회 전반에 걸치는 민생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으며, 이것은 혜원의 풍속화와 더불어 매우 주목할 만한 사회사적 의의를 지닌 것이었다.
이동주의 연구에 따르면, 단원의 회화사적 의의로서 여백의 조형미를 또한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회화적 공간의 핵심은 모름지기 ‘기운생동’이 으뜸이라 하고, 그것은 바로 화면의 핵을 매개한 통일성과 밀도 있는 화면구성이라 했다. 그리고 이 기운생동의 화면구성을 이루는 요소는 화폭에 그려진 물상과 그 여백이라고 했다. 그는 단원이 바로 이러한 회화적 공간문제에서 ‘여백’의 조형적 의미를 깊이 의식했던 것으로 보았다.
“화면통일의 핵심이 물상일 수도 있거니와 또 많은 경우 단순한 빈 화면 곧 물상이 그려져 있지 않은 공백(空白)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바로 현대화론에서 말하는 화면구성에 있어서의 공간처리에 관한 것인데 이씨왕조 500년을 통하여 김단원은 이 문제를 가장 예리하게 의식한 것 같고 더 가장 성공시킨 화가로 생각된다.”
이제 본고의 논지를 미리 말하자면, 첫째로 ‘전통 산수화에 있어서의 여백은 구름의 표현’이라는 것과 그 정서적 표현이 1970년대의 한국 추상회화에 반영됐음을 추론하고, 둘째로는 단원을 계기로 본 한국 현대 미술의 해학성을 살피고자 한다. 여기서는 「한국 추상미술에 나타난 ‘여백’의 전통 ; 구름길」,「김환기의 <공기와 소리(I)>」,「순수미 다시 읽기 : 칸트버기즘과 김환기의 추상미술」,「한국 현대미술과 해학」을 바탕으로 재정리코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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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원의 여백 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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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산수화의 정신과 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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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적 시각에서 볼 때, 산수화에서 ‘산(山)’과 ‘수(水)’의 사이는 구름으로 표현되거나 텅 빈 계곡으로 남겨 놓는데, 노자에 의하면 이 골짜기는 최상의 덕인 것이다(上德若谷). 그 빈자리는 구름이 지나가는 길이요 기(氣)의 운동을 나타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여백의 ‘사이’는 음양의 기(氣)가 서로 교체되는 생기(生氣)찬 공간인 것이요 자연 섭리를 중재하는 곳이다. 산수화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음양의 부단한 교체 즉, 자연의 질서를 관조(觀照)할 수 있는 것이다.
계곡의 사잇길이나 여백의 통로는 모두 화폭이 호흡하는 숨길이자 자연의 숨통이기도 하며, 인체의 기도(氣道)와도 같다. 회화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부분(안 보이는 세계)을 여백이라고 한다. 음악의 경우는 분절된 리듬과 리듬 사이에 있는 고요 -휴지(休止)- 를 뜻하며 시의 경우는 생략법에 의한 생략에 또는 시의 주제와 대사안의 거리를 가리키고 있다.(Fran ois Eheng)
위를 다음과 같이 부연해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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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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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구름)가 지나간다. |
음악 |
-> 공간(여백,사이)를 통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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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가 지나간다. |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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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 사유가 지나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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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에서 산(山)과 수(水) 사이는 이렇게 구름으로 언제나 가득 차 있는 것이다 ; 비어있는 듯한 여백을 가득 찬 것으로 느끼게 하는 절묘한 조형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이동주는 ‘회화적 공간의 중추적 역할’과 관련하여 단원의 산수화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간혹 옛 화법에 공백이 강조되는 수가 있었어도 그것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운무 같은 물상의 표현으로 그야말로 공백 아닌 공백이었다. 따라서 화면의 구도는 결국 배포(配布)일 뿐이요 그 외의 공백은 문자 그대로 여백이 되며, 그곳에 임의로 낙관날인하며 화제도 적는다. (...) 단원 화법의 후기의 핵심인 공백이라는 요인의 비(非) 여백화(餘白化)가 나온다. 완숙한 단원에 이르면 이미 화면에는 종래의 의미의 여백은 없다. 있는 것은 회화적 의미를 가진 공간 - 말하자면 중요한 회화적 요인으로서의 공간일 뿐 아니라 심지어 어떤 화폭에 있어서는 그림 구성의 중핵(中核)을 이루게 한다. (...) 말하자면 공백은 이미 공백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구성 요소가 된다. (...) 「武夷歸棹(무이귀도)」와 더불어 공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닌 회화적 공간으로 전체 구도의 중추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동주는 단원의 후기 작품에서 이러한 ‘회화적 여백’이 성숙됐고, 이것은 새로운 공간구성의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즉 붓이 가지 않은 화면의 여백을 구도의 주축으로 삼았고, 그 공백을 의식적으로 매개시켜 밀도 있는 화면구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구름의 종류도 다양한데 예로써, 안개구름으로 축축히 깔린 무운(霧雲), 가랑비를 뿌리는 삽운( 雲), 벼락을 치는 벽운(碧雲), 소나기가 쏟아지는 패운( 雲), 비가 걷히는 제운(霽雲), 저녁 노을을 보여주는 하운(夏雲), 아침 이슬을 터트리는 노운(露雲), 밝은 대낮의 청운(靑雲)과 구름 한 점 없는 것 같은 맑은 하늘의 백운(白雲)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백운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텅 비어 있는 듯한 공운(空運)이요, 하얗고 불투명한 흰 구름은 소운(素雲)이다.
