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
라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봤을것이다. 나도 그랬고, 23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저 터무니
없는 말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잡고 뼈빠지게 노력하며 살아 왔더랜다. 남들다 질풍노도의 시기 청춘을
즐긴다며 돈 펑펑 쓰고여자 만나고 술퍼마시고 흥청망청 살때 나는 잘못하면 골로간다는 막노동판 모
래바닥에서 뒹굴고 구른다던지, 그 몸 이끌고 별의별 쌍욕을 듣거나 가끔 운이 나쁘면 안주로 쌈싸대
기 맞고 잘리는 나이트 웨이터 일을 한다던지 등등으로 천원 이천원 벌때마다 끼니 굶어가며 통장에
찔끔찔끔 넣었다.(그마저도 마이너스 통장 숫자 줄이는데 급급한거였다), 돈.돈.돈 거리며 태생부터
가 거지같던 인생을 남들의 두배로 열심히 일해가며 살아왔더니 그 노력한 만큼 살아온 내 인생에 주
어진 결과가
"암입니다"
랜다.
내가 잘못들었나 하고 몇시간전까진 공사판에서 구르고 와, 거치르고 메마른손을 한번 비비고는 새끼
손가락을 들어 혹시 귓구녕에 귓밥이 차서 그런건가 해서 귓구녕을 한번 파며
예?
하고 다시 묻자니,
"폐암 이십니다 , 여기보시면 여기 이 부근에 종양이 보이시죠? 검사결과 악성 종양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 입원 치료를 받으시면 완쾌 하실 가능성이 높구요."
의사가 집어주는 곳을 바라보니 그냥 눈이 하애지는게 암이랜다. 그것도 폐암. 그저 요즘들어 몸이 피
곤하고 감기증상도 있는거 같고 해서 혹여나 일에 지장이 갈까 하고 더 심해지기 전에 얼른 병원에 가
보자 하고 왔더니 내 폐에 악성 종양인가 뭔가가 있단다. 의사 말에는 입원치료 받으면 된다고 하는데,
말이쉽지.하루벌어 마이너스 통장 없애기에 바쁜내가 병원에 입원하며 치료받을 돈이 어디 있으랴, 의
사의 말에 조근조근 대답하며 예예 거리다 나중에 입원한다고 대충 얼버부리고 나오니 아침까지만 해
도 따숩기만 했던 봄바람이 뜨겁고 어지럽게 내 뱃속을 휘젓는것만 같다.
사람이란게 참으로 이상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강체 그 자체였는데 불과
삼십여분 전에 그 인상좋지만 딱딱하기만 했던 의사의 입에서 나온 '암'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배가
부글부글 끓는게 폐주위가 쑤셔오는거 같기도 하는데 그저 구역질이 꾸역꾸역 치미는걸 꿀떡대며 삼
켜댈 뿐이였다.
"…씨발."
인생참 파란만장하다 정재이. 병원구석 벤치에 다리모아 쭈그리고 앉아 실성한 사람마냥 실소가 피식
피식 삐져나오는게 눈은 시큰시큰 거린다. 가슴이 먹먹하고 꽉꽉 막히는게 지난 십수년의 일이 머릿속
을 기어나와 눈앞에 펼쳐지는게 기어코 13살 이후로 울지 않겠다 마음먹고 눈물한번 낸적없는 눈에서
후두둑 하고 실로 오랜만인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10년 꼬박 10년을 이러고 살았다.내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이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분식집에서 떡볶
이 사먹을때나는 그 떡볶이집 주방에서 설겆이를 했고, 좀더커서는 피씨방에서 천원 이천원 만원 펑
펑 쓰던 고딩들 돈 받아 피씨방 알바를 하며 돈을 벌었다.
지금 내나이 23살 나에게 부모님은 존재하지 않았다.한마디로 난 천애 고아였다. 내가 처음 부모가 없
다는걸 깨달은건 이제막 주위를 보기 시작할 나이인 8살때. 그리고 내가 8년을 살아온곳이 집이 아닌
고아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것도. 나중에 알고보니 탯줄도 채 잘리지 않은 아이가 그 고아원 앞에 버
려져 응애응애 울고 있는걸 고아원 원장이 데려다 키웠더래더라. 태생부터가 불행이였다 나는. 그리고
그 불행한 태생에 맞게 내인생도 불행했다.
나를 키운 그 고아원은 결코 좋은곳은 아니였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 곳은 고아원이라는 이름으로 법인신고를 해놓고 돈을 받아먹으며 아이들을 학
대하는 음지.그런곳이였다.그곳에서 나는 13년이라는 시간을 학대를 받아오며 살다 결국 그곳을 벗어
나 달음질 쳤다. 처음 그 노란페인트칠이 모두벗겨져 흉물스럽고 끽끽 소리를 대며 공포의 대상이 되
었던 녹슨 철문을 벗어나 바깟세상에 발을 딛는 순간 결심했다. 울지 않겠다고. 강하게 살겠다고 나버
린 엄마 아빠 찾아서 복수하겠다고, 보란듯이 떵떵거리며 날 버린걸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그렇게 10년을 남들 자는시간 일어나 신문돌리고 우유돌리고 곧바로 공사판에서 구르고 채 땀이 식기
도 전에 뻔지르르한 웨이터 옷을 입고 찌라 돌리고 지나가는 곱게 살아온 여자 어깨 부여잡고 불러모
으고 가끔 휴식시간에 잠깐잠깐 졸다가 깨어나 또 그일을 반복하고. 그렇게 정말 뼈빠지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 열세살에 큰다짐을한 내 생각과는 달리 세상이란게 참으로 무섭더라. 어째 일하면 일할수록
통장에 돈이 쌓이긴 커녕 물흐르듯 빠져나가고, 그러다 손댄일이 잘못되어 어마어마한 빛덩이가 되어
안겨져왔다.
