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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스와니
♣2015년 7월 12일 성령강림 후 일곱 번째
성경 ; 삼하11:1-15, 엡3:14-21, 요6:1-21
제목 ;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그 끝을 알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얼마나 한없고 넓으며, 얼마나 깊고 높은가를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 사랑이 너무도 커서, 여러분은
그 끝을 볼 수도 없고 또 그 사랑을 다 헤아릴 수도 없음을 스
스로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엡3:18-19)’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직접 그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랑을 의지
하고 힘차게 살아갈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의지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
보다 더욱 풍성하게 베풀어주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생겨야, 그 사랑
에 의지해서 믿음이 쑥쑥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화
초를 기르면서 그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알게 되었습니다. 포
트에서 모종을 옮겨 심으면, 처음에는 몸살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뿌리가 완전히 땅에 내리게 되면, 그때부터 모종이
쑥쑥 자라서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여러
분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 토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기를 기도한다(엡3:17)’고 했습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무
슨 음식이든지, 그 맛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는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 맛을 알고 먹는 사람은 아주
부지런히 그리고 기분 좋게 먹습니다.
호남 분들 중에는 삭힌 홍어회를 즐겨 드시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탈북자 출신 강명도 교수가, 하루는 어떤 지인이 아주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삭힌 홍어회를
취급하는 음식점이었답니다. 처음 그 음식을 대했을 때, 그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그 음식냄새가
너무나 고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 주어서 못 먹
지, 삭힌 홍어회를 아주 즐겁게 잘 먹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아주 분명한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
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늘 그 사랑
에 감격하면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물론, 때때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만한 일이 생길 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는 경우도 없지 않
아 있습니다.
하지만,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린 초목은, 바람이 심하게 불
때에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기는 하지만, 뿌리 채 뽑히
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깊지 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바람이 심하게 불 때에 뿌리까지 뽑혀서 넘어질 염려가 많습니
다. 그런고로, 환난과 시련을 당하여 넘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프레드
릭 놀란’이라는 사람도 그 박해를 피해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를 붙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쫓겨서 도망을 가다
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붙잡혀서 죽을 게 틀림없는 상황이었습니
다. 그는 임박한 죽음을 생각하면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거미가 부지런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발
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이 안 지나서, 그 조그마한 거
미가 동굴 입구에다 아주 멋지게 거미줄을 쳐놓았던 것입니다.
드디어, 그를 잡고자 쫓아다니던 사람들이 동굴에 도착했습
니다. 그들은 ‘프레드릭 놀란’이 동굴에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입구에 쳐 있는 거미줄을
보고 ‘프레드릭 놀란’이 동굴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판단하게 되
었습니다. 거미줄이 뜯겨지지 않고 동굴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돌아가
고 말았던 것입니다.
죽을 고비에서 기적적으로 구출함을 받은 ‘프레드릭 놀란’은
동굴에서 나와 가지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가느다란 거미줄도 두터운 방벽이 되고,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는 아무리 두꺼운 방벽이라도 가느다란 거미줄보다 못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프레드릭 놀란’은 죽기 일보 직전에 살아
남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고서 이처럼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
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높은지 깨닫게 되기를 기도
한다(엡3:1)’고 하면서 ‘그 사랑이 얼마나 크던지, ‘우리는 그
끝을 볼 수도 없거니와, 또한 그 사랑을 다 헤아릴 수도 없다’
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그 사랑을 체험할 있어야 한다’
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도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 채워졌을 때, 하
나님은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
면,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
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을
뿐더러, 그 결과가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아주 풍성하게 나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실례(實例)가 바로 ‘오병이어(五餠二
魚)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소년이 가져온 물고기 두 마
리와 빵 다섯 덩어리를 가지고 기도하신 후,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더니, 오천 명
이 풍족하게 먹고도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했
습니다. 그것도 남자만 세어서 오천 명이라고 했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
는지 짐작할 수가 있을 겁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함께 하면, 이처럼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도 이러한 하
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신
앙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땅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좀 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우
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하지만, 육신적인 생각과 세상 욕심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아주 많이 체험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고자 3천명의 군사를 이
끌고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일개 목동에 불과했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영광까지
누릴 수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윗에게도 시험이 닥쳤습니다. 나라가 태평하
게 되자, 그만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고 말았던 것입니
다. 그 결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면서 낮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해마다 봄이 되면 왕도 참석해야
하는 전쟁을 하곤 했는데, 다윗은 그 전쟁에 나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낮잠만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전쟁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라도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럴만한 믿음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신앙
적으로 아주 많이 타락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하들이 전쟁터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인데도 불
구하고, 일국의 왕이 그처럼 태평스럽게 낮잠을 잘 수가 있었
겠나 싶습니다.
