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끝나자마자
대톡방에
이동국이 그동안 대표팀에서 보여준게 뭐가 있느냐는 식의
글을 보니
상당히 안타깝고 서운하고 분한 마음까지 드네요.
팬 입장도 이런데,
선수 본인이 그런 소리를 들으면 심정이 오죽할까요...

사실,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에 가장 헌신한 선수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동국입니다.
만 19세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98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했고. (이 한국인 최연소 월드컵 출전기록은 아직도 안깨지고 있음.)
그때부터 이동국의 대표팀 혹사인생이 시작되죠.
98 프랑스 월드컵,
98 U-19 아시아 청소년 대회,
98 방콕 아시안게임 까지.
만 19세의 어린 이동국은
신인 데뷔시즌에 국대, 청대, AG대표팀 까지 다 돌아다니며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99년 부터는
올림픽 대표로서,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아시아 선수 통틀어 최다골을 기록하며
한국을 올림픽 본선에 올려놓았고,
그와중에
99년 U-20 청소년 월드컵에 나가,
말리 전에 골까지 기록을하죠.
그렇게 99년 한해에 이동국은
국대, 청대, 올대를 죄다 돌아다니며
개혹사를 당합니다.

이동국이 얼마나 혹사를 당했는지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그리고 2000년 초, 북중미 골드컵에 나가
코스타리카 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고,
초가을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무대에 출전하여
무릎에 붕대칭칭감고 경기에 나서
칠레 전에 골을 터뜨리며
이동국은 본인이 출전한 국제무대에서 나가는 대회마다
골을 터뜨리는
대기록을 세워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올림픽 본선이 끝나자마자
국대에 차출되어
2000년 아시안컵에 출전하게 되고,
이동국은 무릎에 붕대칭칭감고, 진통제 맞아가며
출전하여
아시안컵 득점왕에 오릅니다. 만 21세의 나이로.

그리고 난후,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이적을 하게됩니다.
허나, 몸상태가 엉망이 된 이동국은
독일에서 재활과 경기출장을 병행해야했고,
브레멘 구단측에서, 어찌 이 어린선수의 몸상태를
이 꼴로 만들어 놨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죠.
결국 임대기간이 끝나갈 무렵,
베르더 브레멘 측은
이동국의 원소속팀인 포항에게
완전 이적을 제시하지만,
포항은 이적료 금액이 성에 차지 않는다며
거절을 하고,
결국 이동국은 독일 진출 6개월 여 만에
포항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대표팀 시령탑은
외국인인 거스 히딩크로 교체가 되고,
히딩크가 한국와서 제일 먼저 찾은 선수는
다름 아닌 이동국 이었습니다.
98프랑스 월드컵에서
자신이 지휘하던 네덜란드를 상대로
겁없는 슛팅을 날린
만 19세의 어린 이동국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허나, 이동국은 2-3년간 각 대표팀에 다 돌아다니며
몸상태가 엉망인 동시에
슬럼프에 빠져 있었고,
결국 히딩크가 원하는
헌신적으로 많이 뛰는 공격수로서의 임무를 보여주지 못하며,
2002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탈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본인과 함께 대표팀에서 뛰던 선수들이
2002년 4강으로 군면제 혜택을 받아
군대를 안가게 되었을때,
이동국은 그 전까지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했지만
결국 현역으로 군대를 가게되죠.
그와중에 2002년 부산AG 에서도,
팀내 최다골을 기록하며
4강까지 올려놓지만, 승부차기끝에 패하면서
마지막 군면제 기회도 날아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일명 '동까'들이 미친듯이 번식을 했고,
결국 이동국은 군입대 하자마자
이딴 쓰레기 같은 말 까지 경기장에서 듣게 되죠..

그 이후, 상무에서 절치 부심 한끝에,
2004년 여름, 본프레레 감독의
데뷔전에 부름을 받아
바레인 전에서, 대표팀 복귀전 복귀골을 터뜨리며 다시 부활했고
연이어 출전한 2004년 아시안컵에서도
팀내 최다골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칩니다.
그 이후부터 이동국은 대표팀의 황태자로 군림하며
나가는 경기마다
순도높은 멋진 골들을 뽑아내며
대표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선수가 되며,
한국을
독일월드컵 본선에 올려놉니다.
그러면서, 독일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아시아 선수 통틀어,
최다골을 기록한 선수로 등극하게 되죠.

허나, 본선을 코앞에 두고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해
출전이 좌절되고
그 빈자리를 조재진이 대신 채우게 되죠.

