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공주 역사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날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잔다
칙폭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잔다
기찻길 옆 옥수수밭 옥수수는 잘도큰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큰다
오늘의 공주 역사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날로
고속철도 역사가 공주시 이인면에 만들어지고
개통식을 성대하게 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오후에는 공주 고속철 역사 개통식에 다녀왔습니다.
공주 시내권에 있지않고 이인면에 위치해 있기에
절에서 천천히 차를 운전해 가면 얼마나 걸리나를 보니
대략 이십여분 정도를 생각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그 기차를 타면 서울 용산도 한시간 내에 도착하고
광주와 목포도 역시 그렇다 하니 반겨야 할 일이지만
접근성면등에서 운영상 여러가지 우려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개막 전에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비 내리는 호남선'을 열창하더니
먹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이 떨어지기에
옆에 앉은 분과 함께 이런 날은 '쨍하고 해 뜰 날'
이라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하였는데
다행히 바람이 불어와 구름을 밀어내는 바람에
큰 어려움 없이 행사가 마쳐졌습니다.
철도 역사 116년만의 일이라 하여
축하와 기대의 목소리가 높은데
(1899년에 인천과 서울을 잇는 철도가 개설됨)
이미 공주에는 철도가 가설될 수 있었던 상황이
두번이나 지나갔음에도 무언가 인연이 안되었던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늘에사 고속철이라는 이름으로
개통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해 가면서
대상물건으로 언급된 학교와 금강철교 건설등
십여가지 가운데 철도건설 논의가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 공주사람들이 양반도시에 철도가 들어오면
동네가 어지러워지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그 대신 하수도 시설을 요구하여
공주시내 하수도 시설이 그나마 잘 된 경우라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도청이 옮겨간 1932년의 일이고
그 이전에도 자동으로 가는 전동차 형태의 철도가
조치원과 공주간을 잇도록 논의되었다고 나오는데
어찌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신문기사 참조)
그것도 1932년보다도 십여년이나 앞선 1921년의 일이니
그때에 만약 조치원에서 공주로 철도가 놓여지고
다시 논산 강경과 부여 서천 군산등으로 연결되었다면
대전으로의 도청 이전 이야기는 물 건너 갔을 것이고
공주는 상대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되었을 것인데
아쉽게도 그 연유를 알 길은 없어 보입니다.
다음은 1921년 철도 부설과 관련한 기사입니다.
공주에 철도 건설을 논의한 지
96년만에 고속철도가 개통되었으니
이용하는 승객들이 많아져서
지역 발전은 물론 전국의 교통망이
일일생활권으로 바뀌어서 국민 삶의 증진에
크나큰 기여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나도 서울을 가는 경우는 잘 몰라도
광주나 목포를 가게 되는 때에는
기차가 편리할 것으로 보여서 이용해 보려
시간표를 미리 보관해 두고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서울 용산에서 공주는 25100원이고
공주에서 광주는 21300원이며
공주에서 목포는 28200원이라고 하니
서울쪽에 계신 불자들이 공주 계룡산을 방문하고자 하면
용산에서 기차를 타고 공주역에서 내린 다음
신원사와 갑사를 왕복하는 시내버스가 있어서
평일은 2회 공휴일은 5회를 운행하고 있으며
공주역에서 공주 시내를 왕복하는 노선도 있다하니
많은 분들이 이용해 주시기를 바래봅니다.
저녁에는 대불련 법회를 보는데
학교 다니던 중 안타깝게 돌아간 법우의 아버지가
법우가 받았던 장학금을 후배들에게 전해주시고자
대전에서 오셔서 뜻깊은 행사를 하였습니다.
우리 법우들 먼저 돌아간 선배의 몫까지
더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고
법우의 아버지께 약속을 하는 아름다운 법회였습니다.
도량에도 벛꽃과 개나리 등이 피어나고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주말입니다.
두루두루 평안하시고 행복한 날이기를 빕니다.
-공주 상왕산 원효사 심우실에서-
(글:해월스님 사진:李海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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