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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85층 꼭대기층의 아파트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훤칠하게 큰 키에 얼굴
을 하고 질긴 가죽 자켓을 입고 있는 전형적인 아메리칸이었다. 그리고 두 세 걸음걸어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며 그에게 다가갔다.-그 무렵 서울과 각지방의 건
축물들은 6개월 전부터 70층이하로는 건축물을 건설할 수 없다는 법안이 시행되고 있었고 건축물
주변에는 가로 500M, 세로400M 이상의 산림이 우거진 녹지대를 건설해야만 했다.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해 환경부가 건축물의 건설에 대해 건의 했던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서
울시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의무적인 절차로 인정되어 시행 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지우 폭발 사건이 발생했어"
새벽 4시 반 이른 아침의 잠을 깨우는 동료 형사 제임스의 방문이 몇 일째 밤샘근무로 인해 피
곤에 절은 지우 형사의 단잠을 깨웠다.
“젠장, 또 폭발 사건이야.. 폭발 사건은 요즘들어 삼일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군"
투덜거리는 지우형사의 말 뒤를 제임스가 잇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형사라는 직업은?"
“그래 HUMAN이야? ROBOT이야? 폭발사건은 요즘 대부분이 ROBOT이지 않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 ROBOT을 조종해 폭발시킬 수 있는 위험 부담이 적은 ROBOT말이야"
“글쎄 잘 모르겠는걸? 이번 사건은 판별이 힘들어. ROBOT의 잔해가 없는 것으로 봐선
HUMAN인 것 같은데. 아직 확실치는 않아. 국립과학 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해 놨어. 어서 현장으로
가자구 지우."
지우 형사는 동료형사 제임스와 함께 고속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 밖을 나섰다. 제임스가 리모콘
을 이용해 자동차를 자동운전모드로 변환시켜 자신의 앞으로 몰고와 세운다.
“끼이익.." 시끄러운 브레이크 소리에 이어 차가 멈추고 제임스가 차 문을 열고 지우에게 말했
다.
“어서 타게. 오늘은 할 일이 많아. 저녁에는 서울 대표로 범죄완전방지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
구.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제임스는 차문을 닫고 운전방식을 자동에서 수동으로 전환한 후 능숙한 솜씨로 운전했다. 잠시
의 정적을 깨고 지우가 말을 잇는다.
“폭발지역이 어디야?"
“서울 한강고수부지 근처에서 터졌어.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지역 지하에서 연구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야. 마치 오랜기간 준비해온 것 처럼.. 지하로 들어가는 게이트가 있는데
암호가 예상외로 까다로워서 지금 암호 해독반이 와서 몇 시간 째 해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는 군."
“한강 고수부지 지하에 연구실이 있다니 자네가 잘 못 안 것 아닌가?"
“아마 지하철 확장공사를 하던시기에 건설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네."
지우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폭발지역 현장에 도착했다. 요란하고 시끄러
운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그 곳에 모여든 구경꾼들을 제 3소대 경찰들이 힘겹게 통제하고 있었다.
“이 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었군. 구식 방법이야.
부서진 건물의 파편모양이나 냄새로 봐선 다이너마이트가 맞아. 예전에 한 과학자가 다이너마이
트를 자신의 집에 설치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지."
지우형사는 손목시계 속에 내장된 전화를 사용하여 국립과학 연구소에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르릉."전화벨이 울리자 로봇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특수경찰과 제 3소대 형사 김지우입니다. 한강고수부지 폭발사건에 관해 여쭤보려고 합니다만."
전화를 받은 로봇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황우영 연구소장님께 전화 연결 중입니다."
“탁.. 타닥.." 둔탁한 굉음이 몇 번 울리고 황우영 연구소장이 전화를 받았다.
“그래, 김형사로군. 그러지 않아도 지금 막 분석이 끝났네."
“다이너마이트죠?"
“응?"
“폭발물 말이예요."
“음.. 귀신이라니까 맞네. 다이너마이트야. 이런 폭발물이 흥미롭군 그래. 웬만한 골동품 상에
도 찾기 어려울텐데 말이야. 지금으로선 과학자가 아니고서는 보통 서민들에게는 생소한 구하기
힘든 물건일세."
“역시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김지우 형사는 동료경찰인 제임스에게 손 짓을 해보였다.
“맞았어. 다이너마이트야."
제임스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가끔 나는 자네가 흥미로워."
“그렇다고 나를 모티브로 연구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게. 나는 지금의 로봇세상이 싫거든. 나를
연구재료로 삼지 말아주게."
“알았네."
두 형사는 잠시동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몇 년 전 부터 ROBOT의 사용이 본격화된 이후 사회는 크게 발전했어. 외형적으로도 로봇의 수
가 기하학적으로 늘어났고 기계공학은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팽창했지.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큰 실수를 했어.이제 일은 ROBOT이 하고 있네.노동의 70퍼센트는 로봇이 차지하고 또
그 것을 위해 좀 더 지능이 높은 AI들의 연구가 계속되고 사람들이 꿈을 밟고 설 수 있는 날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네.이대로라면 기계를 위한 세상이 오고 말거야."
지우 형사가 ROBOT사회에 대해 말하는 사이에 대형 수송차 한 대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20명
정도 탈 수 있을 듯 한 수송차 안에서 중무장한 특수 기동대원들이 숨 쉴 수 없이 바쁘게 내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제부터 수사를 맡겠다며 모든 권한을 가져갔다.
“젠장, 또 기동대원들이로군. 우리는 이만 손을 떼야 겠는 걸?"
지우형사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제임스 형사에게 말했다.
“할 수 없지. 상부에세 내린 명령이라면..."
지우는 낙담한 표정으로 제임스의 차를 타고 저녁에 예정된 세미나 참석을 위해 자리를 떠났다.
지우형사는 차 창 밖 거리를 바라보며 사건을 맡지 못하는 것에 불만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지우형사를 보며 제임스가 말 운을 뗐다.
“자네.. 아직도 화가 덜 풀린건가? 너무 신경쓰지 말게. 특수기동대원들이 사건을 맡으면 손을
떼는게 절차 아닌가.."
“이봐 제임스, 냄새가 나지 않아? 특수 기동대원들은 정부에서 사건을 은폐시킬 때 주로 투입되
지 않나. 이 사건도 우리는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비밀문서파일에 묻혀질지도 모르네"
"이봐 지우.. 우리는 주어진 우리 임무만 해야하네. 상부에서 내린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
은가."