2.2 산수화의 구름
1751년 (辛未年),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旺霽色圖)」는 조선 후기 회화에 나타난 몇 가지 새로운 양식(남종화, 풍속화)들 가운데 하나인 ‘진경산수(眞景山水)’ 화풍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의 만년인 고령 75세 때 그려진 것인데, 진경산수는 그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서, 우리 나라의 산천을 직접 돌아보고 그것을 소재로 삼아 설경(雪景)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실경산수의 전통은 일찍이 고려 시대부터 유행되어 조선시대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종래의 전통과는 달리 독특한 화풍을 이룩하여 안견, 김홍도,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시대 4대가(大家)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특히 「인왕제색도」는 그 절정에 이른다.
「인왕제색도」는 그 화제가 말해주듯이 ‘비가 걷히는’ 제운(霽雲)의 기상을 주제로 그린 것이다. 인왕산을 설경으로 하고 구름을 통해 대기의 생동을 묘사한 것이다. 대기의 변화와 산천의 정기를 보는 데는 모름지기 구름을 으뜸으로 삼는 것은 동양의 오랜 전통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예로부터 한 나라의 임금이나 평범한 농부, 심지어 화가들에게까지도 자연의 일기(日氣)는 큰 관심거리였음은 새삼스럽게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국 북송시대의 남양(南陽)사람 한졸(韓拙)은 “무릇 그림이란 기후를 나누고 운연(雲煙)을 나누는 것으로 우선 삼는다” 고 하여 산수화와 기후의 필연적인 인연을 토론했다.
이에 앞서 당대(當代)의 왕유(王維) 역시 “산수(山水)를 보는 사람은 먼저 기상(氣像)을 보고 뒤에 청탁(淸濁)을 구별”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하늘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고 날씨의 맑고 흐림을 구별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화가의 눈은 하늘의 기운을 살피는 일에 특별히 예민했던 모양이다. 한졸의 관찰을 본다.
“구름은 깊은 골짜기에서 피어올라 해 돋는 곳으로 들어가니, 태양을 가리고 공중을 가리어 각가지로 변화하되 어디에도 구애받지 아니한다.구름이 올라가 청명(淸明)하게 개이면 사시(四時)의 기(氣)를 드러내며, 흩어져서 어둡고 흐려지면 그 사시(四時)의 상(象)을 감춘다. 그러므로 춘운(春雲)은 백학같고 그 모습이 한일(閒逸)하여, 융화를 이루면서 기운을 천지사이에 서창(舒暢 : 널리 화창함) 한다. 하운(夏雲)은 기묘한 산봉(山峰)같고 그 세(勢)가 음울하여 농(濃)하고 담(淡)하면서 많은 변화를 꾸미는 모양이 일정치 않다. 추운(秋雲)은 가벼운 물결 같고, 나부끼는 나뭇잎 같고, 목화 솜 같이 넓고 조용하면서 청명하다. 동운(冬雲)은 발묵(潑墨)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 같아 그 암흑의 색깔이 어둡고 차가우면서 깊고 무겁다. 이것은 청명한 날의 구름이 사계절에 걸쳐 보여주는 형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산수화에서 보는 다양한 구름의 모습은 그 윤곽이 분명치 않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것은 구름의 ‘형상’이 아니라 구름이 있는 ‘장소’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동양의 전통적 수묵 산수화에는 하늘과 구름이 따로 구별되지 않고 항상 하나로 같이 ‘있는’ 것이며,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산수화에서는 ‘하늘’에 대한 개념이 따로 없는 듯 하다. 다시말해 산수화에서의 산은 하늘만큼이나 높은 것(곤륜산처럼 : 그곳은 하늘과 맞닿는다)이며 그래서 모든 구름은 산아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볼 때 산수화는 산 위의 여백(서양화에서는 하늘)에 그려진 구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상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산의 높이는 곧 하늘의 높이를 뜻하고 있기 때문에 산보다 높은 곳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산수화의 구름은 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은 생각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선과 단원에게도 지배하고 있다. 그들도 당연히 산봉우리 아래의 구름만 관찰한 것이다.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하얀 화선지는 그 자체가 본래 구름으로 차 있는 것과 같은 것이고, 그 속에 가려진 산과 초목을 하나씩 드러내는 것이 산수화인 것이다. 다시 말해 구름과 산천이 접촉하는 경계 부분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다. 구름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오히려 산이 그려지고, 따라서 붓이 지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여백은 사실상 구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산수화의 여백은 구름의 초상화이다.
