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먼저 사는 일
매진된 티켓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시차가 생긴 것뿐 어쩌면 여객기로 하루 거리에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줄곧 아버지는 나보다 딱 하루쯤 먼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잠시 눈감은 날부터 이번에는 내가 그보다 하루 먼저 살고 있다.
그가 쓰러져, 자신의 몸에서 긴 옷깃처럼 흩날리며 흐르던 한자락의 시간을 깔고 누워 있을 때
나는 그의 저녁을 차려놓고 먼저 내일로 넘어왔다.
내가 떠난 어제, 그는 일어나 주린 몸을 껴입고 밥을 먹었다.
곧 내가 그의 몸을 화장하러 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내 몸에서 갈라진 그의 체중을 빼내려고 오늘 식음을 전폐했다.
몇년 후, 어제에 내가 차려놓고 온 밥을 먹으며 그는 고독해서 잠시 울었다.
오늘 내 눈에서 그가 흘린 눈물이 흘러나온다.
나는 울지 않는다, 어쩌다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넘칠 때도 그건 내가 아닌 그들이 흘린 눈물이다.
내가 아는 모든 망자들보다 나는 하루 먼저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위해 내가 미리 차려놓아야 할 것들이 하루가 부족하도록 많다.
어제와 오늘이라는, 내 발에 너무 큰 한켤레의 운동화를
내 눈에서 길게 흘러내리는 누군가의 눈물로 벗겨지지 않게 꽉 비끄러매준다
어제와 오늘을 양발에 신고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백년보다 긴 하루를 걷는다.
어느날 나도 걷다 넘어지면 하루 만에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김중일 --.
■ 신동엽 50주년 기념『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주) 창비 수록
사진 : HJ fdcvb님의 작품
♬ 김영동 - 그리움
첫댓글 잘 머물렀다 갑니다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