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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의 금강경 핵심 강좌
4강 2부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2011.11.21
第十七 究竟無我分
제십칠 구경무아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
第十七 究竟無我分 (十一, 斷住修降伏是我疑)
제십칠 구경무아분
爾時에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이시 수보리 백불언
世尊하 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는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云何應住며 云何降伏其心하리잇고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若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불 고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當生如是心이니 我應滅度一切衆生호리라
당생여시심 아응멸도일체중생
滅度一切衆生已하야는 而無有一衆生도 實滅度者니라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則非菩薩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所以者가 何오 (須菩提)야 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니라
소이자 하 수보리 실무유법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十二, 斷佛因是有菩薩疑)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於燃燈佛所에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소 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佛이 於燃燈佛所에 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이다
여아해불소설의 불 어연등불소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佛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다
불언 여시여시
須菩提야 實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 실무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燃燈佛이 卽不與我授記하사대
수보리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호대 號를 釋迦牟尼어니와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일새 是故로 燃燈佛이 與我授記하사
이실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作是言하사대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야 號를 釋迦牟尼라하시니
작시언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十三, 斷無因則無佛法疑)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若有人이 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약유인 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니
수보리 실무유법불득아뇩다삼먁삼보리
須菩提야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하니라
수보리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무허
是故로 如來가 說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하노니
시고 여래 설일체법 개시불법
須菩提야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須菩提야 譬如人身長大하니라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須菩提가 言하사대
수보리 언
世尊하 如來가 說人身長大가 卽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이다
세존 여래 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十四, 斷無人度生嚴土疑)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수보리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아당멸도무량중생 즉불명보살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無有法名爲菩薩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명위보살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노라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인무중생무수자
須菩提야 若菩薩이 作是言호대 我當莊嚴佛土라하면 是不名菩薩이니
수보리야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何以故오 如來가 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須菩提야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는 如來가 說名眞是菩薩이니라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 설명진시보살
第十七 究竟無我分
제십칠 구경무아분 (4강-1에서 연결)
(十二, 斷佛因是有菩薩疑)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於燃燈佛所에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소 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佛이 於燃燈佛所에 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이다
여아해불소설의 불 어연등불소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佛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다
불언 여시여시
須菩提야 實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 실무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燃燈佛이 卽不與我授記하사대
수보리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호대 號를 釋迦牟尼어니와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수보리 어의운하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如來가 於燃燈佛所에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아
여래 어연등불소 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
여래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如來(여래)가 於燃燈佛所(어연등불소)에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아,
그랬어요.
연등부처님계신데서 과거에 뭐 언제 이야긴 줄 모릅니다.
법화경에는요 이 연등부처님을 살짝 비추고 나서 이런 말을 해요.
‘나는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혹 내 이야기도 하고, 혹 남의 이야기도 하고 , 혹 있는 이야기도 하고 , 혹 없는 이야기도 하고 , 목적은 중생제도에 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간에, 그 말에 너무 왈가왈부하지마라. 남의 이야기도 끌어오고, 없는 이야기도 끌어오고...‘ 무슨 꼭 밖에 호랑이가 있어서 호랑이 왔다고 하는가? 울음만 그치게 하면, 우는 아이 울음만 그치게 하면 그 뿐이다 이겁니다.
불교는 그래요. 그래서 요즘 뭐 논문 쓰려면 어디에 그냥 무슨 장경에 무슨 경전에
몇 째 줄에 뭐라고 돼 있다, 라고 하는 그런 명문을 이끌어다가 표시하기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 옛날 스님들은 전혀 그런 일이 없어요. 전혀 그런 일이 없고, 뜻으로 그냥 취합니다. 그래 영 그 본문하고 찾아보면, 맞춰 보면은 틀린 게 많아요. 틀린 게 많아. 취해와가지고 뜻을 이해시키고 그 뜻에 감동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 뜻에 감동하면은 됐지, 문자에 매이지 말라, 문자에 매이지 말라,
하면서 모~두 문자에 매달려가지고 이게 왜 원문에 이렇게 돼 있는데 왜 여기에 인용한 데에는 이렇게 글자가 빠졌느냐, 뭘 어떻게 했냐, 그래 요즘 사람들 그걸 아주 시시비비를 많이 하거든요. 그래 이제 말세가 돼서 소견이 좁아질수록 자꾸 이제 그런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다 보니 그렇게 됩니다.
아무튼 과거의 연등부처님이 계셨다하자. 그리고 그 연등부처님에게서 석가모니 부처님 무량한 세월 이전에, 무량한 세월 이전에, 지구 그 숫자상으로 계산하면 지구가 생기기 이전까지 소급해갑니다.
지구 그래봐야 뭐 얼마요? 한 60억년? 처음 생긴 게? 생명이 생긴 게, 지구상에 생명이 생긴 게 불과 몇 억년 안돼요. 사람의 역사는 이 저 무슨 식물이나 동물 같은 것은 기껏 무슨 몇 만 년 정도 밖에 안 됩니다.
동물이나 사람의 역사는 뭐 한, 사람 요즘 무슨 유골 같은 거 발견해가지고 한 2만 년 쯤 됐다든가? 어쨌다던가? 그런데 경전 상에 이야기되고 있는 과거 부처님, 연등 부처님만 하더라도 지구보다 더 오랜 세월 전입니다.
만약에 그걸 현상적으로 우리가 따지자면은, 계산하자면 그래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대승적으로 좀 툭 터지게 이해를 해야됩니다.
대승경전에서 많은 부처님을 이야기하고 하는 것은 이거,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가 이해하고, 그 뜻에 감동을 해야지, 나도 옛날에 이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정~말 실지로 수억 만 년 전에 연등부처님이 계셨고, 그때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로 거기서 보리심을 발했고 거기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고 그래서 수기를 받았다.
어떤 실재했던 역사적인 사실로 그렇게 곧이곧대로 믿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 부처님은 자유자재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를 깨우치도록 하기 위해서, 없는, 오지도 않는 호랑이, 부모도 한 번도 호랑이 본 적도 없는데‘밖에 호랑이 왔다’ 하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철든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그렇게 다룹니다.
(如來가 於燃燈佛所에)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아
여래 어연등불소 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어떤 법이 있어가지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최상의 깨달음]를 얻었는가?