북송 시대의 곽희(郭凞)는 그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구름 없는 산은 화초가 없는 봄과 같다”고 하여 구름과 산의 절실한 교우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구름은 하늘이 아니라 산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필자는 산수화의 이 여백을 구름이 통과하고, 구름의 삶이 있는, ‘구름 길’ 이라고 했다.
2.3. 여백은 청자, 백자와 상통
이와 같은 ‘구름 길’의 전통적 맥락은 한국 추상미술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가장 좋은 예를 단색조의 파란색으로 덮인 심환기의 「공기와 소리(I)」(1973)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그림에서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은 화폭을 가로지르는 가늘고 긴 공백의 수평선이다. 이 빈자리가 바로 구름이 지나가는 ‘구름 길’이며 화폭에 생기를 패우는 기맥(氣脈)과도 같은 것이다.
흰 선의 위 부분은 하늘이고 아랫부분은 바다일 것이다. 자세히 관찰하면 화폭을 가득 채운 푸른 점박이 얼룩들은 하늘과 바다를 연상하도록 일정한 방향을 갖고 운동한다. 하늘의 점들은 원을 그리고 바다의 점들은 수평 운동을 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의 하얀 여백의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의 사이이며, 그 빈자리는 대기가 지나갈 공간인 것이다. 아니면,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 ‘소리’가 지나갈 통로일 것이다.
1970년대 이래, 이러한 예는 윤형근의 「茶靑」연작들, 이우환의 「점에서」와「선에서」연작들, 이동엽의 「상황」과 「間一冥想(循環)」연작들에서도 볼 수 있다. 「間一冥想(循環)」(1992)에서 보듯이, 화폭의 여백 속으로 점점 스며들어가는 짙은 선들은 마치 계곡이나 절벽들을 연상시켜 주는데, 그 두 수직축과 수평축의 사이가 ‘구름 길’이다. 질릴 정도로 팽배한 화면은 절묘하게 山↔水의 교체를 중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음양의 충화(沖和)로 가득 찬 대기의 긴장이 있고, 그 사이의 틈새는 양극의 에너지를 융화시켜주는 호흡의, 명상의, 구름의, 메아리의 계곡과도 같다. 산수화에 담긴 전통적 여백의 정서가 이어진 조형기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모든 조형 형태 속에는 과거로부터 대물림을 해왔던 ‘잠재적 조형 요소’가 숨겨져 있기 때문인데, 언제라도 다시 드러날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유전형질(遺傳形質)의 핵을 나는 근래에 ‘조형적 DNA’라고 말해왔다. 김환기의 추상 작품을 관통하는, 그러니까 ‘하얀 여백의 수평선’에 관한 담론에서 이 그림의 조형적 유전인자가 고려청자와 운학(雲鶴), 조선의 백자에서 유래됐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수평선의 유전형질을 분석한다.
고려 청자의 푸른색이 하늘이었다면 거기에 새겨진 백색의 운학은 구름이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인 것이다. 파란색과 흰색은 결핍의 기표이고 하늘과 구름은 기의가 되는 것을 안다.기의는 은유와 환유로 되어있으므로 결핍의 은유이고 구름은 결핍의 환유이다. 따라서 고려 청자나 조선의 백자는 하나같이 ‘결핍’ 그 자체이다. (우리는 그곳에 언제나 물을 채우지만 언제나 비워진다.) 그것의 무의식은 요구이다.
그 결핍이 겉으로 드러나면 욕망(하늘, 구름, 학)으로 보이는 것이고, 그 욕망을 은폐시키기 위해 백색으로 억압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기호인 구름과 학은 조선시대의 선비를 상징했다. 우리말 사전에 ‘고운 야학(孤雲野鶴)’이라는 한자 성어가 있는데, 그 뜻을 풀이하면 ‘외따로이 떠 있는 조각 구름과 들에 깃들이는 두루미’라는 의미로 ‘벼슬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숨어사는 선비’를 비유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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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언제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구름과 학은 모두 선비를 상징했던 것만은 틀림없으니, 적어도 조선시대의 수묵 산수화에 그려진 선비들은 구름과 학으로 비유할 만 하다. 단원의 「해산선학(海山仙鶴)」과「심계선학(深溪仙鶴)」을 보면 학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운상신선(雲上新仙)」을 보면 구름은 신선(神仙)이 지나가는 ‘신선 길’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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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벼슬의 욕망을 ‘억압’하고 한가로이 숨어사는 ‘은폐’자 이다. 여기서 ‘은폐와 억압’은 백색의 거세로, ‘한가로운’ 모습은 백색의 여백으로 비유될 수 있다. 그 백색의 이면에는 선비의 욕망(무의식)이 가려져 있는데, 소유하고 싶은 것이 지나치게 많아서 아예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할 때처럼, 너무 많은 욕망이 억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백색에는 표현하지 않은 욕망들로 가득하다. 학에 숨겼던 욕망을 다시 구름 속으로 옮겼다가, 더욱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백색의 여백으로 위장한 것이다. 사실 그 백색의 공간에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백색 공간의 탄생에 기원이 된다.
