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음식문화
중국의 음식문화는 다양하다. 첫째, 남방은 쌀, 북방은 면(南米北麵)을 먹는다. 광활한 국토를 지녀 기후와 토양이 다르니 먹는 재료나 방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북방은 강수량이 적고 건조하여 밭농사에 적합하니 밀, 고량, 좁쌀, 옥수수가 많이 나고 육고기도 많은데, 남방은 강수량이 많고 고온다습하여 논농사에 적합하니 쌀이 많고 물고기도 많다. 주식은 쌀밥과 면, 술도 황주와 백주로 각기 다르다. 일반적으로 중국 요리는 지역에 따라 절강, 사천, 산동, 광동, 호남, 복건, 강소, 안휘 등 8대 요리로 구분한다.
여기에 북경과 상해를 별도로 넣기도 한다. 예로부터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南甛北鹹, 東辣西酸)"라고 했는데, 문인 양실추(梁實秋)는 "강소와 절강은 단 것을 좋아한다"를 덧붙였다. 북쪽이 짠 것은 알겠는데, 서쪽 사천에 맵디매운 훠궈(火鍋, 중국식 샤브샤브)가 있고, 호남에 매운 고추가 있는데 어찌 '산(酸)'이라 하였을까? 그럼 "사천 사람은 매운 것을 두려하지 않고, 귀주 사람들은 매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호남 사람들은 맵지 않을까 두려워한다(四川人不파辣, 貴州人辣不파, 湖南人파不辣)"는 말은 뭔가? 지역마다 먹는 것이 다르니 성격도 다르지 않을까? 당연하다.
둘째, 우리는 일본어를 그대로 본 따 '요리'라는 말을 쓰지만 한어로 '랴오리(料理)'는 정리, 처리하다의 뜻이다. 대신 '펑런'이란 말을 쓴다. '펑'은 삶는다는 뜻이고, '임'은 익힌다는 뜻이다. 음식을 조리한다는 것은 삶거나 익히는 일이다. 하지만 삶거나 익히는 것도 각기 다양한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돈은 약한 불에 장시간 삶는 것이고, 자는 센 불로 끓이다가 반쯤 익으면 중불로 바꾸고 완전히 익으면 다시 약한 불로 끓이는 것이며, 민은 볶은 다음 육수를 붓고 뭉근 불로 끓이는 것이고, 작(灼)은 뜨거운 물에 데쳐내는 것이다. 이외에도 고는 불에 직접 올려 구운 것이고 훈(燻)은 연기를 쐬며 익히는 것이다.
셋째, 문흘(文吃)과 무흘(武吃)이 있다. 먹는데 무슨 문무의 구별이 있는가? 무흘의 사전적 정의는 따로 양념을 하거나 조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재료를 적당히 처리하여 먹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뜻도 있다. 예전 북경성에 양고기를 구워먹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종업원이 고기를 구워 식탁에 내놓으면 손님이 천천히 감상하면서 먹는 것이니, 이를 문흘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손님이 직접 화로 옆에서 젓가락으로 고개를 집어 구워먹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무흘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삼겹살을 구워먹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무흘은 당연히 백주(白酒) 몇 병쯤 마셔가며 먹어야 제 맛이니, 호방하되 원시적이다. 반면에 문흘을 하려면 음식에 따라 식기며 식탁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하고, 시끌벅적한 소란 대신 황주(黃酒) 몇 잔과 우아한 담소가 곁들여야 할 것만 같다. 본시 중국인은 식사를 할 때도 나름의 '예'가 있었다. 공자가 말했다시피 "먹을 때나 잠잘 때는 말을 하지 않는다(食不言침不語)"고 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둥근 원탁에 앉는 방식이 따로 있고, 주문하거나 음식을 먹는 방법에도 특별히 유의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는 '수산삼진(水産三珍)'에 속하는 '팡셰', 즉 게다. 아마도 세상에서 처음으로 게를 먹은 민족이 중국인인 듯한데, 서주(西周)시대 '주례(周禮)'에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적어도 2700~2800년은 더 되지 않았나 싶다. 송대 사람 부굉(傅肱)이 아예 '해보(蟹譜)'라 하여 게의 계보까지 만든 것을 보면 어지간히 좋아하는 것 같다. 게는 바닷게도 있고, 민물이나 호수에서 나오는 것도 있다. 그 가운데 강소성 남쪽 양등호(陽澄湖)에서 나오는 민물털게 다자셰(大閘蟹)가 유명한데, 10월과 11월 사이에 알이 꽉 차고 영양분이 많은지라 가장 맛이 있는 때이다. 명대 미식가들의 지침서라 할 만한 '고흘(考吃)'을 보면 게를 먹을 때 필요한 도구 여덟 가지가 나온다. 작은 망치, 쇠방망이, 펜치, 족집게, 작은 수저, 갈퀴(포크), 긁개, 바늘 등이 그것이다(이후에는 64개까지 늘어났다). 문인, 아사(雅士)들이 모여 즐기는 이른바 '해연(蟹宴; 게를 위주로 한 연회)'은 게와 술(황주, 백주), 그리고 국화 감상과 시 짓기(賦詩)까지 포함한 '문흘'의 대표격이다.
먹는 것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똑같다. 임금에게 백성이 하늘인 것처럼 일반백성들에겐 먹는 것이 곧 하늘이니 백성이야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는 함포고복(含哺鼓腹)에 행복을 느끼기 마련이다. 예의네 도덕이네, 뭐가 그리 복잡하고 바쁜가? "백성들이 해야 할 일도 모르고 갈 곳도 모르며, 그저 잔뜩 먹어 즐겁고 배를 두드리며 노니니,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이 정도였다"(장자莊子·마제馬蹄) 그러나 먹는 것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따라 크게 다르다. 황제에게 제공되는 어선(御膳)과 가난한 이가 허기를 달래는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 광주리의 밥 한 덩이와 표주박의 물 한 잔)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심규호·제주국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