하니까 수보리가 뭐라고?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我解佛所說義컨댄
불야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아무튼, 연등부처님께 수기를 받았고 보리를 얻었는데, 이제 여기 저 수보리 말이,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뜻이 아니고, 금강경의 뜻에 비추어 봤을 때, 그랬을 때
不也(불야)니이다 世尊(세존)이시여! 이런 뜻입니다.
如我解佛所說義(여아해불소설의)컨댄,
내가 부처님이 설하신 바 뜻을 이해하기로는,
佛이 於燃燈佛所에 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이다,
불 어연등불소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최상의 깨달음)를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일은.
그러니까 금강경의 이치는 ‘즉비’의 논리니까 ‘있다’라고 하면은 벌써 그건 걸리고 , 있지만 또한 곧 그것은 곧 없는 이치다.
그런 관점에서 하는 말이죠. 그러니까 부처님이 인가를 하죠.
佛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다
불언 여시여시
‘ 如是如是(여시여시)’,
佛言(불언)하사대 如是如是(여시여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러하니라, 수보리야!)
須菩提야 實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 실무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수보리야!
고정된 법이,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가지고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 말이야. 꼭 집어서 요것이다, 라고 고정불변하는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수보리
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燃燈佛이 卽不與我授記하사대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인댄,
만약에 고정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면은,
燃燈佛(연등불)이 卽不與我授記(즉불여아수기)하사대,
부처님께서 곧 나에게 수기를 주시되,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호대 號를 釋迦牟尼어니와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汝於來世(여어래세)에 當得作佛(당득작불)하리라, 그대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다, 라고 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不與(불여)’, 그러한 수기를 주지 아니했을 것이다. 이런 말이야.
號(호)를 釋迦牟尼(석가모니)어니와
호를 석가모니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일새 是故로 燃燈佛이 與我授記하사
이실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실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일새,
실로 고정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없기 때문에,
是故(시고)로 燃燈佛(연등불)이 與我授記(여아수기)하사
그런 고로 연등불이 與我授記(여아수기)하사, 나에게 수기하사,
作是言하사대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야 號를 釋迦牟尼라하시니
작시언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라
作是言(작시언)하사대, 이러한 말씀을 하시기를,
汝於來世(여어래세)에 當得作佛(당득작불)하야,
그대가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지어서
號(호)를 釋迦牟尼(석가모니라)라하시니,
호를 석가모니불이라고 했다. 이런 말을 했다 이거야.
내가 만약에 법이 있어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깨달음을 얻었다면은 그렇게 수기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여기 대승경전은요, 뭐 화엄경, 금강경, 유마경, 법화경... 막 왔다갔다해요, 내용이. 여기 있는 내용이 저 쪽에도 있고, 저쪽에 있는 내용이 이쪽에도 있고, 그러면서 또 그 경만의 어떤 독특한 그런 그 의미와 맛을 또 표현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수기’란 말, 이건 이제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가 법화경인데, 법화경을 일명 ‘수기경’이라 할 정도로 ‘유학무학인기품’ 도 ‘수기품’, ‘오백제자수기품’, 그 수기란 말이 들어있는 품이 몇 개가 있어요. 이십팔품 중에 몇 개가 있습니다. ‘수기’라고 하는 이름이 들어있지 않는데도 수기를 내리는 이야기는 또 곳곳에 있습니다. 저기 제바달다품도 결국은 수기 주는 이야기고, 상불경보살품도 결국은 수기를 내주는 이야기입니다.
‘수기품’이라고 이름 지어진 그 품 안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저는 법화경을 일명 ‘수기품’이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뜻이냐?
내세에, 뭐 언제쯤 될지는 모르지만, 내세에 부처가 되어서 호를 뭐라고 할 것이다. 요런 형식은 법화경이나 금강경이나 똑 같애요.
그런데 이 속 뜻은 뭔고 하니, 속 뜻은 뭔고 하니,
‘그대로 부처님이다’하는 뜻입니다. ‘그대로 부처님이다’.
현재, 현재‘그대로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뜻을 우회해서, 우회해서 그동안 부처님을 얼마나 친견하고, 또 수행을 얼마나 한 뒤에, 얼마만한 세월이 흐른 뒤에 그때 부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무엇이라고 하는 나라, 또 부처가 되면 부처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고, 아주 뭐 본 듯이 구체적으로 그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속뜻은 뭔가하니 ‘지금 그대로 부처님입니다’하는 뜻입니다. ‘지금 그대로 부처’란 뜻이에요.
그 외에 달리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러한 내용은 또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게 되면 하기로 하고요, 아무튼 여기는 무아, 또 무법, 결국은 실무유법, 이것이 이제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금강경의 사상이 바로 그 점이기 때문에, 수기의 문제도 말하자면 무상, 무상으로 위종한다 그랬죠?
무상의 이치로 말하자면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1. (十三, 斷無因則無佛法疑)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若有人이 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약유인 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수보리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니
실무유법불득아뇩다삼먁삼보리
須菩提야
수보리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하니라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무허
是故로 如來가 說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하노니
시고 여래 설일체법 개시불법
須菩提야
수보리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須菩提야
수보리
譬如人身長大하니라
비여인신장대
須菩提가 言하사대
수보리 언
世尊하
세존
如來가 說人身長大가 卽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이다
여래 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何以故(하이고)오 如來者(여래자)는 卽諸法如義(즉제법여의)니라
좋은 말이죠.
늘 우리는 뭐 여래라고 했든지 뭐 ‘佛(불)’이라고 했든지, 뭐 ‘世尊(세존)’이라고 했든지, 부처님을 지칭하는 뭐‘大雄(대웅)’이라고 했든지, 무슨 뭐 별별 표현이 있죠.
그런데 항상 우리는 相見衆生(상견중생), 어떤 형상을 머리에 그리기를 좋아하는 중생이라. 구체적인 형상을 머리에 그리기를 좋아하는 중생이기 때문에, 여래라고 하더라도 여래를 무슨 역사적인 부처님 비슷~하게 그렇게 마음속에 그리고 있어요.
그거 깨져야 돼요, 사실은.