2.4. 구름, 학으로 표현된 백색의 기표
김환기의 ‘백색 여백’의 조형적 모태는 정확히 말해서 고려청자와 조선의 백자에서 왔다. 그리고 청자의 청색을 ‘무의 세계’로 보았다면 거기에는 백색처럼 결핍이 있다. 고유섭도 청색과 백색을 하나의 기표로 읽고 두 개를 모두 ‘무의 색’으로 묶어 버렸다. “허다한 청자와 백자, 이러한 기물(器物)은 허무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을 느끼게 한다.”, “한 개의 백자 사발, 그것은 희다 하기엔 너무나 푸르고, 푸르다 하기엔 너무나 희다. 깨끗하고 그윽하고 고요한 그 색조는 ‘무’의 세계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게 한다. 그는 흰색에서 푸른색을, 푸른색에서 흰색을 동시에 보았으며 청과 백은 이렇게 결핍의 기표에서 하나로 만난다. 그런데 청자와 백자를 더 완벽하게 하나로 결합한 예는 놀랍게도 김환기의 시에서 발견된다.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틀림없는 한 쌍이다.“ 이 시를 풀어보면, 청자와 백자의 빛깔은 모두 하늘을 뜻하고, 부재와 무, 결핍의 기표이다.
미리 말하자면, 백색은 기표이고 운학은 기의이다. 기의는 기표의 의미로서 은유와 환유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은유는 ‘의미’이고 환유는 그 의미의 ‘지연’이다. 백색이 결핍의 기표일 때 구름은 백색의 은유이며 학은 백색의 환유이다. 이 논리의 배경을 풀어서 설명하면, 프로이드는 꿈의 작용을 은유와 환유로 풀이하였는데 ‘꿈은 사회에서 금기된 욕망이 의식의 고리가 약한 틈새로 밀고 들어와 나타난다’고 했다. 이 첫 단계에서 욕망의 내용은 압축된 형태로 바뀌어 나타나고, 그것이 만족치 못할 때(혹은 노출될까 염려될 때)는 그와 인접한 다른 형태로 다시 옮겨(전치 되어) 나타나는 단계로 이행되는데 전자를 은유라 하고 후자를 환유라 했다. 라캉은 여기에 근거를 두어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을 재해석하면서 소쉬르의 언어학을 적용시켜 ‘무의식은 언어 구조처럼 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바로 은유와 환유, 기표와 기의의 차이로 체계 잡힌 언어 구조를 일컫는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볼 때 구름은 백색의 은유이고 학은 백색의 환유가 된다. 다시 이렇게 묶을 수 있다 : 백색(기표, 무의식)/운학(가의, 의식), 백색을 언어적 구조에서 볼 때는 백색은 결핍이고 운학은 욕망인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분석한대로 백색과 청색은 같은 지표이므로 모두 결핍이 된다. 그래서 고유섭 말한 ‘공극의 공포’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 공극의 결핍 때문에 국화나 당초문으로 주어진 화면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장 클레르는 ‘욕망의 대상’이요 ‘부재에 대한 공포’라고 했다.
그 여백은 바탕 면이고 후소(後素)이다. 결핍의 백색이고 구름 길이다. 고려청자의 운학이다. 어떻게 그런가? 백색은 자신의 결핍을 구름으로 채운다. 그러나 구름이 만족치 못하면(억압된 욕망이 누설될까 두려우면) 학으로 다시 변장하여 나타난다. 이렇게 ‘백색→구름→학’의 식으로 형질 전환되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염색체(백색)를 갖고 있다.
학은 구름을 의미하고, 구름은 다시 백색을 의미하고, 백색은 결핍과 무의기표가 된다. 따라서 백색은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계(구름, 학)로 드러낸다. 여기서 무의식은 결핍이고 의식은 욕망이 되므로, 결국 백색은 자신의 결핍을 욕망(구름, 학)으로 채운다는 말이다.
2.5. 되살아난 여백의 욕망
우리 전통미술이 국제 양식의 급류에 휩쓸리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이때에 많은 이들이 과거를 되짚어 본다. 그러면 한국 현대미술의 터를 마련해 준 우리의 근대주의는 무엇이었는가? 오광수의 예로, 첫 번째는 ‘한국의 근대적 의식’으로서 18세기의 실학사상과 연결된 ‘실경산수화’와 ‘풍속화’ 정신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등장했을 뿐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뚜렷한 정신적 맥락을 이루지는 못했다. 실경산수화와 풍경화는 일정한 틀에 의해 그려지는 관념산수화가 아니라 우리의 자연과 사회의 풍속적 현실을 화가의 개별적인 시각에 따라 그려냈고, ‘그것은 곧 개성을 말하다’는 의미에서도 근대적 의식이었다.