"하지만..."
제임스가 굽은 커브길을 능숙이 운전하며 말했다.
“8살 때 였어. 도심에서 한 참이나 떨어진 지방의 한 허름한 고아원에서 자네와 처음 만나던 날
이. 나를 입양했던 한국인 부모가 이혼하고 혼자 버려진 나를 자네와 자네 부모님들은 따듯하게
맞아주었지. 가족 단위로하는 자원봉사로 우연히 그 곳에서 처음 자네를 만났고 자네와 자네 가
족들로 부터 한가지 약속을 받았었지. 몇 년 안에 다시 찾아 오겠다는 약속을.. 그 때는 꼭 함께
살자고 말이야..기억나나? 그리고 2년 뒤 내가 10살이 되던 해에 거짓말처럼 자네 가족들은 나를
데리러 찾아와 주었어. 마치 내가 기다리던 만큼이나 나의 상처를 감싸안아줄 시간이 온 거였지.
그 때부터 자네와 나는 짝이 맞는 한 켤레 신발처럼 뗄 수 없는 친구였어. 내 뒤에는 자네가 있
었고 자네 뒤에는 내가 버티고 있었지.나는 그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고 있다네. 자네와 자네
가족들은 말이야.나를 또 다른 세상의 문으로 인도해 주었거든.내가 일찍이 놓으려 했던 운명의
밧줄을 함께 잡아 주었지."
지우형사는 추억에 잠겨 말하는 제임스를 말없이 응시하였다.
“지우.. 개인적인 욕심은 좋지 않아.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자네와 함께 일
할 수 있는 이 형사라는 직업에 늘 감사하고 있다네.."
밤11시 즈음, 세미나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온 지우는 85층 높이의 아파트 고속엘레베이터 안
에서 맨 윗 층을 누르고 잠시 뒤 엘레베이터에서 내렸다.지우 형사는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세미
나 이후 내내 마음 속에 떠돌던 강연 내용 중의 일부를 다시 떠올렸다.
“범죄 완전방지를 위해서 경찰로봇의 수를 현재 200만 대에서 500만대로 두배 이상으로 늘린다
니 말도 안되는 얘기야."
집 안으로 들어온 지우 형사는 무척이나 피곤한 듯 침대 앞에서 일자로 뻗어 누우며 TV를 향해
말했다.
“TV ON"
TV가 켜지자 지우의 주위에 전파로 이루어진 얇은 센서막이 생기고 지우는 오른 손으로 센서막
을 휘저으며 채널을 돌렸다.채널을 뉴스에 고정시키고 몸을 일으켜 앉은 채로 TV를 시청했다.
“채널 36 NEWS 입니다."
TV의 음성인식로봇이 지우가 맞춘 채널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뉴스에서는 일찌감치 한강고
수부지 폭발 사건을 특집 방송으로 편성하여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한강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의 해결을 위해 암호 해독반과 특수기동대원들이 출동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게이트의 암호를 풀고 안으로 들어서자 폭발당시의 충격으로 인해 여기저기
널부러진 연구재료와 화학물 기계장치들이 있었고 3명의 시체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정도로 심
각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실종자인 김해성 시의원과 대학생 전혜림양의 옷가지와 지문
의 흔적들을 발견했으며 이 두명의 실종자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조사
상황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극비리에 계속 수사 중입니다. 경찰은 폭발된 지역 외곽 주변 100M
거리를 통제 구역으로 두고 수사를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아..."
소식을 전하던 앵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떠릴고 있었다.
“방금 들어온 뉴스입니다. 사건을 맡고 수사중이던 특수기동대원 중의 2명이 의문의 타원형 기
계의 내부를 조사하던 중 요란한 굉음과 함께 사라졌다는 소식입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해명하
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시청자 여러분들은 채널을 고정하시고,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상황을 지켜
봐 주시기 바랍니다.저희는 가장 빠른 소식을 계속 전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지? 실종되었다니? 상황이 복잡해져 버렸군. 아무래도 안되겠어. 반장님께 말씀드려
제임스와 함께 이 사건을 맡아봐야겠어."지우는 혼잣말을 멈추고 다시 티비에초점을 맞췄다. 뉴
스에서는 폭발된 한강고수부지의 잔해 더미를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고 폭발 재료가 국립과학
연구소의 검사 결과 다이너마이트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암호를 해독한 뒤에 게이트 안을 조사
한 결과 5명의 사망자와 함께 높이 3M 넓이 2M의 타원형 모양의 기계가 발견 되었다고 했다.
“아직 경찰에서 사건에 대해 정식으로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대단해. 언론의 힘이란.. 엄청난 속
도로 빠르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미세함도 놓치지 않고 촬영할 수 있는 손바닥 크
기의 초소형 자동카메라 ROBOT의 촬영 덕분이지만 말이야. 아무리 특수기동대원이 수사를 한다고
해도 사건을 은폐시키기에는 힘에 부치겠는걸? 정부가 이 사건을 최대한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고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과연 정부가 배후에서 이 사건을 감추려는 의도는 무엇 때문일까
? 그 괴상한 타원형 기계와 한강의 비밀 연구소는 무엇을 연구하려는 목적이었을까?" 생각에 잠
긴 지우 형사에게 벽시계가 말을 건다.
“그건 주인님의 마초근성이 아닐까요?"
김지우 형사는 벽시계의 어설픈 농담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부모님이 진급 기념으로 사
주신 벽시계를 한 껏 노려보며 티비를 끄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아파트 주차장에서 제임스와 함께 차에 동승한 지우는 폭발 사건이 일어난 그 곳을
다시 방문하였다. 지우와 제임스 두 형사는 경찰서장의 특별 조치로 특수경찰과라는 신분으로 기
동대원들과 동일한 수사권한을 가지게 되어 사건을 계속 맡을 수 있었다. 사건마다 일망타진하는
두 형사의 화려한 경력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수사 상황을 언론에 공개해서는 안되며
비밀리에 수사를 해야 한다는 상부와 지시에 동의를 한 후에야 가능했다. 몇 몇 언론에서는 '한
강고수부지 실종사건'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연일 특집으로 1면에 기재했고 각 신문, 방송사들
은 헬기와 가능한한 모든 기자들을 동원하여 사건을 취재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었다. 신문에서는
벌써부터 '미스테리 실종','외계인 침략사건'등의 다소 황당한 제목아래 기사를 썼고, 대중들은
이에 술렁이기 시작했다.김지우 형사는 집 앞을 나서며 집어온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고는 겸연
쩍은 미소를 지으며 신문뭉치를 제임스의 차 안의 뒷좌석에 내동댕이 쳤다.
