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는 길 /오수미
오늘 저녁 메뉴는 고등어구이다. 요즘 입맛 없어하는 가족을 위해 고등어구이를 해주어야겠다. 장마철엔 환기가 힘들어 생선 굽는 일이 꺼려지긴 하지만 고등어의 짭짤함은 입맛을 돌게 하여 식욕을 돋을 것이다. 밍밍한 내 삶에도 짭짤한 활력을 줄 것이다.
냉동실문을 열고 냉동된 간고등어 한 마리를 꺼내 놓는다. 공기 한 숨도 들어가지 말라고 압축해 놓은 팩 안에 고등어가 담겨 있다. 육지까지 오는 동안 상할까 봐 얼음보다는 소금으로 잔뜩 염장을 했으리라. 팩 윗부분을 잘라 고등어를 꺼낸다. 소금에 절어 축 늘어진 고등어를 잠시 쌀뜨물에 담가 놓는다. 담겨있는 고등어를 가만히 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굴곡이 있었을꼬. 그물에 걸려 어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죽음의 길에 들어선다. 고등어의 죽음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마치 인간의 죽음처럼!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주 전, 병원에서는 가족들을 차례로 불렀다. 임종이 가까워 왔으니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나누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를 만나러 병실에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다. 몸에 있던 수분이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듯 깡마른 모습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 할머니의 속은 텅 비었다했다. 속을 비우는 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쌀뜨물에서 고등어를 건져낸다. 잠시 체에 받쳐둔다. 휭 하니 빈속을 벌리고 누운 고등어, 이 녀석도 한때는 태평양 바다를 누비며 살아있는 욕망의 덩어리로 자유를 만끽했으리라. 푸등푸등한 몸매를 내보이며 바다 새들을 유혹했으리라. 젊음을 과시하며 푸른 물을 유영했으리라. 하늘로 오를 듯 점프했으리라. 언젠가는 구속될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했으리라. 한낱 인간의 뱃속을 채우게 될 줄은 몰랐으리라.
인간도 그렇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생각하진 않는다. 할머니의 시간도 그러했다. 내가 아는 할머니는 굽 높은 구두를 좋아하셨다. 한마디로 멋쟁이셨다. 항상 굽이 있는 예쁜 구두에 원피스를 입고 다니셨다. 할머니 구두가 너무 예뻐 몰래 신고 걷다가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난 적도 있다. 그렇게 할머니의 젊은 날은 가버리고, 어느 날 부턴가 휠체어에 몸을 실어야 했고 구두대신 슬리퍼도 신기 힘들었다. 할머니의 생명시계는 멈출 듯 말 듯 흐르고 있었다.
고등어를 구워야겠다. 에어후라이어에 넣을까, 후라이팬에 올릴까. 어릴 적 할머니와 잠시 살았을 때, 가끔 고등어를 구워 주셨다. 할머니 장바구니에 담겨 온 고등어는 하얀 소금을 둘러쓰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마당에 연탄불을 피워 놓으면 할머니는 고등어를 석쇠위에 펼쳐놓았다. 펼쳐진 모습이 데칼코마니 같았다. 뜨거운 불 위에서 조금씩 모양을 일그러뜨렸다. 노릇노릇 색깔과 소리를 내며 반짝이는 기름을 몸으로 토해냈다. 하얀 연기가 났다. 맛있는 냄새가 하늘로 올랐다.
할머니의 시간은 가족들을 모두 만나고 난 다음 날 멈추었다. 깨끗이 닦고 하늘로 오를 때만 입을 수 있는 옷을 입고 편안한 얼굴로 누워계셨다. 이미 돌아가셨음에도 할머니의 몸은 꽁꽁 묶여 한 뼘도 움직일 수 없는 관안에 넣어져, 한 숨의 공기도 들어가지 못하게 뚜껑이 덮여졌다. 한 쪽에선 할머니의 화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등어를 에어후라이어에 넣기로 한다. 할머니가 숯불에 구워주셨던 고등어 맛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기름도 튀지 않고 연기도 나지 않으니 깔끔해서 좋다. 고등어를 넣는다. 적당한 시간과 온도를 맞춘다. 잠시 후 맛있는 냄새가 조금씩 후각을 자극한다. 연기는 나지 않는다. 고등어는 안에서 조금씩 몸이 줄어들고 노릇노릇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나는 맞춰놓은 시간이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의 관은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할머니의 살가죽은 재가 되어 연기로 사라졌다. 남은 뼈는 추슬러 빻았다. 곱게 빻아달라고 가족들은 눈물로 부탁했다. 정말 한참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작은 항아리에 담겨졌다. 그리고는 먼저 가신 할아버지의 옆에 묻히셨다. 이제 할머니의 모습은 없다. 한 줌 재의 모습으로 땅에 머물러계신다.
젊음을 다 보내고 떠날 준비를 할 때의 인간의 모습은 조용하다. 아마도 그제야 자신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생명도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니라 미완성이고 끊임없이 죽음이라는 소임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배 위에서 숨이 끊어진 고등어가 죽음 후에도 인간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되는 과정을 생각하면서, 할머니의 죽음을 보면서 인간의 죽음도 한낱 연기처럼 재빨리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진정한 나를 깨닫는 그 순간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움직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