두 번째는 서양의 근대적 의식으로서, 이것은 ‘회화가 재현적, 설화적, 내용적인 것을 떠나 그 자체의 순수화를 지향’하여 회화 고유의 구조를 지각한 것이었다. 이것은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로서의 가치를 확립하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 마네를 위시한 인상파에서부터 세잔느를 거쳐 야수파와 큐비즘에 이르면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결국, 한국미술은 근대의식을 지닐 수 있었던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잃었다. 실학사상에 근거한 실경산수화나 풍속화의 근대주의는 19세기 후반의 보수적 정치이념 때문에 득세한 관념산수화와 고답적 문인화풍 그리고 일본의 식민문화에 가로막혀 버렸고, 서구 미술에 근거한 모더니즘은 사상적 알맹이 없이 허물의 양식만 들어왔다.
그러면 근대주의 정신이 빠진 우리의 근대주의는 무엇인가? 억압된 근대정신은 무의식처럼 은폐되고 위장되었을까? 대대로 물려받은 백색의 여백에 잠복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백색의 심연은 시간이 멈춰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는 역사가 무의미하다.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마치 복합 문화 속에서 피어난 구름과도 같다. 기류에 순응하는 형태 없는 존재로서, 단지 지나간 자취의 공백만 있을 뿐, 백색의 공간처럼, 전통의 정체성이란 본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유전 핵과 같은 것은 아닐까. 온갖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남긴 하얀 여백의 선들은 이 무형의 전통을 나타내는 선비적 표현인 것이다. 터질 듯한 백색의 욕망, 이것은 선비주의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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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단원을 계기로 본 현대 미술의 해학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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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해학, 「서당」의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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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격의 해학이던 그것이 해학이라면 웃음이 있다. 모든 웃음이 해학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웃음이 배제된 해학은 없다. 웃음의 대상과 질, 다시 말해 무엇을 웃고 어떻게 웃기는가에 따라서 해학적 웃음과 반해학적 웃음이 된다. 또한, 웃음의 종류에 따라 해학과 풍자(satire), 아이러니(irony), 재치(wit), 농담(joke) 등의 질과 양을 구별할 수 있다. 김홍도의 「서당」에서도 우리는 웃지 못할 웃음을 웃어야하는 해학을 본다.
“이 장면이 어찌나 우스운지 다른 생도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훈장마저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생도들의 웃음소리가 화면 가득 넘쳐 감상자의 귓전까지 들리는 듯 하며, 훈장의 표정이나 울고있는 생도의 책에서는 생동감마저 느껴져 각 인물의 감정과 분위기가 성공적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에 있어서의 해학성은 무엇보다도 조형적 문제와 관련되었을 때 돋보인다. 다시 말해 ‘조형적 해학성’ 때문에 웃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불균형하게 찡그러진 얼굴을 보고 웃는 것처럼 온전한 것과 정상적인 것, 숭고한 것에는 해학이 들어 설 자리가 없는 법이며, 오히려 그들이 가지는 준엄한 틀이 깨지면서 해학은 살아난다. 해학은 웃음이 깃들인 풍자이다. 그러나 웃음을 밑에 깔고, 온전한 것과 숭고한 것에 숨겨진 허실의 정곡을 찌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웃음은 지배층의 억압에 저항하는 몸짓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에 대한 기지(機智)어린 저항의 웃음이 공감을 얻을 때 ‘사회적 몸짓’으로 변하고, 민중의 에토스(풍속, 윤리)로 드러난다. 해학에는 반드시 모순과 우행, 불건전한 논리를 발견케 하는 기지(경우에 따른 올바른 통찰력)가 필요하며 그 마지막 힘은 바로 ‘공감’에서 발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학의 뿌리는 저항에 있고 그 줄기는 기지에 있으며 열매(꽃)는 웃음과 화해에 있다.
저항의 대상은 숭고한 것과 온전한 것들이며 그들의 세계는 다름 아닌 지배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해학의 구조에는 양반 사회에 대한 서민 사회, 고상한 것에 대한 저속함, 비극적인 것에 대한 희극적인 것, 조화에 대한 부조화 등 반드시 왜곡의 대상이 있으며, 왜곡된 형태는 조화롭지 못하거나 저속하고 부정확한 것 내지는 부조리한 것들의 경우이다. 정상적인 것이거나 절제가 동반된 균형미, 엄숙함, 파토스(열정, 비장미)와 같은 무겁고 심각한 곳에서는 해학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3.2. 해학의 유형
해학의 유형은 다양하다. 그 중에는 유식과 무식에 대한 비꼼의 형태가 우리에게 친숙한데 이러한 해학은 곧 지식계급에 대한 무식계급의 저항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특히 무식한 관료를 비웃는 반관형(反官型) 해학의 예는 수 없이 많다. 한국인의 정서 구조에는 이같은 해학이 반관 의식과 야합되어 “관료층에 억압받는 민중의 카타르시스 매체로서 꽤 발달”되었던 것이다.
