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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슥6:12의 싹은 누구인가?
노베 추천 4 조회 145 26.07.08 07:29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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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7.08 07:38

    첫댓글 초대형 성경 난제 전문 해설서인 『IVP 성경난제주석』(The Hard Sayings of the Bible)은 성경을 읽으면서 한 번쯤 품어보았을 까다롭고 어려운 질문들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권위 있는 참고서입니다. 월터 카이저, F. F. 브루스, 피터 데이비즈, 만프레드 브라우치 등 세계적인 복음주의 성서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했습니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난해한 구절들의 집중 해설:** 모순되어 보이는 구절, 도덕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건, 역사적·과학적 의문이 드는 본문, 신학적으로 난해한 표현 등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약 430여 개의 난제들을 엄선하여 해설합니다.
    * **학문적 깊이와 목회적 배려:** 최신 성서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면서도, 평신도와 목회자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설교나 개인 성경 공부에 적용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친절하게 서술되었습니다.
    * **복음주의적 성경관:**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존중하는 개혁주의 및 복음주의적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억지스러운 짜맞추기식 해석을 지양하고 문맥과 역사 문화적 배경 속에서 올바른 해답을 찾아갑니다.

  • 작성자 26.07.08 07:39

    성경을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읽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인 가이드북 역할을 하는 책입니다.

  • 26.07.08 07:48

    좋은 책입니다. 글리슨 아처의 책과 함께 보셔도 도움이 될 겁니다.

  • 26.07.08 07:49

    슥6:13 평화의 의논에 대한 스펄전의 묵상

    https://cafe.daum.net/1107/Y4PX/2146

  • 26.07.08 11:23

    네, 다시 잘 읽었습니다.

  • 26.07.08 07:50

    <매튜 헤리 주석>

    슥6:13 "평화의 의논이 그들 사이에 있으리라." 즉,

    (1) "여호와" 와 "순이신 사람 사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이다. 그리스도의 중재에 의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평화에 관한 의논은 구속의 언약 속에 있는 무한한 지혜에 의하여 협의될 것이다(즉, 협의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문제에 있어서 완전하게 충분히 서로를 이해한다. 혹은 오히려,

    (2) 제사장과 보좌 사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격인 직임과 왕격인 직임 사이이다. "순이신 그분" 은 "평화의 의논" 을 수행하러 자라나리니, 땅의 평화와, 그것을 위하여 하늘과의 평화를 의논해야 한다.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화의 생각" 이며, 그것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며 동시에 구세주" 로 들어 올렸다. 그는 그에게 보좌를 주셨는데, 그가 그의 보좌 위에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제사장과 왕의 두 직임을 수행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되고 그 안에서 복을 누리도록 하는 위대한 작업을 초래해야 한다는 조건 아래서 그렇게 하였다.
    혹자는 그것이 왕과 제사장의 분리된 직임자들이,

  • 26.07.08 07:51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지금 그러하듯이, 교회와 국가에 있어서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할 목적으로 서로 의논을 하는 유대 국가의 이전 정사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그들을 돕는다" 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그처럼 복음의 교회와 모든 신도들의 평화와 복지가, 비록 두 분리된 사람들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하나에서 만나는 두 분리된 직임 덕택에 시행될 것이니-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사장직에 의해 모든 평화를 사시며 그의 왕국에 의해 그것을 유지하시고 수호하신다. 펨블(Pemble)씨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예언자직은 이 위대한 계획 속에서 양자에게 봉사한다.

    6.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복음의 교회 안에서 서로 행복한 연맹을 가질 것이며, 그들은 양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 그들의 일치의 중심으로서 그의 보좌 위에 제사장이 될 것이다(15절).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혹자는 그것을 포로생활 뒤에 있는 바벨론에 멀리 떨어져 있는 유대인들도 이해하는데 이는 돌아와서 성전을 짓는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들에게 큰 실망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 다수와, 유대교로 개종한 다른 나라들도 들어와서

  • 26.07.08 07:51

    성전 건축에 돕는 손을 빌려 주고, 많은 손들이 가벼운 일을 할 것을 약속하신다. 바사의 왕들도 성전 건축에 기여했고(스 6:8), 그 장식을 도왔다(스 7:19, 20). 그 후대에 헤롯 대왕과 이방인들이 성전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하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이것은 나아가서 장차 "순인 사람" 이 지을 "여호와의 성전"을 가리켰다. "먼 데 사람" 인 이방인들이 그 건축을 도우리니, 그 이유는 그들 중으로부터 하나님께서 그 건축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할 일꾼들이 될 사역자들을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방인 개종자들 모두는 이 건물에 부착되는 돌들이 되어 "거룩한 성전으로 성장할" 것이다(엡 2:20).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져야 할 때 그는 먼 데 있는 자들로부터 데려올 것이며 그 건축에 그들을 기용할 것이다.

