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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축반우(版築飯牛)
성을 쌓고 소를 먹이다는 뜻으로, 하찮은 일을 해도 능력과 인품을 갖추고 있으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版 : 판목 판(片/4)
築 : 쌓을 축(竹/10)
飯 : 밥 반(食/4)
牛 : 소 우(牛/0)
출전 :
사기(史記) 卷112 평진후주보(平津侯主父列傳)
한서(漢書) 卷058 공손홍열전(公孫弘列傳)
판자를 양쪽에 대고 그 사이에 흙을 넣어서 단단하게 다져 담이나 성벽 등을 쌓는 일과 소를 기르는 일로 즉, 하찮은 일을 뜻하는데, 하찮은 일을 해도 능력과 인품을 갖추고 있으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런 사람을 기용할 수 있는 지도자의 자질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반고(班固)의 글에서 연유하는데, 여기에서는 사기(史記) 卷112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의 내용을 옮긴다.
태사공은 말한다. 반고(班固)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식(卜式)은 목동 신분에서 기용되었고, 홍양(弘羊)은 장사치로 있을 때 발탁되었으며, 위청(衛青)은 종 신분에서 떨쳐 일어났고, 김일제(金日磾)는 항복한 흉노 속에서 나왔다. 이는 또한 옛날에 판으로 담이나 성을 쌓거나(版築) 소에게 꼴을 먹이던(飯牛) 무리 중에서 인재를 뽑은 것과 다름없다"
班固稱曰: 卜式試於芻牧, 弘羊擢於賈豎, 衛青奮於奴僕, 日磾出於降虜, 斯亦曩時版築飯牛之朋矣.
(史記/卷112 平津侯主父列傳)
卜式拔於芻牧, 弘羊擢於栗豎, 衛青奮於奴僕, 日磾出於降虜, 斯亦曩時版築飯牛之朋已.
(漢書/卷058 公孫弘卜式兒寬傳 寧戚)
판축(版築)은 중국 은(殷) 나라 정승 부열(傅說)이 젊었을 때 미천하여 성 쌓는 공사에 참여하였는데, 이 때 은나라 고종(高宗)이 성 쌓는 공사장에서 부열을 발견하고 발탁하여 정승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반우(飯牛)는 영척(寧戚)이 수레 밑에서 소여물을 먹이는 일을 했으나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그에게 나라의 중책에 발탁한 일화를 말한다.
⏹ 판축반우(版築飯牛)
노동은 덕의 원천이고 국부의 바탕이다. 이전부터 학자들이 노동에 대해서 잘 풀이했다. 당(唐)나라 중기의 선승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고 까지 하며 일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노동에는 땀을 흘려야 하는 일과 머리를 쓰는 일,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일을 해야 하는 감정노동까지 다양하게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이 모두 중요한데 편한 일만 찾으려는 사람들이 종종 욕되게 할 뿐이라고 그랜트 미 대통령이 말했다.
판자를 양쪽에 대고 그 사이에 흙을 넣어서 단단하게 다진 뒤 성벽이나 토담을 쌓는 일이 판축(版築)이다. 수레를 끌며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반우(飯牛)와 함께 힘든 일의 보기로 들었다.
사기(史記)의 평진후주보(平津侯主父) 열전에서다. 여기에서 힘들고 하찮은 일을 하다가 조정에 불려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예를 든다.
목동을 했던 복식(卜式), 장사를 했던 홍양(弘羊) 등을 거론한 뒤 설명한다. "이는 또한 옛날에 판으로 담이나 성을 쌓거나 소에게 꼴을 먹이던 무리 중에서 인재를 뽑은 것과 다름없다(斯亦曩時版築飯牛之朋矣)."
한서(漢書)의 공손홍(公孫弘) 열전에도 같은 내용으로 인용됐다. 여기서 담을 쌓던 사람은 은(殷)나라 노예 출신 부열(傅說)을 말한다.
당시의 고종(高宗)이 꿈에서 본 성인이라며 들판에서 발견하여 정승으로 발탁,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한다. 또 소여물 먹이던 영척(寧戚)은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수레를 끌어주며 살았는데 제(齊)의 환공(桓公)이 비범하다는 소문을 듣고 중책을 맡겼다.
