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교성지가 모여있는 비하르 지방에는 쌍두마차버스가 있다.
포장 속 맞바라보고 두 줄로 나란히 앉게 된 좌석에 이따금 흰 베로 둘둘
감은 기다란 등신대의 물건을 들고 타는 사람이 있다. 그럼 그 기다란
물건을 손님들 무릎에 얹게 되고 또 손님들은 자연스레 안고 덜컹거리며
간다. 알고 보니 그 등신대의 물건은 시신이요, 여느 산 사람과 똑같은
버스요금을 내고 갠지스강으로 화장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그 꼴을
당하고 나니 두려움으로 괴리돼 있게 마련인 죽음과 삶이 인도에서는
친화공존하는 중간지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더욱 베나레스의 갠지스 강가에 즐비한 「죽음의 집」에서 절실했다.
힌두교도들은 죽음에 임박하면 이 강가의 한 평 남짓한 토방에 죽으러
온다. 그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화평과 안락을
감지할 수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시바신이 사는 하늘에서 내려 흐르는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고 그 강가에서 기도하며 죽어서 이
수중화장대에서 화장되어 뼛가루가 이 강물에 녹아 사라지는 것을 지상의
환희로 여기기 때문이다. 수중화장대에서 타다만 시신의 팔다리가 뚝뚝
떨어져 흐르는 강물에서의 수천 신도들의 성욕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한 세대를 뒤흔들었던 비틀스 멤버요, 항상 앞에 나서길 싫어하여
「조용한 비틀」이라는 별명을 가진 조지 해리슨이 암으로 죽어 그
장례가 유언에 따라 갠지스강가 죽음의 집에서 힌두장례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힌두교의 신비주의에 심취한 조지가 석달
전에 베나레스의 갠지스강에 와 성욕을 했고 죽음의 집에서 금식기도를
한 적도 있었다 한다.
비틀스는 1968년 인도 여행에서 영혼의 지도자 마하리시 요기를 만난
후로 크게 변질했었다. 머리는 어깨까지 드리우는 장발에 인도의 수도복
차림을 하고 환각제를 복용하는가 하면 시탈이라는 인도 악기와 신비주의
음악의 리듬을 도입하여 인기의 사양을 예언받기도 했다. 이렇게
동양색으로 기울면서 내분이 생겨 「불교의 원이 비틀스의 원을
깨뜨렸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그 중 별나게 인도에 심취한 것이
‘조용한 비틀’이요, 이 세상에 애오라지 남은 비틀스의 여운과 더불어
갠지스 강물에 조용히 용해, 흘러가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