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0년대🌺 |
✿1871년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국 함대 철수
작전회의 조선사절이 탑승한 조선배
신미양요는 1871년 미국이 조선에 통상 수교를 강요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면서 발생한 군사적 충돌입니다. 6월 1일 미국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해군 함대는 강화해협에 진입했으며, 수심 측정 명목으로 손돌목에 접근했습니다. 조선은 이를 영토 침범으로 간주하고 포격을 가격했습니다. 미 해군은 사과와 협상을 요구했으나, 조선은 이를 정당한 군사 방어 행위로 인식하고 거부했습니다.
교섭이 결렬되자 로저스는 회의를 소집하여 강화도 상륙작전을 계획했습니다. 6월 10일 미 해군은 초지진을 포격으로 초토화 시킨 뒤 점령했습니다. 11일에는 덕진진을 무혈 점거하고 이어서 광성보를 공격했습니다. 어재연 장군이 지휘하는 육백 명의 조선군이 광성보를 방어했으나 결국 함락되었습니다.
이때 미 해군은 어재연 장군의 '수帥'자기를 탈환했습니다.신미양요에서 미 해군은 광성보 등 주요 방어 거점을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데 성공했으나, 작전 지연, 열악한 보급 여건, 그리고 조선군의 지구전 방식의 저항 등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실질적인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후 조선의 대외정책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전국에 세우고 쇄국정책을 강화했습니다. 조선의 일부 지식인층은 서양과의 군사력 격차를 실감하고, 통상 개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
| 🌱1900년대🌱 | |
🌿07년 통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가 고종에게 헤이그 밀사 파견을 항의. 🌿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대한매일신보 통해 처음으로 국민에게 보도됨 🌿23년 경성 고무 공장 여공 파업 발생. 🌿26년 총독부 학무국이 사립 학교 교장들을 소환하여 6·10만세 운동에 관련된 학생들의 처벌을 명령. 🌿31년 인천과 서울에서 중국인 습격 소동. 🌿33년 한-중 연합 토일군이 대전자령에서 일본군 연대 섬멸. 🌿39년 총독부, 경방단 조직 🌿53년 국회, 간통 쌍벌죄 법안 통과 🌿54년 문교부, 한글간소화안 발표 | |
🌿61년 반혁명음모혐의로 장도영 중장 등 44명 체포
1961년 7월 3일, 최고회의서 장도영 중장 등 44명을 반혁명 혐의로 구속
5.16군사정변 이후 표면상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직과 혁명내각 수반직에 있던 장도영 (張都暎, 1923년 1월 23일 ~ 2012년 8월 3일) 중장의 추종세력 44명이 1961년 7월 3일 반혁명음모협의로 구속됐다. 이와 함께 같은 날 국가재건최고희의는 장도영 중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으로 부의장인 박정희 소장을 선출하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國家再建最高會議)는 5·16 군사정변 이후 정변 주도세력이 5월 18일에 '군사혁명위원회'에서 이름을 바꾸어 발족시킨 입법·행정·사법의 3권을 행사했던 비상통치기구이다. 첫 번째 군사내각은 5월 20일에 발표됐으며, 1963년 12월 27일 제3공화국(第3共和國)이 수립되면서 해체되었다.
노태우 대위에게 연행되는 장도영(좌) 그리고 반혁명사건'에 연루된 장도영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1962년 1월 혁명재판소에서 수의 차림으로 눈을 감은 채 검찰 측의 사형 구형을 듣고 있다. | |
🌿61년 박정희 소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1년 7월 3일 회의에서 최고회의의장 겸 내각수반인 장도영 중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최고회의의장에 부의장인 박정희 소령을 즉시 선출했다.
내각수반에는 현 국방부장관 송요찬씨를 임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최고위원인 장도영 중장, 송찬호 준장, 박치옥 대령, 김제민 중령 등 4명의 최고위원직 사표를 수리하고 최고회의법 제4조1항을 개정하여 의장이 당임위원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이로써 군사혁명내각의 수반이었던 장도영 중장은 지난 5월 20일 취임한지 44일 만에 최고회의의장 및 내각수반직을 사임케 된 것이다. | |
🌿61년 반공법 공포 🌿67년 1만 4700여 명의 대학생이 부정 선거 규탄 시위 전개. 🌿67년 서울 시내 고등 학교 무기 휴교. | |
🌿69년 위장간첩 이수근 사형 집행
👉🏿1960~70년대를 뜨겁게 했던 위장간첩 사건의 주인공 이수근씨(45)가 ‘위장’ 8백33일 만에 1969년 7월 3일 오전 11시 59분 교수형에 처했다. | |
| 🌿71년 한ㆍ미합동 제1군단 창설 | |
🌿73년 포항종합제철 공장 준공
1973년 7월3일...포항제철 3년3개월 만에 준공식
1973년 6월 9일 포항 1고로에서 첫 쇳물이 쏟아지는 순간 직원들이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1973년 6월9일, 이른 아침부터 박태준 사장과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로(용광로) 아래 출선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태양열로 채화한 원화(元火)로 점화로에 불을 지핀지 어느덧 21시간이 지난 오전7시반, 이윽고 출선구가 열리고 용암처럼 시뻘건 쇳물이 힘차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一貫)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 |
🌿73년 불국사 복원 공사 준공식 🌿74년 태풍 길다 호, 피해 사망 실종 28명 | |
🌿74년 홍수환, 프로권투 밴텀급 세계 타이틀 획득
1974년 7월3일 홍수환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획득
1974년 7월 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꺽고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밸트를 차지했다. 이때 그가 유행시킨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한국 최초로 두 체급에서 세계챔피언을 지낸 그는 이름뒤에 `씨`字보다는 여전히 `선수`字가 어울릴 것같은 영원한 권투선수다. 1980년 12월 염동균과의 라이벌전을 끝으로 링을 떠났다. 홍씨는 두번이나 세계타이틀(74,77년)을 차지했지만 단명 세계챔피언이었다. 두번 다 2차방어전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