고된 일을 하더라도 능력과 인품이 있다면 언제든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 성어가 사용됐다. 재능이 있으면서도 묻혀있는 인재를 능력 위주로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고 발탁할 수 있는 지도자의 안목을 말하기도 한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임인유현(任人唯賢) 즉 인품과 능력만을 믿고 사람을 등용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총선서 참패하고도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 교체가 고작이었다. 비서실장이 바뀌어도 국면이 전환된 인사라고 믿는 국민은 없었다.
대형 비리까지 터지고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며 야당뿐 아니라 여당서도 개각 필요성이 거론된 지 오래다. 어쨌든 이번 장관 교체에는 각 분야 인재를 발굴해 역량을 발휘토록 하는 것이 절실하다.
⏹ 인재 등용(用人)
존재집(存齋集; 조선 후기의 학자 위백규의 시문집)
제19권 잡저(雜著)
정현신보(政絃新譜)
문벌을 기준으로 벼슬을 주는 방법은 이미 선왕(先王)의 제도가 아닌데, 우리나라는 그 폐단이 더욱 심하다. 처음 벼슬할 적에 분관(分館)으로 이미 달라지니 그 벼슬길을 미루어 볼 수 있다.
문벌이 낮은 자는 이윤(伊尹)과 여상(呂商)이나 관중(管仲)과 악의(樂毅) 같은 뛰어난 재능을 지녔더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논하는 반열에는 오를 수 없다.
반면에 집안의 지위가 높은 자는 용렬한 재주를 지닌 어리석은 부류라도 번번이 삼정승의 지위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부귀한 집안의 자제는 어려서는 오만하고 게으름에 젖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더욱 경박해진다.
가볍고 따스한 의복이 몸에 편안한 줄만 알고 농사의 수고로움은 모르며, 보배로운 물건이 자신에게 이로운 줄만 알고 일반 백성의 원망과 탄식은 모른다.
기생에 둘러싸여 노래나 부르면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나랏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고대광실에서 지내면서 백성들의 매우 위급한 근심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들의 지위가 정승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행여 권력을 잃을까만 걱정하고, 인사권이 있는 관직을 맡게 되면 혹시 뇌물이 적지 않을까만 염려한다.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는 단지 다투고 반목하는 글만 일삼을 뿐이고, 청요직(淸要職)은 자기 집안을 위한 수단으로만 삼을 뿐이다.
흐르는 물과 노니는 용처럼 멋진 말과 수레를 타고 도성(都城)을 거침없이 달리니, 비녀와 인끈의 광채가 온 마을을 밝힌다.
그들의 몇 길이나 되는 고대광실과 호화스럽게 차린 진수성찬, 시첩(侍妾) 수백 명과 종자(從者) 수백 명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이라도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저들은 자신들 집에 본디 가지고 있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폐백을 올려 벼슬살이를 할 때에도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의리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의 집안에 대해 물어보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집안이라고 대답하고, 그들의 지위에 대해 물어보면 나라의 주춧돌 구실을 하는 신하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임금의 힘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는 격이니, 아, 통탄할 만한 일이다.
집안의 지위가 낮은 자들의 경우는 보잘것 없는 벼슬이나마 얻기를 바라고 얼마 되지 않는 녹봉을 아등바등 구하니, 재주가 있어도 써먹을 수 없고 계책이 있어도 펼칠 수 없다.
더러 특출하고 야무진 선비가 있을지라도 벌써 한 번 울다가 의장(儀狀)에서 쫓겨난 말의 신세가 되고 마니, 또한 장차 제 목숨을 구할 겨를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감히 나랏일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저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관리, 삼사(三司)의 관리, 팔도의 관찰사 등은 모두 근무 연한과 경력에 따라 임명된다.
그러므로 이조와 병조의 관리로 임명된 자들은 인척과 친구를 돕고 뇌물을 모으는 데 급급하다가 얼마 안 되어 관례에 따라 물러나게 되면, 이미 1품 대감으로 자처하며 삼정승 자리를 엿본다.
