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디안 _ 중국은 20세기 이래로 굉장히 심한 혼란과 격동의 시기를 겪어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 모두가 겪어야 했던 전쟁과(6.25), 정치적인 사고로 인해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으로 인해 중국의 20세기는 여러모로 무척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중국은 개혁, 개방을 실시한 이후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러한 경제적인 개선이 예술가와 예술가가 행하는 작품 활동도 개선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들은 체질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감성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들은 표면적인 현상 이면에 우리가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는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그들의 정신 속에서 살고, 그들의 관념 속에서 살며, 그들의 예술작품으로 소통하며 사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죠. 만약 한 예술가가 정말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혹은 그녀의 작품은 반드시 역량 있고 훌륭한 작품일 것입니다.
한국의 현대예술과 중국의 현대예술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특히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예술정신에 있어서 많은 유사점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의 예술정신은(물론 전체적으로 다 포괄할 수는 없겠지만) 아시아의 예술에 있어서 어느 한 축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의 현대예술과 중국의 현대예술은 국제사회에서 역량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국과 중국사이, 예술가와 예술가 사이, 아니면 예술가와 관련된 예술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 양국의 국민들 사이에서 예술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교류하고 또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본 세미나를 통해 중국현대미술의 최근 경향을 크게 3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현재 중국의 현대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동향과 움직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예술의 수용과 시스템 구축은 한국이 중국보다 더 빨랐다고 생각되는데요, 현재 중국은 이제 막 현대예술을 수용하고 따라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현대예술은 기본적으로 3개의 축이 삼각형 형태의 구조를 띄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축은 바로 ‘미술관’입니다. 중국의 미술관들은 현재 상당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관의 수가 양적으로 풍부하다는 사실이 미술관의 수준도 그만큼 전문화 되어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보다는 미술관의 수가 많음으로 인해 소장품의 양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중국에는 최근 3년 동안 30여개가 넘는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또 설립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대학 내에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학에 대한 학과가 개설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종사할 수 있는 인원이 굉장히 부족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미술관을 계속해서 증설하게 되면 중국 정부도 분명 이에 대한 투자를 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중국의 미술관 역시 국제사회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두 번째 축은 ‘예술시장’입니다. 여기에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경매와 갤러리가 포함될 것입니다. 특히 예술시장은 경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는데요, 중국 국민들은 예술시장이 중국 경제의 3대 시장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의 가장 큰 시장은 주식시장이고, 두 번째는 부동산시장이며, 세 번째가 바로 예술시장이라는 것이죠. 물론 예술가가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받을 수 있는 가격이, 곧 그 예술가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축은 예술가와 그 ‘집단’입니다. 과거 중국에서는 대학교에서 모든 교육을 받고 나면, 국가가 개인에게 직업을 할당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 대학생들은 그러한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자율적으로 스스로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도시와 그 근교 사이에 예술가 촌락을 이루어, 그곳을 자신의 작품 활동의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삼각 구조가 과거에는 상당히 불안전한 구조였지만, 현재 그리고 앞으로는 그 구조가 더욱더 밀접해지고 견고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미술관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소장해야 합니다. 갤러리와 예술시장 그리고 대중들은 더 많은 예술의 가치를 느끼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갤러리의 역할은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장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진정으로 예술품의 가치를 알리고 아름다움을 알리는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의 가장 큰 가치는 그들의 창조적인 정신으로 인해서 사회전체의 각성과 개발을 유도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창조적인 국가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의 중국 정부는 예술에 대해 상당히 불성실했었습니다. 입으로는 창조와 발명을 얘기하면서도 실상 예술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중국 정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많은 도움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중국현대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동향과 움직임에 이어, 이번에는 최근 중국예술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었는지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중국의 예술가들은 굉장히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좋은 성과로 이어진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한 예술가가 어떤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인 인식이 필요하고, 이를 자신만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예술가들은 현실과 허구적인(다른 표현으로는 상상력의) 세계에서 자신의 예술적 성과를 드러낼 수 있고, 한 개인의 입장과 대중의 입장 사이에서 예술적 성과를 드러낼 수 도 있습니다. 중국예술의 새로운 흐름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약 25년간의 시기를 거쳐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중국만의 독특한 특징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매우 뚜렷한 현실주의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대의 작가들은 과거의 예술을 차용 및 변화시켜 당시의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활동을 했었습니다. 어떤 작가들은 서구문화를 뒤쫓아 형식주의적인 부분에 치우치기도 했습니다. 형식주의같은 경우 어느 정도는 중국만의 새로운 감각이 발현되기는 했지만, 사상적인 부분이 뒷받침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작가의 뚜렷한 개성 없이 형식만 수용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예이기도 합니다.