이규태가 살펴 본 우리 나라 해학형 인간의 공통된 특성은, 첫째 그의 인생과 일생을 당시 유교나 불교의 체제(體制)로부터 소외시킨 반체제자(反體制者), 곧 아웃사이더(outsider)란 점, 둘째는 당시 권력자나 세도가나 도학자나 돈 많은 사람들에게 익살을 퍼붓는 반정부주의자란 점, 셋째는 먹고 입고 사는 것이며 돈이며 색(色)이며 생사에 구애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컨대, 한국의 해학가들은 문화적 반체제자와 정치적 반정부주의자, 철학적 견유주의자(犬儒主義者)들이었던 점을 꼽고 있다.
일전에 ‘한국문화교류연구회’가 기획하고 세종문화회관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우리 모두 잘난 우리들의 상>전이 있었다. 이 전시회는 해학적으로 표현된 미술작품을 통해서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비춰보자는 취지에서 열렸었다. 반어법으로 시작된 이 전시회는 그 명칭의 ‘잘난’이란 용어부터가 자기비하의 ‘비꼼과 자긍심’이 동시에 담겨있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박래경은 이것을 한국의 ‘해학정서’로 보았는데 우리의 해학성과 예술에 대해서는 이미 그가 이끌고 있는 ‘한국문화교류연구회’의 주된 연구과제로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난 1998년에 개최된 <해학과 우리 : 한국해학의 현대적 변용>전은 좋은 결과물이었으며 <우리 모두 잘난...>전도 크게는 같은 맥락에서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한국 미술의 해학성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 미술의 해학은 대체로 자연주의형, 반체제주의형, 현학적 시니시즘형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자연주의형 해학은 순수한 조형적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서 무엇보다 ‘운필의 해학미’가 으뜸이다. 그에 비해 반체제주의형은 사회나 문화, 정치, 풍속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피어난 해학을 말하며, 현학적 시니시즘은 관념적 비판에서 비롯된 차가운 해학을 뜻한다. 첫 번째가 ‘조형적 해학’이라면 두 번째는 ‘풍속적 해학’이며 세 번째는 ‘미학적 해학’이라 할 수 있다.
3.3. 운필의 해학
조형적 해학은 주로 추상표현주의 경향의 미술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운필의 해학미를 강조하고 싶은데 이는 우리 선조들의 문방문화의 전통에서 배양된 일종의 유전적 해학성이라 할 수 있다. 예로서 수묵화의 정서와 모필의 사용법에서 발달한 ‘선묘의 해학’을 말한다.
오광수는 그의 저서 「한국 현대미술의 미의식」에서 ‘서체 충동’으로부터 비롯된 선묘의 표현적 특징을 섬세하게 분석했다. 이를테면, 60년대 후기 회화적 추상에서 발견되는 로우의 사용과, 묽은 안료를 캔버스의 천 속으로 스며들게 한 방법들의 경우이다. 그것은 동양의 수묵선염의 인상을 강하게 주며, 격렬한 운필과 분방한 표현, 내면적 힘의 분출, 경쾌한 필의와 속사의 리듬감각에서 자연의 이미지가 서식한다. 뭉클뭉클한 붓자국과 드리핑의 적절한 구사는 모필에 의한 수묵화에서만이 획득되는 독특한 표현적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방향도 없고, 중심과 주변의 구성상의 배려도 없이 아무렇게나 붓 가는 대로 끼적거린 장난기 어린 운필의 미묘한 구성은 한 폭의 풍경으로 변주되어 솟구치는 암벽의 준봉들과 깊은 계곡의 폭포가 산수화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또한 리듬(가락)의 해학이 있는데 그 예는 산조(허튼 가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느린 진양조에서 점점 중모리, 중중모리, 잦은모리로 몰아 가면서 경쾌하고 다채로운 선율의 해학을 만들어 낸다.
“천변만화의 음색을 구사하는 판소리음악에서 우스꽝스럽게 발성하는 대목이 있다면 그 자체가 우선 해학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렁찬 고음으로 질러 부르다가 갑자기 음정을 낮춰 속삭이듯 노래하는 수법 역시 익살에 가까운 개념이라 하겠다.”
선묘의 해학은 추상화에서뿐만 아니라 구상적 형상에도 곧잘 나타난다. 이규태 씨는 경주 홍륜사 터에서 발견된 수막새에 새겨진 미소를 한국의 ‘고전적 미소’의 걸작이라고 칭송하면서 살짝 휘어진 입가의 그 모습을 “낚시 바늘에라도 걸려 끌어올려진 듯 입술 가장자리며 초라진 두 눈의 양끝에 웃음이 소복소복 담겨져 있다”고 묘사했다.
