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욜롱차후 오스만제국를 먹을생각인 러시아의 니콜라이1세가 향후 협조를 위해서 파병했는데. 결과는 5년뒤 크림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나 영국에 가담하거나 최소한 중립도 못지켰으며. 러시아에게 참전을 위협해서 오랜 동맹관계를 절단냈죠. 그리고 러시아군이 점령하던 몰다비아와 왈라키악공국의 요새지의 오스트리아군대의 검은깃발이 휘날렸고. 이는 러시아에게도. 영국에게도 프랑스에게도 고립을 자초한 처사였던겁니다. 또한 올뮈츠의 굴욕에서 보이는. . 프로이센에서 1848혁명당시 오스트리아를 독일연방내에서 누를려고 하자. 러시아가 프로이센에게 전쟁위협을 가해서 오스트리아에게 외교적 항복을 강요했죠
@선비욜롱그럼 오스트리아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했는가? 오스트리아에 몰락을 피하기 위해선 러시아와 지속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무리한 확장대신에 제국내의 민족간 권력배분을 잘조종해야했던겁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강탈도 거의 도둑놈심보라고 봐야하는데. 그 메테르니히가 재상으로 있었던 국가답지 않게. 이후에는 근시안적 정책으로 박쥐적인 이미지를 보여서 스스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으며. 특히 러시아와의 갈등을 먼저 초래함으로써 결국 프로이센이 독일통일을 하거나 향후 보불전쟁당시 프로이센 뒷치기를 하려다가. 러시아가 엄포를 놔서 그것조차도 못했던게 오스트리아였죠. 이게 실책이 아니고 뭡니까
@선비욜롱 미국 역사가 바바라 터크먼은 <8월의 포성>에서 개전과 관련된 오스트리아의 행보를 4단어로 정리했다 : 노쇠한 제국의 호전적인 경솔함 'bellicose frivolity of senile empires' 이라고 표현했죠. 솔직히 말해서 영국이 오스트리아를 대륙에서의 동맹국으로써 점점 멀리하게 된것도 따지고보면. 프로이센과 사르디나에게 연거푸 물먹으면서 군사적 능력이 제대로 뒷받침이 안되는데. 동맹으로서 유용한지의 가치가 점점 평가절하 당한것이죠.
@대륙말씀하신대로 그 어느 누구도 프란츠 요제프의 외치를 성공으로 꼽지 않습니다. 프란츠 요제프가 스스로 "나는 전쟁에 운이 없다. 언제나 영토를 잃는다"라 말했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 변천도나 작위 리스트만 봐도 제위초와 후기를 보면 잃은 영토가 극명합니다. 지휘하기 싫다는 베네데크를 억지로 지휘봉을 잡게해서 보오전쟁을 패배한 원인중 하나를 초래한 것도 할말없는 사인입니다. 프란츠 요제프의 군사지식은 매우 적었으며 말씀하신 근시안적인 외교력과 겹쳐서 매우 안좋은 상황을 초래했었죠.
@대륙그러나, 이는 프란츠 요제프가 소위 "노답"이라는 증명이 못됩니다. 그렇다면 프란츠 요제프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력에 해만 되었냐면 그건 전혀 아니고 이걸 증명하는 논지를 끄내시지 못하셨습니다. 저번처럼 무의미하고 소모적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준가르에게 여러번 군사적인 패배를 보이며 완벽한 내치와 달리 실패한 외치를 보여준 옹정제만해도 외치를 실패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노답이라 평하지 않습니다. 프란츠 요제프의 경우에는 외치의 실패가 이보다 더 극단적이지만, 프란츠 요제프의 긴 수명, 성실한 태도, 전투력을 포기한 대신에 화려함을 추구한 군대를 통해 국가규합등 민족주의의 시대에 시끌시끌했던
@대륙제국을 수십년간 끌고 갔으며 프란츠 요제프가 남긴 오헝제국은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었던 프랑스와 영국조차 고전했던 4년간의 총력전을 끝까지 버티며 독일보다 겨우 1주일 먼저 항복했습니다. 이런 기반을 남기는데 프란츠 요제프의 능력이 매우 큰 역할을 했으며 단순히 외교력이 딸린다고 암군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시로 드신 책만해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만은) 외교사를 중심으로 하는 서적으로 오헝제국의 내치와 프란츠 요제프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서적을 예로 드셨습니다. 그리고 터크만을 주신 책은 오헝제국의 행보를 서술했지 프란츠 요제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아니며 말했듯이
@선비욜롱필연적이라고 주장하시는데. 애당초 메테르니히만해도 현상유지를 노려서 국력보존과 아울러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우위고수를 노렸던 사람입니다. 프란츠는 스스로가 외교가 자신의 장기라면서 일일히 개입했어요. 죽을때까지 말이죠. 프란츠는 히로히토나 다른입헌군주가 아니였고 실제적인 제국의 통치자였던 사람이기에 더더욱 비난받아야하는겁니다. 시대상황이 그래서라는것은 변명일뿐이에요. 안그런 사람도 얼마나많은가요. 님이 말하는 그 시대상황이 유신을 합리화 시켰죠.