삼사의 관리로 임명된 자들은 서로 비방하고 빼앗으며 은혜와 원수를 갚는 데 급급하다가 얼마 안 되어 관례에 따라 물러나게 되면, 이미 승정원(承政院)과 홍문관 같은 청요직(淸要職) 후보로 자처하며 조정을 농락한다.
관찰사의 경우는 그 맡은 바가 무슨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단지 제 한 몸을 영광스럽게 하면서 집안의 재산을 늘리기에 아주 굉장히 좋은 자리일 뿐이다.
관찰사가 감영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돈과 곡식의 이자를 불리는 것뿐이다. 풍속을 살피고 정사를 베푸는 일은 애당초 마음을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끝내 버린다.
수령의 근무 성적을 평가할 때에 이르러서는, 더럽게 뇌물을 받거나 무능하고 가혹한 수령일지라도 그에 상관없이 첫째 인척, 둘째 친구, 셋째 뇌물, 넷째 문벌을 기준으로 그들이 맡고 있는 주(州), 부(府)는 성적을 모두 상상(上上)으로 매긴다.
단지 무관(武官)이나 집안이 한미한 자 몇 사람만 흔쾌히 하(下)로 매기면서 공정한 방법으로 평가하여야 함을 엄하게 보일 뿐이며, 애당초 정무(政務)의 잘잘못은 따지지도 않는다.
각 고을을 순찰할 때에 이르러서는 그저 장맛이 달거나 김치가 맛있는지만 보고서 무능하고 더러운 수령을 표창하고, 그저 기생이 아름답지 않거나 연회가 화려하지 않은 것만 보고서 어진 정사를 편 수령을 잘못했다고 책망한다.
농사의 어려움과 교화의 잘잘못은 등한히 하여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단지 큰 일산이 갖춰진 쌍가마를 타고서 저자의 아이들에게 훌륭한 남아의 풍채를 과시할 뿐이다.
순찰을 마치고 감영으로 돌아오면 돈이 또 수레에 가득 찬다. 얼마 안 되어 관례에 따라 물러나면 벌써 좋은 전장(田庄)을 몇 군데에 갖추게 되고, 품계도 1품(品)에 오른다.
암행어사(暗行御史)의 파견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고양이로 고양이를 지키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더 많은 고기를 잃게 되는 경우에 가깝지 않겠는가.
또한 과거로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은 이미 말단의 일이 되어 버렸다. 부귀한 집안의 자제들은 어리석고 배우지 못해 또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니, 마침내 천거하는 명목을 교묘하게 만들어 남행(南行 음관(蔭官))이라고 일컬으면서 고을의 수령을 두루 역임하게 하고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직에 임명하여 두루 시험하게 한다.
만일 그 사람이 참으로 현명하고 재주가 있다면 진실로 좋겠지만, 저 분 바르고 비단옷을 입은 어린애 같은 자들이 어찌 농부가 경작한 곡식으로 밥해 먹고 아낙네들이 짠 베로 옷 해 입는 사실을 알겠는가.
대체로 모든 폐단의 근원은 벌열(閥閱)이 대대로 관직을 장악한 데서 비롯되었다. 아, 판축(版築)의 일을 하는 사람이나 소를 먹이는 사람 중에서도 자연히 임금을 보좌할 수 있는 인재가 나왔지만, 나는 왕씨(王氏)와 사씨(謝氏)의 집안에서 사안(謝安)이나 왕도(王導) 같은 인물을 대대로 배출한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냈기에 아들 한창(韓昶)조차 또한 청환(淸宦)을 지낼 수 있었고, 아버지가 우의(牛醫)를 지냈기에 아들 황헌(黃憲)조차 오히려 명류(名流)에 끼지 못했으니, 어떻게 아홉 가지 덕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잘 섬기고 보좌하여 다스리는 덕화를 이루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 한무제(漢武帝)의 인재 등용
좋은 인재를 발탁(拔擢)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사기를 북돋우는 것이 모든 일을 잘 풀리게 하고, 그 조직이 번성하게 하는 기본이다. 고(故) 거산(巨山) 김영삼(金泳三) 제14대 대통령이 평소 강조했던 말이다.
