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
1. J.I 패커는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무지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 풍조는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극단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추구하긴 하지만 그 동기가 잘못된 경우를 언급한다. . 신학적 지식 자체를 위한 희열은 반드시 우리에게 나쁘게 작용한다. 그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우쭐하게 만들고, 주제의 위대함에 도취되어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부적절한 신학개념을 가진 사람들을 경멸하고 그들을 아주 가련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시대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오류이다. . 2. "교리적 지식이 없이 영적 건강은 있을 수 없지만, 교리적 지식이 있다고 반드시 영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다. " 잘못된 지식은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까지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겸손한 칼빈주의>를 쓴 제프 메더스는 '헤드 칼빈주의'(Head) 와 '하트 칼빈주의' (Heart) 로 구분한다. '헤드' 칼빈주의는 말 그대로 지식으로만 칼빈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하트'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묵상하며 그분을 찬양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 존 파이퍼도 '하나님 사랑하기'와 '하나님에 대한 공부 사랑하기'를 구분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공부 사랑하기'에 빠진 사람들의 위험성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주님 자신보다 주님에 대해 배우기를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이웃사랑을 경시하고 교리 사랑에만 함몰되는 경우가 많다. . 3. 칼빈도 에베소서 주석에서 형제에 대한 무례함과 교만함, 오만한 말투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것은 모두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신의 관심사에만 지나치게 애착을 갖기 때문이라 결론 내린다. 지나친 자신의 관심이 바로 교리적 애정이며, 제프 메더스는 개혁주의 진영에서 주로 이런 오류가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칼빈의 가르침을 오해한 채 칼빈의 5대 강령인 TULIP에 대한 지나친 애정에서 생기는 잘못된 적용이라 분석한다. . 팀 켈러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보다 도덕적으로 더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간적으로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 말하면서, 은혜의 구원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존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행위구원이라면 자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무시할 수 있지만, 은혜의 구원은 겸손할 수 밖에 없다. . 4. TULIP을 정말 바르게 믿는다면, 자신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고 현재 구원을 받았지만 자신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는 여전히 죄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자신의 구원도 자신의 노력과 행위가 아닌 무조건적인 선택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어떤 노력과 행위도 구원과 관련이 없고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기에, 그 감격적이고 아름다운 TULIP 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때리는 일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 제프 메더스는 '겸손한 칼빈주의자' 라고 제목을 지으면서 이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모순어법처럼 들리는 단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무신론자' 가 좀 이상하게 들리듯이 '겸손한 칼빈주의자' 라고 말하면 좀 어색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칼빈주의자나 개혁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늘 전투적인 자세로 작은 꼬투리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 5.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는 독일군에게 점령을 당했고 주민들은 굶주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절박한 상황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그들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가장 유명한 생산품인 튤립 (여기선 정말 꽃이다^^) 을 식량으로 사용했다. 왜냐하면 튤립의 구근이 식용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익히지 않은 튤립 구근에는 독성이 남아 있는 것이 문제였다. 주민들은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그 튤립을 먹긴 했지만 제대로 익히지 않았을 때는 심한 복통, 두통, 경련등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 어쩌면 덜 읽은 튤립이 가져오는 고통보다 더 심각한 독이 바로 칼빈주의자들이 가지는 어설픈 TULIP 교리가 대한 확신일 것이다. 제프 메더스는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익히지 않고 처리되지 않은 칼빈주의 TULIP은 더 고통스러운 결과를 불러온다. 지금 우리가 식량난 을 겪오 있다는 게 아니다. 우리 생명의 양식은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시다. 단지 문제는 우리에게 필요한 양분을 생명의 떡과 포도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교리라는 꽃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에 있다." . 6. 모든 교리적 가르침도 결국 그리스도 중심적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리해석을 통해 우리는 교리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J.I 패커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 (knowing about God) 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Knowing God) 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배운 각각의 진리를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내용으로 바꾸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바르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그 바른 지식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인간의 피조물됨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맛볼 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C.S 루이스는 상상력이 순종보다 앞서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상한 것을 묘사할 때, 자기가 정말 그런 상태에 도달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나님에 대해 설교하고,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서, 정말 자신이 하나님을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배와 찬양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은 결국 자기성취와 교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