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중 우리가 가장 편하게 느껴지는 주거공간 외 다른 곳이 있다면 단연 목욕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여유로움이 한 껏 더한 시간이라면 그 편안함과 즐거움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겐 행복한 시간이다.
그 중 지난 겨울에 경험한 아주 특별한 기억은 나를 즐겁게, 황홀감?에 젖게 해준다.
그 날 따라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추위로 산책을 일찍 끝내고 찾아간 목욕탕엔 한가했다. 처음 들어간 그 곳은 요즘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조금 낡고 시설이 오래 되었다.
막 물을 받았는지 실내는 습기가 차여 앞이 잘 안보였고, 사람들도 몇 없어 보였다.
아무 생각없이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습관처럼 오래 샤워를 하고, 어느 정도 몸이 데워진 다음 뜨거운 탕 속으로 들어가는 습관대로 뒤 돌아서서 비누질을 하려다가 흠칫 놀랐다.
막 사우나실에서 나온 세 사람의 신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분명 달려 있어야 할 것이 하나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서야 이 곳이 여자 목욕탕의 심각성을 깨닫고 숨이 멎을 정도로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벽을 보고 돌아서서 바가지로 그 곳을 가리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저 쪽으로 가는 곳을 감지한 다음 빠져 나와 어떻게 그 곳을 나왔는지 모르게 옷을 챙겨 들고 잽싸게 냅다 뛰었다. 그 것이 떨어지면 내일 줍자는 심산으로...
3층 남자 탕으로 가까스로 들어와 안정을 찾으려 했으나 쉬 그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고, 안정을 찾은 뒤에는 때늦은 아쉬움으로 얄궂은 심사가 되었다.
이처럼 아무런 일이 없을 것 같으면 "왜 내가 빨리 나왔는지" 하는 크나큰 아쉬움과 후회로 얼마동안
바닥에 그냥 퍼질러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두고 두고 그 때의 아쉬움은 남아 있다, 땅을 치고 후회를 하고 싶은)
그래도 무의식 중에 보았던 그 황홀한?- 아름다운 모습은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입 언저리엔 침이 마르지 않는다.
지금도 그 아름다운 기억을 하면...
어휴!
...
한가한 시간,
적당히 데워진 탕에 목만 내 놓고 몸을 담근 채, 문을 열고 한 사람씩 들어 오는 모습을 보고, 상상을 해 보는 것도 즐거움이자 재미있는 일이다.
욕실로 들어오는 사람을 나는 배꼽 이상은 쳐다보지 않는다.
이젠 통달을 하여, 그 사람의 그 부분만 보고도 연령, 얼굴형, 성격 등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한가지 -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낭설에 대하여 이 지면을 통해 그 진실을 밝혀 두고자 한다.
"코가 크면 그 것이 크다"
는 그 루머는 아주 잘 못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것을 밝혀 두니 참고하시길 바람.
코만 보고 판단했다가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까. 코만 쓸데없이 크고 아무런 실속없어 보이는 형편없는 물건들이 다수 있으니 참고요망.
이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전에는 남자는 다 똑 같구나, 이런 생각으로 목욕을 하고 나오곤 했지만
취미처럼 애착을 가지고 유심히 관찰을 해 보면 사람의 얼굴처럼 제각기 다르다.
좌로 누운 놈, 또는 우측으로, 무엇이 불만인지 땅만 보고 있는 놈, 나 몰라라 자빠져 있는 형, 어디 뭐 없나 두리 번 거리는 놈(껄떡거리는), 무엇이 두려운지 안으로 꼭 숨어 있는 녀석, 불법개조를 하여 지 맘대로 생긴 놈, 귀 걸이를 한 돌연변이...등등
천차만별이다.
특이하다 싶어 얼른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의 얼굴을 살피면 영락없이 상상했던 대로다.
이제는 그 부분만 보고도 정확히 그 사람의 나이와 인상을 알아 낼 수 있는 도사가 되었다.
어느 목욕탕이던지 점을 보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면 난 크게 성공할 것이고 직업을 바꿀 생각이다.
(단, 여자 목욕탕은 제외임)
이런 신기한 세상, 가장 은밀한 부분을 마음껏 감상하고 또 상상을 할 수 있는 이 황홀함의 미학,
목욕탕은 신분의 차별이 없고, 빈부의 차이가 전혀 없는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지상낙원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난 틈만 나면 그 지상 낙원엘 간다.
사실, 목욕탕 문화는 중세 유럽에서 발달되었지만 지금은 특별한 장소를 제외하고 찾기가 어렵다.
계급사회와 집단체제의 정치 사회구도가 허물어진 뒤부터 그런 대중목욕탕이 없어 졌다는 이야기다.
목욕탕- 이런 문화가 동질성과 일체감을 준다는 심리학자의 주장도 있지만 나는
새로운 시도의 관찰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나라! 아름다운 문화 속에 살고 있음에 행복할 뿐이다.
또한 목욕탕에서 나는 금새 부자가 되고 만다.
욕실 주변에는 한 번 쓰고 난 때 밀이 수건이 널려 있어 그 것을 주워 비누로 행구고 사용을 한 다음
가져오기 때문이다.
벌써 평생은 쓰고도 남을 많은 량을 모았다.
한 번 쓰고 난 것은 새것보다 더 좋다. 제조과정에서 묻은 기름기와 오물을 먼저 쓴 사람이 세탁하여서 좋고, 피부에 손상을 주는 껄끄러움을 제거 한 다음이니 좋을 수 밖에...
새차도 며칠 굴린 다음 사용해야 소음도 적고 부드러운 것 처럼.
그렇다고 그 것이 어떤 전염병을 옮기지는 않는다. 면도기나 다른 기구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피부를 문지르는(더구나 남자들은 대충 사용한다)천은 전염병을 옮기지 않는 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노란 색깔을 주어 행구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 것은 이쁜 색깔이니 율리아나에게 줘야지"
하며 각별히 챙겼다.
알 수 없는 어느 남자 피부에 닿았을 이 것을 사용하는 여자는 얼마나 감미롭고, 목욕하는 시간이 즐거웁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뿐 아니다.
모르긴 해도 하루에 버리는 이런 사용 가능한 용품들이 엄청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정말 우린 그렇게 풍족하고, 마음의 여유로움, 행복함까지 느끼며 살고 있는가?
몇 푼 되지 않는다고 하찮게 여기는 그 릇 된 우리의 생활습관을 이 공간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황홀함이 가신 뒤에.
그것을 다시 모아 사용한 나는 즐거움이지만
왠지 아깝다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목욕탕!
그 황홀한 미학이여!
난 행복하다.이런 좋은 문화 속에 살고 있음이...
언제든지 그 곳에 가면 가장 은밀한 곳을 관찰하고 마음껏 상상 할 수 있으니,
윗 층 탕 속에서 누워 또 다른 남자가 욕실로 들어와 내 관찰 대상이 되어 주기를 기다리며,
아래층 여자 목욕탕에서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를 상상해 보는 것도 내겐 황홀한 시간이다.
하여, 난 행복이 목욕탕에도 가득함을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