“상업적인 제목과 내용만이 있을 뿐 아직 명확한 사건의 실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하는
군"
“너무 신경쓰지 말게.."
“정말이야 이제 폭발 사건이라면 지긋 지긋해.."
지우 형사는 이번 사건이 내키지 않는 듯 불평을 늘어 놓았다. 얼마 뒤에 사고 현장에 차가 도
착했고 차에서 내린 두 형사는 미리 도착해 수사중이던 특수기동대원 총 책임자와 인사를 나눴다.
이 것은 사건을 위해서 특수 경찰과와 특수 기동대라는 성격이 다른 두 팀의 합동 수사였다. 한
강고수부지의 푹발된 지역은 지하 연구실에서의 폭발로 인해 맨홀 모양의 출입구 주변의 아스팔
트 곳곳이 폭발 당시의 충격으로 인해 함몰되고 부서져 있었다. 두 형사는 어렵게 암호해독에 성
공해 출입이 가능해진 출입구 밑으로 들어갔다. 설계 방식은 지하 방향으로 엘레베이터와 사다리
를 길게 놓고 10~15M당 한 개의 연구실을 만들어 놓은 듯 했다. 어두운 지하를 손전등으로 비추
며 내려가는 동안 각 연구실은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고 문제의 기계가 있던 지하 60M의 60~70평
남짓한 큼직한 연구실에 이르자 아직 완전히 빠지지 않은 화약냄새와 새까맣게 그을린 연구실 내
벽, 폭발로 인해 부서진 시멘트 조각들과 화학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눈에 비친 모습들을 바라 보면서 김지우 형사는 한 참을 생각했다.
“다급했군..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연구실을 폭발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왜,이렇게 폭발
시켜야 했는가?"
천천히 연구실 내부를 둘러보던 중에 뉴스에서 보던 높이3M 넓이2M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다듬어
진 타원형 기계를 볼 수 있었다.기계는 다이너마이트의 폭발로 인해 반이상이 일그러지고 부서져
있었다.
“이 기계이군 그래.. 특수 기동대원 2명을 삼킨 괴물이.."
지우 형사는 기계를 정밀 조사하고 있는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에게 작동이 되는지 물었지만 연
구원은 충분한 조사없이 함부로 기계를 만질수 없다며 작동을 제지했다. 특수기동대원중에 기계
전문 기술자 두명이 이 기계를 정밀 조사하던 중 사라진 것으로 보아 이것이 오작동 하였는지의
여부를 떠나 아직 동작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지우 형사는 실종된 시의원과 대학생 전
혜림양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족들과 지인들 가릴 것 없이 모두 심문
하려 했고 그 중에서도 실종자들과 밀접한 관계였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마지
막으로 만나기 위한 연락을 끝마친 후 제임스에게 말했다.
“만나는 장소는 시청앞 커피숍이야.. 가족들과 지인들을 만나봐야겠어."
정오가 지날 무렵 약속 시간이 되자 두 형사는 시청 맞은편 커피숍 내부가 훤히 비치는 창문 너
머로 김해성 시의원의 지인인 NBK방송국 사장과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모습이 비쳤다.
“제임스 잠시 차 안에서 기다려 주겠나?"
나보다 자네가 심문하는데 뛰어나니 차 안에서 기다리겠네. 자네는 전문가이지 않은가..."
“고맙네. 한 시간 정도 걸릴거야. 미안하네.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
러네."
지우 형사가 차 문을 닫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섰다.
커피숍 안에는 창문이 있는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김해성 시의원의 가족들과 NBK 방송국 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우형사는 짧은 인사를 하고 그들의 앞자리에 마주 앉아 녹음기를 켜고 심문
을 시작했다.
“김해성 시의원이 평소 기계공학 분야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지우형사가 김해성 시의원의 아내에게 물었다.
"제 남편이 죽은 것은 아니겠지요? 너무 혼란스럽네요. 그 이가 이렇게 갑자기 실종 되어 버리
다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요.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네요."
시의원의 아내는 불안과 충격에 휩싸여 있었고 지우 형사는 심문에 앞서 그녀를 진정 시켜야 했
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묻는 질문에 대답을 잘 해주셔야 저희도 의원님을 찾
을 방법을 궁리할 수 있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녀가 오른손으로 긴머리를 귀어 걸어넘기고 말을 이었다.
“그는 평소에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성능 AI들이 생겨나면서 같이 발생한 BABY BOOM과
무분별한 연구와 개발로 인해 환경문제가 급속히 악화되자 이를 막기위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했
지요. 따라서 기존의 환경정책을 더욱 강화하면서 숨막히는 도심에 녹지대를 늘리려고 했어요.
그 대안이 바로 새로운 건축법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건물을 70층 이상의 높이로 짓고 의무적으
로 주변의 녹지대를 조성해 환경오염을 줄이는 방안은 그가 내 놓은 정책이었어요. 환경에 초점
을 맞춘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그이가 왜 그 괴상한 기계에 관심을 가졌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가 할 일이 없어 그 기계에 시간을 투자할리는 없어요. 의문입니다. 지우 형사가 다시 질문했
다.
“혹시 환경문제에 대한 정책 때문에 주변인들과 마찰은 없었습니까?"
“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미래를 위하여'라는 단체와 일부 언론과도 갈등이 있었다고 들은
것 같아요. 정책이 효율적이지 못하고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며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분들이 여
럿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계의 등장으로 인한 BABY BOOM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 단정했지만
아직까지도 인구증가율은 계속 높아만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 정책인지 바로 오늘,
시간이 증명해 주었지만 말이예요."
“그렇다면 다산을 가능한 줄이는 정책은 고려해보셨습니까?"
“이 것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오던 사회적 추세이고 다른 여러 정책들은 효과가 전혀 없었어요."
“구체적으로 누구와 마찰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기 나와 계시는 NBK방송국 사장님도 유감스럽게도 그 분들 중 한 분입니다. 평소에 제 남편
은 상업적인 이슈거리만 쫓아 회사 규모만 늘리고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가벼히 여긴다는 이유에
서였죠."
