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야기(1)
(2015년 새해를 맞아 연말연시 약속들이 마무리되는 1월 마지막 한 주를 휴가 기간으로 잡았다. 뭐 항상 휴가 중이지만(?) 이번 휴가 기간에는 우선 책을 읽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여행을 가되 특별히 어떤 목적지나 할 일을 정하지도 않았다. 물론 3년 만에 마쳤던 성경읽기가 벌써 1년이 지나서 방학 때 다른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계획이 있어 성경은 예외로 하였다. 그 1주일의 겨울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1월 24일(토) ‘길’
그는 지난 1월 24일(토),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신년 산책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온 가장 친한 친구들 10여명의 모임인데 50대가 되면서부터는 정기 모임을 등산이나 여행으로 하고 있다. 그래도 각자가 너무 바빠 같이 가는 장기간 여행은 힘들고 근처 산을 간다든가 1박 2일로 여행을 가는 정도다. 대기업이나 금융권에 다니던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를 하여 시간이 조금 많지만 변호사 등 소위 ‘사’자들과 대학교수들, 자영업 하는 친구들은 아직도 ‘퇴’를 하지 못해 장기간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이유로 다 같이 모여 여행을 가는 것은 1박 2일이 제일 긴 편이다.
그래도 작년부터 겨우 겨우 시간을 맞춰 1박2일 여행도 봄, 가을 두 번씩이나 했고 등산 등 총 20여회를 만났지만 전체적으로 친구들이 ‘모임’보다는 각자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모여서도 거의 70년대 수준으로 논다. 모닥불 피워놓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탁구치고 술 마시고 뭐 그렇게 논다. ‘순수’하지만 ‘재미’는 없다. ‘재미’는 일종의 일탈일수 있으니까. 그들은 좀처럼 ‘일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각자는 따로따로 많은 ‘만남’을 갖고 잘 지내겠지만 전체가 모여서 하는 것은 워낙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 ‘재미’가 없다. 그래도 작년부터 모임에 약간의 ‘재미’를 주니까 호응이 좋은 편이다. 물론 커다란 일탈은 아니다. 그래도 그는 그 모임이 좋다.
그리고 올해는 매 달 모이는 정기 모임을 서울 ‘한양 도성길’과 ‘서울 둘레길’을 나눠서 산책하기로 예정하고 있다. 보통 ‘한양 도성길’은 총 6코스(총 18.6km)가 있어 하루에 3코스씩 두 번 나눠서 가거나 가볍게 네 번으로 나눠 가는데, 올 첫 신년 모임은 혜화문에서 흥인지문을 지나 광희문까지 두 개 구간(낙산구간)만 가기로 했다. 나머지 구간은 꽃피는 봄이나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나 단풍이 불든 가을이 훨씬 좋다.
친구들을 ‘한성대입구역’에서 만나 혜화문 건너편 계단으로 오르면서 산책이 시작되었다. 혜화문에서 계속 이어지는 성곽 길을 돌아 이화동 마을(통영 동피랑 마을과 비슷한 마을)을 지나 낙산공원을 거쳐 흥인지문(동대문)근처에서 ‘한양도성박물관’을 관람하고 광희문 근처에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부를 구경했다. 너무 평범하고 짧은 구간이다. 특히 겨울이라 그냥 평이한 단색이다. 그래도 처음 DDP 내부를 들어가 봤는데 우주선 모양의 건축으로 유명한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축물이라 내부도 온통 흰색으로 되어 있고 조명도 은은했다. 하지만 계단이 없이 모두가 타원형으로 되어있어 이동하는데 조금 어지러웠고 혹자는 ‘인터스텔라’를 보는 것 같다고 혹평을 했지만 나름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고 내부 전시물도 좋아 그는 나중에 다시 와서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겨울이고 신년 초라 정말 조금 성곽 길을 걸었는데 모두들 조금 짧다고 불평을 했지만 장충동에 와서 그들이 잘 가는 ‘김치찌개집’과 장충동 ‘족발집’에서 뒤풀이 하고 70년 전통의 ‘태극당’에서 사각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모두들 만족해한다. 장충체육관도 새 단장을 했다는데 ‘태극당’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다. 카스테라, 슈크림 빵 등등 제품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나 장식도 예전 모습 그대로지만 손님들은 모두들 중장년들이다. 젊은이들을 유인할 생각을 전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날 그에게 정말 희한한 일이 하나 있었다. 그가 15년 전쯤 충남대에 2년간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제자 중 한 사람이 꼭 스승의 날이면 어김없이 그에게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친구가 있었다. 