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에제 47,9.12)”
모든 것을 되살리는 ‘생명의 물’은 예수님의 성심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사랑과 자비를 일컫습니다. 모든 것을 되살리는 그 물은 모든 것에게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그 물을 마시고 생명을 얻은 모든 것들도 생명의 양식과 약이 되어줍니다. 그런데 그 물이 어디에서 흘러나왔습니까? 주님의 집, 곧 성전입니다. 주님의 자비와 사랑은 당신이 선택하신 성전에서 흘러나옵니다. 하느님 현존의 자리,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곳, 하느님을 위한 일이 매일 이루어지는 곳에서 생명의 물은 흘러 나옵니다. 이는 하느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성전인 교회를 예표합니다. 교회가 거행하는 성체성사와 그 밖의 성사들에서 생명의 물인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끊임없이 샘솟습니다. 교회가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는 단상(壇上)에서 하느님의 구원과 그분 나라의 기쁜 소식이 매일 흘러나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하시며 주님은 모든 사람들을 그 생명의 샘으로, 그 생명의 물이 흐르는 강가로 부르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 생명의 샘과 생명의 강가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그 물을 떠 주어야 할 중대하고 거룩한 사명을 지녔습니다.
저는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 중대한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가 잊지 않아야 할 점을 새롭게 인식하고 싶습니다. 먼저 교회는 제일 먼저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수혜자(受惠者 -favored)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거룩하게 된 것은 그분의 자비와 사랑 덕분입니다. 모두 죄인이었고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부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사의 은총과 말씀의 양식을 통해 교회는 날로 새로워지고 거룩함에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속한 그 누구도 스스로 거룩하고 권위에 차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는 생명의 물, 곧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건네는 데에 어떤 조건이나 장애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교회 역시도 하느님께 무상(無償)으로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처럼 하느님을 예배하여 속죄와 구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부당한 요구나 사사로운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이 주님 자비와 사랑의 샘이나 강가에 다가가는 데에 어떠한 부끄러움이나 부담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모로나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를 택하여 아낌없는 자비와 사랑을 베푸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명의 물을 마신 사람이라면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대로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형제들에게 양식과 약이 되는 사람, 성사적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기도하는 집’ ‘장사하는 집’, ‘생명의 샘터’ ‘물 장수’, ‘자비와 사랑의 강물’ ‘탐욕과 이기심으로 썩어버린 강물’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의 모습은 또 어떠합니까? 일부 성직자들의 사리사욕으로 인해 교회의 사명이 돈 벌이의 수단이 되고 있는 모습을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도 직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신 성전 정화(淨化)의 모습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에 전하는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하여 성령께서 우리 교회를 정화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이루시는 정화의 작업이 우리에게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에 대하여 가난해지지만 하느님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매일 모든 이에게 주님 자비와 사랑의 샘이 끊임없이 풍족하게 주어지길 기원합니다.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1코린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