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36장 (구 383장) / 고린도후서 12 : 1 - 1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36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후서 12장 1절 – 10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아멘!
참된 헌신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는 어떤 것을 드리는 것이 헌신이 아니라 나를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제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랑거리를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보면 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신비한 체험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삼층천인 천국을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지적으로도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헬라 철학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혈통이나 가문도 아주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누구보다도 자랑거리가 많았고, 지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것들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것들을 지금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자랑거리로 여겼던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했습니다. 바울의 신앙고백의 가장 핵심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는 고백입니다. 처음에는 바울 자신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그렇게 미워하고 핍박했던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을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그 후로 바울이 전혀 새로운 영안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에게 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바울은 그때부터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내 삶 속에 현존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뭘까요? 바로 내 삶에 현존하시는 하나님, 즉 지금 내 삶에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현장에서, 즉 삶의 구석구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거나, 찬양을 부르거나, 기도를 할 때에도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말은 내가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졌다는 말입니다. 내가 찬양을 부를 때에 그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했다고 하는 말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알고 늘 확신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참된 신앙이고, 은혜 받은 자의 삶이고,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바울로 하여금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행 27:23-25) 바울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이런 은혜가 바울에게 큰 자랑거리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자랑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사람들마다 감추고 싶은 약점들이 있습니다. 그 약점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서 숨깁니다. 바울에게도 숨기고 싶은 약점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컴플렉스가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었던 약점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질병이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그것을 '육체의 가시'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께 세 번씩이나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이런 기도를 들으시고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 라고 응답 하셨습니다. 결국 바울은 그 질병을 평생 몸에 짊어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연약하게 살았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강하게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연약한 바울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셨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곁에서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고난은 고난일 뿐이요, 실패는 실패일 뿐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이 오히려 축복이 되고, 실패가 오히려 성공이 됩니다. 질병이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사야 40:29에 보면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신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 연약한 자가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연약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아는 사람이 그것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해주시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겸손한 자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10절 말씀입니다. 10절에 보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안 좋은 부분들만 골라가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것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한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누구를 위해서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바울처럼 내 연약한 것들에 대해서 자랑하고 감사해 보신 적 있습니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걸 깨닫는 것이 은혜요. 이런 은혜를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럴수록 더 하나님을 더 찾고 의지하십시오. 그럴 때에 오히려 그 약점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오늘 본문 10절에서 복음 때문에 고난당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국가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곧 로마의 황제를 거역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더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금보다도 더 빛이 나는 것이고,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강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신앙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바울의 역할이 굉장히 컸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복음을 위해서 생명도 아끼지 않는 바울의 놀라운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얼마든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데도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복음 안에 생명이 들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이 뭐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위해 순교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자존심이고, 더 나아가 성도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바로 이런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매를 맞으면 더 기뻐했습니다. 감옥에 갇히면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겪는 고난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지금 연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연약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함께 해주시고, 바울을 강하게 만들어주신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점점 식어가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희생하고, 헌신하고, 손해보고,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볼 각오를 하십시오.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할 각오도 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자녀들에게 능력을 부어 주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바울처럼, 또 히브리서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처럼,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겪어야 되는 고난이 오히려 기쁨이 되고 더 나아가 나에게 큰 자랑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 들어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