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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가을이 머무는 풍경 원문링크 : http://blog.chosun.com/nolboo54/5128785
76.8.18 북괴의 도끼 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북한은 휴전선 비무장지대 판문점에서 미류나무 절단중이던
미군중위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카투사 4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도끼만행사건을 저지른다.
이를 보고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내 군화와 철모를 당장 가져오라"며
당장이라도 야전사령관으로 직접 전방에 뛰어들 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원색적인 담화가 발표됨과 동시에
한국군 전방 전사단은 휴전선으로 집결하였고
휴전선 일대 전차행렬은 만리장성을 방불케 하였다.
한국군 64명의 특전사 장병들이 M16소총, 수류탄, 크레모아 등으로
무장하고 투입되어 공동경비구역안의 북한군 제5·6·7·8 초소를 파괴하였다.
미국 본토에서 핵탑재가 가능한 F111전투기 20대가 이동하여 왔고,
괌에서는 B52 폭격기 3대, 오키나와 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한 F4 24대가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였다.
또한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 미드웨이가
순양함 등의 중무장한 호위함 5척을 거느리고
동해를 북상하여 북한 해역으로 이동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군의 전차부대가 남진할 경우
이에 대한 전술핵의 사용을 고려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
휴전선 돌파 예정시간을 불과 수시간 앞두고,
김일성은 도끼만행사건에 대해 한국과 미국에 사죄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8 ·18 판문점도끼만행사건 개요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
언제 : 1976년 8월 18일
어디서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
누가 : 북한군
무엇을 :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
어떻게 : 도끼로 살해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11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국제연합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한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지휘 ·경호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 장교 2명과 수십 명의 사병이 나타나 작업중지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국측 경비병이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자
갑자기 수십 명의 북한군 사병들이 트럭을 타고 달려와서
도끼와 몽둥이 등을 휘두르며 폭행,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는 중 ·경상을 입힌 뒤 사라졌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데프콘 3호’(경계상태 돌입)를 발령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미군은 F-4 전폭기 1개 대대와 F-111 전폭기 1개 대대를 한국에 증파하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한국해역으로 항진시켰으며,
B-52 폭격기를 출동시키는 등 전쟁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국제연합군측에 전달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9월부터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남과 북의 분할경비로 되었다.
- 이상 자료는 폴아빠님 댁에서 뚱쳐 옴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도발에는 반드시 큰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당내 이공계 의원들과의 오찬회동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에 북한이 우리 국민과 영토에 직접적으로 포격을 한 것은
명백한 도발 행위이고 선전 포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의 도발 의도를 묻는 질문에는
“우리 국민과 영토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무차별 포격을 당했고
많은 사상자가 나오기도 하고, 재산 피해도 입고 침범 당한 상황에서
의도가 어떻든 간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며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합참에서 포격에 대해 교전 수칙에 따라서
대응했다고 발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교전 수칙에 따라서 '대응을 했냐 안했냐’가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합참에서는 분명히 교전 수칙에 따라서 교전했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그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응 조치를 묻는 질문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는 외교적 군사적, 모든 수단이 다 있다”며
“또 그런 징후가 보인다면, 더 철저하게 응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던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되는 데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있어 가능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영국의 육군은 국왕 근위대를 빼면 아무 것도 없었고,
해군 역시 남의 배를 털던 해적을 빼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판에 당시 세계 최강의 무적함대(아르마다)를 자랑하던
스페인 대사가 와서 영국을 위협했다.
사실 보통 국왕이었으면 스페인에게 굴복했을 것이다.
어쩌면 강대국 스페인에게 잠시라도 무릎을 꿇는 것이
당시 영국의 국력으로는 당연한 일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는 달랐다.
당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왕 드레이크를 해군 제독에 임명하고,
초강대국 스페인과 일전을 벌였다.
그 때 스페인 무적함대와 일전을 앞두고 있는 병사들 앞에
엘리자베스 1세는 갑옷을 입고 나서서 외쳤다.
"내가 연약한 여자의 몸을 가졌다는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심장과 위장은 영국 왕의 심장과 위장이다.”
이 전쟁에서 영국 해군은 세계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아르마다)를 괴멸시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승.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 때부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병역면제자들이 지하벙커에 숨어 '확전을 조심하라.'고
외치는 현실에서 국보법 수호나 세종시 정국에서
특유의 뚝심을 보여준 박근혜 대표와 엘리자베스 1세기 오버랩된다.
북한이 포탄을 퍼붓는 현실에서
국보법까지 없었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
병역 미필과 병역 기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다.
