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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명악의 그림자는 벌써 소림사에
이 의외의 일에 방조남은 몹시 놀라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대도 대사는 방조남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나 곧장 방조남 곁으로 다가왔다.
"방 시주, 왜 가시지 않고 그냥 문 밖에 서계시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방조남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 초가집 안에 두 어른의 몸을 보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대도 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소승이 알기로는 이곳엔 파수를 두지 않았는데요. 왜 그러십니까? 방 시주님이 무슨 의아한 일이라도 발견하셨나요?"
"아니오. 그럼 가시지요."
방조남은 속으로 혹시 자기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던 것이다.
만일 잘못 보고 소림 승려들로 하여금 일제히 수색케했다가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 하면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고 겁을 냈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마음을 놓지 못 하고 몇 발자국 걷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며 대도 대사에게 말했다.
"두 어른이 좌선하고 계시는 중요한 관소(關所)에 사람을 보내어 지키지 않는 것은 너무 소홀한 처사가 아닙니까?"
방조남이 줄곧 그 문제만 묻자 대도 대사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곳엔 비록 파수보는 사람은 없지만 감히 어떤 자도 기웃거리지는 못 할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요."
"지금의 상황과 그전과는 다르지요. 아무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대도 대사는 역시 담담히 말했다.
"시주님은 너무 걱정이 많으십니다. 이 지역의 백장(丈) 둘레 이내는 벌써 본사의 금지 구역으로 정해져 있으며 각처로 통하는 길은 전무 엄하게 봉쇄되어 조그만 새 한 마리도 날아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방조남은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아, 그래요."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나 속으로는 걱정이 됐다.
(내가 정말 잘못 본 것일까?)
이미 때는 사경(四更) 반이 지났으며 구름마저 희미한 별빛을 가려서 밤하늘은 더욱 캄캄했다.
소림사에서는 방조남을 귀빈으로 여겨서 대비 대사가 친히 한 명의 아기중을 데리고 어느 조용한 거실로 안내했다.
"방 시주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달려와서 소식을 전해주셨으니 뭐라고 감사한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우기 이 며칠동안 제대로 휴식도 못 취하셨으니 푹 쉬십시오. 소승은 이젠 물러가겠습니다."
대비 대사는 이렇게 말한 후 합장하고 나갔다.
아기중도 방 안에 촛불을 켜놓고는 조용히 물러나 문을 닫고 나갔다.
방조남은 약간 피곤함을 느끼자 촛불을 끄고 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으나 웬일인지 잠이 쉬 오지 않았다.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면서 조금 전에 본 그 검은 그림자를 생각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안놓여 그만 잠은 달아나고 눈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졌다.
(만일 내가 잘못 보았으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고 누가 그 초가집 안으로 잠입했다면 큰 일이 나고 말 것이 아닌가? 이건 중대한 일이다. 나의 일신이 비록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벌떡 일어나 침대를 내려와서 방문을 열어젖히고 곤장 대비대사의 거실로 달려갔다. 밖은 어둠이 짙어 뭇소림사의 승려들도 모두 잠이 든 것 같았고 천하에 이름 늦은 소림사는 어둠 속에 마냥 장엄하게만 느껴졌다.
정원을 두 곳이나 지나서 장문 주지의 거실에까지 갔으나 방 안은 캄캄하고 대비 대사는 잠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방조남은 한동안 주저하다가 결국 손을 들어 가만히 창문을 두어번 두드렸다.
그러나 방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방조남은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하고 낮은 음성으로 불러 보았다.
"대사님! 주무십니까?"
그러나 방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틀림없이 대비 대사는 자기 방에 없는 것 같았다. 대비 대사와 같은 위인이 이와 같이 깊은 잠에 叫져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은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생각해 보니 더욱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시간으로 보아 더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곧장 그 초가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삽시간에 그는 초가집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쪽으로 달려오는 길에는 그를 막는 승려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초조한 나머지 생각해 볼 사이도 없이 담 위로 뛰어올랐다.