뭐라고? ‘如來者(여래자)는 諸法如義(제법여의)’라고 했잖아.
모든 존재가 여여하다고 하는 의미다! 진리를 뜻하는 거예요. 여래는!
어떤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그러면,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徧智),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 이렇게 했을 때도 그 ‘여래’가 들어가는데,
그 如來十號(여래십호) 중에서도 如來(여래)가 처음이야!
진리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역사적인 표현이지마는, 그,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뭐 이 세상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래, ‘如來者(여래자)는 諸法如義(제법여의)’라! 참 이점이 이제 우리가 어떤 그 여래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런 그 상식을, 어떤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주는 그런 말이에요. 참 무서운 표현입니다.
‘諸法如義(제법여의)’다!
모든 존재, 낱낱 頭頭物物(두두물물)이 본래 진리 그 자체로 존재한다, ‘如義(여의)’! 진리 그 자체로 존재해. 진리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씨앗은 씨앗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잎은 잎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가지는 가지대로, 뿌리는 뿌리대로, 전~부 그대로 진리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쌀’을 뭐 늘 염두에 두죠. ‘겨’는 뭐 아무것도 아닌 양 봅니다.
사람 중심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겨’가 없이 ‘쌀’이 어디 있어요?
어찌 보면 ‘겨’가 더 중요해. 뭐, 표현하자면 ‘겨’가 더 중요해 사실은.
겨 없이 ‘쌀’이 존재하지 아니해.
‘뿌리’는 어떻습니까? ‘뿌리’는. 겨뿌리는. ‘뿌리’ 없이 쌀이 존재하며, ‘겨’가 존재하며, ‘잎’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존재가 제법이, 그대~로,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진리다.
‘如義(여의)’, 진리다, 라고 하는 그런 뜻이다.
그게 여래라는 거죠.
若有人이 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약유인 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若有人(약유인)이, (만약 어떤 사람이)
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하면
여래가 깨달음을 얻었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 라고하면
須菩提야
수보리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니
실무유법불득아뇩다삼먁삼보리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실무유법불득아뇩다삼먁삼보리)니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말이야.
須菩提야
수보리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하니라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무허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여래가 얻은 바[如來所得(여래소득)],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최상의 깨달음, 아뇩다삼먁삼보리, 성도, 成道節(성도절)주1)에 맞춰서 우리가 뭐 범종을 울려라, 행사도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데, 바로 그 성도입니다.
등 아뇩다삼먁삼보리는,
於是中(어시중)에 無實無虛(무실무허)하니라, 이거 아주 명구입니다.
‘無實無虛(무실무허)’!
여기에서, ‘是中(시중)에’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無實無虛(무실무허)’다!
실다운 것도 없고, 허망한 것도 없다! 헛된 것도 없다 말이여.
무엇이 부처님의 깨달음이냐?
없다고도 할 수가 없고, 있다고도 할 수가 없어.
있다고 하면은 부처님의 뜻에 어긋나.
없다고 할라니까 우리가 목숨 바쳐서 이 깨달음에 이르러가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이 우리의 삶은 무엇이냐 말이야.
저 앞에서 무득무설, 무득무설분[第七 無得無說分(7. 무득무설분)](참고) 있었죠?
부처님의 재산 두 가지,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설명한 설법이다, 이 말이여.
아뇩다삼먁삼보리를 얻은 것과, 그 내용을 설법하신 내용이 ‘득과 설’이것이 부처님의 재산 두 가지인데, 여기서도 말하자면은 ‘無實無虛(무실무허)’라고 했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 거기는 아예 ‘무득무설’, 얻음도 없고 설함도 없다 아예, 아예 그래버렸는데, 여기는 그래도 ‘無虛(무허)’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참고)
第七 無得無說分 무득무설분
제7. 얻음도 없고 설함도 없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아 如來가 有所說法耶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 유소설법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는가?
또 여래가 설법(說法)한 바가 있는가?”
須菩提가 言하사대 如我解佛所說義컨댄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며
수보리 언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亦無有定法如來可說이니이다
역무유정법여래가설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고정된 그 무엇으로써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 또한 고정된 그 무엇으로써 여래께서 설법한신 것은 없습니다.
何以故오 如來所說法은 皆不可取며 不可說이며 非法이며 非非法이니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왜냐하면 여래의 설법은 모두가 취할 수가 없으며, 말 할 수도 없으며, 옳은 법이 아니며, 그른 법도 아닙니다.
所以者가 何오 一切賢聖이 皆以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이니이다
소이자 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왜냐하면 일체 성현(聖賢)들은 모두가 조작이 없고 꾸밈이 없는[無爲(무위)] 법으로써 온갖 차별을 꾸며서 펼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무비스님 금강경 <第七 無得無說分(제칠 무득무설분)>
‘無實(무실)’이면서 또한 ‘無虛(무허)’다!
참, 의미심장합니다. 그래서,
‘수보리야! 是經(시경)은 義(의)도 不可思議(불가사의)며 果報(과보)도 亦不可思議(역불가사의)니라!’ 그랬죠.[第十六 能淨業障分(16. 능정업장분](참고)
(참고)
第十六 能淨業障分
제십육 능정업장분
須菩提야 當知是經은 義도 不可思議며 果報도 亦不可思議니라
수보리 당지시경 의 불가사의 과보 역불가사의
그 다음에 또 참~! 정말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또 명구가 또 나오는데,
是故로 如來가 說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하노니
시고 여래 설일체법 개시불법
是故(시고)로 如來(여래) 說(설)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
난 금강경 책을 선물할 때, 이 구절을 써줍니다.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이다! 하~!
‘如來(여래)는 諸法如義(제법여의)’그랬어요. ‘諸法(제법)’,‘모든 존재’, ‘諸法(제법)’하면 ‘모든 존재’입니다. 가르침? 이 아니에요, 거기는.
‘모든 존재’입니다.
내가 뭐 ‘벼’를 예를 들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여기 ‘一切法(일체법)’도 그렇습니다. ‘모든 존재’예요. ‘皆是佛法(개시불법)’이다, 모두가 불법이다.