“그럼 여기 나와계시는 NBK방송국 사장님과도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군요."
“네, 맞아요. 여기 계시는 사장님께 직접 여쭤보시지요."
지우 형사는 시점을 옮겨 NBK방송국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그는 아까부터 질문을 기다려 온
듯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김해성 시의원과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사장은 오랜 뜸을 들이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환경친화적인 도시, 환경문제의 해결방안을 내 놓았을 때 나는 그의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시대는 환경친화적이기보다 첨단산업, 생명공학, 인공지능 로봇들이 넘치는 도시를 원하고 있습
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싸그리 무시한 채 서울만이 아닌 전국적으로 자신의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정부예산의 무려 10%나 들여 환경에 투자한다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발상
입니다. 이 자금은 첨단기계연구와 인공지능 로봇들의 연구와 개발에 쓰여져야 합니다.
“결국 정책의 견해 차이로 인해 사이가 멀어지신 것이군요."
“예, 맞습니다."
“그가 왜 그 기계에 관련되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잠시 단 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주신다면 제가 이야기를 하기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요"
김지우 형사는 NBK방송국 사장과 반대편의 구석진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에 앉은 얼마
뒤에 사장이 말 문을 열었다.
“그 기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니요. 아직 모르겠는데요."
“아직 정부에서 신참내기 형사에게 귀뜸을 안해줬나보군. 어차피 수사는 특수기동대가 한다. 이
건가?"
“이 기계는 타임머신 입니다."
“타임머신이라뇨? 좋습니다. 계속 말씀하십시요."
지우 형사는 타임머신이라는 말에 섬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수사를 맡을 때 수사상황을 외부에 절대 공개하지 않으며 비밀리에 수사에 참여한다는 서약
에 서명하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책 유지를 위해 타임머신을 타러
간 것 같아요.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는 그 어떤 광고보다 매력적인 홍보수단이었을 것 입니다. 그
의 야망은 생각보다 큽니다. 단순히 시의원이라는 자리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죠."
“김해성 시의원이 그 기계에 관련된 이유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야망 때문이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심심치 않게 나돌던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와 동승한 대학생에 관해 아십니까"
“전혜림.. KIST에 재학중인 여학생입니다. 그가 손수 뽑은 여행 파트너였습니다."
“개발 정도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상업적으로 대량생산을 염두해 둔 연구였습니까?"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된 연구입니다. 정부는 대중들이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며 장기적인 계
획을 세우고 연구를 허락했습니다.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이미 러시아와 중동의 여러 국가들, 일
본과 미국에서 극비리에 타임머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최근 이 연구에 뛰어 들었
습니다."
“극비리에 진행된 연구였다.. 이연구에 관련된 일부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군요."
“그렇습니다."
“이 타임머신 연구에 뛰어든 국가들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연구를 허락한 것 입니까?"
“당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어요. 이 타임머신 기계는 앞으로 과거와 다른 시공간을 초월하는
혁신적인 여행 상품이 될 것입니다. 여행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이 있다고 믿은 나라들은 비
공개로 개발을 진행하면서 이에 합당한 법률재정을 타임머신 공개시기에 맞춰 준비하고 있었습니
다. 그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속도가 가장 빨랐습니다."
“그렇군요, 좋습니다. NBK방송국이 타임머신 개발의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스폰서라고 알고 있습
니다. 그 배경이 궁금하군요. 윤리적 문제도 있었을 텐데요"
“윤리요? 이 나라의 유교사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요. 한 때는 대한민국의 전통이던 어른공경
이 자랑이었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시대는 변했소. 집에 틀어밖혀 탁상공론하는 옛 선비들의 모
습을 떠올리는거요? 나의 방송국은 이 연구를 위해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개발 자금의 반 이상을
지원했습니다. 그 비용 또한 천문학적인 액수 입니다.그리고 최근에야 그 결실을 맺으려 했지요.
한 창 연구중인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타임머신 개발의 종착역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얼
마 전에 타임머신의 임상실험 결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 실험
은 100명을 추려서 시행했던 대규모 실험이었죠. 김해성 시의원과 전혜림 양은 각각 99번재와 10
0번째 마지막 실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든게 순조로웠죠. 그들
이 실종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겠습니다. 연구원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개발 초기에는 20명 정도였습니다. 연구 보조직원들까지 합하면 80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연
구가 계속되면서 견해 차이로 인해 핵심멤버였던 20명 중에서 15명이 연구에서 빠지고 5명만이
남았습니다."
“생존해 있는 개발자들을 좀 만날 수 있을까요?"
“그들의 명단이 필요하다는거요? 시간을 좀 주십시요. 필요하다면 그들의 명단 파일을 보여드리
지요."
“두번쨰 만남은 이틀 뒤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NBK방송국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에서 나갔다. 김해성 시의원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카페 밖의 도로변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던 제임스의 옆좌석에 앉는다.
“출발하지, 타임머신 개발자들의 명단이 필요해. 이틀 후에 2차 면담이 있네. 20명 정도의 핵심
연구원들과 보조 연구원까지 합하면 무려 80여명이 연구를 진행중이었네. 개발이 진행되면서 견
해차이로 인해 15명이 연구에서 빠지고 5명만이 남아 연구를 진행 했었다고 하는군."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반이상이 연구에서 손을 뗀 것인가?"
“사장을 용의자로 지목했었지만 범인일 가능성은 희박해.
엄청난 자금을 타임머신 개발에 투자한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한강 고수부지의 지하 연구실을
폭발시켰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네. 가령 김해성 시의원을 정치적 이유로 인해 고의로 실종
시켰다해도 말이야."
“결국 사장도 피해자란 말인가?"
“아직까지는..타임머신의 임상실험이 거의 끝나고 이제 대중앞에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사장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무척 곤혹스러워 하더군. 남은 연구원들을 찾아 봐야겠어. 출발하
지."
제임스가 힘차게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NBK방송국이야..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은.."
김지우 형사는 사건을 맡으면서 생긴 그만의 직감을 통해 어느 때 보다 확신에 차 있었다.