漢書 公孫弘 卜式 兒寬傳
漢興六十餘載, 海內艾安, 府庫充實而, 四夷未賓, 制度多闕.
한 개국(기원전 202) 60여 년(載) 만에 천하는 안정되고 재정은 충실했으나, 사방의 이민족(四夷)들이 복종하지 않고, 제도가 많이 미비한 상태였다.
上方欲用文武, 求之如弗及.
한무제는 문인과 무사를 등용하려 했으나 다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始以蒲輪迎枚生, 見主父而歎息.
최초로 어진이를 태우는 수레인 포륜을 보내어 숨어살던 매생(枚生)을 맞이해 들였고, 주부(主父偃; 제나라 율사)를 보고는 그 훌륭함에 감탄하였다.
群士慕嚮 異人並(竝)出.
(그러자) 여러 선비들이 한무제의 도량을 사모하여 특이한 사람들이 아울러 나왔다.
卜式拔於芻牧, 弘羊擢於賈豎,
衛靑奮於奴僕, 日磾出於降虜.
복식은 목동인데 발탁했고, 상홍양은 장사꾼 가운데서 뽑아냈고, 위청은 종들 무리에서 뽑았고, 일선은 항복한 오랑캐 중에 나왔다.
斯亦曩時版築飯牛之明已.
이 역시 옛날 건축하던 부열(傅說)과 소 먹이던 영척(甯戚)을 등용하였던 사실과 같음이 분명하다.
漢之得人, 於茲爲盛.
한(漢) 왕조의 사람을 잘 골라낸 것은 여기에 가장 잘 나타난다.
儒雅則, 公孫弘, 董仲舒, 兒寬.
유아(儒雅)한 사람으로는 공손홍(公孫弘)과 동중서(董仲舒)와 아관(兒寬)을.
篤行則, 石建, 石慶.
근면 성실(篤行)으로는 석건(石建)과 석경(石慶)을.
質直則, 汲黯, 卜式.
바탕이 곧음(質直)으로는 급암(汲黯)과 복식(卜式)을.
推賢則, 韓安國, 鄭當時.
어진이(推賢)로는 한안국(韓安國)과 정당시(鄭當時)를.
定令則, 趙禹, 張湯.
정책 발령(定令)으로는 조우(趙禹)와 장탕(張湯)을.
文章則, 司馬遷, 相如,
문장(文章)으로는 사마천(司馬遷)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滑稽則, 東方朔, 枚皋.
익살(滑稽)로는 동방삭(東方朔)과 매고(枚皋)를.
應對則, 嚴助, 朱買臣.
응대(應對)로는 엄조(嚴助)와 주매신(朱買臣)을.
曆數則, 唐都, 洛下閎.
천문(曆數)으로는 당도(唐都)와 낙하굉(洛下閎)를.
協律則, 李延年.
연주(協律)로는 이연년(李延年)을.
運籌則, 桑弘羊.
지략(運籌; 주판을 놓듯이 이리저리 궁리하고 계획함)으로는 상홍양(桑弘羊)을.
奉使則, 張騫, 蘇武.
사신으로 봉직한 이(奉使)로는 장건(張騫)과 소무(蘇武)를.
將率則, 衛青, 霍去病.
장수(將率; 참모총장)로는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을.
受遺則, 霍光, 金日磾.
유조를 받은 이(受遺)로는 곽광(霍光)과 김일선(金日磾) 등.
其餘不可勝紀.
그 나머지는 모두 헤아려 기록할 수가 없다.
是以興造功業, 制度遺文, 後世莫及.
그러므로 일으키고 만든(興造) 공업(功業)이나, 제도유문(制度遺文)들은 후세에서 따라 잡을 수 없다.
孝宣承統, 纂修洪業, 亦講論六藝, 招選茂異而.
무제의 뒤를 이어 효선(孝宣) 황제가 왕통을 이어받아 큰 업적을 닦고, 또한 육예(六藝)를 강론하여 특이한 이들을 선발하였다.
蕭望之, 梁丘賀, 夏侯勝, 韋玄成, 嚴彭祖, 尹更始, 以儒術進.
