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김정식
철로 위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불빛이 들어온다
창문에 비친 초점 잃은 멍한 시선
종착지 없는 전광판 아래
죽은 꽃대 사이로 시들의 환영이 비친다
쪽방 구들장 위 단락되어 녹아 있는 전기장판
형광등 아래 쿨럭이는 기침
나지막한 천장을 쳐다보며
내 가난한 아버지를 생각한다
취업 준비생 책상 위 막혀있는 칸막이
창문 없는 독서실의 막막한 한숨
플랫폼을 서성이는
내 가난한 아들을 생각한다
지하역 찬바람 맥 풀린 찬술 한입 문
젖은 벽에서 새어 나오는 소주 냄새
거센 파도 몰아치는
내 가난한 노동자를 생각한다
발굽 닳은 신발을 보며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방황하는 비탈길, 부딪히는 비상문
내 가난한 그대 그림자를 생각한다
하루의 무게에 눈 뜨지 못하는 새벽 별과
허공의 문이 닫혀 비상할 수 없는 날개
삶은 희망의 책갈피를 넘기며
주검처럼 불빛 속에 호명되고
거문고 산조에 시린 가슴 어둠 속에 실려 와
감을 수 없는 뜬 눈 이의 밤,
쉼 없이 질주하는 철로 위
섬광이 투명 유리에 하얀 글씨를 써 가며
잃어버린 내 눈을 촉촉하게 밝혀준다.
-월간『우리詩』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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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시인
2020년 월간《우리詩》신인상으로 등단
제 20회 공무원문예대전 은상 외 다수 수상
시집 『먼 산』(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