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동양사 중국사 이 당나라지도의 진위여부에대해서 궁금합니다.
Rothschild 추천 0 조회 1,508 10.08.02 12:50 댓글 28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0.08.02 13:13

    첫댓글 지배한 적은 있지만 그 기간이 중원과 강남지방을 지배한 것과는 차이가 있죠. 고구려와 돌궐제국과 티격태격하가 결국 몰아내기는 하지만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그나마 직접 지배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6도호부를 설치하고 그 밑에다 부족장들을 도독이나 자사로 임명하면서 그들에게 조공의 의무나 지우고 내정에는 관여하지 않는 기미체제였지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직접지배가 아닌 간접지배로 하였다가 되겠습니다.

  • 작성자 10.08.02 13:59

    원나라가 고려에 다루가치두고 지배한그런식인가요?

  • 10.08.02 14:16

    다루가치보다는 오히려 조공책봉체제랑 많이 비슷합니다. 다루가치의 경우는 고려 내정에 간섭을 많이 했는데-물론 이것은 원 제국 서열 9위였던 충렬왕 사망 이후지만-기미지배같은 경우는 그렇게까지 내정에 간섭을 하지 않았거든요.

  • 작성자 10.08.02 15:07

    그럼 조선과 명관계사이의 그것과 흡사했단말이군요?

  • 10.08.02 16:11

    Rothschild// 어기서 조명 간의 조공책봉이 왜나옵니까?! 조선은 엄연한 외국이었고, 한번도 명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데요?!... 헐~
    당이 지네땅이라고 편입한 후에 당나라 벼슬을 내리고, [간접지배]한 것과 조명간의 조공책봉이 동렬에 놓일 성질이 아니걸랑요?!...ㄷㄷ

  • 10.08.03 19:59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소리를 하는게 그런 식의 말투로 빈정거릴만한 것이었던가요?

  • 10.08.04 11:00

    [★]kweassa//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소리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얼마든지 질문을 할 수도 있구요. 그러나, 질문이라는 것은 자신의 단순한 의문을 손쉽게 남을 통해서 해결하라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 본인이 어느 정도 의문해소를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경도한 후에, 이를 토대로 이해가 안가는 점을 구체적으로 생각한 다음에 묻는 것이 답변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아닙니까?! 정작 답변하는 사람은 그동안 관심을 두고 노력을 통해서 얻어진 정보들을 '제공, 공유'하는 것인데- 간단한 기본개념조차 미비한 상태에서 '단문성 질문'을 줄줄 뱉어내는 것은 그다지 곱게 보이지가 않는군요.

  • 10.08.04 11:11

    어차피 크게 돈되는 것도 아니고, 니가 뭔 대학교수도 아닌데, 짧게 몇줄 적어두고 웬 생색질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들은 본인의 '노력'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정보들입니다. 전공자들의 것만 못하고, 오류가 수두룩할지라도요...
    이번 건을 살펴보면- 역사상의 비숫한 체제에 대한 언급있었는데, 물론 비숫한 체제를 통해서 '영향력 행사'의 정도를 생각하는 것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정작 의문을 제시하는 쪽에서는 그 체제의 기본정보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 잘 드러납니다! [기미지배]와 [조공책봉], [원나라의 다루가치]의 3가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있었다면,

  • 10.08.04 11:25

    국체(國體)의 유무와 이를 통한 자의(주)적 권력행사의 차이가 나는 기미지배와 조공책봉을 연결하는 의문이 생길 소지가 적습니다. 게다가 이미 유문기님과 다른 댓글을 통해서 "조공의 의무나 지우고 내정에는 관여하지 않는 기미체제...간접통치", "당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무너뜨리는 대신, 그 지배층을 구스르려는 의도...미봉책..." 등등 기미지배의 영향력을 추정할만한 정보가 이미 나온 상태에서 단문성 질문(다루가치...)이 계속 나오는 상황... 게다가 "추장을 당의 관리비슷하게 책봉하여 다스린다는 체제"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동아시아 외교체제에서의 책봉과 당나라 기미체제 하에서의 [형식적 관위수여]를 혼동해서 적고 있죠.

