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제부터 문지회 여름 방학이다.ㅎ
2022년07월22일(금)07:30분~
문지회7월답사: 충남 보령 가는 날.
어둠이 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이다.
더위에 지친 세상 모습들이 조금씩 어둠을 벗겨내고
촉촉히 젖은 은유의 하루와 마주한다.
잿빛 하늘과 상큼한 공기가 상쾌했다.
언제나 그랫듯 내가 사는 동네는 횡단보도 두개를 건너야 버스
도착 정보와 마주하게 된다.
서둘렀는데도 버스 정류장 전광판엔 9분 전이다.휴
지하철도 지상철도 없는 동네!!
늘 바쁘게 서둘러도 기다리거나 달려야 할때가 많았 음에도
난 오래도록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버티고 살아야 했다. ㅎ
6차선 넓은 도로가 어느새 질주하는 차량들로 채워
질때 쯤 버스에 탑승을 하고 겨우 오늘 하루 일정을
만들어 줄 문지회가 예약한 관광버스에 탑승 할 수 있었다.
7월 답사 신청 회원 81명 버스 두대 출발이란다.
답사 일정 준비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이 애써고 수고
하셨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충남보령 목적지 까지 3시간 반이 소요된다고 한다.
더디어 버스가 출발을 하고 신정남 사무처장님이
일정 안내와 문지회 서상수 회장님에 인사에 이어 오늘
답사지 보령 죽도 상화원과 국체 보상 운동을 주도 했던
서상돈과 김광제선생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
특히 오늘 답사지 중에는 김광제 선생의 고향이 충남 대전이
아니라 보령이란 사실과 우리 대구와 다르게 김광제선생을
충남 보령에선 국체보상 운동의 주역 독립지사로 김광제
동상 건립과 공원이 조성 되었고 기념비가 있다고 하셨다.
또한 보성 얼 찿기 역사 탐방 테마로 보령에선 국체 보상
운동의 중심 도시인 대구를 학생 단체 동아리인 대천고와
대천 여고에서 2015년에 이미 대구를 단체 방문 했었다고
한다.
문화재 활동을 하는 우리로선 놀랍고 반가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김광제는(1866년~1920년)충남 보령 웅천이 출생지 로
대구에서 1907년당시 김광제는 출판사인 광문사 사장이었다.
국체보상운동은 1907년(대한 제국 말기)나라빚(국체)
1천3백만원을 갚자고 일으킨 운동이었다.
당시 일본에 진 빚을 갚지 못하면 나라가 빼앗길 위기 에
처하게 된 나라를 구하자고 서상돈이 일으킨 최초의
국체보상 운동이었다.
거지와 서민 여성과 기생 고종 임금과 해외 동포에 이르기
까지 동참 남자들은 담배를 끊고 여성들은 비녀와 가락지등
십시일반 나라빚 천삼백만원을 갚자고 백성들 모두가
동참한 최초의 국체보상운동 이었다.
1910년 국권을 찬탈한 일본은 1945년 8.15 독립이
되는 순간까지 국권을 찬탈 하고 온갖 악행으로 우리
백성들의 정서를 말살시켰다.
국체 보상운동은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비록 성공하진
못 했지만 대구에서 발발한 이 운동은 IMF 위기 극복과
국권 회복의 효시가 되었던 것이다.
대구 국체보상 운동은 세계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 되었고 이 운동은 최초의 여성운동이기도 했다.
서상돈과 김광제 두분이 일으킨 국체 보상 운동을
인연으로 김광제 선생. 출생지인 보령과 대구 지킴이
회가 국체 보상 운동의 뜻을 공감하고 문화재를 중심
으로 서로를 교감하는 활동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답사를 통해 국체보상 운동을 일으킨 두분에 대해
특히 김광제 독립 지사에 활략상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오늘 보령에서 만난 임인식단장님으로 부터 보령과
대구가 함께 교류 활동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게
되었다는 것에 기대도 해 본다.
오늘 해설사는 이동수님 이셨다.
죽도 상화원: 죽도는 대나무가 무성 했던 섬이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서해안을 대표하는 대천 해수욕장과 무창포 해수욕
장의 중간 지점에 위치 육지와 제방으로 연결된 명품
섬이란다.
상화원은 해변과 연못 한국식 정원으로 꾸며진 2km
섬 한바퀴를 둘러볼 수 있는 개인 정원 이란다.
바닥을 데코로 깔아 지붕형 뚜껑이 덮힌 날씨 관계 없이
섬 전체를 둘러 볼수 있는 뚜껑(회랑)이 덮힌 이 시설은
세계 최고 라네요.
2016년에 개인이 만든 사설 정원이랍니다.
입장료를 받는 대신 떡과 맛있는 커피가 제공 됩니다.
