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214장 (구 349장) / 고린도후서 11 : 1 - 15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21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후서 11장 1절 – 15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아멘!
의학적인 용어로 '증후군'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Syndrome 신드롬' 이라고 합니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인 현상들을 함께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임상적으로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는 게 있습니다. 심리적으로는 어른 아이 같은 남성들이 나타내는 피터팬 신드롬이 있고,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인터넷 신드롬,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다 지쳐 버리는 슈퍼 우먼 신드롬,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경우는 슈퍼맨 증후군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증후군도 있습니다. 이름하여 '모성 거부 증후군' 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있을 때 아이를 학대하기도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갓난아이를 밤중에 깨우기도 하고,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대소변을 가리라고 윽박지르고 남편과 심하게 다투기도 합니다. 모성애 부족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출산 후 우울증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남편에게 학대를 받으므로 생기는 증후군입니다. 이런 어머니는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은 결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어머니의 감정조절 능력, 특히 분노를 통제하는 능력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고린도 교회도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증후군' 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고린도는 어떤 도시입니까? 고린도는 그리스의 남부 해안 이오니아 해와 그 아름답다는 에게해를 연결하는 해협에 위치한 고대 도시입니다. 아름답기로도 소문이 나서 '헬라스의 별' 이라고도 불리는 도시입니다. 또한 학문이 발달되어 있는 철학의 도시이고, 그러다 보니 지성인들이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니 동서 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도시이고, 여자 무당만 1,000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 고대 사회에서는 고린도인이라고 하면, 음탕한 풍습에 젖어 있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절에서부터 8절의 말씀을 보면, 고린도 교회 설립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선교 여행을 하는 중 아덴에서 떠난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면서 새로운 선교의 장이 열리게 됩니다. 주후 40년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유대인들과 그렇지 않은 일반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자, 이것이 질서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유대인들 전체를 로마에서 추방하게 됩니다. 이때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추방되어 고린도에서 살게 되면서, 그의 가정에서 사도 바울과 예배를 드리면서 고린도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바로 그 고린도교회에 증후군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증후군의 구체적인 모습은 바울이 사실은 예수님 사역 당시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사도가 아니라는 것과, 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지도자들을 따라 패를 나눕니다. 한마디로 믿음이 자라고, 지식이 자라고, 은혜를 받기 시작하더니, 바울과 바울이 가르친 것을 배척한 것입니다. "바울이 설교하는 것은 들을 것이 없다." "저런 말씀은 나도 다 아는 말씀이다." "사도가 되어서 저렇게 말을 못하냐?" 하면서 비아냥거립니다. 또 "바울은 우리보다 능력이 없다, 우리는 방언의 은사도 받았고, 예언의 은사도 받았다. 바울이 받은 은사가 무엇이냐?" 이런 식입니다.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것처럼 힘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도 다른 교회도 아니고 자기가 개척하고 키운 신자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바울은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그의 괴로운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반응에, 심히 가슴 아파하였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보다 부족한 것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무시하고 바울의 설교를 들을게 없다며 무시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신학자입니다. 최고의 목회자요. 최고의 설교자요. 최고의 전도자요. 최고의 은혜 체험자요. 최고의 능력자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 자신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 이런 사도 바울에게 설교가 은혜가 없다고, 사도가 아니라고 하면서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배척한 이유는, 그들이 이단 사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는 돈이 많고 은사를 많이 받았다면서 이제 바울이 필요 없다고 배척한 것입니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쫓아가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그런 이단들이 하라는 대로 아무 비판 없이 하다가, 마침내는 자기들끼리 이유 없이 트집 잡고 멱살잡이 하며 싸웠습니다. 이게 바로 고린도 증후군입니다. 바로 이 고린도 증후군의 원인은 자기 자랑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4절 이하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 고 말씀합니다. 물론 자신은 대접 받을 권리가 있고, 많이 고생한 것을 자랑할 수도 있지만, 자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사도로 세워 주셨으니 당연히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랑이 넘치면 화가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만 자랑에 대한 말씀을 무려 23번이나 했고, 고린도전서에서도 9번이나 자랑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을 보면, 한마디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고, 주님만 자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안에서 주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 주님을 증거함으로 자랑하면,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넘치고, 이로 인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렘 9:23-24)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해답은 간단합니다. 겸손하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아멘! 겸손으로 종의 형상을 입으시고, 섬기는 종으로 사신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 바로 이 속죄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는 겸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겸손하셨기에 십자가 지셨고, 십자가 지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설교 시간에 "저 설교는 누가 들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윤리와 진리는 '너의 윤리' 가 아니라 '나의 윤리' 입니다. 내가 겸손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겸손하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만 겸손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종으로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 받아 겸손한 자가 되어 주님 닮고 주님이 주시는 큰 은혜 받아 크게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