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21, 오늘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톌레스'의 '부동의 존자' - '플로티누스'의 '일자'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인 것같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초월적 물자체는 초월적 의미의 현상 너머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칸트는 초월적 의미의 물자체를 주와 객, 안과 밖의 구분을 넘어서는 무제약자로 간주한다. 객관으로서의 물자체가 아니라, 주객 무분별적 존재, 주객 포괄적 존재로서 무제약자로 이해하는 것이다. 현상세계 너머의 무제약는 바로 현상을 구성하는 나와 다르지 않는 것이다.
이 주장은 현상세계, 즉 우리 인간의 의식에 초월적 물자체, 즉 존재의 실체 내지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에크하르트 톨레가 주장한 내용, 즉 우리가 형상없는 의식, 사념없는 내부의 공간, 순수의식 상태에서 만물의 근원을 체험할 수 있다는 주장을 이론적 뒷받침한다.
물론 톨레는 플로티누스의 일자와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을 자기 주장의 근거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내가 공부하면 내용들이 상호 연결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이 나 자신에 의해 직접 체험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철학이론으로 머리속만 복잡해진다.
어려운 칸트철학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잡힐 듯 말 듯 체험도 가까이에 있는 듯하다.
추가로 '시간&공간'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서양철학과 유교에서 개념 차이를 발견했다.
오늘 내 지혜가 조금 성장했다.
아래는 한자경의 '칸트 철학에의 초대' 중 관련 내용 부분:
초월적 의미의 물자체: 우리가 경험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초월적 물자체를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세계에서 경험하는 물자체에 대해 각각의 개별적인 대상사물 자체로서, 객관자체로서 떠올린다면, 그래서 초월적 의미의 현상 너머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으로서 초월적 물자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는 초월적 의미를 다시금 경험적 의미로 읽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즉, 현상세계에만 적용될 수 실체성과 인과성의 개념을 현상 너머의 무제약자에게 적용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초월적 물자체는 초월적 의미의 현상 너머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칸트는 초월적 의미의 물자체를 주와 객, 안과 밖의 구분을 넘어서는 무제약자로 간주한다. 객관으로서의 물자체가 아니라, 주객 무분별적 존재, 주객 포괄적 존재로서 무제약자로 이해하는 것이다. 현상세계 너머의 무제약는 바로 현상을 구성하는 나와 다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의 근거는 자아의 근거와 심연에서 하나로 만난다. 62
칸트는 자신의 관점을 '초월적 관념론'으로 규정한다. 시공간은 인간의 직관형식일뿐이며 따라서 그렇게 직관된 현상은 물자체가 아니라 현상(초월적 의미의 현상)이다. 초월적 관념론은 모든 현상을 단순한 표상으로 간주하지 물자체로 간주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오직 우리의 직관의 감성적 형식으로 간주하지 그 자체로 주어지는 규정 또는 물자체로서의 객체의 조건으르 간주하지 않는 교설이다.
Paul Koo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