오헝사에 대한 책을 읽은게 거의 없어서 말은 잘 못하겠습니다만, 독일제국이 생기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이 생긴 시점에서 오헝의 역사가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제국이 생긴 시점에서 게르만족 통일 혹은 지배라는 오스트리아의 이상은 좌절됐고 빅토리아 시대에 열강들이 바라던 대륙 균형 유지자라는 임무도 무산됐으니까요. 이미 가장 큰 두 민족(게르만,헝가리)이 독립을 바라는 시점에서 오스트리아는 프란츠 요제프만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생각합니다. 발칸반도 진출은 위상이 떨어지고 떨어지던 제국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죠.
전쟁을 피하고 페르디난트에게 제위가 갔다면 합중국을 실행시켜서 좀더 오래 버틸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전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게르만과 헝가리가 쉽게 특권을 포기하려 하겠느냐와, 페르디난트 다음의 제위계승자(카를이죠)와 그 측근이 물려받을 권력을 포기하겠느냐도 의문입니다. (왕이 있는) 합중국이 되어도 페르디난트 이후 오스트리아 황제와 헝가리 왕은 나뉘어질테니 동군연합은 풀릴텐데, 이 때 헝가리가 합중국에서 탈퇴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다 떠나서 오헝이 그 시점에서 발칸을 포기하는 것은 무리이며, 결국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전쟁을 벌어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멸망은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장물론 그렇긴 한데 합스부르크 왕가가 쌓아온 위신이나 정통성이 당시 백성들에게는 당연한 것 처럼 여겨져서, 대전후 제국 해체로 독립을 이루지 않았더라면 자신들만의 나라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은 생각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주류민족이라지만 게르만과 헝가리를 합쳐도 반수도 안되는 제국 상황에서 그 외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황실을 지지하고 있고 또 게르만 내에서 여전히 황실을 지지하는 세력도 적잖은 것을 생각하면 이중제국은 누더기이지만 호흡기를 뗄까 말까 하는 수준의 나라는 아니라고 봅니다.
@산익저는 그 전통적인 면에서도 분할(분열이 아닙니다)은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페르디난트는 엄청 고집센 남자로, 결국 아들에게 제위계승권을 내주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귀천상혼을 무릅쓰고 결혼했습니다. 대신 동군연합의 헛점을 노려 헝가리 왕위를 자식에게 양도하려고 했는데, 그가 황제가 됐다면 실제로 자식에게 양위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헝은 다시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으로 나뉘게 될테죠. 이미 if 시나리오라 첨언을 하긴 그렇지만,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로 나뉘었다면, 제국의 일부로 자치권을 얻고자한 보헤미아인들이 자신들을 억누르던 헝가리만 남았을 때도 가만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산익개인적으로 최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라면, 나폴레옹 3세가 자신이 이름을 물려받은 그 사람 반만큼의 식견과 야심이 갖추고, 쟈유주의라는 본인 사상과는 달리 사르데냐와 프로이센이 통일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면, 프랑스도 최대 강국으로 남고 오헝도 대륙의 균형자 타이틀을 가지고 이탈리아와 독일 주무르는 것에 만족했다면 몇십년 더 연장됐을지도...? 물론 비스마르크가 있기에 꿈 같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저는 오헝제국 자체가 '너무 민족이 많아서' 뭔 짓을 해도 붕괴는... 아니여도 적어도 해체는 될거라고 보는 입장이라서요. 산익님 말처럼 생각보다 장기간 유지 할 수는 있어도 현대 사회에서 적어도 주류 민족이 단독 과반 다수의 위치를 점유하지 않은 다민족 국가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중동이 그나마 예외인데 거긴 민족이 아니라 부족 기반 사회이니..... 당장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중국만 보더라도 중국-러시아인이 소수민족에 비해 과반 이상으로 많죠.
@Vv아마게돈vV그건 그렇습니다. 저도 제국이 온건한 시대에 접어들고 나서도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은 안합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도 그렇고 지금의 유럽 각국에 산재한 분리독립 운동을 봐도 그렇고요. 다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더라면 냉전기의 역사가 달라지고 유럽의 단일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구제국은 사라지지만 더 큰 연합이 발족하는 등 '좋은'방향으로 역사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말입죠
@선비욜롱그렇다면 그걸 역사적 필연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1차 대전의 산물로 봐야할지에 따라 달라지겠네요. 일단 저는 어차피 1차 대전은 그러한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을뿐 결국 그런 변화는 일어날 것이라고 보지만 욜륭님은 그러한 변화가 반드시 필연적이지 않고 그러한 민족 독립 열풍은 1차 대전으로 나온 부산물로 보는 입장인건가요?
