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범선(李範宣, 1920-1981) |
국가 |
한국 |
분야 |
소설 |
해설자 |
김유중(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
<오발탄>의 작가 이범선은 한국전쟁 이후 파괴되고 피폐해진 일반인들의 삶의 모습을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러나 동시에 강렬한 주제 의식을 그 바탕에 깔고 묘사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제상의 강렬함과 탄탄한 내용 구성, 깊이 있는 감정 표현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충실한 문장 등으로 일찌감치 문단 주변에서 대표적인 전후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어 왔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체험과 결부된 사회적 모순과 인간 운명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는 만큼, 그의 소설은 흔히 리얼리즘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리얼리즘만으로 그의 소설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것과 더불어, 리얼리즘만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과, 전통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동경 내지 열망과 관계되는 휴머니즘의 정신을 두루 감싸 안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사망 보류>(1958), <몸 전체로>(1958), <자살당한 개>(1963), <춤추는 선인장>(장편, 1966∼1967) 등이 소외된 이들의 의식 세계와 사회의 비정함에 대한 고발에 주력하며 리얼리즘적인 현실 인식과 관계되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오발탄>(1959)이나 <냉혈 동물>(1959)이나 <밤에 핀 해바라기>(장편, 1963∼1964), <살모사>(1964), <명인>(1965)의 경우는 현실 비판에 더하여, 인간 존재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모순이나 작가 내면의 휴머니즘적인 시각 및 고뇌를 강조한 작품들로 해석된다. 그런가 하면 <학마을 사람들>(1957), <갈매기>(1958) 등의 초기작들은 상실해버린 이상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한편, 현실의 질곡으로 인해 상처받은 일반인들의 내면을 서정적이면서 잔잔한 문체에 담아 표현한 대표작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한때 중학교 국정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는 <학마을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와 6ㆍ25 사변을 지나는 동안, 공동체적인 분위기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한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어갔는지,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시련을 어떻게 감내하고 그것에 대처해나가는지를 유려한 필치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좌우하는 것은 일종의 운명론적 세계관과 샤머니즘적인 사고방식이다. 요컨대 근대 합리주의적인 세계관에 대한 일정한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유 구조를 통해 그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전통적인 공동체 사회의 소중함과 인간성 회복의 필요성에 대한 재인식이라고 하겠다.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생활 태도의 중심에는 ‘학’이 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학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 소소한 개인사에서 마을 공동체와 나아가 민족과 국가의 향배에까지도 두루 영향을 미치는 정신적 지주인 것이다. 그런 그들의 믿음에는 한 치의 의심도 있을 수 없다. 과연 이러한 태도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은 제기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만이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 또한 또 다른 형태의 근대적 미신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소설은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듯하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 뒤에 발표된 <사망 보류>와 <몸 전체로>에서 약간 색깔을 달리하며 재등장한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초월하는 대신 직접 응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닌 부정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지는 못한다. 파편화된 현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현실에 의해 좌절된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꺾인 이상을 강조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만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해야만 한다는 점, 그러한 타협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망 보류>의 주인공인 철은 폐병 환자인 같은 학교 박 교사를 진심으로 동정한다. 자기 살기 바쁜 세상에 박 교사의 처지는 같은 교사들에게 동정의 대상일지언정 그것을 내 일처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박 교사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병든 몸에도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출근을 강행하다 쓰러진 박 교사를 가까이서 보살핀다. 그러던 중 어느 결에 그 역시 폐병에 걸리고 만다. 폐병에 걸린 채, 이제 스스로가 박 교사의 입장에 서게 된 그는 죽음이 눈앞에 닥쳤다는 현실은 받아들이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닥쳐올 불행이라는 현실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이번에 그에게 차례가 돌아오게 될 곗돈을 타내는 일이었다. 곗돈 타기 하루 전날 죽은 그가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당부한 말은 내일 곗돈 타기 전까지는 자기가 죽었다는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몸 전체로>는 눈이 오거나 아무리 날이 추워도 아들에게 권투 연습을 시키며 강하게 키우려는 하숙집 주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주인은 모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있는 사람이다. 