가느다란 모필의 선 끝에 당겨진 선묘의 해학성은 가히 일품이다. 때로는 굵게 때로는 가늘게 나타나는 변화 있는 두께와 유연한 리듬의 선조는 모필이 갖는 독특한 맛을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수렵도」에서 물결처럼 휘영청 휘어지는 산악의 묘출이나, 달리는 짐승과 이를 쫓는 기마상에 가해진 극히 요약된 선조의 리듬은 모필의 운동감이 아니곤 획득되어질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오광수) 이중섭의 여러 그림에서도 이와 같은 운필의 해학미가 높이 구가되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3.4. 반체제주의와 풍속적 해학
조선시대의 반체제주의자에 해당하는 해학적 화가로서 흔히 혜원 신윤복을 꼽고 있는데, 조선 후기의 풍속화에서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었던 그는 특이한 존재라 하겠다. 김홍도가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서민들의 생활을 주로 그렸다면 신윤복은 한량과 기녀들의 에로티시즘 풍속을 즐겨 그렸고 그러한 이유로 도화서(圖畵薯)에서 쫓겨났다고 전해졌다. 도화서는 당시 화단의 전형적인 체제미술(體制美術)의 본산이 아닌가. 조요환 교수는 ‘사회적 인습’을 과감히 허무는 신윤복의 여인들에서 한국 회화의 해학미를 보았다. 신윤복은 당시 사회의 유교적 성문화 체제뿐만 아니라 도화서 화풍의 고전적 아카데미즘이 강요한 윤리 체제를 조롱했고 그들이 짓누르는 권위 의식과 허구성에 저항하는 반체제 해학을 한껏 발휘한 것이다.
반체제주의의 풍속적 해학형 가운데는 주로 반 지식적, 반문명적 순진성을 앞세우는 유형이 있다. 서양과 굳이 비교하자면 유렵의 초현실주의적 무의식 세계와 아르 브뤼(Art Brut),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반문명적 풍자가 있겠다. 장 뒤뷔페(Jean Dubuffet)는 거리에 낙서, 아동 미술, 원시 미술, 광인들의 그림들을 새로운 미술 형식으로 도입했다. 낙서 그림이 퇴행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간주되고, 사회 체제에 동화되지 못한 반항적 아웃사이더들로서 기존 체제를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저항 집단으로 취급 받고있을 때, 미국의 키스 헤링(Keith Haring)은 낙서 그림을 통해 그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정화 시켰다.
우리의 경우, 민화는 예술적 지식층인 선비 그림이나 관원 화풍(제도권 화가)에 대하여 무식층 그림에 해당하므로 반지식형 해학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김기창의 ‘바보 산수화’는 끝없는 지식계의 세계와 그 엄청난 진실계의 절대적 중압감을 무지(순진함)로 탈중력화 시킨 것인데, 이와 같은 태도는 자연에 대하여 인간의 존재가 미미함을 풍자한 것으로, 미완성의 예찬이나 비인공적인 자연미의 상찬, 소탈함, 비기교적 기술의 칭송과 더불어 낙천적 반지식형 해학의 특성이라 하겠다.
선비 화가들은 자연과 도(道)의 절대성 앞에서, 해학적 저항 외에는, 그 중압감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자연을 도전과 분석의 대상으로 보았던 서양의 추상회화가 비해학적이었던 데 반해 한국의 낙천적 반지식형은 자연에 의지하고 순응했던, 그러니까 ‘옛부터 하늘만 쳐다보는 낙천적인 농업민족’(양주동)의 정서에서 근원 되지 않았나 싶다.
한국 미술의 현대사를 돌이켜 볼 때, 1956년에 있었던 ‘국전 거부’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우리 화단의 새로운 제도권 미술에 형성과 그에 따른 저항 세력이 생겨났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소위 ‘국전파’와 ‘재야파’로 불리게 될 그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틀을 짰던 것이다. 그러나 이양자 구도에서의 제도권 미술은 재야파를 압박하고 지배할 만큼 강력한 ‘정신적 지축’이 없었고, 재야파도 역시 제도권 미술에 저항할 만한 뚜렷한 문화적 핵심사상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다시 말해 한국 미술의 정신적, 미학적 정체성을 되짚어 볼 겨를도 없이 형성된 대립구도였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는 해학적 풍자거리가 그만큼 덜했다.
1950년대 이후 얼마동안, 한국 현대미술은 해학의 대상이 될만한 압력적인 절대 문화가 상실되고 없었다. 따라서 압도적 중심축이 없는 대립구도에서는 저항심리 보다는 경쟁심리가 자라고, 풍자와 해학보다는 비판과 조소가 생겼으며 이와 같은 미술계 풍토에서는 문화적 해학이 발전하는 데 어려웠던 것이다.