@Vv아마게돈vV"1차대전없이"라는 가정자체가 엄청난 역사가가 아니고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마의 지역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장기 19세기를 끝내고 단기 20세기를 연 말그대로 2차대전과 냉전의 초석을 다진 전쟁으로 1차대전이 없다는 세상은 단순히 상상하기가 어렵죠.
1차대전으로 인해 유럽 주요 왕조들(호헨촐렌, 오스만, 합스부르크, 로마노프)이 죄다 붕괴하는데, 국가주의의 중점이 그 테두리의 전통이 아닌 민족구성으로 완전히 돌아서게되는 것이 1차대전으로 보고 그로인해 그간 분리독립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없던 카탈루냐 지역마저 고작 경제적 이유로 독립을 요구하는 상황을 보면 1차대전이 없다면...솔직히 뭐라 단정하기가 어렵네요.
발칸은 말 꺼낼 필요도 없이 제국에 치명적인 노답 세력이고, 보헤미아는 애초부터 독립적 기조가 강했으며, 헝가리는 그다지 중앙집권적이지도 않았고, 오스트리아에 대한 군사적 도움 역시도 굉장히 중세틱스러울 정도로 계산적이었습니다.(심지어 이게 나폴레옹 이후까지 이런 상황) 게다가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치하에 들어간게 오스만제국 때문이었는데 오스만제국이 러시아한테 처맞고 갤갤데는 상황에서 헝가리한테 오스트리아에게 붙어있을 합리적 이유가 전혀 없었죠.
거기에 신선로마제국의 헤체로 인한 권위 실추를 넘어 아예 제국에 대한 헤게모니 그 자체마저도 독일제국에 뺏기고 더불어서 그나마 남아있던 친 오스트리아 성향의
남독일 국가까지 싸그리 넘어갔으니, 솔직히 오스트리아는 그 시점에서 제국 유지라는 것이 큰 전쟁을 겪지 않고서는 힘들었는데, 문제는 애초에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한 군주 아레 묶인 여러 나라'라는 수준의, 대영제국 수준보다도 못한 느슨한 체제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겪을 문제지만(영국과 웨일즈인이 아닌 영국과 프랑스인이 하나로 묶였다고 상상해봅시다...어이쿠;), 어느 수준 이상으로 중앙집권 자체가 불가능했고, 제국주의가 완전히 결단나고 제국의 절반 가까이인 발칸과 헝가리가 더 이상 오스만이라는 하나의 적을 상대로 숨죽여 지낼 이유가 없었기에
@팔라이올로구스저도 모순의 제국을 보고 쓴건데, 왜 관점이 다른건지 모르겠네요 ㄷㄷ(...) 헝가리 자유당의 행적을 보고 느꼈습니다만, 전 오히려 러시아덕에 제국이 다시 합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체코, 헝가리 모두 러시아를 두려워하던 것이 1차대전에서 제국의 단합을 불러일으켰다, 이런식으로 말이죠. 추측이라 주장하기는 그렇습니다만. 시험기간 끝나면 오랜만에 다시 빌려봐야겠습니다. 기억이 잘 안나는군요.
오헝제국 체제내에 제국이 해체당하면 잃는게 가장 많은 지역이 헝가리이기에 오헝제국의 유지에 헝가리는 필사적이었습니다. 오헝제국 체제내에서 크로티아를 비롯한 항구와 함께 제국의 절반을 차지했던 지역이 전후에는 사방이 갈려나가 내륙소국으로 전락합니다. 애초에 오스민의 약화는 1900년대에 이르면 200년이 넘는데 오스만의 위협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제국이 유지했다는 점은 비약으로 보입니다.
@통장단순히 위협으로 인해 단합했다는 논지는 오헝제국이 4년간의 총력전을 버틴 점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됩니다.
오헝제국과 달리 단일민족이라는 자각이 존재하고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있던 프랑스 제3공만해도 1917년에 이르면 클레망소의 강력한 지도력 덕에 버텼다고 할 정도로 힘겹게 버텼는데, 연합군의 해상봉쇄+전초에 고갈된 인력+아군에게 의존하는 군대+여러언어를 사용하는 사병+삼면전쟁+외교 스캔들로 실추된 왕실의 이미지등 문제들을 앉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헝제국은 러시아와 달리 1918년에 붕괴했고 각 지역은 연합군이 점령하기 전까지 따로 화평을 구걸하지
@선비욜롱위협만으로 단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큰 요소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 외 앞에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었기에 버텼을테죠....모호한 단어 처리 같네요. 프란츠 요제프의 상징성과 러시아에 대한 위협을 두 축으로 기타 요인들이 모여서 버텼다고 하겠습니다. 역시 모호한거 같기도(..) 1차대전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말을 못하겠습니다만, 프랑스는 파리 코뮌까지 세번의 큰 봉기가 일어난 곳이며, 러시아는 1905년 피의 일요일 이후 폭력적인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반란으로 바뀐 법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원상태나 마찬가지로 바뀌었고요.