그래도 노력하면 될줄 알았다. 언젠가는 통장에 마이너스가 사라지고 좋은 집 살며 옆구리에 여자끼
고 좋은차 타곤 보란듯이 나버린 엄마아빠 찾아 잘사는 모습 보여주게 될줄 알았다.하지만 오늘.그 힘
든 지난 세월동안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고자 끼니는 굶더라도 꼭 사먹었던 담배가 이렇게 암이되어 돌
아왔다. 그리고 그 '암'이라는 한 단어에 내꿈이 쪼개지고 쪼개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더이상 나는 좋은 집에 살수도, 좋은차를 탈수도, 하다못해 부모를 찾아 나 잘살아요. 조차도 할수 없
게 되었다.그래도 좀 좋은건 통장에 마이너스를 없애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더라. 어차피 그 마이너
스 없애기도 전에 지금 치료하면 나을수 있다던 암이 온몸에 퍼져 죽을테니깐.
"…좋다."
이미 어둑어둑해지다 못해 깜깜해진 밤하늘에 휘황찬란하게 수놓은 도시의 빛들이 눈앞을 아롱거렸고
밤이 되어 낮보다는 시원한 아니 그보단 조금은 차가운 강바람이 뺨을 스쳐왔다. 내려다보이는 푸르다
못해 검은 물결이 도시빛과 함께 초라한 나를 비추고 있었다. 이미 꽤 많은 양의 알콜을 섭취한 나는
술병에 있는 나머지 한모금의 술을 깔끔히 입안에 털어넣고는 날 비추는 강물 속을 빤히 내려다 보니
뱃속 아니 폐속에서부터 분노가 부글부글끓어 올랐다.
화가났다. 꼭 저 강물속의 초라한 내가 나를 비웃는것만 같아서 천애 병신이라고 욕하는 것만 같아서,
아니 어쩌면 근10년의 세월동안 이렇다할것도 저렇다 할것도 없고 이룬것도 하나없이 암이라는 별 시
답잖은 병이나 달고서는 초라하게 한강둔치서 술이나 쳐 마시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났을지도 모른다.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분노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빈병을 냅다 날 비추는 강물 속으로 집어 던져 버렸
다. 내 손에 의해 세차게 날아간 술병은 강물에 닿자마자 물결을 일렁이며 내모습을 싹 없애버렸다.
오늘 낮 의사에게 '암' 진단을 받고 벤치에서 질질 짜다가 소주 2병 사들고 겨우 온곳이 한강이였다.소
주 2병 사고나니깐 주머니엔 꼴랑 100원짜리 하나랑 50원짜리 하나가 짤랑짤랑 소리를 내더라.
하두울어 더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아 벌개진 눈으로 방금막 두병째 소주병을 강물에 집어 던진 지금 .
나에게 남은건 알콜에 의한 몽롱한 정신과 주머니에서 서로 부딪히며 작은 소리만 내는 150원 뿐이였
다.젠장 스럽게도 벌써 그 일렁이던 강물이 잠잠해지며 다시 내 모습을 비추었다. 피식- 하고 저도모
르게웃음이 새나왔다.
그냥 콱 빠져버릴까.
가만히 내려다보자면 확빠져 죽는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다. 어차피 쓰레기 인생 더 살아봤자 뭐하리
곧있음 죽을 인생인데.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어느새 다리가 올라가 난간에 걸쳐졌다.
보고싶었는데. 사실 그거 다뻥이였는데,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당신들 앞에 나타나 복수하겠다는
거 다 뻥이였는데, 사실은 돈많이 벌어서 당신들 찾고싶었는데 여태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했
던 부모라는 당신들을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였는데. 비록 당신들 만나 나 왜버렸냐고 울고 불고 쌩난
리를 칠지언정 다시만나 떨어질 생각은 안하고 같이 살생각을 했었는데 남들 다 가졌던 부모 나도 가
져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서 그렇게 이악물고 살아왔는데.
결국엔 더이상 나올것도 같지 않았던 눈물이 벌개져 거친 눈가를 촉촉히 젖히더라.
"거기서 빠져죽으면 민페야"
*
흠 읽기 힘드신가요 ? 이런식으로만 소설을 써와서 그런지 어떤식으로 고쳐야 읽기 편하실지 모르겠지네요 ㅠ
게다가 워낙에 독백이 많아서리… 그저 다 읽어주셨길 바랄뿐이죠 =]
첫댓글 불쌍해ㅜㅜ 폐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