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부부> 49화. 인연에 감사해하는 것
1999년 9월 28일 오전 7시
둘째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일어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그녀는 자던 아이들이 깰까봐 얼른 받았다.
‘그이구나. 벌써 도착했나 보네.’
그는 추석 연휴를 마치고 그날 새벽 3시에 현장으로 출발했었다. 그런데 전화기 저편에서 시끄러운 잡음과 함께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김병선씨 댁인가요?”
“네, 맞는데요?”
“김병선씨와는 어떻게 되십니까?”
“부인인데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네, 고속도로 순찰대입니다. 부인 말고 다른 분은 안 계십니까?”
순간 등줄기를 타고 돋는 소름.
“아무도 없는데요. 아이들하고 저밖에 없어요.”
“그럼, 다른 형제분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십시오.”
“왜 그러시죠? 제게 말씀해 주세요.”
“아니오, 다른 분 전화번호를 주십시오.”
“교통사고인가요?”
“네.”
“많이 다쳤나요?”
“다른 분께 모두 말씀드릴 테니 전화번호를 주십시오.”
“아뇨, 제게 말씀해 주세요. 다른 분 전화번호,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그녀는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말을 해야만 했다.
“아저씨, 그 사람…… 그 사람…… 죽……었……나……요……?”
“……”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아저씨, 그 사람…… 죽었나요?”
“네…….”
그녀는 그 순간 공중 위로 붕 뜬 느낌이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귀가 멍해지더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저씨, 안 돼요. 아저씨, 안 돼요. 난 어떡해요…… 난 어떡해요…….”
“진정하세요. 이제 다른 분 전화번호를 주십시오. 확인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녀가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에요. 아저씨, 저 진정할게요. 제가 다 할게요. 아저씨, 어디서 사고가 났나요?”
“영동고속도로 00터널 안입니다.”
“아저씨가 보시기에 그 사람 고통스럽게 간 것 같나요?”
“아뇨, 사고 후 바로 운명하신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상처가 많나요?”
“아뇨. 머리에 약간의 피만 났을 뿐 깨끗합니다.”
“제가 가면 그 사람 보여 주나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녀는 인적 사항 등을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그렇게 그녀와 아이들을 남겨 두고 멀리 떠났다. 이별은 그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그녀는 원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도 그저 멍할 따름이었다.
그를 떠나보내며 그녀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녀는 다가가서 말했다.
“태진이, 여진이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나 믿죠? 내가 열심히 잘 키울게요. 내가 할 일 모두 마치고 당신한테 갈게요. 그럼 꼭 마중 나와야 해요. 수고 했다고 어깨도 두드려주고. 먼저 가서 편히 쉬고 계세요.”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5년 3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둘 사이가 좋아서 하늘이 시샘한 건지도 몰라.”
그녀가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찾아와 그렇게 말했다. 정말 많이도 좋아했다. 5년을 넘게 살면서도 저녁 시간만 되면, 문밖에 발소리만 나면 가슴이 설레었으니…….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화선아, 내가 그렇게도 좋니?”
“응, 너무 좋아.”
끔찍하게 서로를 아꼈던 것이 죄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5만 번의 환생 끝에 만나는 게 부부의 인연이라는데……. 그렇게 맺어진 인연치고는 너무나 짧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가 남겨준 선물이 있었다. 두 아이. 잠든 아이들을 눕히면서 그녀는 말했다.
“고마워요, 좋은 인연 맺어줘서.”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불청객처럼 쳐들어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큼 가슴을 아프게 후비어 파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만남이든, 짧은 인연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과 맺어진 인연에 항상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
<법정> 19화. 외화도 좋지만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금년 들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뿌린 관광 외화(外貨)가 벌써 1억 달라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런 상태로 나가면 금년에 목표했던 당초의 액수보다 훨씬 상회할 거라고 당국에서는 만면에 희색이다. 관계 당국이 아니라도 싫지 않은 일이다.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해외에서 피나는 경쟁을 해야 하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뿌리고 가는 외화를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거두기만 하면 되니까.
우리들이 잘 살려면 외화를 많이 벌어들여야 한다는 것은, 국민학생들까지도 교과서에서 배워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오로지 그 외화 획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 일이다. 관광객들이 뿌리고 간 그 외화를 거두기만 하면 그것으로 셈이 끝나는 것일까.