  • 10.08.04 11:39

    이것들은 간단한 검색이나 개설서를 통해서도 이미 손쉽게 개념을 접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나중엔 "개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물어본거다"라는 댓글이...-_-;
    여기에 댓글 몇줄 적는 것 그다지 어려운 일 아니지만, 이미 기본적으로 나오는 전제까지 모두 감안해서 답한다면, 아예 새로 글을 써야할 겁니다. 의문을 제기하는 쪽이 사전에 어느 정도 "기본적인 정보"는 갖췄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는다면요... 그 기본적인 정보를 얻는 방법이 어려우면 또 모르겠지만, 검색창에 간단한 단어만 입력해도 나오는 것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죠.
    뭔 자판기 커피뽑듯이 손쉽게 정보를 얻으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 10.08.04 11:44

    이거 그냥 조용히 눈팅이나 해야하는 건데 괜히 혼자 쇼를 했군요...-_-;

  • 10.08.05 13:23

    근데 솔직히 해동천자님은 ?!를 필요 이상으로 자주 활용하셔서 마치 근성체를 방불케 합니다. 때문에 문체 자체가 내용과 무관하게 지나치게 선동적이라는 인상과 함께, 간혹 독해가 어려울 정도로 헷갈릴 때가 잦습니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검색에 필요한 단어조차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점을 좀 염두에 두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10.08.06 10:39

    마활, 해동 / 확실히 [했거든요]랑 [했거든요?]는 어감이 차이나긴 하거든요?!(낄낄)

  • 10.08.02 16:12

    이 지도는 그야말로 떡밥에 다름아닙니다. <중국역사지도집>에 나오는 중국의 역사인식을 극명하게 재탕하고 있죠...-_-; 어떤 땅이든지 한번 치지하면 다- 지네땅이라는 개소리에는 그저 한숨만 나올 뿐... 심지어는 토번전토를 당나라 지배영역으로 표기하는 ㅂㅅ들도 수두룩하죠...ㄷㄷ 당나라의 지배영역에 대해서는 '역사자료실'에 타메를랑님께서 올리신 지도의 영역이 가장 정확하다고 봅니다.

  • 작성자 10.08.02 16:53

    뭐,,, 그럼 가장흡사한 간접지배체제가 원의 다루가치 정도인가요? 아니면 다루가치하고 비슷하게 책봉은하지만 원의 다루가치나그런것보다 지배력은더약했었나요?...

  • 10.08.03 00:44

    Rothschild// 이런건 좀 <백과사전>이라도 먼저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일일이 다 알려드립니까?!...-_-;
    백과사전의 '기미지배' 항목이니 참조하세요.
    "전형적인 형태는 당나라 전기에서 볼 수 있다. 명목상으로는 군현제(郡縣制)를 채택하여 부주현(府州縣)을 두고, 외족(外族)의 왕 ·추장을 도독(都督) ·자사(刺史) ·현령(縣令) 등에 임명하여 자치에 맡기고, 보호령으로서 도호부(都護府) 등을 두어 감독하게 하였다."... "독립국으로 인정할 수도 없고, 직할령으로 만들 수도 없는 주변 민족들에 대해서 취해진 정책"

  • 10.08.03 01:05

    그러니까 도호부라는 큰틀에 속하기는 했지만, 이민족의 지배층들은 '국적세탁'만 했을 뿐, 기득권을 그대로 보장받는 겁니다. 어떤 경우는 오히려 당의 체제에 편입됨으로써 기득권이 강화되는 경우도 있죠. 이렇게만 하면 좀 부족했기에, 당은 상당히 정교한 '이간책'을 시행함으로써- 이민족의 단결을 막았습니다... 예컨대 거란족은 당의 기미지배에 편입되면서 이씨성을 하사받은 '송막도독부'와 손씨를 자칭한 '귀성주'로 나뉘어 단결하지 못했죠.

  • 작성자 10.08.03 01:45

    추장을 당의 관리비슷하게 책봉하여 다스린다는 체제가 기미체제라는건 알고있었습니다만 기미주란체제가 얼마나 영향력행사를 할수있는가에 대해서물어본거였습니다.

