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떠오르는 마처 세대란 무엇인가?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으로 1960년대생들은
가리키는 신조어이다.
'386세대'로도 불리는 1960년대생은 모두 8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6.4%에 달한다고 하는데 내년부터 가장 빠른 1960년생을 시작으로 65세 이상인 법적 노인 연령에 접어드는 세대들을 일컫는 말이다.
자녀의 부양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첫 세대니만큼 대부분 노년 돌봄 문제를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으며 이들은 3명 중 1명꼴은 자신이 고독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하는데 마처 시대의 삶은 끔찍하고 버거운 암울한 미래를 겪게 될 듯싶어 참담하기에 그지없다.
정갈 정심한 우리네 세태들의 삶이 어쩌다가 사회 만상의 힘듦 들 속에 다채 다양한 다사(多謝)의 정들마저도 메말라가고 다사(多死)의 경지들에 초탈적 심경으로 자포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만라상들인 민의 병폐들도 숙성된 묵은지의 깊은맛처럼 비비고 절여서 오미의 젓국과 함께 발효된 진미함처럼 올곧을 풍습으로 곱씹어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만연함의 진의(眞意)가 모든 가족 가정에 행복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코로나로 죽고
응급실 뺑뺑이로 죽고
세금으로 죽고
근심·걱정 화병으로 죽고
돈 없어서 죽는 세상이다.
그뿐이랴!
어찌하면 눈속임 또는 공갈 사기 조장, 과장된 홍보, 스팸과 전화금융사기들은 많은 생명체들 그중에서도 착하고 선량한 인간들을 혼돈과 나락에 빠지게 한다.
혹세무민함에 있어서야 어찌 누구 하나만 탓할 수 있으랴마는 배반과 배신이 판치는
몰염치한 현실에서의 삶은 스스로를 지켜 지탱하기에도 버거운 날들이다.
세상살이 까다롭지 않고 너그러우며 수더분하게 살아가는 무던한 삶들의 결정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역경들 속에 고난의 행군처럼 계속되는 듯하다.
이 풍진 세상에 풍요와 번영이란 각고의 때우기 삶의 일상들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들은 참으로 슬프고 애석할 뿐이다.
그 시대 그 시절 과거의 역사 속에 공존 공생(共生)하며 정분을 나누고 쌓았던 인정머리라고는 먼 옛날얘기가 되어버린 오늘날 건강하게라도 참모습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딱 십여 년 전쯤 동시절의 앞선 마처 세대를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땐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예측 또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었는데….
동량지재(棟梁之材)의 웅비함들도 마처 세대의 그늘아래 이제는 모두의 형평에 맞음을 탓해 보면서 막걸리 한잔의 그리움과 회포 속에 늘 생각나는 벗들과의 적조함이나 달래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