    7. 이 뜻의 성취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대한 강한 확신이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 약속, 먼 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성전 건축에" 있어서 그들을 도와주리라는 약속은 소위 "그들에게 표적을 주었다." 이에 의해 그들은 다른 약속들도 때가 되면 이루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 26.07.08 07:51

    이는 이제 매우 신속히 이루어져야 했다. 그것은 그렇게 되었으니, 그 까닭은 왕의 칙령에 순복하여서, 그들의 원수요 고소자들이었던 사람들이 그들을 돕는 자가 되었고, 그 일의 진척을 위해 명령받은 일을 신속히 행하였고, 그에 의해 그 일이 계속되었고 끝마쳐졌기 때문이다(스 6:13, 14 참조).
    이제, 그들은 성전 건축에 있어서 멀리로부터 감행된 이 놀라운 도움에 의해, 자기들이 이전에 들었던 것, 곧 스가랴가 하나님에 의해 보내졌고, 그리하여 "순" 이신 그 사람에 관한 그의 말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 이 약속들은 순종에 대한 의무를 요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너의 성전 건축을 돕게 되리라). 너희는 만일 선한 열심을 스스로 품고 그 일을 하면 성전 건축에 있어서 이 외국인들의 도움을 얻을 것이다." 타인의 도움은, 우리의 나태에 대한 핑계가 되는 대신에, 우리의 근면에 대한 박차가 되어야 한다. "만일 네가 너의 의무를 양심적으로 행하면 저 모든 약속들의 유익과 평안을 향유하게 되리라." 그들은 선한 행실 위에 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비록 그들의 하나님께서 긍휼의 방식으로 그에게

  • 26.07.08 11:25

    잘 읽고 참고하겠습니다.

  • 26.07.08 08:49

    <호크마 주석>

    슥 6:12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아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 여호수아에게서 예표된 사람은, "순"(가지, Branch) 곧, 메시야라는 의미에서(3:8 해석 참조), 선지자로 예언케 하신다. 사11:1 참조. "자기 곳에서"라는 것은 "자기의 아래로부터"라고 직역되나 실상 자기의 고향(메시야가 나시기로 약속된 곳이니 베들레헴)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겸하여, 아래로부터 (미천한 데서부터) 자라남을 암시하기도 한다(Keil and Delitzsch).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므로 교회를 세우실 것을 예언한다.

    슥 6: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이것은 윗절 끝에 있는 말씀의 중복 이다. 이 중복은 이유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 때 현재에 재건되는 스룹바벧 성전으로는 상상될 수 없는 신약 시대의 신령한 성전, 곧, 교회 설립의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다.

  • 26.07.08 08:49

    히브리어에 있어서 역설체는 중복체로 나온다.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좌에서(하나님 우편에서) 그의 교회를 다스리실 것을 가리킨다.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는, "또 그가 자기 보좌에서 제사장이 되리니"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한 몸에 양직을 겸하실 것이 여기 예언된다.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고 한 것은, 그의 왕직과 제사장직이 서로 충돌이 없고 제정일치의 이상적 형태인 것을 예언한다.

  • 26.07.08 10:32

    좋은 꼭지를 잘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왕과 제사장 간의 평화의 의논에 대한 내용을 매우 심도있게 다루고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 26.07.08 11:15

    공감합니다!

  • 26.07.08 11:25

    유다 지파가 아닌 레위 지파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왕관을 씌우는 파격적인 상징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가 왕과 제사장이라는 두 직분을 한 몸에 통합하여 온전한 평화를 이루실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구약 스가랴서의 ‘싹’이라는 예언이 신약의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중적 모습, 곧 왕과 종, 사람이자 야훼의 싹이신 메시아의 인품과 통치에 완벽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고 정교합니다.

    먼 곳에 사는 이방인들까지 나아와 성전 짓는 일을 돕고 주님의 존엄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처럼, 오늘날 대제사장이자 왕이신 예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며 거룩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 26.07.08 16:44

    아멘!

  • 26.07.08 11:26

    대제사장이자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온전한 평화를 누리며, 머나먼 이방인이었던 우리를 주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날마다 믿음의 성전을 지어가게 하옵소서.

  • 26.07.08 16:44

    아멘!

  • 26.07.08 16:46

    성경을 읽으며 마주하는 난해한 구절들을 억지로 짜맞추지 않고, 문맥과 역사적 배경 속에서 명쾌하게 풀어내어 큰 깨달음과 위로를 줍니다.
    구약 스가랴서의 복잡한 상징들이 결국 '제사장-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는 논리적이고 깊이 있는 해설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난제를 피하지 않고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주어, 성경을 더욱 입체적이고 바르게 이해하는 데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줍니다.

    좋은 내용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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