NBK방송국이 타임머신 개발에 지원한 금액을 조사한 결과 무려 12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
었다. 사장은 전세계적으로 방송국을 보유하고 있었고 시청률 부문에서 평균20%대를 뛰어넘는 진
보적 성향이 강한 대형방송국의 사장이었다. 시행중인 방송국 슬로건 역시 '우리 NBK 방송국은
미래지향적인 도전적 정신을 모태로 합니다'였고 다큐멘터리와 뉴스 드라마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깊이있게 끌어내는 방송국이었다. 김지우형사는 NBK방송국 사장과 서
울 경찰청의 카페 에서 두번째 맞대면을 하였다. 워낙에 거물급 인사이고 협조를 잘해주었기에
카페에서 편하게 심문을 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우형사는 카운터에서 모카
커피 2잔을 시키고 사장이 앉은 테이블로 걸어가 앉았다. 지우 형사가 미리 준비해온 질문 내용
이든 서류 뭉치들을 검토하는동안 커피를 배달하는 로봇이 연녹색 낙엽무늬로 장식된 테이블 위
에 잔을 내려 놓았다.
“맛있게 드십시요" 로봇이 말한 후에 바퀴를 굴리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 지우형사와 달리 사장은 경직된 얼굴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만 있었다.
"드십시요. 이제 시작할까요?"
사장을 예리하게 바라보던 지우 형사가 서류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타임머신 개발에 뛰어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간과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을 하는 것이 저희가 스폰서가 된 이유입니다. 물론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밝혀서는 안 됩니다. 이를 어길 경우 엄중한 처벌이 가해집니
다"
지우형사는 서류뭉치를 훓어 읽어내려가다가 더이상은 필요없다는 듯이 서류들을 차곡히 정리해
모아 손에 들고서 책상위에 탁탁 내리쳤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타임머신 연구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여기 이 파일들에 정보가 있습니다."
사장이 작은 가죽가방에서 CD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다.
“필요한 정보는 여기에 모두 들어 있을 겁니다."
지우형사가 크기가 매우 작은 휴대용 컴퓨터를 희 와이셔츠 오른쪽 앞 주머니에서 꺼냈다. 전원
을 켜자 쿨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렸다. CD-ROM에 사건을 풀어 낼 열쇠가 되줄 CD를
집어넣고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액정 화면을 클릭해 파일을 살펴 보았다. 시디에는 연구자들의
사진과 약력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지우형사의 손가락이 명단의 이름을 따라 내려가다가 한
연구원의 이름에서 멈춰섰다. <연구 책임자 강영환. 2032년 서울 출생. 현재 일본 도쿄에서 줄기
세포 확장연구 공동 진행중. 타임머신 개발의 연구 책임자. 개발 막바지에 이르자 견해 차이로
인해 타임머신 연구에서 손을 떼었다.> 지우형사가 휴대용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와이셔츠 앞 주
머니에 집어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건의 해결을 위해 최선
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지우형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후 카페를 나섰다. 지우는 제임스의 차를 향해 걸음을 걸으면서
강영환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박사는 사고소식을 듣고 한참을 망설렸지만 곧 가장 빠른 비
행기 편으로 서울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시간은 다음날 오전 11시. 장소는 국제 박물관으로
결정했다.
강박사와 약속한 날의 국제 박물관 안에는 사람들이 연신 북적이고 있었다. 잠시 후 오전 11시
가 되면 만나게 될 강영환 박사를 커피숍 정중앙의 자리에서 지우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제
박물관 안에는 '한국의 미래와 전통'이라는 주제로 각종 전통 물건들과 음식들 그리고 로봇들이
마치 지나온 역사를 대변하듯 진열되어 있었다. 카페 안의 분수대에서는 레이져 분수가 연신 물
을 뿜어대고 있었고 물을 퍼올리는 물레방아가 인상적이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맑았다.박물관 내
부를 관람하던 중 지우의 시야에 흰 머리가 힐끗 힐끗 보이는 갈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다
가왔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눈치였다. 지우 형사는 와이셔츠 앞주머니 안의 소형
컴퓨터를 켜고 사진과 그 남자의 얼굴을 비교한 후에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강영환 박사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특수경찰과 김지우 형사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커피숍 외곽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지우형사가 박사에게 질
문을 던졌다.
“어떻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죠?"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STOPWATCH라고 불렀어요. 연구원들의 수는 20명이었고, 보조연구원까지
합하면 70~80여명이 넘었습니다. 우리는 이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 여행 상품으로서의 혁신을 가
져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자부심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문제점들과
여행상품으로서 너무 위험부담이 컸기에 연구 막바지에 이르러 저를 비롯해 15명의 핵심 연구원
들이 연구에서 손을 뗐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요소가 있었기에 그런 조치를 취했습니까?"
“미래에서 과거로 온 여행자들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역사가 바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를 저
지할 방법을 궁리했지만 과거 여행지에서 문제를 일으킬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라는 것 외에
는 마땅한 대책마련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서 일으킨 문제가 있을경우 여행지에서 돌아와 처벌을 받는다. 듣고보니 너무 무던하게
타임머신개발을 했었군요. 문제점이 있는데도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이 타임머신 여행 자체가 위험한 모험이었습니다. 그 것이 15명의 연구원들이
연구개발에서 손을 뗀 핵심적인 이유였죠."
“이 STOPWATCH라는 기계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넓이 2M, 높이 3M의 타원형 타임머신 기계안에 탑승하기 전에 기계와 호환이 되는 아주 작은
나노칩을 피부에 이식시킵니다. 문제가 있을 경우 즉각 이상 신호로 반응할 수 있게 말입니다.
이 칩은 자신의 나이와 성별은 물론 좋아하는 음식과 질병까지 개인의 기록이 모두 담겨 있습니
다. 여행지에서 필요한 물품이 있을경우 이 칩 외부의 피부 위로 돌출된 붉은 버튼을 눌러 문자
로 보내주시면 약속된 장소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전해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참여했었던 STOP
WATCH 제품은 다른 업체의 개발중인 타임머신 기계보다 탁월한 이동 스피드와 완벽에 가까운 인
공지능 모드로 인한 위치 추적 장치까지 많은 기능을 소화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실험이 막바지
에 다다르자 공개를 눈 앞에 둔 채 임상실험에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임상실
험자의 숫자는 총 100명이었고 이들은 임의로 채택한 각기 다른 시대와 나라들로 순간 이동 되
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임상실험자들의 제한사항은 없었습니까? 예컨데 건강이나 신체 특이사항 같은 것을 통과한 후
에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물론입니다. 이 기계에 탑승하려면 아주 엄격하고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메디컬
테스트와 안정된 심리상태 작업과 나이, 신체 특이사항 등의 제한된 조건에 부합해야만 합니다."
