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띵 / 김수영
신문배달아이들이 사무를 인계하는 날
제임스 띵같이 생긴 책임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풍경이
눈(雪)에 너무 비참하게 보였던지
나는 마구 짜증을 냈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것도 좋다
그 사나이는, 제임스 띵은 어이가 없어서
조그만 눈을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미소를
띄우고 섰지만
나의 고삐를 잃은 白馬에 당할 리가 없다
그와 내가 대결하고 있는 깨진 유리창문 밖에서는
新舊의 두 놈이 馬賊의 동생처럼
떨고 있다 <아녜요>하면서 오야붕을 응원
하려들었지만 내가 그놈들에게
언권을 줄 리가 없다
한 놈은 가죽 방한모에 빨간 마후라였지만
또 한 놈은 잘 안 보였고 매일아침 들은
<신문요>의 목소리를 회상하며
어떤놈이 新인지 舊인지를 가려낼 틈도
없다 눈이 왔고 추웠고 너무 화가 났다
제임스 띵의 威脅感은, 이상한 地方色 恐怖感은
自由黨때와 民主黨때와 지금의 惡政의 구별을 말살하고
靜寂을 빼앗긴, 마지막 靜寂을 빼앗긴
나를 몰아세운다 어서 돈을 내라고
그러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신문값이 아니다
또 내가 주어야 할 것도 신문값만이 아니다
수도세, 야경비, 땅세, 벌금, 전기세 이외에
내가 주어야 할 것은 신문값만이 아니다
마지막에 沈默까지 빼앗긴 내가 치라야 할
血稅-화가 있다
눈이 내린 날에는 白羊宮의 비약이 없는 날에는
개도 짖지 않는 날에는 제임스 띵이 뛰어들어서는
아니된다 나의 아들에게 불손한 말을 걸어서는
아니된다 나의 思想에 怒 氣를 띄우게 해서는
아니된다
文名의 血稅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新과 舊가
탈을 낸 돈이 없나 巡視를 다니는 제임스 띵은
讀者를 괴롭혀서는 아니된다
나를 몰라보면 아니된다 나의 怒氣는 타당하니까
눈은, 짓밟힌 눈은, 꺼멓게 짓밟히고 있는 눈은
타당하니까 新.舊의 交替式을 그 이튿날
꿈에까지 보이게 해서는 아니된다
마지막 靜寂을 빼앗긴, 핏대가 난 나에게는
너희들의 儀式은 原始를 가리키고
奴隸賣買를 연상시킨다
理髮所의 화롯가에 연분홍빛 화로
깨어진 유리에 종이를 바르고
그 언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이 제임스 띵같이
되기까지 내가 겪은, 내가 겪을
고뇌는 무한이다
언청이야 언청이야 이발쟁이야 너의
보꾹에 바른 신문지의 활자가 즐거웁구나
校正을 보았구나 나의 毒氣야
가벼운 겨울의 꿈이로구나 나의 毒氣의
꿈이로구나
쓸데없는 것이었다 저것이었다
너의 보꾹에 비친 활자이었다 거기에
그어진 붉은 잉크였다 인사를 하지 않은
나의 친구야 거만한 꿈은 사위어간다
내 잘못이 인제는 다 보인다
불 피우는 소리처럼 다 들리고
재 섞인 연기처럼 다 맡힌다 訂正이 필요없는
겨울의 꿈 깨어진 유리의 제임스 띵
이제는 죽어서 불을 쬐인다
빠개진 난로에 발을 굽는다 시꺼먼 양말을 자꾸 비빈다
<1965.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