외국 관광객 중에도 그 절대다수가 일본인들이라고 한다. 박물관이나 고궁, 그밖에 구경거리가 될 만한 곳이면 으레 일본인들을 태운 전세 버스가 허리에 띠를 두르고 늘어서 있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용해야 할 장소에서까지 거침없이 떠들어대고 시시덕거리는 일을 자주 보게 된다. 오만하고 불손한 그들의 태도에 우리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대한 고정관념에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무례한 태도가 돼먹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즐겨 찾아드는 이유는 신생(信生)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기생파티’에 최대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다음과 같은 선전 팸들릿을 보았을 때부터 부풀어 오른다.
-- 한국의 정서(情緖)인 기생파티를 즐기지 않으시렵니까? 워커힐 카지노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고, 강정제(强精劑)인 인삼을 실컷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중년 이상은 일본어를 할 줄 알므로 언어장벽도 없습니다.
일본인들의 우리나라 관광 일정에는 반드시 기생파티가 들어 있다고 한다. 자기네 나라의 ‘게이샤’보다 아름답고 고분고분한 기생에 매혹되어 한번 온 사람이 다시 오는 경우가 많단다. 심지어는 일본 국내에 간다고 속이면서,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이 자기네 국내 여행보다 값이 덜 드니까.
우리들도 잘 살아야 한다. 그러나 떳떳하고 당당하게 잘살아야 한다. 따라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서 잘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제 경제동물은 그들만의 칭호가 아니다. 문제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어떤 석간지의 ‘조류(潮流)’ 난에는 다음과 같은 독자의 글이 실려있다.
-5월 20일 경복궁에서 미술 수업을 받을 때다. 15명 가량의 여대생들이 한 일본 관광객을 둘러싸고 서로들 일본말로 대화를 해보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때 다른 일본인이 오니까 절반 가량의 여학생들이 우르르 그리로 몰려가는 것이었다. 시내 유수 대학교의 배지를 달고 있는 여학생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초면의 일본 남자와 마치 연인이나 되는 듯이 우리들 앞에서 거침없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들이 가짜 여대생이라 할지라도 문제는 거기거기다. 언제부터 우리 누이들이 그들 앞에 그토록 천덕스럽게 변신해버렸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6 · 25를 통해 우리들의 모든 질서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되어버렸을 때, 살아 남은 자들끼리 연명을 하기 위해, 오로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코쟁이들이 진을 친 기지촌 언저리에서 몸을 팔아 서식하던 우리 누이들의 참상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동족상잔에 못지않은 겨레의 비극이었다. 그때의 업력(業力)은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머리만 좀 길어도 가위질을 하고, 스커트의 길이가 짧다고 법으로 다스리려는, 지극히 도덕적이요 윤리적인 당국에서, 왜 기생파티처럼 부도덕한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것일까. 외화 획득을 위해서라면 모른체해 두자는 것인가. 외화도 좋지만 민족의 긍지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는가.
일본인에게 향하는 그 자세 이하의 영합은 우리 누이들에게만 있을 것 같지 않다. 일본의 어떤 각료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서울에 갈 때마다. 어찌나 성대한 대접을 받는지 오히려 고통을 느낄 지경이다.”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대접을 했기에 오히려 고통을 느낄 지경이라고 뻐기는 걸까. 이렇게 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하지 않고는 ‘호혜평등’이 유지될 수 없단 말인가. 그 각료는 또 이와 같이 호기를 부린다.
“나는 일본의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만큼 한국을 위해서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오늘 우리나라가 일본의 돈주머니 앞에 이토록 처참하게 되어버렸는가 싶으니, 새삼스레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日帝)의 무자비한 폭정 아래 수없이 죽어간 선열들의 영상이 떠오른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어디 외화만이겠는가. 물량의 그늘에 가려 시들어가고 있는 사람의 일도 좀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의 얼이 병들고 있다면, 그 어떤 외화로도 치유될 길이 없다. 외화도 좋지만 민족의 긍지도 생각해야겠다. 외화도 좋지만 내화(內貨)의 체면도 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 내일 오전에 다른 일이 있어 지금 7월 29일 수요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