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수꾼 형제님
아침뉴스를 보는데 세월호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중이라는 자막이 떴다.
우리나라에서 배가 침몰하는 사건이 한두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또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의 영향으로 인해 배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구명조끼 입고 구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 사건은 많은 안 좋은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3월에 미국에 가서 LA지진을 경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CBS방송을 들었다.
"지난 며칠동안 한국전체에 슬픔이 전염되어서
어떤 사람은 심한 두통을 느낄 정도이고
죽음에 대한 슬픔에 쌓여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TV나 뉴스를 잠시 안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는 내용의 멘트를 진행자를 통해 들었다.
우리 각자에게 세월호 사건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장담할수 없다.
여러분들은 지금 당장 하나님이 이 땅에서 불러가시면 천국문 앞에 설 자신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설 수 있나?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나의 삶에 대해 정산하실 것인데
내가 과연 떳떳하게 설수 있을지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죽음자체에 대해 둔감해져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진이나 비행기실종사건, 크루즈침몰 사건 등을 통해 또 한가지,
"심판의 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수님 오시기 바로 직전에 사탄이 이 땅에 남아있는 자들에게 수없이 많은 환란과 고통을 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탄의 공격을 받아 고통받고 죽는 그러한 때
우리가 슬퍼서 눈물흘리고 있을 시간이 있겠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할 시간이 있을까?
당장 내 상태가 문제일 것이다.
전쟁이 터진 상태를 예로 들어 본다.
전쟁이 일어나면 옆 사람 신경쓸 겨를이 없고 나 살기 바빠서 도망가고 숨게 될 것이다.
심판의 때가 오면 천국에 대한 것 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우리가 여유가 있어서 이성으로 천국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급박한 순간이 닥쳐오면 나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게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자듯이 평안하게 죽기를 바라지만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죽음이라는 것은 예고된 것이 아니다.
죽음을 맞기 전까지 어떠한 삶을 살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보혈의 은혜로 인해 천국에 들어갈 티켓을 얻은 것은 맞다.
티켓 보여주고 그 티켓이 진짜면 들어갈 수 있지만
그 티켓이 가짜거나 시간이 지난 티켓이면 들어갈 수가 없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영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여러분들도 이 세월호 사건 때문에 슬퍼진다면 단순히 동정심이다.
주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슬픔의 영이 우리나라를 지배해 버렸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한 생명이라도 구조가 되길 기도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하고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면서 슬픔에 빠지는 것은
영적으로, 혼적으로 죽이려고 하는 사탄의 공격에 넘어간 것이다.
많은 어린 학생들이 죽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죽음을 맞는 시간이 조금 빨랐을 뿐이다.
이 땅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꼭 장수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 땅에서의 삶이 오래 살수록 안 좋은 것들을 더 많이 겪게되기 때문이다.
100세 넘으신 분들에게서 여러 번의 전쟁을 겪으셨다는 것을 듣는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뒤에 숨어서 일하는 악한 것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나 자신에게 적용을 해 보아야 한다.
나, 또는 가족들에게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어떠한 마음으로 대처를 할 것인지,
어떤 연유로든 죽음을 맞게 되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인지.
"저의 삶을 마감짓는 죽음의 순간이 올 때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고 칭찬받을수 있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라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번에 '나한테 이런 사건이 터져서 졸지에 하나님이 나를 불러가시면
하나님 앞에서 이제까지의 삶을 정산하게 될텐데
지금 나의 생명을 보존해 주시는 이 때에 과거의 삶에서 돌아서야겠다'라는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이 땅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다가 가야할 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티켓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육군사관학교에 가면 해서는 안되는 것들, 지켜야 할 규율들이 있다.
고급장교, 즉 많은 부하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더 많이 요구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잘 컨트롤해서 사관학교의 과정을 잘 견디면 패스하게 된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퇴교하거나 졸업을 못한다.
우리도 말과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합한 말과 행동인지 생각해야 한다.
물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성, 지식을 통해서도 분별하게 해 주신다.
분별의 영을 달라고 항상 구해야 한다.
TV에서 해리성 정체장애와 관련된 사건을 다룬 외국 범죄수사극을 보았다.
어떤 여성이 죽어서 범인을 수사하는 과정에 그 여성을 진찰했던 의사가 수사대상이 되었다.
형사가 수사하는 중에 이 의사가 경직되고 의심할 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포착하였다.
수사대상이 의사인지라 형사는 정신의학자이자 해리성 인격장애를 수십년간 연구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드라마는 의사의 다른 인격을 보여준다.