이전까지 그는 비교적 정도를 지켜가며 세상을 바르게 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쟁을 겪고 나서부터 그의 인생관에는 큰 변화가 생긴다. ‘이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는 일이 최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식만큼은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더욱 강하게, 모질게 키워야 한다.’ 이런 식의 사고가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전쟁의 와중에서 보았던 것은 ‘우리’라는 낱말이 가진 허구성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우리’ 대신 무수히 많은 ‘나’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현실 앞에 그는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양심을 버리는 대신 삶의 길을 택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실의 비정함과 냉혹함에 비로소 눈을 뜬 그가 매일같이 아들에게 혹독한 권투 연습을 강요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갈매기>에는 마치 한 집안 같은 지역 공동체인 어느 외딴 섬마을에서의 일들이 잔잔한 수채화처럼 감성적인 필치로 그려진다. 지극히 평화롭고 단조로운 이 섬에서의 일상은 주인공인 훈의 일가에게는 전쟁이 남긴 상처나 고달픔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될 수만 있다면 훈은 이러한 지루하지만 단조로운 일상의 평화를 좀 더 길게 음미하고 싶었다. 그래서 섬에 들어와 정착한 지도 7년이나 흘렀건만, 그는 아직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일상이 지나치게 무료하다 싶을 때 그가 찾는 곳이 갈매기 다방이다. 그 곳에서 그는 장님인 주인 남자의 색소폰 소리를 들으며 추억에 잠기곤 하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 기거하는 신선으로 통하는 거지 노인들을 가끔씩 둘러보며 보살피는 일은 그의 가족들에게는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어주는 하나의 심심파적 사건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몰려온 태풍에 다방 주인 남녀가 죽고, 신선 노인 중 한 명이 아들을 찾아 섬을 떠나게 된다. 거기 그렇게 늘 있어왔던,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았던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예기치 않았던 그러한 변화는 그로 하여금 이제 이 섬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섬에서의 주인공의 생활은 일반적인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속한다. 그런 배경 설정은 가급적 현실과 거리를 두려는 작가의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수필적 감성과 서정성으로 포장되어 있는 이 소설에는 부산 피난 시절, 작가 자신의 실제 체험이 군데군데 녹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오발탄>은 명실 공히 그를 당대 최고의 전후 문제 작가로 이끈 수작(秀作)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심리 묘사, 그리고 사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으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남과 북, 양쪽 모두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어느 실향민 가족의 비극을 통해 시대의 아픔과 현실 사회의 비인간적인 참상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잃어버린 상태에서의 삶이란 매일 매일을 버텨나가기에도 힘겨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미친 어머니가 외치는 ‘가자’라는 외침은 어쩌면 이 지겨운 일상을 탈출하여 행복했던 고향의 옛 시절로 돌아가고픈 주인공 철호의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그러한 바람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동생인 영호의 말마따나 양심을 저버리고, 윤리와 관습을 무시하고, 때로는 법률까지도 범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게 만드는 열악한 삶 속에서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마치 신의 실수로 튕겨져 나간 오발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우리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고발 외에 작가 나름의 휴머니즘적인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법률선까지 넘고도 인정선에서 걸리고 말았다는 영호의 발언에서, 우리는 극한 상황 속에 내몰린다고 하더라도 끝내 인간으로서 포기하지 말아야할 마지막 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문제이다.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는 철호의 치통이 내포한 소설적 의미 역시 이러한 최종적인 양심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살모사>에서 작가는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잔혹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서 역으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어떤 본질적인 의미를 함축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궁남이라는 인물은 생리적으로 남의 사정이나 안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유리한 쪽으로만, 자기 성질대로만 살아가려는 냉혹한 인물이다.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된 것은 그 자신의 타고난 잔인한 성격 탓이다. 학교 선생님도, 주변의 친구들도, 심지어는 부모마저도, 그에게는 오직 자신의 삶 속에서 경계하고 적대시하여야 할 존재들일 뿐이다. 요컨대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 자체를 거부하며,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그러한 소통 시도를 자기 영역에 대한 침입이라고 단정 짓는 매우 특이한 인물 유형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에 대한 그의 대응에는 소름끼칠 정도의 잔인함이 묻어 있다. 그러한 잔인함으로 인해 그는 ‘살모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작가는 인간들 중에는 사람들과 체질적으로 어울리기 어려운 인물들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인물형은 스스로가 불행하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불행조차도 단순히 불행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심의 계기로 삼는다는 데 그들의 문제가 있다.