아무튼, 다윗은 아주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자
신을 왕위에 오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아주 크게 배신하
는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하의 아내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 악하고 더러운 죄를 감추고자, 정말 악
하고 비겁한 방법으로 충성스런 부하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저는 화초를 가꾸면서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고추와 꽃들만 키웠는데, 올해에는 오이도 몇 그
루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이나 고추 열매가 어쩐지 자
꾸만 꼬부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분이 말하기를 “모
든 작물은 물과 거름이 부족할 경우, 그 열매가 시원치 않게
맺힌다.”고 했습니다. “특히, 오이는 더더욱 물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을 열심히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심하게 꼬부라졌
던 오이가 조금은 반듯하게 되었습니다. 고추농사는 몇 해 동
안 계속 해왔기 때문에, 지난해까지의 고추열매와 서로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올해 고추들은 그동안의 고추와는 아
주 많이 다릅니다. 대부분, 곧고 예쁘게 맺히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제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모든 작물은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또한, 물이 충분해야 그 열매가 곧고 아름답게 잘 맺
힌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반대로, 물을 충분히 공급하
지 않을 경우, 그 열매가 병이 들거나 꼬부라지게 된다는 사실
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생명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
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할 경우, 자연히 그 심령은 메말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품도 사나와지고, 괜히 쓸데없
는 고집만 부리게 됩니다. 물이 부족하면 오이나 고추 열매가
꼬부라지듯이, 생수를 공급받지 못해서 그 심령이 메마르게 되
면 그 마음도 꼬부라지거나 병이 들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생수를 공급받지 못하면, 그
심령은 메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속히 생수를 공
급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심령이 메마른 사람
들은 대개 자신의 부족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그런
사람은 그 심령이 메말라서 그 영혼이 죽어가고 있어도, 정작
본인은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늘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함으로써, 그 심령이 메마를 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건강을 유지하게 되거니와, 그 행실이나 성
품이 온유합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게 되
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가르침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치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와 같아서,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새가 시들지 않는다.’고 했습니
다. 그리고 그 결과, ‘그가 하는 일마다 다 잘 된다.’는 것입니
다. 요컨대, 시편 1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열심히 듣고 실천하는 자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는 사
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 중의 하나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지 못
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시험에 들게 된 것도,
이스라엘 나라가 안정을 얻고 평화를 누리게 되자, 그만 영적
인 태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되었다.’고 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을, 다윗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여겨집
니다. 아무튼,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그 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육신의
욕망과 세상적인 욕심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시험
에 빠지게 된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지 않고, 자기
육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욕망
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 결과 엄청난 불행을 겪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그다지 큰 고민을 하지 않고
세상을 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선택의 결과
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처럼 무서운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될 줄 알
았으면, 그런 죄를 쉽게 짓지 않았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렇습니다. 일반적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일
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복이 되고 생명이 되는 길로 인도하여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군다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마땅
히 육신적인 생각이나 세상욕심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
르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2.우리는 자기 본분과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써 우리를 구원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11장을 보면, 다윗과 우리아가 서로 대조적인 모습
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다윗은 자기 본분을 잊어버리고 낮잠을 자다가 큰 죄를 짓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우리아는 끝까지
자기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지키려다가 안타깝게
도 다윗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전쟁터에서 우리아를 불러다
가 집에 가서 쉬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아는 집에 가
지 않고 왕궁 문간에서 문지기들과 밤을 새웠습니다. 다윗이
그 이유를 묻자, 우리아는 “동료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데, 어
떻게 저만 집에서 편히 쉴 수 있습니까?”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아의 이 대답은 너무나 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다
윗의 태도와 비교해볼 때, 우리아의 이런 모습은 더더욱 아름
답고 멋져 보이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주 훌륭한 군인의 모
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의 특별지시로, 모처럼 휴가를 왔으
면 집에 가서 편히 쉴 법도 합니다. 하지만, 투철한 군인정신으
로 무장한 우리아는 집에 가지 않고 왕궁문간에서 거친 잠을
잤던 것입니다. 다윗과는 사뭇 비교가 되는 모습입니다.
요즘 영화 ‘연평해전’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저께,
드디어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영화 내
용 중에서, 제가 보기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조타장 한상국
하사의 모습이 아닐까 쉽습니다.
그는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고 혼인신고만 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임신한 아내의 간절한 소망에 따라, 그는 육지근무를
신청하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중사 진급을
이틀 앞둔 상태에서 해전을 치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은 소극적으로 싸움에 임할 법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적의 총탄에 맞
아 크게 중상을 입게 되자, 아예 그의 손목을 배의 키에다가
묶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죽어가면서도 자기 자
리를 끝까지 지키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 바
람에, 그의 시신은 배가 침몰한 지 41일 만에 인양할 수가 있
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영화 ‘연평해전’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국토방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사시(有
事時)에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내놓고 싸울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상국 중사가 그랬던 것처
럼,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신의 본분과 사명을 열
심히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덧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
는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를 부지런히 공급받아서, 각자 자기위
치에서 자기 본분과 사명을 열심히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탓할 것도 없고, 그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
다. 정치인에 대해서 뭐라고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은 자기 자리
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
두,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더
욱 열심히 믿음생활에 매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는 바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