집에 들어서는 의사는 갑자기 집안에 어지럽게 흩어지고 넘어져 있는 장난감을 보며 혼잣말로
"어? 이거 보면 우리엄마가 야단치실텐데.정리잘해야 되는데"
라고 하며 장난감을 치우는 모습이 나온다.
장면이 바뀌며 이 의사는 유치원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상담교사를 찾아간다.
유치원 상담교사는 다른 학부모와 상담중이어서 그 장면을 지켜보게 되었다.
갑자기 이 의사의 귀에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다.
'어린아이는 말을 듣지 않으면 체벌을 해야한다.'
'우리 유치원은 규율이 엄격해요' 등등
상담이 끝난 유치원상담교사가 이 의사와 면담을 할려하자 아이를 유치원에 입학시키지 않겠다한다.
실제로는 이 의사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에 퇴근하는 상담교사를 납치해서
자기를 돌보아주고 대학 학비를 대주었던 이모랑 살았던 낡은 캠핑카로 데려간다.
캠핑카 안에 이 선생님을 묶어 놓고 이상한 약을 투입하면서
"당신은 아이를 규율에 맞춰서 힘들게 하는 교사야.
당신도 체벌을 당해야해"라고 하며 이 선생님을 괴롭힌다.
이 의사에게서 두가지 인격의 모습이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의사로써의 인격의 모습은 경직되어있고 권위적이고 약간 포악하기도 하고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납치와 살인까지 저지른다.
또 다른 5-6세의 어린아이의 인격은 여리고 피해의식에 쌓여있고 두려워하면서 보호가 필요한 모습이다.
의사가 페인트공으로 분장한 것은 범죄를 위한 것이었다.
경찰들이 이 의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붙잡아서 정신의학자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취조할 때
의사안에 있는 어린아이의 인격도 나타나며 두 인격이 확실하게 분리가 되어서 드러난다.
의사의 집에 가득 그려진 그림 중 캠핑카 위의 팬더그림을 보여주면서
"이 그림 언제 그렸니?"라고 물어보니
어린아이의 인격이 나와서 대답을 한다.
어렸을때부터 자기를 키워준 이모랑 캠핑카에 살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데
5~6살 나이에 누군가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았고
자라면서 이 상처받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보호자인격이 의사를 만들었다.
성인이 된 후 어떤 누군가에 의해 권위적이고 명령적으로, 강압적 규율에 의해 위협받는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보호본능이 발동해서 유치원 선생님을 가두고 괴롭힌 것처럼
공격적인 모습의 인격이 나오는 것이었다.
경찰들이 이 의사에게 왜 여자환자를 죽였냐고 질문을 하자
환자가 진료받는 동안 성실하게 진료를 받는게 아니라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자기 진료를 30분 안에 끝내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듣자
어린 인격에게 호통치는 어른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격이 그걸 막겠다고 저지른 사건이었다.
진료후 여자환자의 집에 페인트공으로 변장을 하고 찾아가 살인을 한 것이라고 말을 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분노와 함께 화가 날 때가 있다.
귀신의 영향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안에 있는 포학한 인격이 모습을 드러낸 것 일수도 있다.
주변에서 건들지 않으면 젠틀한 모습이지만
무엇인가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 발생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 상처에 저항하기 위한 인격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악한영의 정체와 폭력적인 인격의 정체는 경계선이 좀 모호하다.
정상적인 인격이 아닌 모습의 것들을 "인격"이라고 칭하지만
인격도 역시 악한 영들에 의해 영향받아 형성된 것이다.
단지 이름만 다르게 구분을 해 놓은 것이다.
조금전에 말한 의사의 경우 성인의 인격이 살인까지 했는데
살인의 영이 살인을 하게 한것이지 인격이 살인을 한 것이겠는가?
호다에서는 다 악한 영에 의한 것이라고 구분짓지만
정신의학과에서는 이런 폭력적 인격이나 상처받은 인격을
해리성 인격장애(다중인격) 라고 말하기 때문에 인격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조금전에 이야기 한 범죄수사극에 등장한 의사는 어렸을 때 상처가 있었다.
그런데 상처가 꼭 어렸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대상이 부모, 형제들이고
성인이 되어서 결혼을 한 경우에는 배우자로 부터 받는다.
즉 상처를 많이 주는 대상은 대부분 가까운 가족이나 주변의 친한 사이로부터 온다.
누군가가 싫은 소리를 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면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스스로 가슴에 담고서 상처를 더 키운다.
상대방은 별 의미없이 한 말일 수도 있는데
자기자신의 살아온 배경과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서 그 말을 상처로 받아들인다.
물론 때로는 상대가 한 말이 정말로 상처를 주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거 나와는 상관없어 용서하면 되지 뭐...'라고 넘기면 된다.