@통장세계대전에서 러시아보다 먼저 뒤집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단단하다는 것은 비교대상이 안맞지 않나 싶습니다. 러시아는 그 시대에 지도자가 막장상태였으니. 오헝제국이 무너졌기 때문에 쉽게 말하고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만, 바로 오헝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런 토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 무너졌다면 당연 '왜 무너지지 않았는가'를 따져야겠지요. 그 시점에서 오헝이 무너지리라 생각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 인식을 살필 때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결국 오헝이 붕괴하는 것에 도움은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1789년 이전에 프랑스에 공화정이 들어선다고 생각한 사람이
@통장얼마나 있었을지, 2010년에 스코틀랜드가 분리를 위해 투표를 하고(1차대전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네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한바탕 난리를 필 것이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을지. 근데 쓰고 있으니 점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기분이네요 ㅡㅡ; 제가 고집이 세서 좋아하는 건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해서, 슬슬 헛소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전 오헝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붕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란츠 요제프 사후 얼마나 길지, 세르비아,러시아와 언제 전쟁을 했을 지는 파악하기 힘듭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사태든 발생해서 20년 이내로 망했을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도 맞다고 생각하지만, 제 의견입니다
@통장다만, 제가 오빠라 그런지,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그래서 그런지, 그놈의 민족주의를 쓸데없이 도입해서 제국 말아먹은게 참 차후 유럽사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발칸 문제나 차후 그렇게 망해버린 오스트리아령 국가들이 죄다 극우빠가 되어 나치의 앞잡이가 되었다던가 경제적 차이때문에 벌어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열 등등... 차라리 본인들 손으로 독립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Constitution저도 합스부르크빠라서 오헝제국 해체가 좋진 않습니다만(역사적 의미보단 빠라서(..) 싫어하는거죠), 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체하는 본인들도 이런 결과가 될거라곤 생각 못했을 겁니다. 민족끼리 나누면 알아서 살 줄 알았지 누가 그렇게 투닥투닥거릴 줄 알았나(..)
@선비욜롱 차후 오스만제국를 먹을생각인 러시아의 니콜라이1세가 향후 협조를 위해서 파병했는데. 결과는 5년뒤 크림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나 영국에 가담하거나 최소한 중립도 못지켰으며. 러시아에게 참전을 위협해서 오랜 동맹관계를 절단냈죠. 그리고 러시아군이 점령하던 몰다비아와 왈라키악공국의 요새지의 오스트리아군대의 검은깃발이 휘날렸고. 이는 러시아에게도. 영국에게도 프랑스에게도 고립을 자초한 처사였던겁니다. 또한 올뮈츠의 굴욕에서 보이는. . 프로이센에서 1848혁명당시 오스트리아를 독일연방내에서 누를려고 하자. 러시아가 프로이센에게 전쟁위협을 가해서 오스트리아에게 외교적 항복을 강요했죠
@선비욜롱 그럼 오스트리아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했는가? 오스트리아에 몰락을 피하기 위해선 러시아와 지속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무리한 확장대신에 제국내의 민족간 권력배분을 잘조종해야했던겁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강탈도 거의 도둑놈심보라고 봐야하는데. 그 메테르니히가 재상으로 있었던 국가답지 않게. 이후에는 근시안적 정책으로 박쥐적인 이미지를 보여서 스스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으며. 특히 러시아와의 갈등을 먼저 초래함으로써 결국 프로이센이 독일통일을 하거나 향후 보불전쟁당시 프로이센 뒷치기를 하려다가. 러시아가 엄포를 놔서 그것조차도 못했던게 오스트리아였죠. 이게 실책이 아니고 뭡니까
@선비욜롱 또한 프란츠 요제프는 그후 초래된 고립을 독일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 결국 독일에게 종속시킨바가 되었죠. 이것도 잘못아닌가요?
@선비욜롱 출처 , 키신저, 외교, 93-95쪽. 그리고 테일러의 유럽외교사에도 나오는 일화들을 보면. 오스트리아제국이 메테르니히 이후. 스스로를 외교의 달인이라고 자처하는 프란츠 요제프 뻐꾸기와. 그가 임명한 외무장관들이 벌인 외교적 참사들을 비난하고 있죠.
@선비욜롱
미국 역사가 바바라 터크먼은 <8월의 포성>에서 개전과 관련된 오스트리아의 행보를 4단어로 정리했다 : 노쇠한 제국의 호전적인 경솔함 'bellicose frivolity of senile empires' 이라고 표현했죠. 솔직히 말해서 영국이 오스트리아를 대륙에서의 동맹국으로써 점점 멀리하게 된것도 따지고보면. 프로이센과 사르디나에게 연거푸 물먹으면서 군사적 능력이 제대로 뒷받침이 안되는데. 동맹으로서 유용한지의 가치가 점점 평가절하 당한것이죠.
