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의 지팡이
보편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맹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소경이라고도 불렀는데 소경이라는 말은 시각 장애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해서 쓰지 않고 있습니다. 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로 시각 장애자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시각 장애인 가운데는 선천적으로 눈이 멀어 사물을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은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盲人)과 눈을 뜨고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 문맹(文盲)과, 영적세계(靈界)를 보지 못하는 영맹(靈盲)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의 눈이 멀면 사물을 볼 수 없고, 문맹이 되면 자기를 죽이라는 글을 가지고 사형장까지 가도 모르는 것처럼, 영의 눈이 어두우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글을 못 읽어도 답답한데 영의 눈이 어두우면 삶의 답답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영의 눈이 어두운 사람이 자기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복 중에 들어있는 태아가 세상에 태어나기 까지는 어머니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영의 눈을 뜨기 까지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육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게 하고 신뢰하게 합니다. 이 믿음은 삶의 두려움을 몰아냅니다.“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 11:27)
맹인의 두려움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평지를 걸으면서도 지팡이로 두들겨 확인해 보고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안내자가 있으면 지팡이로 두들기지 않아도 됩니다. 맹인에게 믿을 수 있는 안내자처럼 영적 맹인에게 믿음은 하나님의‘특별한 선물’인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先祖)들은 이 믿음을 가지고 삶의 두려움을 몰아냈습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와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1-4) 영적 맹인도 이 지팡이와 막대기가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복된 삶을 위하여 생명 되시는 주님 앞에 엎드려‘주님 내가 영적인 맹인입니다. 주님 나를 건져 주세요’라고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3월을 시작하면서‘오직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시고 전부이십니다.’고백 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