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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행 3:20-26)
한 성도가 죽게 되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구원이 흔들렸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와서 성경을 읽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까 말까 하노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때 “왜 마지막을 그렇게 읽으십니까?”하고 죽어가는 분이 물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당신의 영적 상태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복음을 다시 설명해주니까? 그때 비로서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고,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주님으로 모신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만나 그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놀라서 모여들었습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합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은 말합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왜 이 일을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한 것이라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내가 아닙니다.
예수께로부터 난 믿음이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너희들이 죽였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우신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자를 놓아주기를 구하였다.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다고 선언합니다. 그 예수가 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시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셨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처럼 죄와 사망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바로 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평범한 나사렛 청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셔서 역사하는 분이요, 너희들이 보는 대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뛰고 걷고 찬양하게 하신 분”이라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이 사람을 앉은뱅이에서 고침을 받게 하였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 예수님께 내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면 다 용서해주시고 제거해주십니다.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오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여기서 새롭게 되는 날이란 완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어둠에서 자유함을 얻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과의 평강을 누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을 선포합니다. 베드로는 이것으로 만족치 않아서 더 깊이 예수를 전하고 있습니다.
1. 예정하신 대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20-21절)
20절,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되 어느 날 갑자기 보내신 것이 아니고 예정하신 대로 보내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은 창세가 3: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은 이 땅에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드시 여자의 후손인 동정녀 마리아에게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4천년동안 끊임없이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이루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연히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예언한 대로 이 땅에 오셨고 성경에 예언한 대로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창조주 하나님되심을 포기하시고 피조물인 인간이 되신 데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종이 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는 삶을 살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면서 자기를 십자가에 내놓으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따라가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가장 확실히 확인해야 할 것은 나는 주님을 따라가면서 종의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삶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삶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수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님이 삽니다. 롬 5:8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 죽는 자도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죄인을 위해서 죽겠습니까? 예수를 어찌 소개하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했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인이 되었을 때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 할 말이 없는 자입니까?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 예수를 말해야 하고, 선전해야 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이 예수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고 간증했습니다. 뿐 만 아니라 그 예수가 나의 주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뿐 아니라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는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분이 아닙니다. 무덤에 갇힌 분이 아닙니다. 살아서 역사하는 분입니다. 필요하시면 앉은뱅이도 걷게하시고 죽은 자도 살려주시는 분입니다.
사도바울은 창세 전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엡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지금 택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택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을 때도 하나님은 사랑하셨고, 내가 택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나를 택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멈추어졌던 과거, 잊혀졌던 과거, 해석할 수 없었던 나의 과거가 하나씩 하나씩 설명되어지고,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아프게 하셨구나?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사업의 실패를 하게하셨구나?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 태어났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 신비가 풀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신비를 느끼다가 ‘창세 전에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습니다.’하는 데까지 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이런 고백이 있습니까? 아니면 어쩌다가 태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준비하셔서 이 시점에서 예수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예정된 그리스도가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 내 과거를 이렇게 섬세하게 섭리하신 그리스도는 분명히 나의 미래도 설계하고 계실 것이다. 하는 미래에 대한 평안이 생깁니다. 예정교리의 결론은 평안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나를 요동해도 나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내 미래는 확실합니다. 어느 누구도 내 미래를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나의 과거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분명히 나의 미래를 계획하고 계십니다.(에벤에셀의 하나님)
21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과거에 예수님께서 초림하신 목적은 죄와 사망 가운데 처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목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얼마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고후6:2에서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다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목적은 구원하시려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유를 회복시키려고"오십니다. 여기서 만유를 회복하신다는 말은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을 심판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불의와 불법이 난무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을 심판하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하신 날이 되면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심판자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예정하신 일은 때가 되면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세운 계획은 때로 차질이 있고 잘못될 수가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차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을 예정하셨으니 그날은 틀림없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성도들에게는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요, 신부가 신랑을 만나는 것처럼 즐거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날이요 탄식과 통곡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무엇보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예정하신 대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22-24절)
22,23절,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받으리라 하였고” 여기서부터 마지막 절까지에서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세 사람의 조상들, 즉 모세와 사무엘과
아브라함이 예언했던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먼저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나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라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것은 곧 예수님이 오셔서 온 인류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실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무슨 말을 덧붙였습니까?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실 것인데 그분이 구원자시라는 말입니다.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한 말씀은 정확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자는 구원을 받고 듣지 않는 자는 멸망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곧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는 자는 생명을 얻고 그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멸망을 받습니다. 마 17장에서 어느 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서 높은 산에 올라갔다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이 구세주이시니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큰 선자자인 모세가 예언한 대로 오신 예수님은 바로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듣는 자가의 귀가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들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4절에서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서 모세만 예언한 것이 아니고 유명한 선지자였던 사무엘 역시 예언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처음 선지자가 사무엘이고 마지막 선지자가 말라기입니다. 사무엘 때로부터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들이 일관되게 예언한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메시야가 오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전체가 오실 메시야를 주제로 율법과 시편과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파키스탄의 비비는 ‘무함마드 이드리스’라는 무슬림 소유의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던 무슬림 여성들이 그녀에게 기독교를 떠나 이슬람으로 돌아오라고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하루는 종교와 관련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비비는 격론 끝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무함마드는 우리를 위해 해 준 것이 뭐가 있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무슬림 여성들은 이 말에 분노했고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형사고발을 당했고 1년 5개월 뒤 비비는 신성모독법 위반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 기독교 단체와 기독인은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폴리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순간순간 파키스탄에서 핍박받는 형제자매들에 관심을 갖게 하셨다”며 “비비는 자신의 나라와 전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삶을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비비의 남편은 순교자의소리 등 기독교 단체들을 통해 “아내는 자신이 풀려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녀의 얼굴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서려 있다”며 “그녀는 자신이 가진 기독교 신앙을 몹시 자랑스러워 한다. 절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신성모독법’으로 악명 높습니다. 이 나라 형법 제295조는 ‘특정 종교에 대한 적대적 선동’ ‘코란 훼손’ ‘예언자 무함마드 모독’ 등에 대해 엄하게 처벌한다. 하지만 이 법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역사의 주인공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25-26절)
25절,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어느 날 하란 땅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시기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지상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상에 모든 족속들에게 복을 주시는 아브라함의 후손,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분입니다. 마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록하기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족보에서 나셨지만 본래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시던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육신을 입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는다는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우선 언약의 자손인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저절로 구원을 받을 줄로 착각했습니다. 혈통적으로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해서 저절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의롭게 되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을 가장 존경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존경하는 자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나게 하신 것은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미련하고 우둔한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서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 구원의 은총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이방인들이야말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거부한 유대인들에게 완전히 구원의 기회가 없어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악함을 버리고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앞서 19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죄를 범하였지만 죄를 회개하고 악함을 버리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신 것은 유대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로 나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복이 어떤 것입니까? 구원의 복입니다. 죄와 사망, 진노와 저주 가운데 처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귀한 복은 바로 영혼구원의 복입니다. 아직도 이 귀한 복을 받지 못한 분은 죄를 버리고 악함을 내어버리고 예수를 믿어서 그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처럼 하나님앞에 나온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통해서 이루어 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께서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에 붙잡혀서 예수님처럼 똑같이 심문을 받고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증거합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가 바로 구약전체에서 예언한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돌이켜 가가 그 악함을 버리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여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고치고 생명을 세우는 생명사역에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이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