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나선 산책
주중 수요일은 팔월이 가는 마지막 날로 한밤중 잠을 깨 이하준의 ‘고전으로 철학하기’를 펼쳐 읽었다. 책 중간 부분에 저자는 우리나라를 ‘지식인이 사라진 사회’라고 진단하고 지식인에게 여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더랬다. 그 가운데 두 번째가 시민의 교양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해 공감이 갔다. 그 밖에도 현실 정치나 노동 계급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얘기를 바꾸어 우리 지역은 지난겨울 혹심하던 가뭄이 봄까지 지속되다 장마철에도 비가 귀하더니 가을 들머리는 비가 잦은 편이다. 다음 주중에는 예상 진로가 우리나라일 수 있는 강력한 태풍이 오키나와 근역에 머물고 있단다. 일일 예보는 낮에 한두 차례 강수가 예보되어 반나절이든 한나절이든 산행이나 산책은 어려울 듯해 아침밥을 일찍 들고 서너 시간 걸릴 산책을 나섰다.
비가 그쳐야 가을 푸성귀 씨앗을 심어둔 텃밭으로 나가 싹이 튼 이후 생육 과정을 살필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할 형편이다. 싹이 튼 무와 배추의 여린 잎줄기에는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붙기 일쑤였다. 파종 전후 벌레가 달라붙지 못하도록 가루약을 흩어주었는데 약발을 제대로 받았는지가 궁금하다. 텃밭 걸음은 오늘 중 비가 그쳐주면 날이 바뀐 이튿날 틈을 내서 나가 볼 참이다.
텃밭 행차가 아닌 순수 산책을 위해 날이 덜 밝아온 새벽 다섯 시 우산을 손에 들고 현관을 나섰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로 나가니 가로등 불빛만 밝았고 오가는 차량은 드물었다. 퇴촌교로 나가니 자투리공원 체육시설에는 인근 주택지 노인 몇이 몸을 단련하고 있었다. 노변의 풀숲에는 밤을 새워 울어대는 귀뚜라미와 여명의 풀벌레 소리가 겹쳤다.
보안등이 켜진 수변 산책로에서 창원천 산책로로 내려섰더니 밤새 내린 비에 냇물은 조금 불어나 흘러갔다. 어둠 속에도 천변 건너편 가로등 불빛으로 산책로 길섶의 수크령이 내민 이삭은 실루엣이 되어 눈길을 끌어 유심히 살펴봤다. 창원천 건너편 창이대로에는 가로등 불빛이 훤했지만 날이 덜 밝아온 때라 차량은 한산했다. 천변에는 새벽 산책을 나온 이들이 더러 스쳐 지났다.
창원천 1교를 지날 때도 아직 다리 밑은 어두컴컴했는데 먹잇감을 찾으려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다 지친 왜가리 한 마리가 더 참지 못하고 긴 목을 휘저으면서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봤다. 왜가리가 지키는 교각 밑을 지나니 천변은 하천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산책로 길섶에 무성하던 풀을 잘라 놓았다. 아마도 이 작업은 창원천 전 구간에 걸쳐 며칠 시차로 모두 이루어지지 싶었다.
지귀상가가 가까워진 창원천 2교에 이르니 성근 빗방울이 들어 우산을 펼쳐 쓰고 걸었다. 내 말고 다른 산책객들도 우산을 쓰기고 하고 비를 그냥 맞기도 하면서 명곡 교차로의 창원천 1교를 지나갔다. 천변에는 당국에서 심어둔 코스모스가 너무 빼곡하게 자라 적게 내린 비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갔다. 잡초에 치인 밀식도 문제였지만 비료를 너무 많이 주어 웃자라 그랬다.
천변을 따라가던 산책객들은 창원대로와 겹친 용원지하차도에서 모두 되돌아오고 나는 현대로탬의 이면도로 보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회사원들이 출근하는 시간대라 승용차와 통근버스들이 같은 방향으로 들어섰다. 창원천에서 가장 하류에 놓인 덕정교를 지나 남천과 합류하는 봉암갯벌까지 진출했다. 썰물로 바닥을 드러낸 갯벌이 밀물로 채워지는 물때에 비안개까지 운치를 더했다.
두물머리에 해당하는 분기점에서 비가 계속 내려 단축 코스로 남천을 거슬러 올라갔다. 삼동교에 이르니 회사원들의 출근 차량이 혼잡스러운 시간대였다. 삼동교차로에서 충혼탑 사거리로 가니 교육단지 들머리는 등교하는 학생들이 더러 보였다. 종합운동장 만남의 광장에 이르니 비가 더 세차게 내려 정자 쉼터에 앉아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원이대로를 건너니 반송시장이었다. 22.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