“거리가 있는 질문입니다만 실험의 어느 단계까지 연구를 하셨던 것 입니까?"
“기계 개발 직전까지 연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기에 더이상
연구를 진행할 수가 없어 연구에서 손을 뗐습니다."
“이 기계가 상업화된다면 여행자의 조건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5만 달러의 여행자금은 물론 몸 상태도 보통 성인남녀보다 우수해야 합니다. 순간이동시에 심
장마비등의 이상증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죠. 기계내부의 강한 변화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소식을 전해들으셨겟지만 저희 경찰은 이 타임머신기계로 인해 실종된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
력중입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음.. 같은 기종의 기계를 개발하여 그들의 몸에 이식된 나노칩의 신호를 쫓아 위험한 방법이지
만 수사대를 편성하여 여행지를 샅샅이 뒤져 실종자들을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것 역시 문자
전송 기계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막에서 보석 찾는 격이
될테니까요."
“그렇군요. 강영환 박사님.... 사고 몇일 전으로 되돌아가서 폭발이 터지는 것을 막는 방법은
어떨까요?
“이 기계는 프로그래밍 자체가 여행지로 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50년 이전 시대부터 과거로 갈
수가 있어요. 오래전의 시대로 갈수록 필요한 물품과 지식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갈
곳도 제한 되어 있습니다. 또한 몇일전의 주소로 간다고해도 이미 일어난 일을 바꾼다는 것은 불
법입니다. 그들이 간 주소로 가서 찾아야해요. 당신의 말대로라면 누군가가 나 또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수도 있어요. 몇일 전으로 되돌아가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또 다른 운명을 만들
수 있으므로.. 타임머신 기기에서는 절대 불법입니다. 이 것은 신에게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어려운 일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타임머신 기계의 재개발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폭발사고로 인
해 3명의 사망자와 4명의 실종자가 생겼습니다. 실종자를 찾는데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강영환 박사가 어렵게 말문을 연다.
“네..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기계를 재개발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
요. 파손이 심한 기계를 사용하기에는 무리입니다."
“다음 만남은 이주일 뒤가 어떻습니까?"
“재개발에 성공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주일 뒤의 아침.전화벨이 울리자 지우형사가 침대에서 손을 쭉 뻗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강영환 박사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전화드렸습니다. 재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부서
진 타임머신을 복원하여 이전과 다를바 없는성능으로 만들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임시 연구소로 직접 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김지우 형사는 사건을 미궁속에서 건져낼 작은 희망을 발견한 기쁨에 제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봐! 제임스! 해냈어.. 재개발에 무사히 성공했다구! 지금 당장 아파트 주차장으로 와주겠나?"
이주일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은 기쁨에 찬 지우형사가 말했다. 전화를 끊은 후 30분 뒤에 제
임스의 차가 도착했고 지우가 차 안에 탄 후에 두 형사는 곧장 한강고수부지 근처의 강영환 박사
가 있는 임시 연구소로 향했다. 40분 남짓의 거리.. 차에서 내리자 마자 두 형사는 급히 뛰기 시
작했다. 연구소의 출입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안내 로봇이 그들을 막아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젠장, 또 로봇이로군" 지우형사가 투덜거리자 제임스가 지우의 어깨를 한 손으로 툭툭 치고는
로봇에게 말했다."
“강영환 박사를 뵈러 왔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안내로봇이 어디론가 연락을 하자 이층에서 계단으로 경찰에서 붙여준 검은 정장차림의 요원들
과 함께 강영환 박사가 내려왔다. 지우형사를 알아본 박사는 손짓으로 요원들을 다른 곳으로 보
냈다.
흰색 연구복 차림의 박사가 지우형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셨군요. 저와 함께 휴계실로 가시겠습니까?" 그들은 1층의 우측복도를 지나 19세기말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걸린 휴계실 안으로 들어서 고풍스런 느낌의 테이블이 있는 정 중앙의 자리에
앉았다. 박사가 기계설계도면과 종이뭉치를 꺼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기록지를 보십시요. 실종자들이 타임머신 여행지로 입역한 주소는 HPI3012 였습니다. 여행
지 주소명을 타임머신 여행지로 입력하는 것이 아닌 여행지를 자동으로 주소 변환기를 거쳐와 순
간이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집니다. 가령 올림픽이 열리던 시기의 1988년도의 서울로 가고 싶다
면 자동 주소 변환기를 거쳐 KOR88310214라는 주소가 필요 합니다. 실종자 김해성 시의원과 함께
동승한 전혜림양의 목적지는 1890년도 프랑스 파리의 주소는 HP 3012901231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목적지의 주소를 해독한 결과 HP13012라는 주소로 가버렸어요. 지금 주소를 해독하고 이
들의 행선지를 찾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시대의 어느 곳인지 뚜렷한 행선지가 표시 되지 않
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때 기계가 오작동했거나 누군가 입력되지 않은 주소로 보내기 위해 고의
로 기계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계속해서 행선지를 찾고 있습니다만 해독이 힘들군
요."
“박사님, 그 말은 누군가 고의로 그들을 그 주소로 보낼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특수기동대원 두명이 실종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타임머신 기기를 조사중에 사라졌는데 그렇다
면 처음의 실종자 두명이 출발한 주소로 이동한 것인가요?"
“기계를 너무 함부로 만졌어요. 타임머신 기계의 설계자이거나 참가한 연구원이 아닌 이상 기계
를 쉽게 만져선 안되는 것이었어요. 저로서는 특수 기동대원 두명의 행선지를 정확히 알 수 없군
요. 사고당한 처음 실종자 두명의 주소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정확히 실종자들의 행선지를 찾는데 앞으로 얼마나 오랜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정확히 확답을 드릴 수 없군요.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주소로 찾아가보면 어떻겠습니까?"
지우형사가 물었지만 근심어린 표정을 짓는 박사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행선지가 어디인지 확인이 안 된 지금 그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본인이 잘 알고 있을텐
데요. 그 곳이 어디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아무것도 모르고 실종자들의 주소로 간다는 것은 무모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김해성 시의원과 전혜림양의 여행지 주소를 왜 변경했는지 알아야 겠습니다. 박
사님... 기계가 오작동했을 확률은 얼마나되죠?"
