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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고 23회 동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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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회원자유게시판 나의 살던 고향은
카페지기 추천 0 조회 351 11.12.29 10:46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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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2.29 11:05

    첫댓글 차원은 다르지만 나도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네
    자네는 고향으로 가서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시게. 아니면 가까운 곳에 그렇게 꾸미고 살던지...
    그러면 친구들과 운동도 하고 가까운 산에도 오르면서 반주로 한 잔 나누며 사는 게 어떤가?
    물론 자네한테 어울리는 좋은 일도 찾아서 해야겠지.....

  • 11.12.29 12:00

    자네 글 읽으니 내 어린 시절도 절로 떠오른다.
    난 면소재지 국민학교 다녔는데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안동댐 막으면 수몰된다고 모든 지원이 끊어진 상태였다.
    아마 나도 안동중학교에 턱걸이로 붙었을 것 같다.

  • 11.12.29 12:08

    그때 체력시험에 턱걸이도 있었으니 턱걸이로 붙을 수 밖에. ㅎ

  • 11.12.29 12:49

    동심에서 바라본 세게는 누구나 다 같은 모양이다. 꼬꼬마가 바라본 국민학교는 얼마나 컸던지. 오직 단맛으로만 만들어진 과자류도 ( 기름이 귀했으니) 잊지못하고.... 길목을 지키는 불량청소년(? 산적 ㅋ)는 어디든 있었는구나.

  • 11.12.29 12:54

    만으로 열두세살짜리 어린애가 스스로 밥하고 청소 빨래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하고 해서 고등학교를 진학한 것을 보면 대단하지.아마도 자네키가 작은 것은 후천적으로 사춘기 폭풍성장시기에 배를 곯아서 그런가 보다. 우리 시내애들은 시외애들에 비하면 너무도 수월하게 공부를 한 것이니 심히 부끄럽다.

  • 11.12.29 13:00

    고등을 가서도 우리 시내애들은 오직 책만 보면 되는데 그것마져도 하가 싫어 했고 결과도 별 볼일이 없으니 이제 너희들 생각하니 .... 심히 부끄럽고 후회가 된다. 객지에 홀로 유학온 우리 동기들 ,주위의 온갖 유혹도 ,삶도 불편했을 텐데 공부한다고 고생이 많았다. 내가 자네들 처지 였다면 아마도 지금쯤 건달이 되었지 싶다!!!

  • 11.12.30 10:39

    전기 안 들오니 촛불 켜고 수험공부했는데 이마져도 해가 완전히 떨어지면 불가능햇다.
    개울 몇 번 건너고 산길로 10리 이상 걸어서 집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나이에는 무척 긴 통학거리였다. 그러나 역경을 이겨내는 훈련이 된 점도 잇을 것 같다.
    올빼미, 부엉이나 산짐승 소리가 왜 그리 무섭던지.

  • 12.01.02 10:32

    그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아이들한테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하겟지.

  • 11.12.29 15:38

    자네 부모님은 아들 3명이 고시 합격의 영광을 얻었으니 참으로 자식키운 보람과 시골 고향마을의 주민들로 부터 얼마나
    부러움을 받으면서 살았을까 생각해 보았단다 ,나같은 경우는 크게 어려움없이 시내에서 살면서 말이야 자네 글보다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구나 (대전 대식 )

  • 12.01.02 10:35

    이 글 중 "풍산들 추억"은 옛날에 써 놓은 것이고, 나머지를 보충하여 대구 매일 신문에서 매주 토요일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제목으로 릴레이 연재되는 1면 전체 기사가 있는데, 거기에 투고한 거다. 아마 몇 주 뒤에는 게재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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