홍준표 의원 때문에 병역 기피자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유명세를 탔다.
솔직히 나 같으면 쪽 팔려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는데,
그는 버젓이 한나라당 대표 역할을 하고 있다.
친 이명박계의 지원없이 그가 한나라당의 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병역 기피는 국민의 기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다르다.
2006년 12월 박근혜 전 대표는 강원도 인제에 있는
3군단 소속 부대를 방문하여
"군대 안가려고 요리조리 요령 피우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것은
엄하게 법으로라도 뿌리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표가 현재의 대통령이었더라면
군 미필자, 군 기피자는 근처에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이든 다른 어느 나라든, 대통령이나 장관 등
사회지도층 인사의 도덕성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성은 특히 <국가에 대한 의무>를 말한다.
미국의 장관 내정자가 탈세를 했다거나 병역을 기피했다거나 할 경우,
거의 100% 검증과정에서 주저 앉는다.
미국의 고위 공직자가 <국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제로(0)에 가깝다.
초기 로마 시절, 포에니 전쟁 이 터졌을 때,
노블리스인 원로원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먼저 기부하려는 경쟁까지 일어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를 향해 달렸다.
이를 본 평민들도 앞 다투어 세금을 부담한 것은 물론이다.
귀족 노블리스들은 평민보다 먼저 전장으로 뛰어갔고
귀족 전사자 사망율은 평민들보다 훨씬 높았다.
귀족들은 돈으로 적당히 때우는 것이 아니라
피를 뿌리는 데도 앞장섰다.
옛날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명문 캠프리지와 옥스포드 출신 젊은이의
3분의 1이 1차 대전에서 목숨을 바쳤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는
여왕의 아들인 앤드류 왕자가 전투기를 몰고 참전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수 많은 병역 면제자들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병역 기피자 안상수는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어 있다.
이에 반해 2007년 4월 29일,
박근혜 전대표는 문수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울산비전포럼' 창립기념 학술대회에 참석,
"정치가 부패하지 않으면 나라가 깨끗해진다.
이제 우리도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였던 시절,
안상수 같은 사람은 박대표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를 인용해보자.
- As commander in chief, I will never hesitate to defend this nation,
but I will only send our troops into harm´s way with a clear mission
and a sacred commitment to give them the equipment they need in battle
and the care and benefits they deserve when they come home. -
- 군통수권자로서,
저는 이 나라를 수호하는 데 절대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명확한 사명과 신성한 책임감이 필요한 곳에만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무기를 제공할 것이고,
우리의 군대를 위험한 전쟁에 투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에게 필요한 보살핌과 혜택을 제공할 것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 위기상황 대처능력을 살펴 보자.
연평도에 적의 포격이 퍼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첫 일성은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였다.
이 보도를 접한 북한이 얼마나 비웃었겠으며,
우리 군은 얼마나 헷갈렸겠는가.
이게 우리에게 포탄을 쏟아붓고 있는 적을 향해 응사를 하라는 것인지,
그냥 얻어 터지고 있으라는 것인지...츠츠츠
당시 연평도 상공에는 우리 F-15K, F-16 전투기가 8대나 떠 있었다.
F-15K, F-16 전투기의 정밀조준 타격능력은 북한 해안벽의
토오치카 구멍 속을 타격하여 발사 중인 대포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우리를 공격하는 대포를 타격하여 없애버리면
이는 정당방위가 되어 확전은 고사하고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이발언으로
우리 군은 무기력에 빠졌고, 적의 사기는 충천해졌을 것이다.
박근혜 대표의 발언과 한 번 비교해 보자.
"북한이 우리 국민과 영토에 대해 직접적으로 무차별 포격을 한 것은
명백한 도발행위이자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부관이 "각하께서 서거하셨습니다."라고 박근혜에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때 당시 27세에 불과했던 박근혜의 첫 마디는
"아이고, 아버지..." 가 아니고, "전방은 괜찮습니까?"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 급박했던 순간에도
자기 아버님의 부음보다도 국가의 안위를 더 걱정했던 박근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위기상황 대처능력은
그의 잠재의식적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평도의 비극...
한국의 엘리자베스 1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청와대와 정부 내의 개자식들에게 한 말씀 드리겠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다음날인 24일,
한나라당 최고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해병대 출신(130기)의 6선 중진 홍사덕 의원이었다.
그는 “북한의 포격 직후 대통령이
‘확전하지 말고 상황을 잘 관리하라’고 말하게 만든 참모들은
반드시 해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이 29일 발매된 주간조선 최신호에
‘내가 대통령 참모들을
‘개자식’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는 글을 기고했다.