@대륙 다시 찾아보니 크림 전쟁시 오스트리아가 크림전쟁때 루마니아 지역을 점령한게 사실이군요. 잘 찾아보지 못한 제 실수입니다.
@대륙 말씀하신대로 그 어느 누구도 프란츠 요제프의 외치를 성공으로 꼽지 않습니다. 프란츠 요제프가 스스로 "나는 전쟁에 운이 없다. 언제나 영토를 잃는다"라 말했었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 변천도나 작위 리스트만 봐도 제위초와 후기를 보면 잃은 영토가 극명합니다. 지휘하기 싫다는 베네데크를 억지로 지휘봉을 잡게해서 보오전쟁을 패배한 원인중 하나를 초래한 것도 할말없는 사인입니다. 프란츠 요제프의 군사지식은 매우 적었으며 말씀하신 근시안적인 외교력과 겹쳐서 매우 안좋은 상황을 초래했었죠.
@대륙 그러나, 이는 프란츠 요제프가 소위 "노답"이라는 증명이 못됩니다. 그렇다면 프란츠 요제프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력에 해만 되었냐면 그건 전혀 아니고 이걸 증명하는 논지를 끄내시지 못하셨습니다. 저번처럼 무의미하고 소모적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준가르에게 여러번 군사적인 패배를 보이며 완벽한 내치와 달리 실패한 외치를 보여준 옹정제만해도 외치를 실패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노답이라 평하지 않습니다. 프란츠 요제프의 경우에는 외치의 실패가 이보다 더 극단적이지만, 프란츠 요제프의 긴 수명, 성실한 태도, 전투력을 포기한 대신에 화려함을 추구한 군대를 통해 국가규합등 민족주의의 시대에 시끌시끌했던
@대륙 제국을 수십년간 끌고 갔으며 프란츠 요제프가 남긴 오헝제국은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었던 프랑스와 영국조차 고전했던 4년간의 총력전을 끝까지 버티며 독일보다 겨우 1주일 먼저 항복했습니다. 이런 기반을 남기는데 프란츠 요제프의 능력이 매우 큰 역할을 했으며 단순히 외교력이 딸린다고 암군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시로 드신 책만해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만은) 외교사를 중심으로 하는 서적으로 오헝제국의 내치와 프란츠 요제프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서적을 예로 드셨습니다. 그리고 터크만을 주신 책은 오헝제국의 행보를 서술했지 프란츠 요제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아니며 말했듯이
@대륙 프란츠 요제프외에도 회첸도르프의 충동질과 관료들의 자포자기로 인해 전쟁에 대한 지지가 매우 강했습니다. 프란츠 요제프가 모두의 만류에 불구하고 전쟁에 들어간 것이 아닌 이상 1차대전의 개전을 순전히 프란츠 요제프의 탓으로 모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동맹관계는 베를린 의회를 기점으로 오스만 제국의 발칸에 대한 장악력이 줄어드는 순간 굳이 프란츠 요제프가 아니더라도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선비욜롱 황제이고 전제군주국인 오헝제국의 수장으로써 책임이 없단 말은 면피용일뿐입니다. 그리고 자꾸 전쟁의 오래버티게 만들었다고 좋아하시는데. 저번에 장개석이야기도 그렇지만. 다털리고 빈껍데기만 남은상태에서 버틴것이 영광된건가요. 버텨서 이긴것도 아니고. 억지로 4면전선으로 그것도 약소국의 대한 삥뜯기 하려다가 한것이 잘한짓은 아니죠
@선비욜롱 필연적이라고 주장하시는데. 애당초 메테르니히만해도 현상유지를 노려서 국력보존과 아울러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우위고수를 노렸던 사람입니다. 프란츠는 스스로가 외교가 자신의 장기라면서 일일히 개입했어요. 죽을때까지 말이죠. 프란츠는 히로히토나 다른입헌군주가 아니였고 실제적인 제국의 통치자였던 사람이기에 더더욱 비난받아야하는겁니다. 시대상황이 그래서라는것은 변명일뿐이에요. 안그런 사람도 얼마나많은가요. 님이 말하는 그 시대상황이 유신을 합리화 시켰죠.
오헝사에 대한 책을 읽은게 거의 없어서 말은 잘 못하겠습니다만, 독일제국이 생기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이 생긴 시점에서 오헝의 역사가 정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제국이 생긴 시점에서 게르만족 통일 혹은 지배라는 오스트리아의 이상은 좌절됐고 빅토리아 시대에 열강들이 바라던 대륙 균형 유지자라는 임무도 무산됐으니까요. 이미 가장 큰 두 민족(게르만,헝가리)이 독립을 바라는 시점에서 오스트리아는 프란츠 요제프만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생각합니다. 발칸반도 진출은 위상이 떨어지고 떨어지던 제국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죠.
