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다양성 소고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 문제로 혼란을 겪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전에 따르면 ‘아들’의 참고어로 가돈(家豚), 가아(家兒), 미식(迷息), 우식(愚息), 천식(賤息), 미아(迷兒), 아들놈, 가견(家犬), 돈아(豚兒), 미돈(迷豚), 약식(弱息) 따위를 예시하고 있다. 한편 유의어로서 아자(兒子), 아이, 아들, 자식(子息)을 들고 있다. 아울러 높임말은 영랑(令郞), 영자(令子), 자사(子舍), 현식(賢息), 아드님, 영식(令息), 영윤(令胤), 윤군(允君), 자제(子弟), 윤옥(允玉) 등이 있단다. 이처럼 다양하게 나타냄으로써 어느 경우에 어떤 표현을 입에 올려야 하는지 마냥 헷갈린다. 이런 현상은 고사성어(故事成語)나 사자성어(四字成語)에서도 다를 바 없는 우리말 문화의 보편적 현상이 아닐까.
미녀의 호칭도 엇비슷한 표현이 다양하다.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가장 허풍쟁이는 아마도 당(唐)나라 태종이 아닐까. 아무리 아름다워 정신을 빼앗길 정도라도 양귀비(楊貴妃)를 ‘말을 알아 듣는 꽃’ 즉 해어화(解語花)*라고 일갈했던 주접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이라는 의미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미인’을 경국지색(傾國之色) • 경성지색(傾城之色)이라고 한다. 또한 ‘세상에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이 절세미인(絶世美人) • 절세가인(絶世佳人) • 절대가인(絶代佳人) • 절세미녀(絶世美女)이다. 한편 ‘세상에 드문 뛰어난 미인’을 천하일색(天下一色) • 천하절색(天下絶色) • 천하국색(天下國色)이라고 불린다. 그런가하면 ‘만고에 다시없을 미녀’를 만고절색(萬古絶色), ‘전설에서 달에 있는 궁에 산다는 궁녀’로서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를 비유적’으로 월궁항아(月宮姮娥)라고 한다. 또한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서 ‘얼굴이 무궁화(舜) 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으로 매우 아름다운 여인’을 안여순화(顔如舜華) • 안여순영(顔如舜英)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유미도안(柳眉桃顔), 무비일색(無比一色), 혜심환질(蕙心紈質), 일고경국(一顧傾國), 일고경성(一顧傾城), 설부화용(雪膚花容), 천향국색(天香國色), 홍분청아(紅粉靑蛾), 운빈화용(雲鬢花容), 미목여화(眉目如畵) 등등이 보였다.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여인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해 남긴 사자성어 몇몇이다. ‘꽃 같은 얼굴(花容)과 달 같은 자태(月態)’를 화용월태(花容月態), ‘붉은 입술(丹脣)과 하얀 이(晧齒)’를 단순호치(丹脣皓齒), 두보(杜甫)의 시에 나오는 내용으로 ‘밝은 눈동자(明眸)와 하얀 이(晧齒)’를 명모호치(明眸皓齒), 백거이(白居易)의 영산부에 나오는 문구로서 ‘검은 머리(綠鬢)와 불그레한 얼굴(紅顔)’을 녹빈홍안(綠鬢紅顔), ‘초승달 모양의 눈썹(曲眉)과 토실토실한 뺨(頰)이 곡미풍협(曲眉豐頰)이다.
글을 모르는 상태에 대한 표현이 의외로 많았다. ‘글자 한 자도 읽지 못함’을 일문부지(一文不知), ‘한 글자에도 통하지 않음’을 일문불통(一文不通),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일자무식(一字無識) • 일자불식(一字不識)이라고 했다. 한편 ‘전혀 학식이 없음’을 문맹불학(文盲不學), ‘어(魚)와 로(魯)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어로불변(魚魯不辨), ‘한자(漢字) 중에 쉬운 글자인 고무래 정(丁) 자도 알지 못함’ 즉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뜻으로 목불식정(目不識丁)이라고 했다. 또한 ‘여우(狐)를 가리켜 삵(狸)’이라고 할 만큼 ‘사람이 아주 무식함’을 이호위리(以狐爲狸)라고 칭했다.