다음은 홍 의원이 기고한 글의 주요 내용.
나는 해병이다.
국회에 진출한 해병이다.
대한민국은 통일이 될 때까지가 건국기(建國期)라고 믿는
국회에 진출한 해병이다.
연평도 포격 소식은 지역구인 대구에서 받았다.
KBS가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설익은 뉴스라 주변 동지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일정을 취소한 채 곧바로 KTX를 탔다.
객실 천장에 매달린 액정화면에 대통령의 지시가 떴다.
“확전이 되지 않도록 상황을 잘 관리하라.”
믿을 수가 없어서 몇 군데 전화로 확인했다.
어금니를 물었다.
곧 전사 1명이라는 자막이 떴다.
그 이후 화면은 보지 않기로 했다.
연평도는 내 자식 놈이 복무했던 곳이다.
나는 130기이고, 아들은 702기다.
‘높은 놈’ 자식은 제일 힘든 곳에 보내는
해병대 전통에 따라 배치된 것이다.
당시 나는 3선 의원이었으니까 어김없이 ‘높은 놈’이었다.
집사람은 두 번 면회를 다녀왔다.
나도 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들도 원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곳 지휘관들에게
신경 쓰이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복무했던 곳에서 아들의 후배,
그리고 나의 후배가 전사한 것이다.
생각해봤다.
해병대는 절대로 공매를 맞지 않는다.
반드시 반격하고 반드시 몇 배로 갚는다.
그러나 확전되지 않도록 상황을 잘 관리하면서
어떻게 되갚는단 말인가
서울역에서 여의도 국회로 가면서 TV뉴스를 봤다.
대통령의 지시 내용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요컨대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을 피하라는 요지였다.
군대, 특히 해병대는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군통수권자의 명령은 더더구나다.
앞뒤가 뒤틀린 이 어려운 명령을 해병은 어떻게 수행했을까?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시작되었다.
모두들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나 낙차(落差).
그렇다, 낙차가 가슴 가득히 느껴졌다.
슬기로운 발언이 가끔 나올 때면 그 낙차는 견딜 수 없을만큼 커졌다.
정직하게 내 마음을 쏟아낼까.
참았다.
6선 의원은 의총에서 말하는 걸 참아야 한다는 전통 때문에서가 아니라
나의 분노가 해병이기 때문에 비롯된 게 아닌가를
묻고 묻고 되묻기 위해서 참았다.
식당 TV에 새로운 소식이 떠 있었다.
해병이 K9자주포 80여발로 반격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200여발을 맞고 80여발로 갚았다?
이건 해병대의 방식이 아니지 않은가.
갖고 있던 포탄이 그뿐이었을까?
200발 얻어맞고 80발을 쐈다면
해병대에게는 두 가지 이유밖에 없다.
80발이 가진 전부였거나 더 이상 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거나.
분노가 화산이 되었다.
금방 떡국이 체했다.
체한 떡국을 달래려고 활명수를 마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분노의 화산이 그대로임을 느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해병이 당했다.
군의 사기란 시소와 같은 법인데 누구도 이런 걱정을 안 한단 말인가.
의원총회 직전에 있는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입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단어를 골라봤다.
국회의원 하는 동안 야당 대변인만도 두 차례나 했지만
험한 말을 쓴 기억은 별로 없는 나다.
최고 수위의 발언이라야 5공 시절 ‘태어나서는 안 될 정권’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충격을 주기로 했다.
대통령 주변에서 대통령의 귀를 장악하고 있는
청와대와 정부 내의 인사들을 정조준해서 말하자.
손때 묻은 사람을 좀체로 바꾸지 않는 대통령의 성정에 비추어
이들을 뒤흔들지 않고는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 시절 해병대에서는 ‘개자식’이 최대의 모욕이었다.
그래서 상관이 아무리 화가 나도 이 말만은 쓰지 않았다.
그들이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내가 아는 최대의 모욕적인 호칭을 쓰자.
그날 회의에서 나는 정확하게 준비된 첫머리의 말을 뱉었다.
“북한 포격 직후 대통령으로 하여금 확전되지 않도록
상황을 잘 관리하라고 말씀하게 한
청와대와 정부 내 개자식들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다.”
이 글은 나에게 정면으로 욕 먹은 사람들이
꼭 읽어주기를 바라며 썼음을 덧붙인다.
※ 홍사덕 의원의 특별기고 전문(全文)은 주간조선 최신호(2133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첫댓글 아 !11!!!! 나의 조국 대한 민국 ~`~~~~영원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