전쟁을 피하고 페르디난트에게 제위가 갔다면 합중국을 실행시켜서 좀더 오래 버틸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전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게르만과 헝가리가 쉽게 특권을 포기하려 하겠느냐와, 페르디난트 다음의 제위계승자(카를이죠)와 그 측근이 물려받을 권력을 포기하겠느냐도 의문입니다. (왕이 있는) 합중국이 되어도 페르디난트 이후 오스트리아 황제와 헝가리 왕은 나뉘어질테니 동군연합은 풀릴텐데, 이 때 헝가리가 합중국에서 탈퇴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다 떠나서 오헝이 그 시점에서 발칸을 포기하는 것은 무리이며, 결국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전쟁을 벌어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멸망은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장 물론 그렇긴 한데 합스부르크 왕가가 쌓아온 위신이나 정통성이 당시 백성들에게는 당연한 것 처럼 여겨져서, 대전후 제국 해체로 독립을 이루지 않았더라면 자신들만의 나라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은 생각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주류민족이라지만 게르만과 헝가리를 합쳐도 반수도 안되는 제국 상황에서 그 외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황실을 지지하고 있고 또 게르만 내에서 여전히 황실을 지지하는 세력도 적잖은 것을 생각하면 이중제국은 누더기이지만 호흡기를 뗄까 말까 하는 수준의 나라는 아니라고 봅니다.
@산익 다만 그 사상의 근원은 결국 왕실 권위주의이고 그러한 왕실 권위주의는 그 시점에서도 명백하게 흔들리기 시작한 사상인지라.... 그게 계속 약화되면 무엇으로 그걸 대체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죠.
@Vv아마게돈vV 그래서 발칸에 개입한건데 그렇게 된 이상 러시아와의 분쟁은 불가피해졌고 시대상 대전이 터질 수 밖에 없다고 보면 제국의 운명은...안습
@산익 저는 그 전통적인 면에서도 분할(분열이 아닙니다)은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페르디난트는 엄청 고집센 남자로, 결국 아들에게 제위계승권을 내주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귀천상혼을 무릅쓰고 결혼했습니다. 대신 동군연합의 헛점을 노려 헝가리 왕위를 자식에게 양도하려고 했는데, 그가 황제가 됐다면 실제로 자식에게 양위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헝은 다시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으로 나뉘게 될테죠. 이미 if 시나리오라 첨언을 하긴 그렇지만,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로 나뉘었다면, 제국의 일부로 자치권을 얻고자한 보헤미아인들이 자신들을 억누르던 헝가리만 남았을 때도 가만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산익 개인적으로 최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라면, 나폴레옹 3세가 자신이 이름을 물려받은 그 사람 반만큼의 식견과 야심이 갖추고, 쟈유주의라는 본인 사상과는 달리 사르데냐와 프로이센이 통일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면, 프랑스도 최대 강국으로 남고 오헝도 대륙의 균형자 타이틀을 가지고 이탈리아와 독일 주무르는 것에 만족했다면 몇십년 더 연장됐을지도...? 물론 비스마르크가 있기에 꿈 같기는 합니다만.
다른 이야기도 꺼냈는데 어째 얘기는 합중국얘기만...ㅣㅣㅣㅋ
솔직히 저는 오헝제국 자체가 '너무 민족이 많아서' 뭔 짓을 해도 붕괴는... 아니여도 적어도 해체는 될거라고 보는 입장이라서요. 산익님 말처럼 생각보다 장기간 유지 할 수는 있어도 현대 사회에서 적어도 주류 민족이 단독 과반 다수의 위치를 점유하지 않은 다민족 국가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중동이 그나마 예외인데 거긴 민족이 아니라 부족 기반 사회이니..... 당장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중국만 보더라도 중국-러시아인이 소수민족에 비해 과반 이상으로 많죠.
@Vv아마게돈vV 그건 그렇습니다. 저도 제국이 온건한 시대에 접어들고 나서도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은 안합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도 그렇고 지금의 유럽 각국에 산재한 분리독립 운동을 봐도 그렇고요.
다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더라면 냉전기의 역사가 달라지고 유럽의 단일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구제국은 사라지지만 더 큰 연합이 발족하는 등 '좋은'방향으로 역사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말입죠
@Vv아마게돈vV 애초에 유럽의 분리독립 운동의 유래와 동유럽의 무한분할의 역사는 오헝제국의 붕괴로부터 시작되는지라 1차대전이 터지지 않았다는 가정하에는 뭐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역사가 에드먼드 타일러의 경우에는 1918년의 연합군의 주요 지도자들은 왕정이 오히려 이런 다민족 지역을 전통과 정통성을 통해 규합하는데 오히려 유리하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합니다.
@선비욜롱 그렇다면 그걸 역사적 필연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1차 대전의 산물로 봐야할지에 따라 달라지겠네요.
일단 저는 어차피 1차 대전은 그러한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을뿐 결국 그런 변화는 일어날 것이라고 보지만 욜륭님은 그러한 변화가 반드시 필연적이지 않고 그러한 민족 독립 열풍은 1차 대전으로 나온 부산물로 보는 입장인건가요?