아, 정말 가슴 툭 터지는 일이고, 그동안 하~ 우리가 설정해놓고, 그동안 배워오고, 거기에 기준 삼아서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되느니, 안 되느니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우리가 갈등하면서 살았습니까? 이거는 불법이다, 이거는 불법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이다,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비법이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 부처님 법대로 살자, 뭐, 그거는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다 하면서 뭘 부처님 법대로 살아. 부처님 법 아닌 게 없는데. 금강경에 오면은 봉암사에서 우리가 부처님 법대로 살자!
지금부터 60여년 전에 그 결사했던 그 결사를 아주 높이 우리가 받드는데, 그것도 그냥 한방에 깨지는 거야. 일체법이 개시불법인데 뭘 부처님법대로 살자는 거야.
부처님 법 아닌 게 있어야지.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이 말 한 마디만 건져도요, 금강경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정말 나는 금강경에 감동하는 구절이 많지마는, 특히 이 구절에 많이 감동합니다.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이다.
그렇다고 어디 뭐 마음대로 살아란 뜻입니까?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이라고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정~말 여법하게 제대로 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법한, 그런 어떤 그 원칙대로 제대로 살 줄 알아요. 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말씀은 우리가 참, 마음을 기울여서, 정말 穿鑿(천착)주2), 천착하고, 또 천착하고, 씹고, 씹고, 또 곱씹고, 뭐 우리의 한계는 거기니까. 곱씹고, 곱씹다 보면은 참~! 기가 막힌 도리를 알게 되고 또 그 맛을 느끼게 됩니다.
청량국사 같은 이들은 화엄경을 척~ 보다가 ‘아! 得其死所(득기사소)라, 내 죽을 곳을 얻었구나!’ 아~! 얼마나 근사한 표현입니까? 내 죽을 곳을, 화엄경이, 화엄경이 내 무덤이다 말이야. 그래서 그 ‘豈無慶躍(기무경약)’주3) 하~ 얼마나 경사스럽고 환희스러운 일이 아닌가! 거기에 그 주석을 달기를 ‘ 得其死所(득기사소)’라, 내 죽을 곳을 이 화엄경에서 얻었다! 정말 불법 만나서 자기 죽을 곳을 얻어야 돼요. 아! 바로 이 자리구나! 아! 여기에 내가 목숨을 건다면은 정말 여한 없다 말이야.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이 위대한 가르침에 내가 목숨을 거는데, 다시 이 목숨, 이보다 더 소중하게 값지게 쓸 곳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소중하게 쓸 곳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야.
어차피 가는 인생이고, 한계가 있는 인생인데.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 참! 근사한 말이죠! 불법 아니라고, 아닌 것을 너~무 우리가 생각해 왔던 역사이기에 그래서 이런 말을 만나면 뭐 정말 속 시원하고 기쁘고 그럴 수 없이 좋습니다.
그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하면, 또 이게 집착하기 좋아하는 중생들은 덥석 무는 거야. 덥석.
금강경의 안목에서 보면 이 문제가 또 이제 큰 함정이 되는 거야, 큰 함정이 돼.
돌을 던지면 사람을 물 줄 모르고는 그냥 돌이 뭐 먹을 것인냥 쫒아가는 중생들의 속성. 그래서 그것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부처님이 뭐라고?
須菩提야
수보리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所言一切法者(소언일체법자)는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이다!
이래 버렸잖아요. ‘즉비’또 나왔습니다. ‘즉비’! 그래 금강경을 ‘즉비경’이라 해야된다니까! (일동 웃음)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일새,
一切法(일체법)이 곧 非一切法(비일체법)일새,
그래서, 그 돌덩이 던진다고 거기 가서 물지마라, 하고 아주 막 뒤꽁무니를 사정없이 차 버리는 거야. 부처님이 그런 분이라. 우리가 그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라고 하니까 그 좋다고 그냥 킁킁 대면서 뭐 먹을 것인냥 쫒아가니까 부처님이 있다가 뒤에서 그냥 꽁무니를 사정없이 차 버리는 거야.
그거 먹을 거 아니다, 말이야.
所言一切法者(소언일체법자)는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일새, 와! 참,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라고 했는데 그 좋다고 내가 설명을 했는데, 아니네요, 결국은. (일동웃음)
所言一切法者(소언일체법자)는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일새, 아, 정말 참, 이거, 부처님만이 이런 말씀 하실 수 있지 누가 이런, 이런 교설이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어느 철학, 어느 종교에 이런 말이 있어요?
是故(시고)로 名一切法(명일체법)이니라
(그러므로 그 이름이 일체법이니라!)
須菩提야
수보리
譬如人身長大하니라
비여인신장대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譬如人身長大(비여인신장대)하니라, 그래버렸네요.
저 앞에서 ‘인신이 장대하기가 수미산만하다’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죠. ‘수미산만하다’하는[莊嚴淨土分(장엄정토분)(참고)], 그걸 그대로 복습하는 이야기라니까.
(참고)
第十 莊嚴淨土分
제십 장엄정토분
제10. 세상을 장엄하다
佛告須菩提하사대 於意云何오
불고수보리 어의운하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如來가 昔在燃燈佛所하야 於法에 有所得不아
여래 석재연등불소 어법 유소득부
여래가 옛적에 연등(燃燈)부처님 처소에서 법(法)에 대하여 무엇을 얻은 것이 있는가?”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불야 세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如來가 在燃燈佛所하사 於法에 實無所得이니다
여래 재연등불소 어법 실무소득
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 처소에 계실 적에 법에 대하여 실로 얻은 것이 없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菩薩이 莊嚴佛土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 장엄불토부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살이 세상을 장엄(莊嚴)하는가?”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불야 세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何以故오 莊嚴佛土者는 則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다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왜냐하면 보살이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며,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是故로 須菩提야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生淸淨心이니
시고 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생청정심
“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텅 빈[淸淨] 마음을 낼지니라.
不應住色生心하며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요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반드시 사물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반드시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그 외의 어떤 것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지니라.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니라
응무소주 이생기심
그래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而生其心]
須菩提야 譬如有人이 身如須彌山王하면 於意云何오 是身이 爲大不아
수보리 비여유인 신여수미산왕 어의운하 시신 위대부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만하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몸을 크다고 하겠는가?”
須菩提가 言하사대 甚大니이다 世尊이시여
수보리 언 심대 세존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아주 큽니다, 세존이시여!