상처를 상처로 받는 것은 나 자신의 문제이다.
우리의 중심이 예수님에게로 가 있으면
'아, 하나님이 이 상처를 통해 내가 무엇인가 고쳐야 할게 있어서 경고하시는구나,' 라던가
'나에게 쓴뿌리가 있어서 이 상처를 통해 드러나게 하시는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상처로 남지 않는다.
이렇게 악을 선으로 바꾸는 것은 내 몫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이 앞으로 귀신에게 휘둘리지 않게 방어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누가복음 11장 24~26절을 보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11:24~26)
우리는 많은 경우 자신이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님에 대해 민감하다고 표현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오류가 생길 수가 있다.
내가 성령충만한 것처럼 느끼고 있으나 문제가 악화될 때가 있다.
나만 평안하고 나만 성령충만하면 모든 것들이 다 잘된다고 착각하는데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원인제공자는 사탄일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평안하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일이 잘못되어가는 경우는 사탄이 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정말로 내 마음이 평안한 것이 아닌데
스스로 마음이 평안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든지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다.
썩은밀알 자매님
한주간 "피해의식 VS 영적공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주중에 두 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두 분 모두 결혼해서 아이들도 있고 영적으로 나름 잘 훈련되었다고 하시는 분들이다.
대화중 시댁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대부분 안 좋은 이야기였다.
"시댁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면 왜 대부분 안좋은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나요?" 라고 질문을 하니
두 분 중 한 분이 참 지혜로운 이야기를 해 주셨다.
대부분 결혼할 때 상대방을 통해 사랑을 많이 받을거라고 기대하는데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이런 바램들이 다 깨지게 되면서 손해봤다는 마음이 들고
피해의식 마음이 생기게 된다고.
그 분 동서가 "나는 애가 세명이어서...."라고 아이핑계를 대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며
'애가 한 명일 때도 신세타령하더니....'라고 했단다.
아이 역시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보는 동서를 보며
피해의식이 있으면 상대방이 아무리 잘해줘도 좋아하지도 않고
상대방이 잘 못해주면 당연히 관계는 더 악화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이 분이 자신안에 있는 피해의식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피해의식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해결이 되었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었던 다른 한 명은 자신 스스로 영적인 사람이고 싶어하고 영적인 것에 심취해있는데
시댁과의 관계도 안 좋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별로이다.
이 분과 대화를 해보니 피해의식의 수준을 넘어서 피해망상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시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정신병에 걸린 사람처럼 흥분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스스로 너무 힘들어서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탈출하는 수단으로 영적인 것에 빠져있는 것 같이 보였다.
나도 가족에 관한 피해의식이 있었다.
'내가 뭐 하려고 하면 언니때문에, 엄마때문에, 아빠 때문에 안돼!.'라는 마음이 깔려있다보니
항상 아빠로부터 내가 피해를 받았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가 잘못한 부분은 덮어 버리고 아빠에 대해서 안 좋게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어느날 이 부분에 대해서 회개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피해의식을 넘어서 피해망상까지 가면 누군가 나에게 조금만 잘못을 해도
상대방을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어떤 분하고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줘도 너무 미웠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내가 이 분에게서 상처를 받은 게 있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않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상처를 받으면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파수꾼 형제님
상처는 치유가 되어야 한다.
성인이면, 더군다나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스스로 그 상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피해의식, 그 망상속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스스로의 노력이 있을 때 성령님이 자유케 해 주신다.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힘들 때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무엇인가를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럴수록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무엇인가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이미지로 하나님을 만들어 버리게 된다.
여러분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놓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리"(눅11:27~28)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수 있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라는 것은 마리아를 높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지키는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하늘나라를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을 원수를 생각한다 그러나 용서 해야 한다.
용서하지 않고 마음에 품고있으면 결국 나만 영적으로, 육적으로 죽게 될 뿐이다.
스스로 그 상처로 인해 더이상 고통받지 않겠다고 끊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가장좋은 방법은 "용서"이다.
용서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 해야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썩은밀알 자매님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자 가족들은 피해를 본 입장이기에
조금만 안 좋은일이 있어도 엄청난 분노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언론에서 이런 가족들의 심리를 부추겨서 정부에 대한 반감을 더 키우고 있다.
이 분들에게 치유와 회복이 필요하다는 마음이든다.
지난주에 사랑의 임파테이션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비 권사님이 Seunglee 자매님과 Enoch 자매님이
함께 껴안고 희락의 영이 임해서 웃고있는 모습을 보고
'아, 저게 천국의 모습이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들으면서 상처가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
이 상태에서 누릴수 있는게 천국이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간다.
내 안에 있는 상처가 많이 치유가 되었지만 더 치유받아야 겠다는 마음이 든다.
