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
반골(反骨)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뼈가 거꾸로 된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어떤 의미로 쓰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세상의 순리나 명령 혹은 권력 따위를 순순히 좇지 않고 저항하는 기질 또는 그런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할 때 독선적이거나 고집이 지나치게 센 상태보다는 권력이나 명령에 반항한다는 의미를 뜻했다. 한편 옛날엔 주로 역적을 지칭했었다. 하지만 최근으로 오면서 부정한 권력이나 힘에 단호하게 저항하거나 불복종을 함축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아울러 부당한 억압이나 힘에 대항하는 투사 냄새를 풍기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이 성어의 진면목과 만남이다.
실제로 반골이라 함은 어떤 뼈의 상태를 두고 이른 말일까. 일반적으로 ‘목덜미의 돌출된 목뼈 즉 튀어나온 경추(頸椎)를 반골(反骨)’이라고 한다는 얘기다. 우리가 목 뒤 부분에 손을 대보면 경추 중에서 한 마디 혹은 특이한 경우는 두 마디가 공룡의 등뼈나 낙타처럼 툭 튀어 나와 있다. 이처럼 돌출된 상태가 유독심해 기형적으로 보이는 경우를 지칭하는 모양이다.
유래는 제갈량(諸葛亮)이 위연(魏延)을 보는 순간 ‘반골의 상(相)’이라고 판단하여 당장 참수(斬首)하라고 했던 명령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다. 한편 이 내용을 전하고 있는 출전(出典)은 중국 원(元)나라의 작가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장편 역사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다. 동의어로 반골(叛骨)이 있고, 유의어로 유아독존(唯我獨尊), 벽창우(碧昌牛)가 있다. 아울러 반골에 관련된 위연과 제갈량에 대한 일화는 진(晉)나라 때에 진수(陳壽)가 지은 위(魏)• 오(吳) • 촉(蜀) 등 삼국(三國)의 정사(正史)를 기록하고 있는 삼국지(三國志)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삼국지연의에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적으로 삽입한 이유는 제갈량의 선견지명 능력을 한껏 높여서 소설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추가적 설정이 아니었을까. 출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반골에 얽힌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으로 실체에 다가간다.
제갈량이 처음 위연을 만나던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아마도 관운장(關雲長)이 위연을 데리고 와서 소개하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 그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제갈량이 망나니(刀斧手)들에게 그를 끌어내다 당장 참수하라고 큰 소리로 명(喝令)했다. 옆에서 그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현덕(玄德) 즉 유비(劉備)가 “위연은 공(功)이 있고 죄가 없는데 군사(軍師)께서는 무슨 연유로 그를 참수하라고 명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제갈량이 그의 죄목을 낱낱이 직간(直諫)했다.
/ ...... / 그는 녹봉(祿俸)을 받는 처지에 자기 주인(長沙太守 韓玄)을 해(害)했으니(食其祿而殺其主 : 식기녹이살기주) / 이는 불충입니다(是不忠也 : 시불충야) / (또한) 자기가 사는 땅을 들어 바쳤으니 (이는) 불의입니다(居其土而獻其也 : 거기토이헌기야) / (게다가) 이제 보니 위연의 뒷덜미에는 반골(反骨)이 있기 때문에(吾觀魏延腦後有反骨 : 오관위연뇌후유반골) / 미래에 반드시 배반할 것으로 예견됩니다(久後必反 : 구후필반) / 이 같은 이유에서 화근(禍根)을 뿌리 뽑기 위해 그를 참하려는 것이옵니다(故先斬之以絶禍根 : 고선참지이절화근) / ....... /
이 내용에서 ‘반골’이 비롯되었다. 한편 제갈량의 말을 듣고 “그를 참한다면 앞으로 항복할 사람들도 위협을 느껴 마음을 결정하지 못할 개연성이 다분하니 군사께서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는 현덕의 적극적인 만류 덕에 위연은 위기를 면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뒤에 그는 한중태수(韓中太守)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 당시 촉나라에서는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趙雲), 마초(馬超), 황충(黃忠) 등의 오호장군(五虎將軍)이 이미 세상을 떠난 뒤의 일로서 유능한 장수가 거의 없어 묘한 성격 소유자로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고갈 수밖에 달리 묘책이 없는 난처한 상황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유비도 제갈량도 저승으로 떠난 뒤의 일로 알려졌다. 어느 날 밤 위연이 자기 머리에 뿔이 두 개가 거꾸로 나있는 이상한 꿈을 꿨다. 이튿날 역술가(易術家) 조직(趙直)을 초빙해 꿈 해몽을 부탁했다. 한마디로 요약해 “뱀이 용으로 변해 승천하는 길몽 중에 길몽이라”는 말을 하늘같이 믿고 위연은 무모하게 반란을 일으켰다. 지난날 제갈량이 살아 있을 때 위연의 반란을 예상하고 몰래 마련해 두었던 대비책에 걸려들어 유비의 충직한 부하였던 마대(馬岱)에게 체포되어 삼족(三族)이 멸하는 화를 당했다. 결국 그의 꿈에서 현몽했던 ‘뿔(角)’은 ‘칼(刀)을 쓴다(用)’는 의미로서 악몽이었던 셈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와 같은 내용은 삼국지연의에서 추가된 내용으로 정사(正史)를 기록한 삼국지에서는 그의 반골 얘기가 전혀 없다고 한다. 한편 삼국지 정사에는 그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전쟁을 하겠다며 자기 휘하의 군사를 기분 나는 대로 동원해 내분을 일으킨 죄로 참수 당했다고 알려졌다.
신념이나 가치관에 반하는 부당한 권력이나 명령에 직면하면 묵과할 수 없어 반골기질이 생기게 마련이리라. 특히 이를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처지에선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중인격의 모습을 띄게 마련이다. 여기에 다양한 불이익이나 위해가 따를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경우 저항운동처럼 익명으로 변장하거나 온라인으로 잠적한다. 이들 부류는 반골이라기보다는 불의에 맞서 항거한다고 인식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 바로 이런 경우가 불의에 굽히지 않는 투사 비슷하게 인식되기 마련인 반골의 긍정적인 사례이지 싶다.
그러므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불의가 부정에 타협하거나 굴하지 않는 원칙주의 저항정신이 때로는 나라가 지탱되고 유지 발전해 나갈 희망의 등불이며 향도(嚮導)가 되기도 한다. 결국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반골이 깨어있는 지성을 긍정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자리 잡게 된 게 아닐까?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첫댓글 선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반골 어려운 뜻을 교수님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에 늘 감동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