이 초가집 주위의 담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을 두고 손을 대지 않아 대부분이 삭아 있어서 방조남이 훌쩍 뛰어오르자 와르르 하고 담의 한 모퉁이가 허물어졌다.
방조남은 재빨리 진기를 모아 몸을 움추리면서 가만히 정원으로 내려섰다.
눈을 들어 자세히 바라보니 세 채의 초가집은 모두 문과 창이 꼭꼭 닫힌 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아무래도 잘못 본 모양이군.)
그러나 돌연 그는 이 초가집 부근 백장 이내가 소림사의 금지구역이므로 이리로 통하는 모든 길에는 파수보는 승려가 배치되었다던 대도 대사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는 왜 자기를 막는 사람을 아무도 만나지 못 했을까 하고 이상히 생각했다.
너무나 순조롭게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방조남은 생각했다. 많은 승려들이 암암리에 배치되어 경계를 하고 있을 터인데 고의적으로 자기를 금지구역에 깊이 들어가게 하여 어둠 속에서 자기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이 초가집 주위에 매복되어 있는 모든 승려가 오히려 적의 암수에 걸려 꼼짝 못 하는 것일까?
한참 동안 생각한 끝에 방조남은 오랫동안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몸을 돌이켰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마음 속으로 다시 생각했다.
(왔다가 그냥 표연히 사라질 수는 없지, 에라 오른쪽 초가집이나 한 번 수색해 보자. 의심이라도 풀어야지.)
그리고는 몸을 돌려서 오른쪽 초가집으로 달려들었다.
이 집 역시 세 칸 정도로 모양도 중간집과 변 다름이 없었다.
다른 점은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 뿐이었다.
방조남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집안으로 들어가자면 이 자물쇠부터 부쉬야겠다.)
그는 손으로 자물쇠를 부수려고 하다가 옆의 창문가로 다가섰다.
가만히 손으로 창문을 밀자 창문은 쉽게 열렸으며 그 바람에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머리만을 들이밀고 안을 보니 칠흑 같이 어둡기만 하여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 집안에 소림사의 무슨 비밀이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함부로 뛰어 들어가도 괜찮을까? 만일 이후에 소림사 승려들이 알기라도 하면......)
금지구역에 함부로 뛰어드는 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수상히 여긴 그 그림자를 잊을 수 없어서 한동안 주저하다가 급기야는 몸에 진기를 불러 일으켜 창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초가집 안에 먼지가 쌓여서 푹석거리려니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살며시 바닥에 내렸다. 그의 발이 땅 위에 닿을락말락 하는 순간, 돌연 한 줄기 강한 바람이 그의 몸을 노리고 불어왔다.
방조남은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그 장풍(掌風)을 맞바로 받았다.
그러나 상대방의 장력(掌力)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맞받는 방조남은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방은 일격을 가한 뒤 재차 제 이장을 밀어 보냈다.
방조남은 재빨리 손을 휘눌러 상대방의 공격을 막으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누가 감히 이 소림사 금지구역에 침입했느냐?"
그 호통소리에 놀랐는지 상대방은 돌연 공격을 멈추었다.
그러나 실내가 너무 어두워서 상대방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검은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접근해 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있으려니까 상대방은 분명히 사람 형태였고, 검은 수건으로 얼굴을 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조남은 혹시나 상대방이 암수를 쓸까 두려워서 날듯이 몸을 피해 창문 밖으로 뛰어 나가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기다렸다.
그 검은 그림자는 창문 가까이 다가 와서 검은 복면을 벗어 내렸다.
알고 보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대우 대사였다.
방조남은 깜짝 놀라서 움찔했으나, 곤 두 손을 마주잡고 읍하면서 말했다.
"아, 대사님이었군요. 어쩐지 장력(掌力)이 웅후(趣侯)하다고 생각했더니 거의 압도당할 뻔 했습니다."
대우 대사는 방조남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면서 외쳤다.