“그 확률은 2%도 채 안됩니다. 이 기계는 각 시대별로 주소가 입력되어 있어요. 오작동을 해도
입력된 주소 중의 하나로 가게 됩니다. 물론 사전조사로 임상 실험자들이 다녀온 곳만을 여행지
로 삼습니다. 그러나 실종자들이 가버린 주소는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곳입니다. 누군가 여행
출발전에 실종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엉뚱한 주소로 입력한 것이 틀림없어요."
“오작동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군요."
“누군가 주소를 조작했어요.”
“자신의 정책과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서 김해성 시의원은 극비리에 개발중인 타임 머신의 마
지막 임상실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의 정책에 반기를 든 세력이 고의 로 그를 외 딴 주
소로 보내버렸고. 폭팔 사고로 숨진 연구원들도 이 음모에 관련되어 있을 수 있으며. 정치적 야
망으로 인한 사건이 분명하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김지우 형사의 눈 빛이 어느때보다 반짝였다.
타임머신 개발의 총책임자이자 설계도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세계적인 물리학자이기도 한 강영
환 박사와 그의 연구팀에 의해 부서진 타임머신이 완전히 재복원되었다. 박사는 손바닥의 절반
크기인 문자기계를 통해 자신이 직접 실종자들의 주소로 찾아가겠다는 김지우 형사의 끊질긴 설
득에 두 손을 들었다. 결국 손톱의 절반 정도 가량의 크기인 나노칩을 오른 팔의 피부 속에 이식
하고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인 문자기계를 전해 받았다. 그리고 이틀간의 훈련을 받았다.
“무슨 일이 생기시면 문자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과거에 연락수단으로 사용되던 핸드폰 문자를
보내듯이 채칵.. 채칵.. 아시겠죠?"
또 실시간으로 두시간마다 문자를 의무적으로 보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실종자들을 찾은 뒤에
어깨에 이식한 나노칩의 버튼을 두번 누르시면 나노칩 주변으로 반경 2미터 안까지 푸른 파장이
일어나 이 곳으로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출발은 내일 오전 8시 입니다."
강영환 박사와 면담을 마친 김지우형사는 자신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내일을 기약하며 피곤
에 지친 몸을 침대에 뉘였다. 그 시각에 경찰청의 특수경찰과에서 지우형사의 소식을 전해들은
제임스는 한강의 임시연구소를 찾아갔다. 강영환 박사를 찾아간 그는 자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실
종자들을 데려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제임스와 강박사는 연구소에서 한참이나 논쟁을 벌였다.
“지금 농담하는 겁니까?"
흥분한 강박사의 말을 제임스가 지지않고 뒤 잇는다.
“내가 가야합니다. 지우를 보낼수는 없어요. 왜 나만 지우가 실종자들을 찾기위해 투입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이죠?"
“지우 형사가 자신만이 가길 원했어요. 위험하지만 그 주소를 찾아가서 그 일대를 샅샅히 뒤져
볼 계획이었죠."
“단지 그게 계획이라구요? 타임머신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들 나리께서 내놓은 대책이 고작 그
것 뿐이라는 겁니까?"
“이봐요 제임스형사 이 타임머신기계인 STOPWATCH는 자동주소변환기를 거쳐 순간이동이 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요. 이 타임머신 기계의 탑승자들은 여행목적지를 주소 변환기로 변환시킨
뒤 순간이동 된다구요. 그런데 그 두명의 실종자들은 애초부터 누군가 본래의 목적지의 주소를
어느 곳인지 해석조차 되질 않는 괴이한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거기에 조사하던 중 두명의 기동
대원까지 그 주소로 이동되었습니다. 이제 그 4명의 실종자를 찾는 방법은 한가지 입니다. 그 해
석조차 되질 않는 주소로 찾아가 그들을 찾는 방법 뿐입니다."
잠시 흥분이 가라앉은 두사람에게 침묵이 흘렀다. 강박사가 그 정적을 깨며 말했다.
“모든게 맞아 떨어져야해요. 아주 정교한 작업입니다."
제임스가 상의 안쪽의 총집에서 전기총을 꺼내 들었다.
“나를 보내지 않는다면 당신을 죽일수도 있어."
“도대체 왜 이러는거죠? 당신의 영웅심리 때문인가요?"
“내가 가야합니다. 지우를 보낼수는 없어요. 더욱이 이런 위험한 일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군. 구세주일세.. 제기랄! 나를 찾은 이유가 이런 일을 만들기 위해서 였
나요?"
“지우는 나와 친형제같은 사이입니다. 제가 대신해서 가겠습니다. 체격조건과 메디컬 테스트도
제가 더 적당할 것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강영환 박사가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 잘못되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나 역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겁니다. 아시
겠어요? 꼭 찾아 돌아오세요."
제임스가 전기총을 총집에 집어넣었다. 강박사는 제임스의 상의를 벗기고 훤히 드러난 근육질의
상체에 나노칩을 이식하고 난 후 태양열을 받아 사용하는 휴대용 문자기계를 손에 쥐어 주었다.
“실시간으로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두시간마다 한 번씩 보내주시는
것은 의무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 하지만 실종자들의 주소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 필요한 물품
들을 챙겨드릴 수 가 없습니다. 매우 위험한 여행이 될 것 입니다."
준비를 마친 제임스는 타임머신 기계 안에 탑승했다. 강박사가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타임머신이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가고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제임스는 실
종자들의 주소인 HP13012로 이동되었다. 그 시각에 김지우 형사는 강박사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
을 수 있었다. 강박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김지우 형사님 지금 당장 연구소로 와주세요. 제임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실종자들을 추적 중입
니다."
지우 형사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다르지 않았다.
“뭐라구요?”
“제임스가 타임머신을 타고 실종자들을 추적중입니다."
“이런 제임스가 사고를 쳤군. 빌어먹을 제가 곧 연구소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지우형사는 주차장에 주차해놓은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한강 임시연구소로 향
했다. 연구소에 도착한 김지우형사는 강영환 박사와 함께 모니터를 지켜보며 문자메세지가 도착
하기를 기다렸다.
“출발한지 얼마나 되었나요?"
“2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메세지가 올 때가 되었는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조금 더 기다려 봅시다."
강박사가 검지 손가락을 얼굴에 토닥이며 말했다. 그 순간 오랜 정적을 깨는 문자메세지가 도착
했다. 김형사는 모니터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고 메세지를 읽어내려갔다.