何以故오 佛說非身이 是名大身이니다
하이고 불설비신 시명대신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몸이 아니며, 그 이름이 큰 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무비스님 금강경 <第十 莊嚴淨土分 (제십 장엄정토분)>
‘수미산만하다’라고 하는, 그런, 당치도 않는 그런 표현을 했잖아요. 그 당치도 않는 그런 그 수미산만한 크기의 인신이 있다, 사람 몸이 있다 라고 하자.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당치도 않는 것과 같은, 수미산 만한 몸뚱이, 그와 같은 것이다.
뭐가?
‘一切法(일체법)이 非一切法(비일체법)일새,
是故(시고)로 名一切法(명일체법)다!’이 이름이 일체법이다!
일체법이라고 하는 것은, 인신 장대가 마치 수미산 만한 몸이 있다, 라고 하는 그런 엉터리 같은, 당치도 않는,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비유, 그런 비유와 똑 같은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 연관시켜서 생각하면 전부 착 연결이 되고 꿰어져요.
須菩提가 言하사대
수보리 언
須菩提(수보리)가 言(언)하사대, 수보리가 말씀 아뢰되
世尊하
세존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如來가 說人身長大가 卽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이다
여래 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여기도 ‘卽非(즉비)’가 나오네요. ‘卽爲非大身(즉위비대신)’, ‘人身長大(인신장대)’, 비유를 들어서 한 이야기지만 무슨 세상에 수미산만한 몸뚱이가 있단 말이야. 그건 뭐 어쩌다가 비유를 엉터리 비유를 할라니까 그런 말을 했을 뿐이지,
卽爲非大身(즉위비대신)이죠, 是名大身(시명대신)이다.
말하자니 그런 비유를 들어서 한번 수미산만한 몸뚱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랬습니다.
(十四, 斷無人度生嚴土疑)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수보리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아당멸도무량중생 즉불명보살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無有法名爲菩薩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명위보살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노라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인무중생무수자
須菩提야 若菩薩이 作是言호대 我當莊嚴佛土라하면 是不名菩薩이니
수보리야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何以故오 如來가 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須菩提야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는 如來가 說名眞是菩薩이니라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 설명진시보살
須菩提야
수보리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무량중생 즉불명보살
菩薩(보살)도 亦如是(역여시)하야 若作是言(약작시언)호대,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이런 말을 하되,
我當滅度無量衆生(아당멸도무량중생)이라하면,
내가 마땅히 무량중생을 제도했다고 한다면은,
卽不名菩薩(즉불명보살)이니, 곧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가 없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하이고 수보리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야, 왜냐하면 수보리야!
實無有法名爲菩薩이니라
실무유법명위보살
實無有法名爲菩薩(실무유법명위보살)이니,
여기 이제 보살이 없다! 이 말입니다. 우리야 뭐 보살은 어떤 것이다, 라고 대승경전에서 무수히 나오죠. 實無有法名爲菩薩(실무유법명위보살),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보살은 이래야 된다, 뭐, 상구보리 하화중생, 뭐 보살에 대한 원칙이 얼마나 많습니까? 화엄경 같은데에는 뭐 수십 장이 나와요.
그런데 實無有法名爲菩薩(실무유법명위보살)이야. 어떤 고정된 법을 딱 세워놓고 이것을 이름하야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말이야.
그러니까, 처음에, ‘일체법이 개시불법’,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말이야.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 그래놓고, 보살도, 너거 참 좋아하는 보살도, 또한 그와 같다.
보살이 뭐라고? 즉 ‘卽不名菩薩(즉불명보살)’이다, ‘是名菩薩(시명보살)’이다!
‘實無有法名爲菩薩(실무유법명위보살)’이다!
보살에 대한 개념도 완전히 깨버리는 거예요. 보살에 대한 개념!
그러니까 금강경에서 열거한 개념들을 낱낱이 적어나가보면,
저 앞에서 뭐 ‘미진’이 있었죠. 그 다음에 ‘세계’가 있었죠. 그 다음에 ‘보살’이 있었죠. ‘장엄불토’, 또 나옵니다만, ‘장엄불토’의 문제가 있었죠. 뭐 많았습니다.
불교의 중요한 명제들, 중요한 개념들, 그 개념들을 금강경에 와서 사정없이 낱낱이 깨부셔버리고, 없애버리는, 우리들 머릿속에서 우리의 저~기 아뢰야식에서 전부 포맷해버리는, 싹 지워버리는, 완전히 포맷해버리는 게 금강경이에요.
‘보살’도 여기서 포맷해버리는 거예요. 싹 지워버려. 없어. 응.
대개 포맷을 잘 해도 해커들은 다 또 찾아내요, 요즘. 얼마나 뛰어난지.(일동 웃음)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노라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인무중생무수자
是故(시고)로, 그런 까닭에,
佛說一切法(불설일체법)이다,
여기 이제 최종 정리예요. 뭐 앞으로 또 이야기합니다마는, 지금까지 온갖 개념들, 온갖 명제들, ‘一切法(일체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무아인무중생무수자)’니라. 그러니까 일체법이 諸法無我(제법무아)주4)예요, 제법무아! 제법무아라고 보면 됩니다.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 하노라.
싹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뭘 하나 배우고, 그~ 노력해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고 하는 그런 과정이 참 좋은데, 불법의 그 안목에서 보면은 그런 것들이 또 하나의 어떤 흔적으로, 상으로, 금강경의 입장에서 보면 상으로 또 그게 남아 있단 말이야. 상으로 남아있어.
그러니까 이런 것을 우리는 뭐 끊임없이 읊조리면서, 공부하고, 기도하고, 참선하고 하지마는, 그래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뭐, 세속에서 이런 말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하고 마구 무턱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뭐 지식 좀 있고, 돈 좀 있고, 경력 좀 있고 한 사람들의 그 아상,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자기 아상이 무너지면 죽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못 배기는 거예요. 허상이야! 아~무것도 아닌 그 허상에 짓눌려가지고 자살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거라.
그 모두가 허상이거든, 사실은.