특수 직종 종사자들의 한과 함께,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랜 편견 문제를 다룬 소설이 <명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신노인은 평생 백정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인물이다. 비록 남들이 천시하는 직업이지만, 그는 한평생을 그렇게 별 문제 없이 살아왔다. 그런 그가 홀아비로 애지중지 키워온 딸의 혼사 문제가 파탄에 이른 것을 보고 백정 일을 접을 결심을 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칼을 집어 들었던 것은 자기 딸과의 혼사를 거절한 박 구장 댁 잔치에 쓸 소를 잡기 위해서였다. 당초 일을 거들 생각이 없었던 그는 구장 댁 앞마당에서 놀라운 솜씨로 소를 해치우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구장을 향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려 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칼질에는 이제껏 살아온 세월에 대한 한이 서려 있다. 소를 잡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빳빳한 새 옥양목 차림으로 도착한 그는 피 한 방울 자기 옷에 튀기지 않고 신들린 듯한 칼솜씨로 일을 마친다. 일이 다 끝났을 때 그의 옷에는 오직 한 방울, 옆에서 서툴게 그의 일을 참견하려 했던 박 구장의 잘못으로 튀긴 피가 선홍색으로 선명하게 맺혀 있을 뿐이다.
<청대문집 개>에서 작가는 인생이란 꼭 마음먹고 계산한대로 풀려나가는 것도 아니며, 신분의 변화가 자신의 과거 습성까지 모조리 바꾸어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원래 넝마주이 고아 출신에 사팔뜨기인 ‘김억대’다. 그가 세속적으로 출세하여 채석장 사장이 되고 대학 나온 부인까지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노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순전히 운과 편법에 의해서였다. 될 수 있으면 그는 그런 자신의 과거를 남들이 알 길 원치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은밀하게, 과거 넝마주이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때의 습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의 개 죤(이 죤이라는 명칭은 그의 소설에서 나오는 개들에 흔히 붙는 이름이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 야릇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개니까 사람들에게 그의 과거에 대해 말하거나 해서 들키게 할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죤은 그의 과거의 모습이자 숨겨진 자아이다. 그런 죤을 지켜보며,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것은 그에겐 한편으로 즐겁고 뿌듯한 일이었을 게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죤이 더 이상 쓸모없이 되어버리고 그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죤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린다. 별다른 고민 없이 죤을 잡아 보신탕을 만들어 인부들에게 돌린 것이다. 이러한 일화를 통해 작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에 있어 정당한 노력 없이 이룩한 성공이 갖는 한계와 그 문제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후기의 작품인 <삼계일심>은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원초적 나약함과 본질적인 모순에 대해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이범선의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종교적인 이해의 바탕 위에 서 있는 작품으로,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이 오직 마음에 반영된 허상일 뿐이라는 ‘삼계일심’의 불교 교리가 과연 현실에 있어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를 묻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경 스님은 세속의 연을 끊고 불가에 귀의하여 수련에 정진 중인 젊은 스님이다. 그런 그의 앞에 젊은 여대생 진아(眞娥)가 등장하자, 그의 마음속에는 묘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그 감정을 억제해보려 갖은 애를 쓰지만, 그는 결국 내면의 욕망을 억제치 못하고 스스로의 몸을 학대하게 된다. 그의 욕망의 대상인 진아(眞娥)란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진아(眞我)와 통하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노력, 진정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 인간의 본성 자체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노력 또한 어차피 또 다른 방식의 집착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닌지의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제기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 참조어
- 학마을 사람들, 사망 보류, 몸 전체로, 갈매기, 오발탄, 살모사, 명인, 청대문집 개, 삼계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