@Vv아마게돈vV "1차대전없이"라는 가정자체가 엄청난 역사가가 아니고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마의 지역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장기 19세기를 끝내고 단기 20세기를 연 말그대로 2차대전과 냉전의 초석을 다진 전쟁으로 1차대전이 없다는 세상은 단순히 상상하기가 어렵죠.
1차대전으로 인해 유럽 주요 왕조들(호헨촐렌, 오스만, 합스부르크, 로마노프)이 죄다 붕괴하는데, 국가주의의 중점이 그 테두리의 전통이 아닌 민족구성으로 완전히 돌아서게되는 것이 1차대전으로 보고 그로인해 그간 분리독립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없던 카탈루냐 지역마저 고작 경제적 이유로 독립을 요구하는 상황을 보면 1차대전이 없다면...솔직히 뭐라 단정하기가 어렵네요.
@선비욜롱 사실 지금 시대도 1차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그걸 IF로 단정하면서 쓰는건 정말 천재가 아니고서야 대체역사소설밖에 안된다고 봐도 틀린말은 아니니...... 어렵네요.
@Vv아마게돈vV 처칠도 2대전후 다뉴브연방제 들고나온거 보면. 확실히 저지역에 크고 아름다운. 무엇가 완충지대가될 거대국가의 부재가 동유럽의 막장화를 가속한게 아닌가는 확실한거같습니다.
발칸은 말 꺼낼 필요도 없이 제국에 치명적인 노답 세력이고, 보헤미아는 애초부터 독립적 기조가 강했으며, 헝가리는 그다지 중앙집권적이지도 않았고, 오스트리아에 대한 군사적 도움 역시도 굉장히 중세틱스러울 정도로 계산적이었습니다.(심지어 이게 나폴레옹 이후까지 이런 상황) 게다가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치하에 들어간게 오스만제국 때문이었는데 오스만제국이 러시아한테 처맞고 갤갤데는 상황에서 헝가리한테 오스트리아에게 붙어있을 합리적 이유가 전혀 없었죠.
거기에 신선로마제국의 헤체로 인한 권위 실추를 넘어 아예 제국에 대한 헤게모니 그 자체마저도 독일제국에 뺏기고 더불어서 그나마 남아있던 친 오스트리아 성향의
남독일 국가까지 싸그리 넘어갔으니, 솔직히 오스트리아는 그 시점에서 제국 유지라는 것이 큰 전쟁을 겪지 않고서는 힘들었는데, 문제는 애초에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한 군주 아레 묶인 여러 나라'라는 수준의, 대영제국 수준보다도 못한 느슨한 체제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겪을 문제지만(영국과 웨일즈인이 아닌 영국과 프랑스인이 하나로 묶였다고 상상해봅시다...어이쿠;), 어느 수준 이상으로 중앙집권 자체가 불가능했고, 제국주의가 완전히 결단나고 제국의 절반 가까이인 발칸과 헝가리가 더 이상 오스만이라는 하나의 적을 상대로 숨죽여 지낼 이유가 없었기에
1차 대전이 없었어도 글세요... 이중제국이라는 것도 허울좋은 말 뿐이지 결국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놓이는 것에 대해 더 이상 협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발칸은 말해봐야 무엇합니까. 보헤미아라면 남았을 가능성이 조금은 있었을지도 모르군요.
전쟁이 없었다면, 글세요. 아마도 남북전쟁이 오스트리아에서도 터지지 않았을까...
모순의 제국에서는 헝가리가 스스로를 제국에 묶어둔 가장 큰 양대 이유를 러시아에 대한 공포와 제국 체제에 대한 관성적인 충성으로 들더군요. 오스만 얘기는 조금 잘못 든 예시가 아니신지
1차대전 초기만해도 제국내 민족들의 충성도가 유지되고 했던걸 보면, 내구도가 무지막지하게 튼튼한건 아니긴 했어도 꼭 이게 사상누각처럼 묘사될 수 있는건가 싶네요. 위에서 산익님이 앵간한 부분 다 짚어주셨고 그보다 잘할 자신 없어서 끼어들고 싶진 않지만...
@팔라이올로구스 저도 모순의 제국을 보고 쓴건데, 왜 관점이 다른건지 모르겠네요 ㄷㄷ(...)
헝가리 자유당의 행적을 보고 느꼈습니다만, 전 오히려 러시아덕에 제국이 다시 합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체코, 헝가리 모두 러시아를 두려워하던 것이 1차대전에서 제국의 단합을 불러일으켰다, 이런식으로 말이죠. 추측이라 주장하기는 그렇습니다만. 시험기간 끝나면 오랜만에 다시 빌려봐야겠습니다. 기억이 잘 안나는군요.