"방 시주님은 이 깊은 밤중에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소? 무슨 급한 연락이라도?"
방조남은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대사님 그건 오해입니다."
"만일 소승이 방 시주에게 오해를 하고 있었다면 결코 손을 거두어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을 거요."
"혹시 대사님은 제가 오늘 저녁에 이곳으로 몰래 올 것이라는 대도 대사의 말을 들으신 것이 아닙니까?"
"방 시주가 아무리 변명을 한다해도 지금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않으면 이 늙은이의 의심은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오."
그는 잠깐 말을 멈추더니 다시 계속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이 세 채의 초가집은 이미 우리들이 지키고 있는 거요. 가운데 집에는 바로 대비 사제가 지키고 있구요."
방조남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미 이처럼 엄중히 경계하고 계시는 줄 알았으면 저는 귀사의 금기(禁忌)를 무릅쓰고 이곳까지 달려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우 대사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다행히 방 시주가 이 오른쪽 집을 들어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먼저 가운데 집으로 달려갔다면 지금 쯤은 아마 목숨이 그대로 붙어 있진 못 했을거요."
방조남은 대우 대사의 표정으로 그가 자기를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곧 웃으며 말했다.
"대사님은 또 오해하고 계시는군요. 제 말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고 귀사의 여러분들이 이처럼 삼엄한 경계를 펴고 계신 줄 알았다면 제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방조남은 조금 전에 자기가 보았던 검은 그림자의 이야기와 너무 걱정이 되어서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대비 대사의 거처를 찾아 갔다가 다시 여기로 달려왔다는 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방조남의 말을 다 듣고 난 대우 대사는 눈살을 찌푸리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말했다.
"방 시주가 보았던 사실을 대비 대사에게 미리 이야기해 주었으면 이같은 오해는 없었지 않았겠소?"
대우 대사의 얼굴에 여전히 자기 말을 믿지 못 하겠다는 표정이 나타나 있는 것을 느낀 방조남은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 얼핏 본 광경이라 확고한 자신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제가 잘못 보게 된 것을 말씀드리면 귀사의 스님들로 하여금 대거 수색게하는 번거러움만 끼치게 될 뿐입니다.
더구나 두 분 사장(師長) 어른의 좌선을 방해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또 여러분들이 이 후배를 경거망동한 자라고 비웃지 않겠습니까?
대도 대사의 말씀에 의하면 이 부근 주위의 요로(要路)에는 이미 감시하는 분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비록 적이 알고 있더라도 여기는 침범할 수 없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렇다면 방 시주께선 왜 혼자 이곳에 오셨소?"
"제가 그 후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쩐지 점점 불안해져서 아무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제가 경솔하여 여러 사람의 비웃음을 사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일시의 체면으로 두 분 어른께 만일의 일이 있으면 어쩔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달려와서 동정을 살피게 된 것입니다."
"방 시주의 말이 모두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 할지라도 이 늙은이는 그대로 믿고 싶지는 않소이다."
여러 번 변명하고 사실대로 설명해주어도 자기를 믿지 않자 그는 슬며시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합장하여 흔들면서 말했다.
"대사님께서 제 말을 믿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끝내 참지 못 하고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대사님, 이 세 채의 집을 모두 살펴보셨습니까?"
대우 대사는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
"방 시주께서 염려해 주신 덕택으로 이미 우리들이 다 조사해 보았소.
그러나 적의 그림자는 흔적도 없었소!"
방조남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한참 생각하더니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정말 잘못 본 것일까?"
대우 대사가 그 말을 받았다.
"방 시주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의심이 너무 많은지도 모르죠."
방조남은 돌연 얼굴을 똑바로 쳐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모든 사실이 아직도 눈에 역력합니다.
결코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우 대사는 귀찮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미 밤이 너무 늦었으니 방 시주는 빨리 돌아가서 쉬시는 것이 좋겠소. 무슨 할 말이 있으면 내일 하시죠."