  • 10.08.03 10:02

    Rothschild// 기미지배에 대해서 개념이 있으시다면, 굳이 이런 질문 안하셔도 감이 올건데요?!...^^;

  • 작성자 10.08.04 13:11

    당의 기미체제가 그 지역의 유력자들에게 자치를 허용하게해주고 당나라의 작위를주고 그지역에서 대규모반란이일어날시에 군사행동이 나서는 그런 체제인걸로 역사책에서 주로이런식으로 보았는데 잘못알고있었나요?... 전 이렇게알고있어서 님의 심기를 자극했을런진 모르겠지만 개념을 알고있었다고 한건데 틀렸다면 제가 오류가있었던거같습니다. 물어보는데 자세를 제대로안갖춘거같기도하고 여러모로 폐를끼쳐 죄송하게된것같습니다 그리고 미천한 저의 단점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10.08.03 00:35

    운남지방의 경우, 명대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명나라는 이 일대에 [토관직(土官職)]을 설치하여 그 기득권층에게 상당한 양보를 해야할 정도였습니다. 운남과 사천의 변두리지역이 본격적으로 한족투성이로 편입되기 시작하는 시기는 청대죠...^^; 명나라보다 수백년 전의 당나라가 뭔수로 이 지역을 [지배]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장 안사의 난이 일어나가 전인 현종치세 전반기에, 재상 양국충이가 대군을 이끌고 남조를 공격했다가 대부분의 병력을 잃은 일이 있었고, 이후로도 사천을 관리하던 '검남절도사'는 남조에 지속적으로 털립니다. 때문에 오대시대에 이르면 운남은 물론,

  • 10.08.03 10:02

    사천의 일부지역이 남조의 후신인 '대리국'의 영토로 편입되죠...^^;
    몽골초원의 경우도, 당나라 초기에 돌궐이 당의 [기미지배]를 받던 시절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엄연히 '간접지배'였고, 기미지배라는 것 자체가 당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무너뜨리는 대신, 그 지배층을 구스르려는 의도였지- 뭔 영토로 편입해서 직접통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은 이런 기미지배와 '이간책'을 통해서 이민족의 단합을 억제하는 쪽으로 정책을 운용함으로써, 세력을 규합한 이민족을이 당을 침범할 빌미를 최대한 억제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게 '미봉책'이었다는거...-_-;

  • 10.08.02 15:55

    또한 돌궐이 당에 복속되었다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닌게,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유목민족들이 급속히 '대체세력'으로 부상한다는 겁니다. 당이 돌궐을 위압하는 것이 가능했던 계기가 6세기 말의 동서돌궐의 분열인데, 서돌궐은 7세기 중엽에 당에게 망했고, 동돌궐은 8세기에 위구르에 망합니다. 이후 북방의 강자는 위구르, 거란으로 차례로 바뀌었고, 따라서 당이 장기간 몽골초원을 지배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죠. 당의 돌궐복속은 길게 잡아야 반세기에 불과했고, 안사란을 계기로 위구르에게 조낸 뜯기는게 당의 상황인지라(엄청난 돈과 황제의 딸을 바쳤다능...)...ㅎㅎ;; 당후기와 오대시대에는 거란에 개털리죠...ㅋ

  • 10.08.02 16:13

    중앙아의 경우도 직접지배가 아니었기에, 이 일대의 소왕국들이 토번이나 사라센에 붙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선지의 활약으로 중앙아에서 최대의 세력권을 구축하기는 했지만, 간접지배하던 소왕국들을 구슬리는데 실패함으로써, 중앙아 패권을 한큐에 날려먹는데, 이 사건이 [탈라스 전투]입니다...^^; 예컨대 당에 반항하다 잡힌 석국의 왕을 장안으로 끌고가 참수한다던가... 이런 '자극'이 중앙아의 반당세력 확대에 일조를 했죠. 소왕국들의 배신과 카를루크의 뒷치기로 대패한 이후, 얼마 안되어 안사란이라는 대반란까지 겪은 당나라는 다시는 중앙아 패권을 회복하지 못합니다...ㅋ 즉 여기도 간접지배에 단기패권으로써-

  • 10.08.02 16:07

    '영토'로써 편입지배했다는 식의 지도표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 10.08.02 22:04

    비록 정복한 적이 없지만 군대가 잠깐이라도 발을 밟은 곳도 영토 취급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본문의 그 지도입니다..

  • 10.08.02 22:30

    마치 환국 지도를 보는듯 하군요 ㅋㅋㅋㅋ

  • 10.08.05 12:41

    영향력 지도라고 보기에도 과장된......실제 당이 저정도의 세력이였다면, 신라나 동남아 인도가 무사할리가 절대 없습니다....이건뭐 신라를 보니 마치 로마제국 한가운데 아테네가 독립국으로 남아있는것처럼 보임....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