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예주澧州 협산夾山 선회善會 선사의 법손
예주澧州 악보산樂普山 원안元安 선사
봉상부鳳翔府 인유麟遊 사람으로서 성은 담淡씨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고향의 회은사懷恩寺 우祐 율사에 의해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뒤에 경과 논을 통달하였다.
그러다가 취미翠微와 임제臨濟에게 처음으로 도를 물었는데,
임제는 언제나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임제 문하의 화살 하나를 그 누가 감히 맞서겠는가?”
대사는 인가를 받고 나자 스스로 족하다고 여겨서 바로 협산夾山에 가서 암자를 세웠다.
나중에 협산夾山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암자를 버리고 협산에게 가서 절을 하고 단정히 섰는데,
협산이 말했다.
“닭이 봉鳳의 둥지에 서식하니, 똑같은 종류가 아니다. 나가라.”
대사가 말했다.
“먼 곳에서 덕화를 흠모하고 찾아왔으니,
스님께서 한번 지도해 주십시오.”
“눈앞에 그대가 없고, 여기에는 노승이 없다.”
“틀렸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그대는 너무 경솔히 굴지 말라. 계곡과 산은 저마다
다르지만, 구름과 달은 같다. 그대가 천하 사람의 혀끝에 앉아서
판단하는 일은 없지 않겠으나, 어찌 혀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알아듣게 하겠는가?”
대사가 멍하니 대답하지 못하자, 협산이 때렸다.
대사는 이로부터 몇 해 동안을 섬겼다.
[흥화興化가 대신 말하기를
“부처가 되면 중생 걱정은 말라”고 하였다.]
어느 날 대사가 협산에게 물었다.
“부처도 마귀도 이르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체득하겠습니까?”
“촛불은 천 리 밖의 상像을 밝히는데,
어두운 방 안의 노승이 제 홀로 미혹한다.”
또 물었다.
“아침 해가 이미 솟았고 저녁 달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협산이 대답했다.
“용이 바다의 구슬을 물고 있으나,
노니는 물고기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협산이 입멸하려 할 적에 대중에게 말했다.
“석두石頭의 한 가지를 살피고 살펴라. 곧 사라지리라.”
대사가 이에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스스로 청산青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의 도는 멸망치 않으리라.”
협산이 세상을 떠난 뒤에 대사는 잠양涔陽에 갔다가
고향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무릉武陵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니까 고향 사람이 물었다.
“훌훌히 지난 몇 해 동안을 어디서 피난을 하셨소?”
“다만 시끄러운 곳에만 있었소.”
“왜 사람 없는 곳으로 가지 않았소?”
“사람 없는 곳에는 무슨 어려움이 있는가?”
“시끄러운 곳에서 어떻게 피난을 합니까?”
“비록 시끄러운 곳에 있으나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오.”
고향 사람이 어리둥절하였다. 이어서 그가 또 물었다.
“듣건대 서천西天에 28조祖가 있지만 중국에 와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만 전했다 하는데,
그들 서로가 간곡한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촌 늙은이의 문 앞에서는 조정의 일을 이야기할 것이 못되오.”
“그러면 무엇을 이야기하리까?”
“아직 헤어진 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끝내 주먹을 펴지 않소.”
“조정에서 오지 않은 이를 만나도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국량局量을 벗어난 기틀을 쓸데없이 목격하는구나.”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대사는 이어 예양의 악보산으로 가서 조용히 살다가 나중에
낭주朗州의 소계蘇谿로 옮기니, 사방에서 참선하는 무리가 모였다.
이에 대중에게 보였다.
“맨 마지막의 한마디에 비로소 마지막 관문에 이르나니,
요긴한 길목을 지키고 앉았노라면 범부도 성인도 통하지 못한다.
상류上流의 선비를 알고자 하는가? 조사나 부처의 견해를
이마에다 붙여서 마치 신령스러운 거북이 등에다
그림을 진 것 같게 하지는 말라. 이는 스스로 목숨을 잃는 근본이 된다.”
또 말했다.
“남쪽을 가리키는 외길은 지혜로운 이라야 소통할 줄 안다.”
“별안간 볼 때에는 어떠합니까?”
“새벽 별이 서광의 빛깔을 보이지만 어찌 태양 빛만 하리오?”
“이렇게 와도 세우지 못하고 이렇게가도 없애지 못할 때는 어떠합니까?”
“땔나무를 파는 나무꾼은 비단옷을 귀하게 여기지만
도인은 가볍게 여긴다.”
“경에 말하기를 ‘백천百千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하나의 수행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 자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니,
백천 부처님에게는 무슨 허물이 있고,
수행도 깨달음도 없는 자에게는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 입구에 걸리니,
밤에 돌아갈 둥지를 헷갈린 새들이 얼마나 많던가?”