그 이후에,
EPL 진출 적응 실패와
2007아시안컵에서 음주파문 징계로 인해
대표팀에 2년가까이 못 뽑히다가,

2009년 전북현대에서의 재기로 인해
2009년 8월 파라과이 전부터
다시 대표팀에 호출되게 되죠.
허나, 허정무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맞추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플레이 스타일 다 벗어던지고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서
남아공 본선까지 갑니다.
뭐, 우루과이 전 그 슛팅에 대해서는
팬인 입장에서도, 쉽사리 쉴드를 쳐줄수 없기에 넘어가지만,
이렇게 이동국은 12-13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가장 헌신한 선수중 하나입니다.
현역 선수중,
이동국의 국대-올대-청대 통합 기록에 나란히 할 선수는
박주영이 유일합니다.
박주영이
청대에서 26경기 18골,
올대에서 21경기 8골,
국대에서 57경기 23골을 기록하며,
통합 104경기 49골을 기록중이며
이동국이
청대에서 13경기 6골
올대에서 20경기 15골
국대에서 86경기 25골 기록하며
통합 119경기 46골을 기록하고 있지요.
이런 선수에게
대표팀에서 그동안 보여준게 없다는 식으로
무조건 적인 비난을 가하는것은
참을수가 없습니다.
대표팀의 승리 지상주의 속에서
그 누구보다 개혹사를 당하고,
자기 몸 희생해 가면서 헌신한
이동국에게
그런식의 이야기들을 쏟아내는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단지, 가장 큰 무대인
월드컵에서의 좋은 활약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이동국은 그 누구보다
태극마크를 달고 헌신한 선수입니다.
이동국에게 부족한것은
오직 단 하나.
월드컵에서의 골이 없다는것.
그거 하나뿐입니다.
이동국은 월드컵을 제외한
모든 국제무대에서 골을 기록하였습니다.
태극 마크를 달고.
U-19 아시아 청소년대회
U-20 청소년 월드컵
올림픽 본선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심지어 북중미 골드컵에서 까지
골을 기록한 선수.
태극마크를 달고
10년이 넘게
활약을 하고 헌신한 선수가 이동국 입니다.
대체, 이동국이 대표팀에서 보여준게 없다는 소리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요...

첫댓글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죠 딱히 초딩들한테는 보여준게 없잖아요 그렇다고 초딩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그렇고..저러다가 하나하나 배우면서 훌륭한 서포터즈가 될거에요 저도 어릴때는 최순호 개발 새발 하면서 마라도나랑 비교질해댔는데요 뭘..
아마 최근 경기만 본 어린분이아닐까 추측해봅니다 1998네덜란드전 옛날생각나네요 새벽 네시인가 초딩때인데 인나서 보고잣엇는데 ㅋㅋ
이렇게 좋은 글은 널리널리 퍼져야 합니다
ㅠㅜ
근깐 제말이요 ㅡㅡ
2006월드컵 다른선수들도 물론 잘햇ㅈㅣ만 솔직히 이동국 덕분에 나간거아님 ?
2006 독일 월드컵.. 이동국 때문에 든든했었는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뛰는 공격수는 두번 다시 없을정도로...
이동국 ㅠㅠㅠㅠㅠㅠ 2000년대 초반 왜케 혹사를ㅠㅠㅠ 진짜 저때 좀 쉬었으면 더 높은 클래스의 선수가 될수있었을텐데. 이렇게 보니 혹사도아니고 그냥 개혹사네 개혹사..
06년 월드컵대표때 박지성,이천수도 부상때문에 들락날락하고 안정환도 이적문제로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설기현 슬럼프일때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한게 이동국인데..
아...눙물이...;ㅁ;
한동안 그를 아시아용이라고 기대치를 낮춘 적이 있었는데.. 2004-2006년 최전성기를 직접 본 이 후엔... 내 눈으로 직접 본 대한민국 공격수 중 최고였음.. 이동국 때문에 2006년 월드컵이 기대될만큼 정말 큰 존재였는데...
참 불운하죠.. 각 레벨별 국대에 불러다니며 헌신했는데, 결국 국대 활약으로 동까들이 생겨나고... 월드컵이나 유럽리그 성공으로 입닥치게 했어야 했는데.. 불운의 연속...
아..이렇게 나열한 걸 보니..정말 우리는 위대한 스트라이커를 보유하고 있네요..이 위대한선수를 위태하게 만드는 동까들..할 말이없네요..최강희감독님 말씀처럼 김상식선수와 더불어 마흔살까지 그라운드에서 볼 수있길 기대합니다..
브레멘에서 성공했어야 하는데ㅠㅠ외모도 그때가 최고였던듯 ㅋ
정말 잘 봤습니다 그런데 사진 몇 장이 저만 그런지.. 액박이에요 ..
위에서 6번 7번째 사진과 제일 마지막 사진 수정좀 해주세요 퍼가고싶어서요
와......진짜 엄청난희생하셧내..... 무릎에붕대까지감고 경기를......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