<여.기.는. 온.통.화.염.과. 천.둥.번.개.가. 쉴.새.없.이. 몰.아.친.다.
보.이.는. 것.이.라.곤. 날.개.를. 단 .검.은.사.람.들.과.사.방.에.서.
날.아.드.는. 가.시.와. 채.찍.들.이.다. 그.들.은 악.마.같.다. 여.기.
이.곳.에.서. 실.종.자.들.을. 만.날.수.있.었.다. 도.움.요.청.을.했.지.
만.왜.응.답.이. 없.는.가? 이.메.세.지.가. 전.송.되.기.를.바.란.다.
한.가.지.확.실.하.게.본.것.은.많.은.사.람.들.이.끊.임.없.이.화.형.
당.하.고. 번.개.와. 채.찍.질.에. 시.달.린.다.는.것.이.다. 죽.어.도.
죽.을.수. 없.는.곳. 고.통.만.이. 존.재.했.다.>
“도움요청을 했었다니 무슨 말이지?"
지우형사가 강박사를 노려봤다. 강박사는 온도가 80도 이상이면 문자메세지 자체가 작동하지 않
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30분이 지날 무렵에 또 하나의 메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지.축.이.흔.들.리.고.사.방.이.화.염.으.로.휩.싸.여.있.다.고.통.스.럽.다.>
“믿을 수 없어. 어떻게 된 일이야. 고통스럽다니?"
지우형사는 침착하게 마음을 추스리고 무선키보드를 두드려 제임스에게 보낼 메시지를 입력했다.
<실.종.자.들.을. 데.리.고.오.게.>
얼마뒤 대답이 돌아왔다.
<불.가.능.하.다.>
“이런 젠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이.봐. 제.임.스.실.종.자.들.을.데.리.고.돌.아.와.귀.환.버.튼.을.눌.러.귀.환.해.야.해.어.
서.>
지우형사는 애써 흥분을 가라 앉히며 메세지를 입력했다.
“지옥... 이건 여행주소가 아니야.. 그래서 자동주소변환기를 통해 여행지 주소를 알아내려고
해도 표시가 되지 않았던 것이로군."
강박사는 HP13012의 주소가 악마들의 서식지인 지옥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얼마 뒤 또 한통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실.종.자.들.은. 모.두.한.곳.에.모.여.있.다.누.군.가.의.구.원.을.기.다.리.면.서.이.제.
모.두.다.른.곳.으.로.흩.어.져.떠.밀.려.간.다.>
강박사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불끈 쥔 주먹으로 무릎을 내려쳤다. 지우형사는 강영환 박사에게
자신이 실종자들과 제임스를 데려오겠다고 했지만 박사는 흥분에 찬 지우 형사를 만류하며 냉정
을 찾으라 다그쳤다.
“누가 이런 주소로 타임머신을 작동시킨 것이지?"
지우형사는 눈물을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삐익.. 삐이이익.."
잠시 후 제임스의 문자기계가 파손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를 받을 수 있었다.
“안돼.. 제임스..."
흐느끼는 지우형사의 어깨를 강영환 박사가 토닥이려다가 멈췄다. 메세지는 몇 일, 몇 주가 지
나도록 더 이상 전송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뒤... 임시연구소는 흔적도 없이 철거되었고 타임머신 기계는 대한민국에서 개발
이 전면금지 되었다. 이 소식을 비밀리에 접한 인접국가들도 타임머신의 개발을 서둘러 중단하였
고 실종자들과 사망자들을 위로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강력한 용의자로 분류되었던 NBK방송국 사
장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이 사건은 미궁속에서 종결 되었다. 누가 HP13012라는 주소로 김
해성 시의원과 전혜림양을 보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정치권의 음해라는 가정만이 있
을 뿐이었다.
노을이 진 저녁무렵 김지우형사는 임시 연구소가 있던 한강 고수부지를 찾아가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제임스의 넋을 기렸다.
“두명의 실종자들을 찾으려하다가 제임스를 잃었어. 그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제임스의 마지막 말을 기억해. 죽어도 죽을수 없는 곳. 고통만이 존재 하는 곳..."
김지우 형사는 눈을 들어 임시연구소가 있던 한강고수부지를 바라봤다. 다리의 노란 빛 라이트
가 물에 반사되어 비치는 한강의 야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지우의 가슴 속에 한가지 의문이 묵시룩처럼 울려퍼졌다.
“우리는 너무 무분별하게 미래지향적인 사고만을 갈망하는 것은 아닐까?"
2년이 지난 현재. 그 당시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문과 방송, 언론에서는 더
이상 한강고수부지 폭발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 사건에 대해 의구심조차
품지 않는다.이렇게 사건은 미해결된채 일급기밀문서 파일에 묻혀졌고 발빠른 정부의 조치로 타
임머신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그만큼 또 다른 사건과 사고가 끔찍하게 발생하는 요즘 김지우
형사는 생각해본다. 우리가 현실에서 재앙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우형사는 자신의 집
베란다 너머로 반짝이는 밤하늘에 취한채 도심을 바라본다. 그는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무엇인
가를 더듬어 꺼냈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것은 군데 군데 색이 바랜 둥근 가장자리 끝이 부서지
고 낡아버린 stopwqtch였다. 어린 시절 그가 가지고 놀던 물건이었다. 청년이 되어 그가 경찰학
교에 다니던 무렵에 달리기나 운동을 할 때도 성인이 되어 생각이 많아질때면 버릇처럼 기계의
버튼을 누르고 멈추고를 반복하던 물건이다. 지우형사는 stopwatch의 동작버튼을 누르고 베란다
의 창틀에 올려 놓았다. 기계를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느 것도 시간의 윤리를 멈출수 없다
는 듯이.. 그리고 제임스와 실종자들을 기리며 맥주한 캔을 들이켰다. 그 날 저녁 그렇게 지우형
사는 침대에 일자로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 햇살이 따스히 비치는 다음날 아침. 누군가 85층 꼭
대기층의 아파트 문 틈 사이로 걸어 들어와 있었다. 그 형체는 바스락거리며 방 안을 헤집고 돌
아다니다가 지우형사의 옆에 몸을 누윈다. 얼룩덜룩한 무늬의 몸체가 이불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
간다. 집을 잃고 떠도는 고양이 한 마리가 새근 새근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