과대도 하고 같은 과 여학생과 결혼도 하여 그네들 결혼식에도 가서 축하해 주었고 그 후 둘 다 서울로 취직을 하여 서울에서도 가끔 만났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 모교인 충남대에 홍보팀 직원으로 다니는 제자였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에 우연이 페이스북에서 ‘철순’의 소식을 들었다. 뇌종양이라고. 그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 그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나쁜 소식일수록 전하라. 희망을 가져라.’ 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김치찌개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철순이가 불쑥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같이 나가서 보니까 작년에 서울 삼성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한 달에 한 번씩 통원 치료를 하는데 그날도 오전에 치료하고 장충동에 있는 평양면옥 냉면을 먹고 싶어 차를 타고 가다가 식당으로 들어가는 그를 우연히 봤다는 거다. 그래서 서둘러 냉면 먹고 그를 찾아 왔다고. 와이프가 운전하고 뒷자리에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딸 둘이 있었는데 너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와 겨우겨우 그 제자 와이프와 얘기하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전하고 차가 길거리에 정차하고 있어 나중에 대전에서 다시 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당한 느낌이다. 철순이가 쓴 모자를 친구들은 겨울이니까 쓴 것으로 알고 있었겠지만 그는 그 모자의 의미를 안다. 그래서 그는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멈추질 않아 자리에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밖으로 나와 그간 끊었던 담배를 연속 피웠다. 1년 가까이 학교는 휴직하고 투병하고 있는 정말 맑고 착한 친구인데.
‘왜 착한 사람들은 항상 불행해야 할까?’
그렇게 길은 항상 거기에 있는데 그 길에는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고 잊고 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도 한다. 그에게는 꼭 한 사람 길에서 우연히 만날 사람이 있다.
그는 ‘길’을 좋아한다. 그래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가야하고 히말라야(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트래킹도 해야 하고 뉴질랜드 남섬 트래킹도 해야 하고 일본 시코쿠 오헨로 순례길도 가야하고 남미종단 잉카 트래킹도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우선으로 잡는데 문제는 시기와 걷는 능력(불량체력)이다. 우선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면 봄, 가을이 좋은데 아직은 여름과 겨울밖에 시간이 없고 매일 25km 이상 걸어야 하는데 작년에 그가 산티아고 준비를 위해 걷은 ‘서울 천주교순례길’과 여러 둘레길들은 겨우 하루에 15km 밖에 안 되었다. 물론 걷는 것은 계속 연습을 하면 되는 거지만 25km 이상을 매일 30일 이상 걷는다는 것은 아직은 그의 능력 밖이다. 하여간 그는 꾸준히 여러 가지 정보를 입수하고 있고 올 해 여름을 목표로 하는데 시간이 안 되면 하는 수 없이 은퇴 후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뉴질랜드 남섬 트래킹은 이곳 겨울이 그곳 여름이니까 시간이 가능하여 우선 꿩은 산티아고로 하고 닭은 뉴질랜드 남섬으로 정했다.
그는 이를 위해 꾸준히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에서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둘레길이 총 562개가 있고 총 1473코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 그는 적당한 곳을 계절별, 테마별로 찾아 열심히 걸을 생각이다. 우선은 그에게 ‘서울둘레길'(두드림길, 8코스, 총 157km)과 ’제주 올레길’(26코스, 412.8km)이란 목표가 있다. (계속)
첫댓글 겨울, 그리고 길 이야기... ‘겨울나그네’구먼...그래서인가 쓸쓸함 속에 우아함이 있는 것같기도 하고...에로티시즘도 엿보이고...‘길에서 꼭 만날 한사람’이 궁금하네. 신앙적인 말씀이신가? 2편의 ‘그녀’는 누굴까...그런데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거야? 쬐끔 걱정되네^^ 아무튼 머리속에 담아둔 순례길 탐방은 성공적으로 다 마치길 기대할게.
하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는 것 같네. 멋지군.
신앙보다 에로야....ㅋㅋㅋ.....
25 km = 15.5 마일.. 하루에 이만큼 걸어서 30일 동안 순례의 길.. 욕심나네...
힘이 더 빠지기 전에 산티아고 가시고 둘레길은 천전히 핫느게 좋을 듯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