예술가는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개성이 전적으로 예술가를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예술가가 큰 길거리에 서서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가 꼭 예술적인 행동을 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부여된 개성이 어떤 부분인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술가의 성격이라든지, 혹은 그 사람이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는지, 어떤 부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지 등의 여부가 그 사람의 예술적 개성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개성을 갖춘 예술가가 만약 사회 속에서 그 문화와 함께 조화롭게 적응해 나갈 수 있다면,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Miao Xiaochun, [The Below View], 2006, C-Print, 289 x 360 cm
그 다음으로는 예술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황 위엔친, 먀오 샤오춘씨 작품의 경우, 그들의 예술적인 언어라는 것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그런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작품은 또한 사회적인 이슈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예술에 대한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느끼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예술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과 안목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아, 나도 예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적이 있는데’ 혹은 ‘나도 한 번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는데’하는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매우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예전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신기하고 다채로운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러한 기술도 어느새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진심으로 전달될 수 있을 때 진정한 예술품이 탄생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속빈 강정처럼 입으로만 예술과 관념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고 가장 진실 된 작품을 내놓을 있는 바탕은, 예술가의 진정한 마음(혹은 영혼)과 사상 그리고 손이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모든 것이 ‘글로벌화’되는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어떤 한 국가의 예술이 과연 어떠한 비전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국가라는 것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신분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민족과 연결되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 일본 같은 경우에는 민족성에 대한 개념이 매우 뚜렷한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를 얘기하는 것은 곧 민족을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민족주의적인 국가들의 특징 중 하나는 예술에 있어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국가들에게 있어서 현대예술과 글로벌화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화는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국가들이 서로 어우러져 교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예술가들이 과도하게 민족과 국가만을 강조한다면, 그들의 작품 속에는 예술적인 역량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기본적인 신분, 앞서 말씀드린 국가나 민족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대중들에게 문화적인 근본이 결핍되어 있다는 인상을 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난제는 제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많은 예술가들도 느끼고 있던 문제였었고, 국제 사회에서 만났던 지명도 있는 분들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성숙하고 역량 있는 예술가라면 나날이 글로벌화 되어가는 추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숙하게 잘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같은 경우에는 이런 문제들을 잘 소화하고 표현해 낼 수 있는 작가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의 현대예술과 글로벌화 되고 있는 현 시점에 대해 자신의 시각을 적절하게 혼합시켜 작품을 창조해 내었다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감에 넘쳐있습니다. 그들이 자심감이 넘칠 수 있었던 데에는 국제적인 예술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섭렵했기 때문이었고, 이러한 정보력은 그들이 작품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작품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예술은 거짓으로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전 세계 어디라도 진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모두 동일합니다. 지금 현재 중국이 직면해 있는 현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공동의 관심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서로 상통한다는 것이죠.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복잡다단한 현 중국의 현대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특한 몇 가지 특징에 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어떤 전시회 이던지 규모적인 제한이 있을 수 있고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부유-중국미술의 새로운 흐름’ 전시 같은 경우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중국의 현대예술에 있어서 새롭게 출현한 특징들을 갖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전시라는 점입니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중국의 신예 작가들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하게 현실에 입각해 작품 활동을 하거나, 현실을 초월해 작품을 창조해 낸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신예 작가들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서구사회의 초현실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을 현실과 결부시켜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전시이던지 그 전시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 그리고 모든 문화와의 교류의 장입니다. 한국과 중국이 문화적으로 힘을 합쳐 응집시킬 수 있다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의 장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세미나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