소망지(蕭望之), 양구하(梁丘賀), 하후승(夏侯勝), 위현성(韋玄成), 엄팽조(嚴彭祖), 윤갱시(尹更始)는 유술(儒術)로써 진출했다.
劉向, 王褒, 以文章顯.
유향(劉向), 왕포(王褒)는 문장으로 드날렸고,
將相則, 張安, 趙充國, 魏相, 丙吉, 于定國, 杜延年.
장상(將相)으로는 장안세(張安世), 조충국(趙充國), 위상(魏相), 병길(丙吉), 우장국(于定國), 두연년(杜延年)이고,
治民則, 黃霸, 王成, 龔遂, 鄭弘, 召信臣, 韓延壽, 尹翁歸, 趙廣漢, 嚴延年,
張敞之屬, 皆有功跡見述於世.
백성을 잘 다스리기로는 황패(黃霸), 왕성(王成), 공수(龔遂), 정홍(鄭弘), 소신신(召信臣), 한연수(韓延壽),
윤옹귀(尹翁歸), 조광한(趙廣漢), 엄연년(嚴延年), 장창지(張敞之)의 무리로 다 공적이 당세에 드러났었다.
參其名臣, 亦其次也.
명신(名臣) 해당 여부는 역시 그 다음 일이다.
▶️ 版(판목 판)은 ❶형성문자로 板(판), 闆(판)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조각 편(片; 조각, 쪼개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反(반, 편)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片(편)은 나무를 둘로 쪼갠 한쪽, 版(판)은 나무를 쪼개 만든 판자(板子)를 나타낸다. 뒤에 판목(版木)에 글자를 파서 인쇄(印刷)를 하였으므로 출판(出版)이나 판화(版畵) 등의 말이 생겼다. ❷형성문자로 版자는 '널빤지'나 '판목', '편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版자는 片(조각 편)자와 反(되돌릴 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反자는 손으로 무언가를 뒤집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반 , 판'으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版자는 평평하게 가공한 나뭇조각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를 잘라 만든 죽간(竹簡)에 편지를 쓰거나 목판으로 책을 인쇄했기 때문에 版자는 '편지'나 '책'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참고로 널빤지를 뜻하는 글자로는 간혹 木(나무 목)자가 들어간 板(널빤지 판)자가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版(판)은 판(板). (1)그림이나 글씨 따위를 새기어 찍는 데에 사용하는 나무나 쇠의 조각 (2)활판(活版)이나 인쇄판(印刷版)을 두루 이르는 말 (3)어떤 체언(體言) 밑에 붙어서 출판(出版)의 뜻을 이르는 말. 판(盤) 윷, 장기, 고누 따위의 밭을 그린 물건 (4)판(判). 책이나 상품의 종이의 길이와 넓이의 규격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판목(板木) ②널, 널빤지(판판하고 넓게 켠 나뭇조각) ③책, 편지(便紙) ④여덟 자(길이의 단위) ⑤호적부(戶籍簿) ⑥담틀(흙담을 쌓을 때 양쪽에 세운 널로 된 틀) ⑦이름표, 명부(名簿: 이름, 주소, 직업 따위를 적어 놓은 장부) ⑧홀(笏: 제후를 봉할 때 사용하던 신인(信印) ⑨간행하다(刊行--) ⑩벼슬을 제수하다(除授--: 천거에 의하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다) ⑪비뚤어지다, 어긋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나라의 영토 또는 어떤 세력이 미치는 영역이나 범위를 판도(版圖), 인쇄판의 겉면을 판면(版面), 판목에서 새긴 인쇄한 책을 판본(版本), 도서의 출판에 관한 이익을 전유하는 권리를 판권(版權), 책이나 그림 따위를 인쇄하여 세상에 내보냄을 출판(出版), 나무에 새긴 책판이나 그림판. 목판으로 박은 책을 목판(木版), 이미 간행된 출판물을 다시 출판함을 재판(再版), 출판하여 낸 책이 다 팔리어 없음을 절판(絶版), 전에 만든 책판 또는 박아 낸 책을 구판(舊版), 보관하여 둔 서적을 장판(藏版), 종이나 사진이나 책 등의 크기가 작은 판을 소판(小版), 인쇄판을 제작하는 일을 제판(製版), 판수를 거듭하여 간행함을 중판(重版), 성을 쌓고 소를 먹이다는 뜻으로 하찮은 일을 해도 능력과 인품을 갖추고 있으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판축반우(版築飯牛), 벼슬아치의 명단에 올려 주지 아니함 곧 영원히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불치사판(不齒仕版) 등에 쓰인다.