파수꾼 형제님
용서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결단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용서하는거다.
나의 평안을 위해, 나의 영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다.
용서하지 않고 원한과 분노가 있으면 얼굴에 다 드러난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은 세상적으로 보면 말도 안된다.
세상드라마 내용을 보면 원수갚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세상의 정의, 사탄의 방법이다.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도 이런 소재를 많이 다루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분노와 복수가 익숙해지게끔 만들고 있다.
누군가를 훈련시키는데 내가 좋지 않은 모양으로 쓰임받지 않게 기도하셔야 한다.
내가 옆 사람을 훈련시키기 위한 희생양이 되면 안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시려고 막대기로 쓴 사람들이나 민족들이 있다.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포로만들었던 자들.
결국 하나님이 이들을 다 부러뜨리셨다.
앗수르, 모압, 바벨론과 같이 여러분들이 사용되면 안된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훈련시키고 성장하게 하시려고
영적으로 수준이 낮은 자들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여러분들은 누군가과 같이 있을 때 그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그들이 축복을 받는다.
그들이 여러분을 내 쫓으면 그들에게 축복이 끊기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들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훈련과정에 불쏘시개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목재가 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건, 우리들이건,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착각하면서 산다.
우리는 자기의 똑똑함, 지혜, 지식, 자신의 계획을 자만하면 안된다.
항상 위로부터 받기를 노력하고 추구해야 한다.
예수님이 어떤 지혜를 주실지, 어떤 분별력을 주실지,
어떤 계획을 주실지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똑똑했던 아인슈타인이 밝혀냈던 것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들 중 하나를 발견한 것 뿐이다.
아인슈타인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우린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들을 증명하고 밝혀내는 것 뿐인데
이게 마치 새롭게 창조한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텐데 여러분이 앞서가면 안된다.
호다에서 훈련하는 것이 이것이다.
미련스러울 만큼 예수님을 쫓아가는 것.
예수님이 끌고가실 때 뒤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길 닦고 나가려고 하면 힘들지만 예수님이 예비해 놓으시고 열어주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쉽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계획해 놓은 것들을 이루어가며 성취감을 느낀다.
자기가 계획세워서 하나하나 쌓으면서 탑을 세워가는 것이 성취이다.
마치 바벨탐처럼.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내가 뭐가 되어야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가시는 대로 따라 가다보면 무엇인가가 되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적인 방법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모여서 함께 나누는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다.
살아있는 말씀이 여러분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말씀은 죽은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서 작용하지 않은 것은 나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 가운데서 말씀이 그대로 이루여져야 그것이 살아있는 말씀이다.
말씀은 단지 문자가 아니다.
오늘 누가복음 11장 28절에서 보았듯이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한다.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다.
주님의 백합화 자매님
2년전에 자궁경부이형성증 진단을 받았다.
이게 더 발전하면 암이된다.
1단계는 자연치유가 되지만 2단계를 넘어가면 수술을 해야 한다.
한때 3단계까지 상태가 악화되었다.
작년 8월에 호다에 온 후 치유기도를 받은거 외에는 그동안 병원에서 다른 치료를 받은 것이 없다.
지난10월에 검사를 하니 의사가 3단계였던 것이 1단계 수준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2주 전에 가서 또 검사를 받았고 검사결과가 이번 주에 나왔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고 깨끗하게 없어져 버렸다는 결과가 나왔다.
올 초에 성령님이 치유하시고 만지신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좋은 결과로 이렇게 보여주신다.
의사가 너무 신기해 했다.
여기까지 은혜를 함께 나눈 후 새로오신 두 자매님과 한 형제에게 예언적 중보기도를 해 드렸다.
나다나엘 자매의 선창으로"돈 주세요"기도를 한 후 개인기도 시간으로 들어갔다.
|
첫댓글 영화나 드라마는 대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데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우리사역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요
호다사역자는 미래에 많이 바빠질 것 같아요
나중에 이리저리 띠띠고 다니시면 정신없을 듯
지금 예수님 코앞에 딱 붙어있어야지
파수꾼형제는 다른 것 암기는 잘 못하는데
영화한편을 보면 듣는 사람이 실제 보는 것처럼
기억해서 이야기해주는 은사가 있어요
이번에 비행기에서 본 ‘책도둑’이라는 영화도 이야기하는데
어찌나 실감나던지 애들이랑 숨죽이며 들었어요
"미련스러울 만큼 예수님을 쫓아가는 것.
예수님이 끌고가실 때 뒤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내가 뭐가 되어야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가시는 대로 따라 가다보면 무엇인가가 되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주님의 백합화 자매님, 할렐루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