3.5. 현대의 해학미술
서양의 경우는 현대 미술이 저항할 대상 즉, 고전적 아카데미즘이 지배하는 전통 미술이 그들 앞에 있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뒤샹의 해학은 가능했다. 19세기 프랑스의 풍자화가 도미에(Daumier, 1808~1879)만 해도 그의 풍자 대상은 관료를 비롯한 정치, 사회의 부조리였다. 20세기에 들어서서 뒤샹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우습게 개작한 회화(繪畵)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즘 미술에 대한 해학적 풍자였다.
뒤샹이 남성용 변기를 「샘」이라고 제시했을 때는 유럽의 고전적 아카데미즘 화풍뿐만 아니라 관능적 성문화를 해학한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 그 자체를 풍자와 해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팅겔리의 기계부속품들은 엉뚱하게 조립되어 우스꽝스러운 작동을 하는데 두 말 할 나위 없이 유럽이 신봉했던 메커니즘의 해학이다. 이렇게 메커니즘의 산물이 메커니즘을 골계스럽게 풍자한다. 풍자의 대상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인 것이다. 금세기 말의 모더니즘은 자신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화 현상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문화적 반체제주의자로서 성격이 뚜렷한 인물 가운데 가장 해학적인 작가로는 백남준을 꼽을 수 있는데 그는 모더니즘 문화의 권위와 체제를 정면으로 조롱한 국제 사회의 아웃사이더 해학가이다. 그의 해학성은 무엇보다도 뉴미디어 시대의 대중매체가 지닌 집단적 지배력과 허구성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됐다. TV가 진실의 전형으로 대변되고 모더니즘 최후의 이데올로기로 지배하고 있었을 때 그 ‘진실의 박스’를 장난감으로 바꿔 버렸던 것이다.
민중 미술도 제도권에 대치했던 반체제주의자로서 이 장르에 해당된다. 그들은 일종의 현장 그림으로 걸개그림을 제작했고, 대중과의 교화수단으로 만화나 설명적인 그림들을 제작, 기존의 관념과 형식에서 이탈하는 과정에서 해학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표방했던 ‘민족 미술의 구현’이나 ‘사회 계급의 모순 척결’, ‘군부 정권하의 민주화 투쟁’등의 문제의식이 너무나 강했고, 현장과 사건 중심의 표제 그림에 치우치던 나머지 넉넉한 해학을 만들어 낼만큼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반면, 소위 1980년대의 신표현주의 시대 이후로는 현대 사회의 풍속, 특히 성과 자본주의, 인권, 권력, 인종, 폭력, 페미니즘 등의 문제가 제고되면서, 대중적 일상생활의 테마에서부터 개인적 신화에 근거한 은밀한 자기고백의 테마까지,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해학들이 쏟아져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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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오면서 ; 현학적 시니시즘과 미학적 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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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적 시니시즘 해학은 지적이고 관념적인 풍자로서, 그들의 진정한 ‘해학적 유희’를 감상하려면 미학적 지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들은 전통적인 미적 정의의 허구성을 풍자하거나 조롱, 비평하면서 해학을 도입한다. 그런가하면 마치 예술의 교육자나 철학자처럼 행세하기도 하며, 예술 그 자체를 비평하기도 한다.
요셈 보이스는 예술이 정치, 사회, 경제, 학문 등의 인류 문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1997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흑판」작품들은 그가 대중들 앞에서 정치에 관한 강의를 할 때 사용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는 정치적 낱말들과 드로잉으로 채워져 있어서 ‘교육자로서의 예술가’의 면모를 잘 드러내 준다. 정치뿐만 아니라 그 밖의 사회제도, 자연과학, 신화, 철학 등에 관련된 담론과 드로잉이 함께 어울려 은유 되곤 한다.
벤 보티에(Ben Vautier)가 출품한 작품을 보면 단순히 캔버스에 “행복은 느림이다”라는 글을 적고 자신이 사인을 한 것이 고작이다. 그는 “빨리 봐라”, “조용히 사는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 “나비는 하루 살고, 코끼리는 100년 산다. 어느 것이 더 빠른가?”, “천천히 가라”, “이 그림은 시속 36만km로 대양 주위를 돌고 있다”, “나 벤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예술가이다”와 같은 말들을 들려주는가 하면, 요셉 코주스(Joseph Kosuth)와 같은 작가는 우리에게 언어학과 철학을 말하려 하고, 로만 오팔카는 1965년이래, 1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숫자를 지금까지 캔버스에 써오며 ‘존재의 흐름’에 대한 철학과 회화에 개입된 시간성 문제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 외에도 이러한 현학적 해학은 미니멀 아트, 그리고 개념 예술 같은 포스트 미니멀리즘 작품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우리 나라에도, 특히 요셈 보이스 풍의 작품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해학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안규철과 윤영석의 작품에서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
첫댓글 시간내어 다시 통독해야 겠네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