▶️ 築(쌓을 축/악기 이름 축)은 ❶형성문자로 筑(축)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同時)에 찧다의 뜻을 가지는 筑(축; 고부라진 대나무로 줄을 쳐서 소리내는 일종의 악기)으로 이루어졌다. 절굿공이로 흙을 찧어 굳게하다, 토목공사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築자는 '쌓다'나 '다지다', '짓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築자는 筑(쌓을 축)자와 木(나무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筑자는 나무를 세워 흙을 다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쌓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이미 筑자에도 '쌓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 木자를 더한 築자는 본래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 것이다. 고대에는 흙을 다져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성벽이나 담벼락을 만들었다. 그러니 築자에 쓰인 竹자와 木자는 흙벽을 쌓기 위해 세워놓은 목판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築(축)은 평면(平面)에서 단이 지도록 쌓아올린 땅의 뜻으로 ①쌓다 ②다지다 ③짓다 ④날개를 치다 ⑤(절구, 방아의)공이(절구나 방아확에 든 물건을 찧거나 빻는 기구) ⑥건축물 ⑦악기(樂器)의 이름 ⑧비파(琵琶: 악기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쌓을 퇴(堆)이다. 용례로는 다지고 쌓아서 만듦을 축조(築造), 성을 쌓는다는 말을 축성(築城), 높게 쌓아 올린 대를 축대(築臺), 함부로 마구 짓찧음을 축개(築磕), 함부로 마구 짓밟음을 축답(築踏), 지치어 넘어짐을 축도(築倒), 낮거나 깊은 곳에 흙을 쌓아서 채움을 축실(築實), 마당을 단단히 다짐을 축장(築場), 쌓아 올려 만듦으로 어떤 일의 바탕을 닦아 이루거나 마련함을 구축(構築), 새로 건축함을 축신(新築), 집이나 담이 허물어졌거나 낡은 것을 다시 고쳐 짓거나 쌓음을 개축(改築), 집 따위를 더 늘려 지음을 증축(增築), 무너진 건축물을 다시 세움을 재축(再築), 건물이나 구조물 따위를 보충하여 지음을 보축(補築), 살 만한 땅을 가려서 집을 지음을 복축(卜築), 바닷가나 강가를 메워서 뭍을 만드는 일을 매축(埋築),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둑을 방축(防築), 무덤을 만들 때 흙을 쌓아 올림을 봉축(封築), 성이나 둑을 쌓는 일을 중지함을 정축(停築), 담을 흙으로 쌓음을 토축(土築), 틈이나 구덩이를 메워 쌓음을 전축(塡築), 집을 지으면서 지나가는 행인과 상의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주관이나 계획이 없는 경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축실도모(築室道謀), 빚의 누대를 높이 쌓다는 뜻으로 빚이 지나치게 많은 상태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채대고축(債臺高築) 등에 쓰인다.