잔소리 말고 어서 가라는 뜻이었다. 방조남은 더 서있을 용기가 없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방조남은 그 영리한 백원(白復)이 단정히 앉아서 숨져간 소나무 곁을 지나려고 할 때 돌연 나무 위에서 아주 가벼운 웃음소리가 '킥!' 하고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매우 이상하게도 마치 큰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막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방조남은 기분이 섬뜩해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백원은 여전히 나무가지 사이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위는 소나무가 무성한 어둠 속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우 대사는 방조남이 달려나가다가 그 백원이 숨어 앉아 있는 소나무 밑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지라, 어떤 불경스런 행동을 취하는 줄 알고서 화가 났다. 그래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 소나무는 폐사에서 기른 선원(仙復)이 좌화(坐化)한 곳이오,방 시주."
방조남은 대우 대사한테 연거퍼 조롱 비슷한 언사와 꾸중을 당하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나무 위에서 들려온 소리가 사람의 웃음소리인지 아닌지는 분별하지 못 했지만, 대우 대사의 조롱하는 듯한 언사에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여러분은 눈이 있으면서도 사람을 볼 줄 모르는 것이 탈입니다. 지금 강적이 이 소나무 위에 숨어서 우리들을 비웃고 있어요. 켓! 이 넓지도 못 한 소림사의 전당을 수많은 무예 고수(高手)들이 지키고 있으면서도 적이 잠입해서 나무 위에 숨어 있는 것 조차 모르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이때 이미 소나무 밑까지 달려온 대우 대사는 조롱과 분노로 가득찬 방조남의 말에 얼떨떨해서 되물었다.
"아니! 이 소나무 위에 적이 숨어 있다는 거요?"
사실 방조남은 확신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결과야 어찌되든 간에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저 무성한 소나무 속에 적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결코 믿을 수 없는데요."
대우 대사는 진기를 불러일으켜 재빨리 몸을 하늘로 솟구치더니 그 무성한 소나무 가지 쪽으로 향했다.
한편 방조남은 대우 대사가 곧장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그는 큰소리는 쳤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방금 내가 들은 소리가 웃음소리가 아니고, 또 이 소나무위에 적이 숨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면, 금지구역을 내가 함부로 범했다는 오해를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된다.)
이때 별안간 신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장 대우 대사의 몸이 갑자기 어떤 압력을 받고 내동댕이 쳐지듯 떨어져내렸다. 떨어지는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대우 대사는 몸을 가눌 재간과 기회를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방조남은 발에 힘을 주고 전광 석화 같이 날씬 동작으로 달려가서 떨어지는 대우 대사의 몸을 받았다. 그는 대우 대사의 몸을 부축하면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불었다.
"대사님, 그놈의 암수에 걸리신 게 아닙니까?"
대우 대사는 한숨을 내쉬고 가까스로 몸을 버터고 서더니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늙은이가 하마터면 방 시주에게 오해를 할 뻔했소. 이 소나무 위엔 확실히 강적이 숨어 있소. 소승은 돌발적인 적의 암수 일장(一掌)를 막지 못해 앞가슴에 한 대 맞았소, 얼결에 단전(丹田)에 진기를 집중시키지 못 하고 그만 툭 떨어지고 말았소."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찌푸리는 표정으로 보아 틀림없이 내상(內傷)을 입은 모양이었다.
방조남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사님, 몸을 좀 쉬십시오. 제가 한 번 올라가 보겠습니다."
"방 시주, 될 수 있는 한 소나무 위에선 적과 싸우지 마시오. 만일에 백원(白疲)의 시체라도 상하게 되면 큰일이니까?"
"예! 염려마십시오."
그는 지긋이 진기를 단전에 집중시키고 한 손을 앞가슴에 세워 경계하는 한편, 한 손으로는 적과 대결할 자세를 취하면서 훌쩍 몸을 솟구쳐 소나무 위로 뛰어 올라갔다.