“해가 돋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바다에 물이 마르자 용은 그대로 숨고,
은하수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니 봉황도 따라서 난다.”
“어떤 것이 본래의 일입니까?”
“한 알의 씨앗이 거친 밭에 떨어지니
김을 매지 않아도 싹이 잘 자란다.”
“한결같이 김을 매지 않으면 풀 속에 매몰되지 않겠습니까?”
“살과 뼈[肌骨]는 꼴[芻蕘]과는 다르고, 피[稊稗]는 끝내 벼가 될수없다.”
“사물의 생명을 상하지 않는 것은 어떠합니까?”
“눈병으로 산 그림자가 굴러가니, 미혹한 이가 공연히 방황한다.”
“고금古今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신령스런 거북도 괘의 징조[兆]가 없거늘
빈껍데기를 부질없이 뚫지 말라.”
“밝음과 어두움을 내걸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현묘함 속에서는 말하기 쉬우나 뜻을 벗어난 것은 제기하기 어렵다.”
“여래의 집에 태어나지 않고 화황華王 화려한 왕위를 말한다.
의 자리에 앉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는 화로火鑪의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말하는가?”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자의 굴속에는 다른 짐승이 없고,
코끼리가 지난 곳에는 여우의 발자취가 끊어진다.”
“행行이 부사의不思議한 곳에 이르면 어떠합니까?”
“청산靑山은 항상 발을 드는데, 밝은 해는 조금도 옮기지 않는다.”
“몽땅 시든 거친 밭에 홀로 서 있는 일은 어떠합니까?”
“백로[鷺]가 눈 쌓인 둥우리에 깃든 것은 그나마 가리기 쉬우나,
까마귀가 칠漆에 뛰어들어서 서 있는 것은 분간하기 어렵다.”
“어떤 것이 손님과 주인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마른나무에 곁가지가 없어서 새가 와도 발붙이기 어렵다.”
“종일 몽롱朦朧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보배를 모래밭 속에 던지니, 알아챈 이는 천연스럽게 이상히 여긴다.”
“그러면 손을 벌리고도 스님을 만나지 못하겠습니다.”
“학의 울음을 꾀꼬리 소리로 잘못 듣지 말라.”
“원이삼점圓伊三點은 사람들이 모두 소중히 여기는데,
악보산樂普山의 가풍은 어떠합니까?”
“우레 소리가 한 번 진동하니, 북소리는 저절로 사라진다.”
“한낮일 때는 어떠합니까?”
“한낮이라도 오히려 반은 이지러졌다.
해가 넘어가야 비로소 둥글어진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삽삽颯颯 까슬까슬한 모습이다.
한 마루 끝의 대나무는 서리를 거쳐도 스스로 추위를 모른다.”
스님이 다시 물으려 하니, 대사가 말했다.
“다만 바람이 소리만 들릴 뿐, 몇 천 줄기[竿]인지는 전혀 모른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손빈孫賓이 점포를 거두고 떠났으니, 점칠 자는 나오너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한 괘 풀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집에서 그대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법안法眼이 대신 손바닥으로 세 차례 내리쳤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대사가 선상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하늘에서 홀연히 우레가 진동하여 우주가 놀라는데,
우물 안의 두꺼비는 고개도 들지 않는다.”
“악마도 부처도 이르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가려냅니까?”
“연야달다는 머리를 잃은 것이 아닌데, 거울 속의 것을 잘못 알았다.”
“어떤 것이 생사를 여의도록 구원하는 것입니까?”
“물그릇을 잡고 구차히 목숨을 늘리는 자는
하늘 음악의 묘함을 듣지 못한다.”
“4대大는 어떻게 해서 있습니까?”
“조용한 물에는 본래 물결이 일지 않거늘 물거품이 바람결에 일어난다.”
“물거품이 꺼져서 물로 돌아갈 때에는 어떠합니까?”
“섞이거나 혼탁하지 않아서 물고기와 용이 마음대로 뛰논다.”
“생사의 일이 어떠합니까?”
“일념一念에 기틀을 잊으니, 태허太虛에 티가 없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기틀(기계)을 간직하면 오히려 자취에 막히고,
말뚝(기계의 고동)을 버리면 통하는 길이 있다.”
“어떤 것이 한 창고[一藏]에다 다 갈무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비가 북돋우니 세 가지 풀이 빼어나고, 옥은 본래부터 빛나고 있다.”
“한 가닥의 털이 큰 바다를 다 삼킨다는데,
거기에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집안에 백택白澤 신화에 나오는 짐승, 모든 일을 잘 안다.
의 그림이 있으니, 반드시 그러한 요괴는 없을 것이다.”