중간 중간 연못과 연꽃이 있고 쉴수 있는 공간 마다
의자와 탁자 자연 그대로의 미를 살린 구조로 200년 된
고목도 있구요. 지루 할 틈이 없었답니다.
성주사지(址)
이종원 명예 회장님과 문지회 서상수회장님 두분이 성주
사지에 관해 설명을 해주셨기에 관심을 가지고 해설사님
까지 예약해서 해설을 듣고 사적 제307호로 지정 되었다는
백제시대 오합사란 옛 터를 둘러 봤습니다.
백제 법왕이 창건한 사찰로 백제 시대 전쟁으로
전사한 영웅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호국 사찰
이었던 오합사 성주사지에서 가장 도드라진 유적인 대낭혜화
상탑 비는 신라 최고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진성여왕의
명에 따라 무염이란 국사를 기리기 위해 쓴 비문으로 신라
석비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지금은 페허로 남은 1만여 평은 될듯 싶어 보이는
넓은 빈터 한쪽을 하얀 개망초 꽃이 2천명의 신도
들을 거느렸다는 백제시대 오합사의 건재했던 시절 무상한
세월의 흔적을 그려 보게 했답니다.
백제가 망한후 전쟁이 남긴 페허가 된 성주寺址. 거대한 옛
절터엔 애환을 품은 탑과 탑비만이 잡초만 무성 해진 넓은
들판을 공허한 바람의 몸짖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옛 전설을
전하고 싶은 듯 보였답니다.
무궁화 수목원과 천년 역사관도 둘러보았습니다.
아! 2021년11월13일(토)보령 천년사지 역사관에서
전국 문화재 지킴이 대회가 있었네요.
코로나 펜데믹 비대면 상황속에서 치룬 대회라 참석
못한 아쉬움을 다시 느껴보게 됩니다.
보령 문화재 답사를 위해 항상 애써시고 수고 하시는
서상수 회장님과 처장님 수석님과 답사 위원장님
그리고 이번에 해설을 맡아 차량 두대를 오가며
해설 잘 해 주신 이동수님 모두 모두 고생 하셨습니다.
화합과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배려의 따뜻한 정으로
하루의 일정을 즐거운 추억이 되게 함께 해주신 화.2팀과
문지회 회원님들께 감사의 마음 남김니다.
7~8월 방학 건강 하시고 좋은 일상 들로 모두가 행복
하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충남 보령에 김광제 선생 동상을 세워 국체보상 운동을
후세들에게 각인 시켜주고 있었네요.
국체보상 운동의 주역인 대구 서상돈과 보령 김광제 두분
애국 지사분들이 21세기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애국심 충전과 두 도시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로 앞으로
대구와 충남 보령이 문화재 활동에 교류 협조 할 일이 많아
지리란 기대를 해 보게 합니다.
보령 임인식 단장님이 동상 뒤에 서 계신줄 몰랐네요.
햇볕이 너무 강해서 사실 화면 위치 안보여서 대충 눌렀거든요.ㅎ
죄송 합니다.
첫댓글 이유정 부회장님 겉모습은 아주 가냘프고 불면 날아갈 듯 연약 해 보이지만 속은 강단이 대단하다고 늘 여겨집니다.
여독이 풀리기전에 답사지 곳 곳 마댜 많은 사진과 내용들을 올리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가요?
금방 보고는 머리속에서 사라지곤 잊어 버리는 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죄송하고 부끄렵습니다.
역사에 관한 지식과 뛰어나신 문장력 늘 존경의 대상입니다.
어느 곳을 답사 하든 부회장님의
수고에 감사 드립니다.
표현 조차 서툴려요.
여름 방학 편히 쉬는 나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팀장님은 문지회가 인정하는
분입니다.
특히 정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남 먼저 솔선하는 마음 누구도
못 따를 장점이 많으신 분입니다.
문화재에 관심과 열정도 남다르시고
듣고 본것 기억력 표현력 언젠가
청와대 다녀 오신 예기를 하실때
본것에 대한 표현력 말솜씨 저는
그렇게 못 옮겨요.
그리고 가족 여행 다녀오신 일
글도 재미있게 잘 써셨다고
기억 합니다.
김현수 팀장님 글 솜씨 역시 인정한지
오랩니다.
아무도 관심도 안가져 주는 제글에
우리 김현수 팀장님 만이
늘 가장 먼저 제 글을 평해
주시니 지치고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차츰 안정을 얻게 된답니다.
저도 사실 부족한 글 올려는 놓고
채울 수 없는 부족감을 느끼거던요.
도대체 왜 후회 할 이짖을 자처 하는지...ㅎ
누구도 글을 강요 한것도 아니건만
마지막이란 다짐을 늘 한답니다.
모르겠습니다.
팀장님께 인정 받는 느낌 위안이 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