그 허상인 것을 이 금강경에서 완전히 허상으로 이해시켜주는 거야, 우리에게는. 그런데 그런 소리라도 자꾸 접하는 사람은 뭐 그런 대로 ‘아,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제법이 무상이라고 하고 제법이 무아라고 했는데, 본래 그런데...’ 가슴이 쓰리지마는, 그래도 그런 중얼거림이라도 있죠.
그런데 그런 소리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못 견디는 거죠. 자살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거야.
[是故(시고)로, 佛說一切法(불설일체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무아인무중생무수자)라하노라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일체법이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다.’고 하느니라. 또는‘일체법이 諸法無我(제법무아)’라고 하느니라.]
須菩提야
수보리야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菩薩이 作是言호대 我當莊嚴佛土라하면 是不名菩薩이니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若菩薩(약보살)이 作是言(작시언)호대,
我當莊嚴佛土(아당장엄불토)라하면, 내가 마땅히 불토를 장엄한다, 라고 하면은
是不名菩薩(시불명보살)이니, 그렇죠. 저 앞에서 장엄불토에 있었죠.
‘菩薩(보살)이 莊嚴佛土不(장엄불토부)아’라고 해서,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는 거야.[第十 莊嚴淨土分 (10. 장엄정토분)](참고)
(참고)
第十 莊嚴淨土分
제십 장엄정토분
제10. 세상을 장엄하다
佛告須菩提하사대 於意云何오
불고수보리 어의운하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如來가 昔在燃燈佛所하야 於法에 有所得不아
여래 석재연등불소 어법 유소득부
여래가 옛적에 연등(燃燈)부처님 처소에서 법(法)에 대하여 무엇을 얻은 것이 있는가?”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불야 세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如來가 在燃燈佛所하사 於法에 實無所得이니다
여래 재연등불소 어법 실무소득
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 처소에 계실 적에 법에 대하여 실로 얻은 것이 없습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菩薩이 莊嚴佛土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 장엄불토부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살이 세상을 장엄(莊嚴)하는가?”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불야 세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何以故오 莊嚴佛土者는 則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다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왜냐하면 보살이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며,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是故로 須菩提야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生淸淨心이니
시고 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생청정심
“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텅 빈[淸淨] 마음을 낼지니라.
不應住色生心하며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요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반드시 사물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반드시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그 외의 어떤 것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지니라.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니라
응무소주 이생기심
그래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而生其心]
무비스님 금강경 <第十 莊嚴淨土分 (제십 장엄정토분)> 중 일부
훌륭한 사람이 세상을 장엄하는 거라. 부산에, 여러 스님들, 훌륭한 스님들이 있음으로 해서 부산 불교를 장엄하는 거야. 또 세속적으로 보면은, 세속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있으면은 부산이 높아지고, 한국에도 유명한 무슨 과학자나, 철학자나, 의사나, 뭐 발명가나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한국 위상 높아지잖아요.
사람이 국토를 장엄하는 거예요. 본래 그게 상식이라.
그래서 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마는, ‘我當莊嚴佛土(아당장엄불토)’ 보살이 말하기를 훌륭한 사람이 있어서 ‘내가 뭐 부산을 장엄한다, 아니면 우리나라를 빛낸다’라고 하면은 ‘是不名菩薩(시불명보살)이라’이는 보살이 아니다.
何以故오
하이고
何以故(하이고)오, (왜 그런가 하면)
如來가 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이다
여래 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如來(여래)가 說莊嚴佛土者(설장엄불토자)는,
(왜냐하면, 여래가 말하는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卽非莊嚴(즉비장엄)일새 是名莊嚴(시명장엄)이니이다,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비교
何以故오 莊嚴佛土者는 則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다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왜냐하면 보살이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며,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第十 莊嚴淨土分(10.장엄정토분)>
저 앞에서 나왔던 그대로입니다. 장엄정토분에 나왔던 그대로 복습이에요.
즉비장엄, 시명장엄.
須菩提야
수보리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는 如來가 說名眞是菩薩이니라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 설명진시보살
若菩薩(약보살)이 通達無我法者(통달무아법자)는,
무아법을 통달한 사람이라면
如來(여래)가 說名眞是菩薩(설명진시보살)이니라,
진짜 보살이라고 내가 말하겠다 말이야.
무아법을 통달해야 내가 진짜 보살이라고 내가 인가하겠다. 진짜 보살이라고 인가하겠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 무아법 통달한 사람이 뭐 진짜 보살이라 하든, 가짜 보살이라 하든, 이미 그 사람 마음에는 부처님도 없고, 보살도 없고, 진짜 보살도 없고 가짜 보살도 없어.
그 내가, 이 시대의 부처님이라고, 이 시대의 관세음보살이라고 존경하는 證嚴(증엄)스님주5), 교회를 몇 개를 지어줬잖아요. 교회를 거기 가가지고 찍어 가지고, 염화실 카페에다 올려놨어. 내가 그걸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나도 과거에 여러 번 기사를 통해서 들었거든. 그런데 어떤 거사가 거기 가가지고 그걸 직접 교회 지어준 걸, 증엄스님이 지어 준 걸 사진을 찍고, 또 그 마을을, 전체 1,000가구를 지었어. 1,000가구를 지은 그 마을을 사진을 찍어서 올려놓고, 일일이 가서 돈 들여서 답사를 해가지고 그걸 사진으로 올리고 기록을 해놨어요. 사실이라. 교회를 몇 개를 지어줬어. 그, 그 사람에게, 그 증엄스님에게 무슨 기독교인이 있고, 무슨 불교인이 있어요? 그저 고생하는 중생이 있을 뿐이야.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그 사람 눈에는 무슨 기독교인다, 불교인이다, 이런 게 없어. 대단한 부처님 아닙니까? 이 시대에 우리하고 같이 호흡하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야.
우리는 경전에나 그런 사람 봤지, 실지로 이 역사에 시대를 함께 호흡하고 하는 사람, 정말 살아있는 부처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증엄스님, 아니면 자제공덕회, 그 한번 인터넷에서 검색해봐요.
그 자료가 수 백가지가 그냥 좌악 쏟아집니다. 여기에 이제 뭐 진짜 보살이다, 라고 이렇게 했는데 정말 무아상, 무아가 된 사람에게는 진짜 보살, 가짜 보살, 아~무 관심없어. 부처님이 진짜보살이라 하든, 진보살이라 하든, 가보살이라 하든, 이 사람인데(에게)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런 소리가.
