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한 장의 철학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벽돌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의 거창한 도(道)는 흔히 구름 위의 담론이나 두꺼운 경전 속에 머문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너 요동의 벌판에서 전혀 다른 객체를 만나지요. 그것은 화려한 보석도, 웅장한 궁궐의 기둥도 아닌, 흙을 구워 만든 투박하고 모난 벽돌 한 장이었습니다.
조선의 담장은 자연을 닮아 너그럽습니다. 들쭉날쭉한 돌들을 이리저리 맞추어 진흙을 이겨 바른 그 곡선은 정겹지만, 한편으로는 위태로운 부정형의 합(合)이라고 볼 수 있지요.
연암은 그 투박한 정겨움 보다는 비표준화의 비효율을 생각합니다. 그가 청나라의 도성에서 발견한 것은 낱낱이 흩어지면 보잘것없으나, 서로 맞물리면 태산 같은 성벽을 이루는 규격의 힘이었으니까요.
벽돌은 정확히 귀퉁이는 날카롭고 면은 평평합니다. 이 생김새의 엄격함은 서로의 틈을 허용하지 않지요. 하나가 바르게 놓이면 그다음 하나는 자연스레 제 자리를 찾습니다. 연암은 이 붉은 사각형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만리장성을 이루고, 백성의 안온한 집이 되는 광경에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참뜻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문명이란 하늘을 찌르는 기개가 아니라, 발밑에 놓인 벽돌 한 장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워내고 얼마나 바르게 쌓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벽돌 또한 그러합니다. 무질서한 욕망이 부딪히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모서리를 다듬어 타인과 맞물릴 준비를 하는 마음. 화려한 장식 없이도 묵묵히 제 무게를 견디며 층을 이루는 그 정직한 노동. 연암이 열하의 벽돌에서 발견한 것은 어쩌면 현대인이 잃어버린 기본의 숭고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굽이치는 요동의 길 위에서 그가 어루만졌을 그 뜨거운 벽돌의 질감을 떠올려 봅니다. 낱개는 작고 초라하나, 연대하여 벽이 되고 길이 되는 존재들….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함에 있지 않고, 어긋남 없는 질서가 만들어내는 견고한 평화에 있음을 벽돌 한 장이 붉은 몸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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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돌이 없는 나라 방글라데시에서는 진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어 건축자재로 쓰는데 벽돌 한장 값이 1원 남짓이라죠.
진흙은 생각보다 위대(?)하다 할까요? 옹기도 진흙으로 만들죠. 춘천 사는 사람으로서는 소양강댐도 진흙으로 쌓은 걸 아니까 진흙의 힘을 더 잘 알죠.
어쩌다 보니 춘천 인근의 세 댐, 춘천댐, 의암댐, 소양강댐의 축조과정을 다 보았습니다. 춘천댐은 국민학교 시절. 산 이쪽 저쪽으로 케이블을 걸고, 세멘트를 케이블카처럼 싣고 가 부어 만들었고, 의암댐은 중학교 시절, 수문 닫는 날 거짓말 보태 춘천시민 절반이 바케스 들고 댐밑에 대기하다 물이 빠져 웅덩이에 갇힌 쏘가리를 퍼올였고, 소양강댐은 고3부터 대학때까지. 제일 가운데에 진흙을 쌓고, 그 바깥에 모래, 그 바깥에 자갈, 주먹돌, 바위를 차례로 쌓아가는 과정을 낱낱이 봤죠. 그때는 6.25때 쓰다 지금은 산판에서 어쩌다 한 대 보는 제무시(GMC)가 제일 큰 트럭일 때 16톤짜리 트럭이 바위 실어 나르는 걸 보며 저렇게 큰 트럭이 있다니 하고 감탄하기도 했죠.
진흙은 뭉칠 수 있으니 강하고, 우리 민족은 모래 같아 하나 하나는 강하지만 모이지는 못한다 자조하기도 하죠.
생각과 추억이 많아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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