몸이 막 소나무 위의 무성한 가지들에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 홀연 강렬하면서도 웅후(雄厚)한 잠력(潛力)이 소나무 가지 사이에서 밀어닥쳤다.
방조남은 준비태세를 갖추고 재빨리 한 손을 휘둘러 맹렬한 상대방의 일격을 맞받아쳤다.
그러나 그의 몸은 허공 중에 떠 있는 거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전력을 기울이며 계속 싸우기가 곤란했다. 상대방이 후려친 강력한 벽공장력(勞功掌力)에 방조남의 몸뚱이는 '휫!' 하고 일장(一丈) 가량 밖으로 날아갔으나 방조남은 자세를 가누어 땅 위에 우뚝 내려설 수 있었다.
대우 대사는 운기(運氣)로써 내상(內傷)을 고치면서 여전히 소나무 위를 주시하는 동시에 방조남의 거동을 살펴보고 있었다.
방조남의 몸이 공중에서 적의 일장을 받고 떨어지는 것을 보자 상처를 완치할 겨를도 없이 황망히 달려가서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방 시주, 어디 다치시지는 않았소?"
"아직 괜찮습니다. 저는 미리 경계하고 있었기 대문에 상처는 입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저보다 공력(功力)이 강한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허공 증에 떠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치는 못 했습니다만 가슴과 내장에 극렬한 진동을 느꼈습니다."
그는 일변 대우 대사에게 자기와 상대방의 충돌 경과를 말하면서도 두 눈은 여전히 소나무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그 동안에 적이 도망가버리게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우 대사는 방조남이 솔직하게 자기의 공력이 상대방의 공력에 미치지 못 한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태도에 호감을 느꼈다.
대우 대사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적은 미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신하고 있고, 우리는 댕그렇게 밝은 곳에서 노출되어 있으니 불리할 수밖에 없소. 이런 약점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지 무공이 약해서 손해를 본 것은 아니오.
이렇듯 철통 같은 우리의 엄중한 감시를 뚫고 이 금지구역에 잠입한 것을 보면 무예가 강할 뿐 아니라 출중한 지혜도 있는 자요. 좌우간 저놈을 그냥 둘 수는 없소이다."
"대사님은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대우 대사는 딱! 딱! 손뼉을 힘있게 세 번 쳤다. 그 소리가 어두운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울려 퍼지자, 갑자기 초가집 주위 잡초더미 속에서 십칠팔 명의 승려들이 '와아' 하고 일어섰다.
이 승려들은 모두 검은 승복을 걸쳤으며 손에 선장(禪杖)을 든자 혹은 어깨에 계도(戒刀)를 둘러멘 자 등 제각기 병장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복장이 검어서 얼핏 보아서는 알아보지 못할 복병(伏兵) 부대였다.
방조남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곳 주위에 이렇게 많은 고수들이 이미 매복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대우 대사가 적을 발견하고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태연하더라. 과연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구나.)
이때 대우 대사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들 일군(一群)의 승려들을 향해 명령했다.
"이 소나무 위에 지금 괴한이 숨어 있으니 너희들은 이 소나무 주위에 짝 깔려서 감시하라, 적이 달아나지 않는 한 너희들은 싸울 생각은 마라. 달아나지만 못 하게 막으면 된다. 자, 빨리 해산해서 감시하라."
승려들은 수상히 여기고 머리를 갸웃거렸으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각기 병장기를 손에 들고 두 명씩 일조(一組)가 되어 순식간에 그 소나무를 포위했다.
대우 대사는 신중을 기했다. 평생에 만나보지 못 한 강적인 만큼 어둠 속에서는 놓치기 쉽다고 생각한 나머지 곧 날이 밝아 오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리고는 암암리에 진기를 불러일으켜 운기(運氣)를 하면서 조식(調息)으로 몸에 받은 내상을 치료하는 한편 소림사의 다른 일류급 고수들이 달려오기만 기다렸다.