오헝제국 체제내에 제국이 해체당하면 잃는게 가장 많은 지역이 헝가리이기에 오헝제국의 유지에 헝가리는 필사적이었습니다. 오헝제국 체제내에서 크로티아를 비롯한 항구와 함께 제국의 절반을 차지했던 지역이 전후에는 사방이 갈려나가 내륙소국으로 전락합니다. 애초에 오스민의 약화는 1900년대에 이르면 200년이 넘는데 오스만의 위협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제국이 유지했다는 점은 비약으로 보입니다.
@통장 단순히 위협으로 인해 단합했다는 논지는 오헝제국이 4년간의 총력전을 버틴 점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됩니다.
오헝제국과 달리 단일민족이라는 자각이 존재하고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있던 프랑스 제3공만해도 1917년에 이르면 클레망소의 강력한 지도력 덕에 버텼다고 할 정도로 힘겹게 버텼는데, 연합군의 해상봉쇄+전초에 고갈된 인력+아군에게 의존하는 군대+여러언어를 사용하는 사병+삼면전쟁+외교 스캔들로 실추된 왕실의 이미지등 문제들을 앉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헝제국은 러시아와 달리 1918년에 붕괴했고 각 지역은 연합군이 점령하기 전까지 따로 화평을 구걸하지
@선비욜롱 않았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오헝제국의 붕괴를 쉽게 논할 수 있는 것자체가 우리가 오헝제국의 붕괴를 결과로써 알고 있다는 점이 크죠. 1914년 기점으로는 절대 다수가 근시일에 오헝제국이 붕괴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비욜롱 솔직히 님만큼 자세히 알고 있는건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 느낌점을 서술...뭐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오지랖이긴 했네요. 진지해야 하는데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로 안하여 우선은 글쓴님께 사과하고, 그래도 본인은 배워갑니다(뭔가 이상한 결론?)
@선비욜롱 위협만으로 단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큰 요소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 외 앞에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었기에 버텼을테죠....모호한 단어 처리 같네요. 프란츠 요제프의 상징성과 러시아에 대한 위협을 두 축으로 기타 요인들이 모여서 버텼다고 하겠습니다. 역시 모호한거 같기도(..)
1차대전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말을 못하겠습니다만, 프랑스는 파리 코뮌까지 세번의 큰 봉기가 일어난 곳이며, 러시아는 1905년 피의 일요일 이후 폭력적인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반란으로 바뀐 법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원상태나 마찬가지로 바뀌었고요.
@통장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보다 먼저 뒤집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단단하다는 것은 비교대상이 안맞지 않나 싶습니다. 러시아는 그 시대에 지도자가 막장상태였으니.
오헝제국이 무너졌기 때문에 쉽게 말하고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만, 바로 오헝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런 토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 무너졌다면 당연 '왜 무너지지 않았는가'를 따져야겠지요. 그 시점에서 오헝이 무너지리라 생각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 인식을 살필 때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결국 오헝이 붕괴하는 것에 도움은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1789년 이전에 프랑스에 공화정이 들어선다고 생각한 사람이
@통장 얼마나 있었을지, 2010년에 스코틀랜드가 분리를 위해 투표를 하고(1차대전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네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한바탕 난리를 필 것이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을지.
근데 쓰고 있으니 점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기분이네요 ㅡㅡ; 제가 고집이 세서 좋아하는 건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해서, 슬슬 헛소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전 오헝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붕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란츠 요제프 사후 얼마나 길지, 세르비아,러시아와 언제 전쟁을 했을 지는 파악하기 힘듭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사태든 발생해서 20년 이내로 망했을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도 맞다고 생각하지만, 제 의견입니다
@통장 다만, 제가 오빠라 그런지,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그래서 그런지, 그놈의 민족주의를 쓸데없이 도입해서 제국 말아먹은게 참 차후 유럽사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발칸 문제나 차후 그렇게 망해버린 오스트리아령 국가들이 죄다 극우빠가 되어 나치의 앞잡이가 되었다던가 경제적 차이때문에 벌어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열 등등... 차라리 본인들 손으로 독립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Constitution 저도 합스부르크빠라서 오헝제국 해체가 좋진 않습니다만(역사적 의미보단 빠라서(..) 싫어하는거죠), 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체하는 본인들도 이런 결과가 될거라곤 생각 못했을 겁니다. 민족끼리 나누면 알아서 살 줄 알았지 누가 그렇게 투닥투닥거릴 줄 알았나(..)
늦어도 20세기 극초반 이전에 프리드리히 같은 6/6/6의 엄청난 군주가 갑툭튀했었다면.....행여 모르겠군요... 수명이 좀 더 길어졌을지도....
제국 붕괴 이후의 각 민족의 지식인들이 제국을 그리워한 것을 보면...제국이 있었기에 그나마 합리적 관료제가 돌아갔고 헝가리의 경우 바다로 나갈 길이 확보되었던 건데 제국이 무너지고 나니 선동가들과 팀욕스러운 자들이 각 지역에서 왕 행세를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