▶️ 飯(밥 반)은 ❶형성문자로 飰(반)은 통자(通字), 饭(반)은 간자(簡字), 飯(반)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反(반)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反(반)은 위에서 물건을 덮고 아래로부터도 그것을 받는 일, 밥식변(飠=食)部는 먹는 것, 먹는 일, 飯(반)은 입에 머금고 잘 씹어 먹다, 먹는 것, 밥, 본디는 食(식)과 飯(반)은 같은 말이며 먹는데도 먹는 것에도 같이 쓴 것인데 나중에 곡식의 주식(主食)을 가리켜 飯(반)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❷형성문자로 飯자는 '밥'이나 '식사',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飯자는 食(밥 식)자와 反(되돌릴 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反자는 손으로 무언가를 뒤집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사실 사전상으로 보면 飯자와 食자는 같은 뜻을 갖고 있다. 다만 이전에는 食자가 주로 '먹다'나 '음식' 자체만을 뜻했었다면 飯자는 곡식(穀食) 위주의 식사를 뜻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食자와 飯자는 관습적으로만 구분할 뿐 의미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飯(반)은 반축(飯柷)과 같은 뜻으로 ①밥 ②식사 ③먹다 ④먹이다 ⑤사육하다 ⑥기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밥 식(食)이다. 용례로는 아침저녁의 끼니를 드리는 일을 반공(飯供), 식후에 먹는 과일을 반과(飯果), 밥그릇 또는 밥을 담는 그릇을 반기(飯器), 중국에서 식단을 이르는 말을 반단(飯單), 수저나 숟가락을 반비(飯匕), 밥 짓는 일을 맡아 보는 계집종을 반비(飯婢), 격식을 갖추어 차린 밥상을 반상(飯床), 밥을 짓거나 하면서 심부름하는 어린 승려를 반승(飯僧), 밥을 담는 그릇이나 밥통을 반우(飯盂), 중국 음식을 하는 음식점을 반점(飯店), 숭늉을 반탕(飯湯), 염습할 때에 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과 씻은 쌀을 물리는 일을 반함(飯含), 밥을 지을 수도 있게 된 알루미늄으로 만든 밥 그릇을 반합(飯盒), 밥과 국을 반갱(飯羹), 밥과 과자를 반과(飯菓), 밥알을 반과(飯顆), 밥상을 반대(飯臺), 끼니로 먹는 음식을 반식(飯食), 끼니 때 밥에 곁들여서 한두 잔 마시는 술을 반주(飯酒), 밥에 곁들여 먹는 온갖 음식을 반찬(飯饌), 밥주머니라는 뜻으로 무능하고 하는 일 없이 밥이나 축내는 사람을 조롱하는 반낭(飯囊), 입에 든 밥을 뿜어낸다는 뜻으로 아주 크게 웃음을 반분(飯噴), 거칠고 반찬 없는 밥이라는 뜻으로 안빈낙도함을 일컫는 말을 반소사(飯疏食), 밥을 담는 주머니와 술을 담는 부대라는 뜻으로 술과 음식을 축내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반낭주대(飯囊酒袋), 식사가 끝난 후에 울리는 종이라는 뜻으로 때가 이미 지났음을 이르는 말을 반후지종(飯後之鐘), 밥이 오면 입을 벌린다는 뜻으로 심한 게으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반래개구(飯來開口), 제사의 제물을 진설할 때 밥은 서쪽 국은 동쪽에 놓음을 이르는 말을 반서갱동(飯西羹東),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는 쉽다는 말을 십시일반(十匙一飯), 집에서 먹는 평소의 식사라는 뜻으로 일상사나 당연지사를 이르는 말을 가상다반(家常茶飯), 술과 밥주머니라는 뜻으로 술과 음식을 축내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주대반낭(酒袋飯囊), 옷걸이와 밥주머니라는 뜻으로 옷을 입고 밥을 먹을 뿐이지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의가반낭(衣架飯囊), 먼지를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는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이라는 뜻으로 실제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을 이르는 말을 진반도갱(塵飯塗羹), 한 끼의 식사에 천금같은 은혜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조그만 은혜에 크게 보답함을 이르는 말을 일반천금(一飯千金), 개밥의 도토리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톨이가 되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구반상실(狗飯橡實), 종에게 흰 밥을 주고 말에게 싱싱한 풀을 준다는 뜻으로 주인의 인심이 넉넉하여 남을 후대함을 이르는 말을 백반청추(白飯靑蒭), 따뜻한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뜻으로 풍족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온의미반(溫衣美飯), 한 술 밥의 덕이라는 뜻으로 보잘것없이 베푼 아주 작은 은덕을 이르는 말을 일반지덕(一飯之德), 여행 길에 하룻밤 묵어 한 끼 식사를 대접받는다는 뜻으로 조그마한 은덕을 입음을 이르는 말을 일숙일반(一宿一飯),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이라는 뜻으로 가까스로 살아 가는 가난한 삶을 이르는 말을 조반석죽(朝飯夕粥) 등에 쓰인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