어리석고 모자람에 대한 표현이 매몰찼다. ‘아는 게 없고 사리에 어두움’을 무지몽매(無知蒙昧), ‘어리석고 아는 게 없음’을 우매무지(愚昧無知), ‘누구도 따라 가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음’을 우불가급(遇不可及), ‘굼뜨고 어리석어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준준무식(蠢蠢無識), ‘콩인지 보리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즉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고 했다. 한편 ‘머리만 감추는 꿩’ 즉 ‘머리만 감추면 완벽하게 숨은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꿩(雉)을 비유해 이르는 말’인 장두치(藏頭雉), ‘시골뜨기 즉 견문이 좁은 시골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 전사한(田舍漢) 등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지나치게 궁지로 내 몰지 말라는 선문답 같은 몇 가지이다. ‘쥐(鼠)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猫)를 문다(囓)’고 하여 궁서설묘(窮鼠囓猫), ‘짐승(獸)도 궁지에 몰리면 사람을 문다(囓)’ 는 뜻이 수궁즉설(獸窮則囓)이다. 또한 ‘궁지에 몰리면 약한 물고기(魚)도 고래(鯨)에게 덤벼 문다’는 의미로 궁어이분경(窮魚餌奔鯨)이라고 했다. 그리고 ‘새(鳥)가 쫓기다가 도망갈 곳을 잃으면 상대방을 부리로 쫀다(啄)’는 의미의 조궁즉탁(鳥窮則啄), ‘새도 곤경에 빠지면 수레를 전복시킨다.’는 견지에서 금곤복거(禽困覆車)라고 한다. 이런 이치에 달통했던 선각자의 말씀이었을까. ‘물러나는 군사는 막지 말고, 궁한 도적은 뒤쫓지 말라’고 귀사물엄 궁구막추(歸師勿俺 窮寇莫追)라고 일깨우기도 했다.
국난이나 절체절명의 위기 때 훨씬 돋보이기 때문인지 충신에 대한 표현은 그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함’을 결사보국(決死報國), ‘개인의 이해를 돌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지조’를 비궁지절(匪窮之節),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를 지칭’할 때 고장지신(股掌之臣) 혹은 고굉지신(股肱之臣), ‘나라를 위해 충성스런 절개’인 위국충절(爲國忠節), ‘마음을 다하여 나라에 충성함’을 지칭하는 적심보국(赤心報國) 따위가 언뜻 떠오른다. 아울러 ‘충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 바치다’는 진충갈력(盡忠竭力),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돌보지 않고 애씀’을 간뇌도지(肝腦塗地),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춰서 호칭’하는 견마지로(犬馬之勞), 그 외에도 ‘충성스럽고 절의가 곧은 선비’를 충의지사(忠義之士), ‘충성스럽고 절의가 곧은 마음’인 충의지심(忠義之心) 등을 비롯해서 무궁무진했다.
예로부터 ‘적은 수효로 많은 수효에 대적하지 못함’을 뜻하는 중과부적(衆寡不敵)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런 연유에서 ‘제 역량은 생각하지 않고 강한 상대나 되지 않은 일에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거지를 비유적’으로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호칭한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이란격석(以卵擊石) 격으로 무모할 상황에서 기적적인 결과를 얻는 경우를 찬탄함이었을까? ‘거미(蛛)가 코끼리(象)를 삼킴(呑) 즉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김’을 뜻하는 주탄상(蛛呑象), ‘모기(蚊)와 등에(虻)가 소와 양을 쫓음 즉 약한 사람도 강한 사람을 물리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문맹주우양(蚊虻走牛羊), ‘미물인 모기(蚊)나 등에(虻)가 소 같은 큰 짐승을 도망가게 함 즉 작은 것이 큰 것을 제압함’을 이르는 문맹주우(蚊虻走牛) 등이 관심을 끌었다.
같은 대상에 대해 몇 가지에서 때로는 수십 가지로 나타내는 유사한 때문에 어안이 벙벙한 경우가 숱하다. 그들은 사용상에 미세한 차이가 명명백백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똑바로 꿰뚫을 혜안이 없어 유감이다. 그들을 정확하게 짚어낸다면 우리말을 좀 더 찰지고 윤택하게 부리는 맛과 멋을 한껏 누릴 수 있을 터인데 총명예지(聰明叡智)가 따르지 않아 무척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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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어화(解語花) : 당태종(唐太宗)이 표현했던 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 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뜻했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 연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조선시대에는 ‘기녀(妓女)’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소소한 일상을 말하다, 한국수필가연대 100인 대표수필선(제28집), 2024년 8월 12일
(2023년 7월 15일 토요일)
첫댓글 올리는 방을 옮겼습니다 교수님
귀한 글에 감동합니다._()_
교수님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