그쯤 돼야 된다고요. 그래, 이제 증엄스님같은 이들은 참, 이런 데 해당되겠죠. 충분히.
우리는 경전에서만 보다가 실지 살아있는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정말 불교가 위대한 거죠.
잠깐 쉬었다 하겠습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十七 究竟無我分(구경무아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十七 究竟無我分
제십칠 구경무아분
제17. 철저히 아(我)가 없다
(十一, 斷住修降伏是我疑)
爾時에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이시 수보리 백불언
그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世尊하 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는 云何應住며 云何降伏其心하리잇고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세존이시여! 선남자․선녀인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어떻게 머물며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합니까?”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若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當生如是心이니
불 고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당생여시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반드시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한다.
我應滅度一切衆生호리라 滅度一切衆生已하야는 而無有一衆生도 實滅度者니라
아응멸도일체중생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나는 반드시 일체 중생들을 다 제도하노라. 그리고 일체 중생들을 다 제도하였으나 한 중생도 실은 제도한 것이 없노라.’라고 하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則非菩薩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상과 남이라는 상과 중생이라는 상과 수명에 대한 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所以者가 何오 (須菩提)야 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니라
소이자 하 수보리 실무유법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十二, 斷佛因是有菩薩疑)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於燃燈佛所에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소 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佛이 於燃燈佛所에 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이다
여아해불소설의 불 어연등불소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佛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다 須菩提야 實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불언 여시여시 수보리 실무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러하니라, 수보리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須菩提야 若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燃燈佛이 卽不與我授記하사대
수보리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호대 號를 釋迦牟尼어니와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수보리야! 만약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면, 연등부처님께서는 결코 나에게 ‘그대는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를 이루고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라는 수기(授記)를 주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일새 是故로 燃燈佛이 與我授記하사 作是言하사대
이실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그래서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를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야 號를 釋迦牟尼라하시니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 석가모니
‘그대는 이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고 하리라.’라고 하셨느니라.
(十三, 斷無因則無佛法疑)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왜냐하면 여래(如來)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법이 여여(如如)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니라.
若有人이 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須菩提야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니
약유인 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실무유법불득아뇩다삼먁삼보리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하더라도 수보리야! 실로 고정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須菩提야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하니라
수보리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무허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최상의 깨달음은 여기에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無實無虛(무실무허)].
是故로 如來가 說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하노니
시고 여래 설일체법 개시불법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일체법이 모두 다 불법(佛法)이다[一切法 皆是佛法].’라고 하느니라.
須菩提야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야! 이른바 일체법이라는 것은 곧 일체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일체법이니라.
須菩提야 譬如人身長大하니라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이 아주 큰 것과 같으니라.”
須菩提가 言하사대
수보리 언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世尊하 如來가 說人身長大가 卽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이다
세존 여래 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아주 크다는 것도 곧 큰 몸이 아니고 그 이름이 큰 몸일 뿐입니다.”
(十四, 斷無人度生嚴土疑)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수보리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무량중생 즉불명보살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야 하나니, 만약 ‘나는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노라.’고 말한다면 이는 곧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無有法名爲菩薩이니라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명위보살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이를 보살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노라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인무중생무수자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일체법이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다.’고 하느니라.
須菩提야 若菩薩이 作是言호대 我當莊嚴佛土라하면 是不名菩薩이니
수보리야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세상을 장엄하노라.’라고 한다면 이는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何以故오 如來가 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이다
하이고 여래 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왜냐하면, 여래가 말하는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는 如來가 說名眞是菩薩이니라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 설명진시보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무아(無我)의 이치를 통달하였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진정한 보살’이라고 이름하나니라.”
成道節(성도절)주1)
출처 무비스님 법문 중
불교 4대 명절 중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정각)을 이룬 날을 기리는 절기.
불교 4대 명절(경절)
석가모니부처님 오신날[탄신일](음력 4월8일)
석가모니부처님 출가날[출가절](음력 2월8일)
석가모니부처님 정각날[성도절](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부처님 열반날[열반절](음력 2월 15일)
성도
출처 무비스님 화엄경 강의 제9강-1 (大方廣佛華嚴經 왕복서 9)
기록 화풍정 http://cafe.daum.net/yumhwasil/KPx6/25
그렇다면『화엄경』은 말하자면은 처음 깨닫고 나서 삼칠일 동안 그래『화엄경』이 21일동안 설해졌다 그러거든요. 우리가 지금 공부한지가 벌써 얼마입니까? 또 만일결사를 하고『화엄경』을 공부할려고 하는 판인데, 이걸 21일동안만에 설해졌다 이러고 있는거여. 그건 무슨 뜻인고 하면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6년고행 끝에 일주일간 보리수 아래서 아주 훌륭한 삼매에 드셨거든요. 정말 제대로 선정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정이 끝나자마자 새벽별을 보고 깨달았는데, 그 깨닫고 나서 삼칠일 동안, 삼칠에 21일동안을 말하자면은‘내 깨달음이 이게 확실한가?’다시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검토하고 그리고는 또 그 당신의 깨달음의 어떤 법희선열(法喜禪悅)에 젖어서 기쁨을 누리고 또 맛을 보고 느끼고 이러면서 거닐고 그러면서 또 다시 검토하고, 당신의 깨달음 이게 철두철미하게 우주 삼라만상의 진리를 철저히 깨달았는가를 또 검토하고, 이러한 기간이 삼칠일 동안이라.
우리가 기도를 해도 삼칠일 동안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뭐든지 진언(眞言)도 삼칠편 해놨거든요. 무슨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세 번 아니면 일곱 번 외워라’그렇게 돼있다구요. 그래 보면은 염불책에 보면은‘삼칠 편을 해라’이래놨어. 그래 세 번 아니면 일곱 번 이런 식으로 돼있다구요. 그게 이제 전부 부처님께서 21일동안 그 깨달음을 가지고 검토하고 또 법희선열에 젖어있고 하는 그런 그 과정을 삼칠일 동안이다 이렇게 보는거요. 그 과정동안에 부처님의 정신세계, 깨달음 속에서 노니는 그 정신세계를 고대로 표현해놓은 것이다 라고 이렇게 보는 것이『화엄경』입니다. 거기다 고 삼칠일 동안에 초점을 맞춰서 결집된 경전이『화엄경』이에요. 아주 후대에 결집됐지마는 후대에 결집했어도 고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속에, 깨달음의 정신세계속에서 노니는 그 삼칠일 동안의 내용에다가 초점을 맞춰서『화엄경』이 성립됐다 하는 것입니다.