방조남은 처음에는 왜 소나무를 포위만 하고 공격하지 않는가 하고 이상히 생각했지만 곧 대우 대사의 작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사는 역시 신중하구나. 자기가 상처받은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는 건 부하들의 전의(戰意)를 잃지 않게 함이요, 경솔히 싸우지 못 하게 하기 위해서다. 다만 저 소나무를 완전히 포위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도망칠 생각을 못 하게 하는 작전이구나.
이제 적은 완전히 포위 당해서 시간이 지연될수록 점점 불리해질 뿐이다.
제 아무리 무예가 강하더라도 혼자서는 소림사의 전 고수들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 하게 될 거다. 그리고 일단 날이 밝은 뒤에 소림사 승려들의 공격이 개시되겠지. 이제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해볼까?)
그는 이런 혼자만의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얼마동안 서로 대치한 채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때 갑자기 또 세 명의 검은 그림자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소림사의 장로들로 열두 사람의 대(大)자 항렬 중 세 사람이었다.
달려온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방조남이 잘 알고 있는 대도 대사였다. 다른 두 사람은 소림사 감원(監院)의 다섯 장로 중 대원(大元).대증(大證)의 두 고승이었다.
대우 대사는 그들에게 간단히 지금까지의 경과를 낮은 음성으로 들려주었다.
이때까지 소나무 위에 숨어 있는 자는 여전히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소나무 가지들만 흔들거릴 뿐 밤의 정적은 여전했다.
대원 대사가 갑자기 한 걸음 나서면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대우대사에게 제의했다.
"지금 우리 쪽 사람이 많으니 비록 소나무 위에 숨어 있는 자가 아무리 무예가 강하다 할지라도 결코 우리들의 포위 공격을 뚫지는 못 할 것입니다. 우선 그를 나무 위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들은 대우 대사가 돌연 손을 번쩍 들어서 내저으니 두알의 박달나무 염주가 번개 같이 소나무 위로 날아갔다. 그러나 소나무 잎들이 약간 바스락거릴 뿐 두 알의 염주는 바다에 던져진 돌맹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대방이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두 알의 박달나무 염주를 슬쩍 피하는 것을 본 대우 대사는 생각했다.
(저 자가 위장을 하고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분명히 오래 전부터 이곳으로 통하는 밀로(密路)를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엄중한 감시망도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자다.)
"만일 소형의 생각대로라면 저 자는 아마 솔잎 빛과 똑 같은 녹색의 옷을 입고 나무 위에 숨어 있을 게요. 게다가 이 깊고 어둔 밤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있으니 발견하지 못 할 수밖에......."
그는 소나무 위에 숨어 있는 자가 들으라는 듯 일부러 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러나 다음에는 아주 음성을 낮추어서 말했다.
"세 분 사제들, 가만히 대기하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거든 도망치지 못 하게 막으시오."
대도 대사는 대우 대사가 염주를 던지는 수법을 써서 나무 위에 숨어 있는 적으로 하여금 내려오게 하려는 것을 알았다.
"사형."
대도 대사가 부르자 대우 대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쉬......."
그리고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 한 알의 염주를 힘껏 던졌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음향과 함께 염주는 소나무 가지들 사이로 날아갔다. 이 바람에 부러진 가지와 함께 솔잎들이 우수수 땅 위에 떨어졌다.
대우 대사는 한 알의 염주를 던지고 나서 자세를 바로하고 상대방의 동정을 살피는 듯 잠시 사이를 뒀다가 또다시 한 알의 박달나무 염주를 힘차게 던졌다.
어느덧 이미 어두운 밤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고 동녘 하늘이 점차 밝아오기 시작하며 얼마 안 있으면 날이 환해질 시각이었다.
그러나 소나무 위에 은신하고 있는 자는 여전히 끄덕도 하지 않았다.
방조남은 이 심상치 않은 동정에 큰 의혹을 느꼈다.
이때였다. 돌연 중간 채 초가집에서 대갈(大囑)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화살처럼 날씬 속도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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