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51장 (구 389장) / 고린도후서 10 : 1 - 11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5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후서 10장 1절 – 11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9.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아멘!
오늘 본문 전반부는 영적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통로, 즉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3절 - 5절 말씀에서 보면, 마귀가 우리를 유혹할 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는지, 어떠한 통로를 사용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생각입니다. 마귀는 생각을 통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서 마귀가 가룟 유다로 하여금 예수님을 팔도록 유혹할 때도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 이미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생각이라는 것이 마귀가 역사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23장 7절에서도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무슨 뜻입니까? 내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 속에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안목의 정욕을 넣어 줌으로 우리를 자신의 종으로 사로잡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들이 우리들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를 유혹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생각을 잘 다스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과거의 실수나 실패, 빗나간 계획, 이루지 못한 목표에 집착하도록 해서 우리로 하여금 늘 침울하고 기분 나빠진 상태가 되게 합니다. 그러니 앞을 향해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에서 자꾸만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애굽 땅에 있었더라면. 차라리 노예로 있을 것을.” 그들은 앞을 가로막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습니까? 푸념 섞인 말을 한 들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까? 과거의 실수나 실패, 빗나간 계획, 이루지 못한 목표에 집착한다고 해서 지금 나의 모습이 달라집니까? 많은 사람들이 과거가 우리의 미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과거가 아닌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이 순간 이후부터 어떻게 사느냐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연초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마음 먹습니다. 새벽제단도 쌓고, 성경도 꼬박꼬박 읽습니다. 그런데 차츰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흐지부지 됩니다. 새벽제단을 쌓는 날 수는 점점 짧아지고, 성경은 점점 읽기 싫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구약에서 시작하면 창세기, 출애굽기만 읽고, 신약에서 시작하면 복음서와 사도행전 정도까지만 읽다가 그만 둡니다. 또 다시 새해가 밝아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후회하면서 늘 같은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는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어!’ 이 말은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바울은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진보를 보이겠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지 말고 오늘 이 순간부터 새롭게 펼쳐질 미래를 기대하며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지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능력” 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단이 세워놓은 견고한 진을 부서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때, 우리를 지배하려는 사단의 모든 세력들과 모든 이론을 다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거나 납득이 갈만한 명령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축복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놋뱀을 보고 살았습니다. 놋뱀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그런데 놋뱀을 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까 살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느냐고 반박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십자가가 통로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요. 은혜의 통로요. 기적의 통로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확실한 은총의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깨닫고, 말씀에만 복종하십시오. 말씀에 복종할 때 사단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보일 삶의 자세는 순명 –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내가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순종하고 따를 뿐입니다. 복종을 온전히 이룸으로써 영적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더 큰 상급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실로 원합니다.
오늘 본문 7절 이후의 말씀은 바울에 대한 인신공격에 바울의 답변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바울의 답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외모를 보고 남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너희는 외모만 보는 도다!” 라고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의 외모만을 보고 흠을 잡았고, 부정하고 비난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 바울은 말이 시원치 않고 어눌하다는 것입니다. 글은 잘 쓰는데, 말을 잘 못했습니다. 발음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 갈라디아서 4장 13절 - 1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대적들은 바울의 이러한 것들을 악선전의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외모를 가지고 판단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무엇을 보신다고 하셨습니까?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외모를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속 중심을 봐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겸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 겸손해집니다. 사람이 거듭나게 되면 모든 사람이 다 존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라 바로 ‘저 형제와 자매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구나.’ 예수님의 피를 흘리신 저분을 볼 때 우리는 존귀하게 보아야 합니다. 은혜 받으면 다른 사람이 존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다 존귀하신 분들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위하여 피 흘리실 만큼 여러분들은 다 귀하고 존귀한 분임을 확신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파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주께서 주신 권세’ 라고 하는 말씀은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와 같은 교회에서 맡은 직분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직분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직분들입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파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건설적으로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외모를 보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겸비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파괴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