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출 20:16)
세상의 가장 큰 거짓말은 ‘한 번도 거짓말이 한 적이 없다’일 것입니다. 거짓말이 분명히 나쁘다고 알고 있지만 거짓말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구계명은 법적인 문장으로 다른 이를 해할 목적으로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지도자의 거짓말과 이를 감추기 위한 권력 남용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있습니다. 정의는 가난하고 약한 자를 보살피고 돌보는 의(義)이고, 공정이란 재판의 판단이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권력이 있거나 없거나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의(義)입니다. 정의와 공정과 상식이 자리를 잃고 권력에 아첨하는 법정 기관의 거짓말이 당당하게 발포되는 참담한 현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보고 탐욕에 빠져있을 때, 아내 이세벨이 불량배를 세워 나봇이 ‘왕과 하나님을 저주한다(왕상 21:13) 거짓 증언을 하게 했습니다. 결국 거짓 증언이 나봇을 죽게 만들었고, 아합은 권력으로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권력자의 거짓말은 탐욕의 결정체로 사람을 죽이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죄악입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의미는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거짓말로 타인의 재산 혹은 명예(인격)를 파괴하고 유익을 취하는 불의로 직결됩니다.
거짓말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죄의 근원인 사탄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인간을 유혹했던 사탄(뱀)의 근본적인 속성은 거짓(말)입니다. 뱀이 유혹에 넘어간 여자 역시 즉각적으로 거짓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거짓 증언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십자가의 거짓과 모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 예수님을 거짓 증언으로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거짓 증언과 거짓말은 죄로 오염된 인간 타락의 절대적인 원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불치병이 확인된 환자에게 솔직하게 알려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안정과 희망을 주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거짓말 가운데서 하얀 거짓말은 다른 것일까요? 성경은 여리고의 라합의 이스라엘의 정탐군을 숨기는 거짓말을 기록했습니다. 거짓말의 속성과 결과는 공동체의 파괴와 죽음이지만 다만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기꺼이 거짓말이 인정되는 장면입니다.
우리 몸 가운데 혀는 작은 지체임에도 혀는 ‘불의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는(약 3:6)’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배가 작은 키에 의해서 방향을 정하고 운항을 합니다. 작은 지체임에도 혀를 완전하게 다스리는 이는 없는 듯 합니다.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불이익을 감소하고 유익을 위한 거짓말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를 직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기도하며 진실을 말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구약의 재판에는 증거보다는 증인의 증언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범죄 현장을 보존하고 증거를 찾는 조사의 한계 때문인 듯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불충합니다. 한 명이 아니라 복수의 증인을 채택하여 사건의 진실을 입증하는 것이 성경의 원칙(신 19:15)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왜곡된 증언으로 진실을 감추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증인이 되라(행 1:8)’고 명령하셨습니다. 탐욕과 공동체의 죽음을 향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의 증인이 되어 진리를 선포하는 증언자의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죄악의 대사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죽음을 초래하는 거짓말을 그치고, 생명의 복음을, 진리를 전하는 증인의 삶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