[보복保福이 따로 말하기를 “집안에 백택의
그림이 없어도 그러한 요물은 반드시 없으리라”고 하였다.]
“응연凝然 척 얼리는 모습이다.
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때때로 우레가 시절에 응하니,
산봉우리를 흔들고 개구리를 놀라게 한다.”
“천만 가지 운동이 이 응연과 다르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신령스런 학은 허공 밖을 날지만, 둔한 새는 둥우리를 여의지 못한다.”
“그 일이 어떠합니까?”
“백발노인이 소년에게 절하는 일은 온 세상 사람이 믿기 어렵다.”
“여러 성인들이 이렇게 오시면 무엇으로 공양하십니까?”
“토숙土宿이 비록 석장錫杖을 짚었으나 바라문은 아니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해와 달이 함께 하늘을 구르는데, 뉘 집에만 따로 길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드러나고 숨음의 길이 달라서 일이 한 가닥이 아니겠습니다.”
“스스로 염소를 잃지만 않았다면 어찌 기로岐路에서 울 필요가 있으랴?”
“학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어떠합니까?”
“집도 부서지고 사람도 죽었는데,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그러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뜰 앞에 남은 눈은 해가 녹이겠지만,
방안에 돌아다니는 먼지 뉘라서 없애랴?”
“움직임[動]은 법왕의 싹이요, 고요함[寂]은 법왕의 뿌리라 하는데,
뿌리와 싹은 묻지 않겠지만 무엇이 법왕입니까?”
대사가 불자를 드니, 스님이 말했다.
“그것도 역시 법왕의 싹입니다.”
“용이 동굴에서 나오지 않으면 누가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두 산에서 개당한 법어가 제방에 널리 퍼졌다.
당나라 광화光化 원년元年 무오戊午 가을 8월에 소임을 보는 스님을
불러서 경계하였다.
“출가의 법에는 물건을 오래 남겨두지 않는다.
씨를 뿌릴 때에는 마땅히 일을 줄이고 살펴서 이리저리 얽어매는
잡무는 모두 멈춰라. 세월은 너무나 빠르고 대도大道는 깊고 현묘하니,
만일 그럭저럭 보낸다면 어떻게 깨달아 체득할 수 있으랴?”
이와 같이 간절히 격려했으나 대중은 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전혀 주의하지 않았다.
그 해 겨울이 되어서 약간의 병이 났으나, 물으러 온 이들을 지도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다가 12월 1일에 대중에게 고했다.
“나는 내일이 아니면 모레에 떠난다.
이제 한 가지 일을 그대들에게 묻겠으니,
만일 그것을 옳다고 하면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포개는 것이요,
그것을 옳지 않다고 하면 머리를 끊고서 살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때에 제1 상좌가 대답했다.
“청산은 발을 들지 않고, 밝은 낮에는 등불을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떤 시절인데 그런 말을 하는가?”
이때에 언종彦從 상좌가 따로 대답했다.
“이 두 갈래를 떠났으니, 화상께서는 더 묻지 마십시오.”
“맞지 않았다. 다시 말해라.”
“언종도 다하지 않음을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가 다하든 다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는다.”
“언종에게는 화상의 말씀에 대답할 시자가 있지 않습니다.”
대사가 하당下堂하였다.
그날 밤 시자를 시켜서 언종을 불러다 놓고 물었다.
“그대가 오늘 나에게 대답한 것이 매우 도리가 있다.
그대의 말에 의하건대 분명히 선사先師의 뜻을 체험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눈앞에는 법이 없고 뜻이 눈앞에 있을뿐이니,
눈앞의 법은 귀나 눈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어느 구절이 주인인 구절이라 여기는가?
만일 가려낸다면 의발衣鉢 주머니를 전해 주리라.”
“언종은 모릅니다.”
“그대는 알 것이니, 말이나 해보라.”
“언종은 진실로 모릅니다.”
대사가 할을 하여 내쫓고 말했다.
“괴롭구나, 괴로워.”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언종彦從 상좌가 참으로 모르는가?
아니면 의발 주머니에 집착될 것이 두려워서인가?”라고 하였다.]
그 달 2일 오시午時에 다른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들어서 대사에게 물으니,
대사가 스스로 대신 대답하였다.
“자비의 배[慈舟]는 맑은 물결 위에서 노를 젓지 않고,
검의 골짜기[劍峽]에서는 헛되이 나무오리[木鵝]만을 놓았다.”
검협劍峽은 험준한 성이요, 나무오리[木鵝]는 수隋․당唐 때부터
있던 성을 공격하는 무기의 일종이니,
험준한 검협에는 이 나무오리의 공격도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이내 입적하니,
수명은 65세이고 법랍은 46세였다. 탑은 절의 서북쪽 모퉁이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