穿鑿(천착)주2)
깊이 살펴 연구하다, 깊이 살펴 연구함
豈無慶躍(기무경약)주3)
출처 무비스님 화엄경 강의자료 중 http://cafe.daum.net/yumhwasil/Gnl2/73
기록 釋대원성 http://cafe.daum.net/yumhwasil/Gnl1/47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 6 (제13강, 11년 3월 7일)
대방광불화엄경 왕복서
唐 清涼山 大華嚴寺沙門 澄觀(淸涼國師)撰
당 청량산 대화엄사사문 징관(청량국사)찬
제8門, 광대하고 깊음을 결론지어 찬탄하다[結歎宏遠]
真可謂常恒之妙說이며 通方之洪規며 稱性之極談이며 一乘之要軌也로다
진가위상항지묘설 통방지홍규 칭성지극담 일승지요궤야
참으로 항상하는 미묘한 설법이며, 시방에 통하는 드넓은 법규며, 성품에 칭합하는 지극한 말씀이며, 일승의 요긴한 궤범이로다.
尋斯玄旨하고 卻覽餘經하면 其猶杲日麗天에 奪眾景之耀요 須彌橫海에 落群峰之高로다
심사현지 각람여경 기유고일려천 탈중경지요 수미횡해 낙군봉지고
이 현묘한 뜻을 찾고 나서 다시 다른 경전을 보니 마치 떠오르는 태양이 하늘에서 빛남에 온갖 빛의 빛남을 다 빼앗은 것과 같고, 수미산이 바다에 가로 놓임에 온갖 봉우리의 높음도 다 떨어짐과 같도다.
제9門, 화엄경 만남을 감사하고 기뻐하다[感慶逢遇]
1, 널리 펼치게 된 근본 이유[弘闡源由]
是以로 菩薩이 搜祕於龍宮하시고 大賢이 闡揚於東夏하시니라
시이 보살 수비어용궁 대현 천량어동하
그러므로 보살이 비전을 용궁에서 찾아냈으며, 대현이 동하에 크게 드날렸다.
2, 화엄경 만난 것을 감격함을 밝히다[正明感遇]
顧惟正法之代에도 尚匿清輝러니 幸哉라 像季之時에 偶斯玄化하고 況逢聖主하며 得
고유정법지대 상닉청휘 행재 상계지시 우사현화 황봉성주 득
在靈山하야 竭思幽宗하니 豈無慶躍이리요
재영산 갈사유종 기무경약
돌아보니 정법 시대에도 오히려 맑은 빛이 숨었으니 다행하여라! 상법과 계법의 시대에 이 현묘한 교화를 만났으며, 더욱이 성주를 만났으며 영산에 있으면서 생각이 그윽한 종지에 다하였으니 어찌 경사스럽지 아니한가!
諸法無我(제법무아)주4)
諸法無我(제법무아)는 諸行無常(제행무상), 一切皆苦(일체개고), 涅槃寂靜(열반적정)과 함께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며 四法印(사법인), 一切皆苦(일체개고)를 제외한‘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삼법인(三法印)이라 한다.
證嚴(증엄)스님 주5)
출처 無比스님 <당신은 부처님> 48 /13. 증엄(證嚴) 스님 이야기
http://cafe.daum.net/yumhwasil/I6os/49
증엄(證嚴)스님 이야기
증엄 스님은 1937년 5월 4일생이다. 증엄 스님은 이 시대가 낳은 부처님이요, 관세음보살님이다. 1966년에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라는 구호단체를 만들어서 오늘도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스님이다. 스님은 보천삼무(普天三無)라는 기치를 내걸고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다.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천하에 내가 믿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마음의 번뇌와 원망, 근심을 버리고
만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허공 가득 다함이 없기를.”
평소 위와 같은 말씀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분이다. 사랑으로 세상을 윤택하게 가꾸며 살아가는 분이다. 우리는 경전에서 관음보살의 자비를 배워 알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관음보살로 살아가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증엄 스님이 바로 이 땅 이 시대에 실재하는 관음보살로 입증해 보인 분이다. 스님은 이 지구상 어디든지 재난이 일어나거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거나, 병고에 허덕이는 사람이 있거나, 온갖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구호하는 자비의 단체를 이끌고 있다.
스님은 태풍이나 폭우에 떠내려간 집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수천 채의 집을 지어주고, 심지어 교회가 없는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교회까지 지어준 분이다. 증엄 스님의 눈에는 부처인 사람만 있을 뿐 불교인도 기독교인도 따로 없다. 고통을 받는 사람부처님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고통에서 건져준다. 병고를 앓는 사람부처님이 있으면 그를 위해서 약을 주고 치료를 해 준다. 특히 병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서 큰 병원을 여러 개를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인간부처에 대한 존경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제공덕회의 사업은 크게 8대 사업으로 집약된다. 자선, 의료, 교육, 문화, 국제구호, 골수기증, 환경보전, 지역사회개발사업이 그것이다. 그들의 각 분야에서 펼치고 있는 사업의 실적들을 낱낱이 들어 소개하기로 하면 실로 끝이 없다. 이는 모두가 증엄 스님께서 처음 불교에 입문하였을 때부터 공부한 법화경이 스님에게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게 하는 인불사상(人佛思想)으로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화경의 관음보살이 곧 증엄 스님으로 세상에 연꽃을 피워낸 것이다. 실로 스님의 인간부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무량무변하며 불가사의하며 불가설 불가설이다. 한평생 불교를 믿고 불교를 공부하여 이러한 증엄 스님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스님의 자비보살행을 확연히 알게 된 것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4강 2부(2011.11.21) 마침
첫댓글 삼보에 귀의합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생활속불교에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