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선정을 고로 보지요...
특히 무색정을 오취온고라고 정의를 합니다...
흔히 불교학자들이나 불교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자주 착각을 하시는 부분들이 교학이라고 하는
논사분들의 지식적 나열에 대해 상당히 의견들이 분분하고 주장하는 바가 달라.
불교에는 수많은 종단이 있고 종파가 있게 되었습니다만..
사실 불교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아주 간단하고 간결합니다..
우리가 삼법인이라고 알고 있는 법의 잣대는 듀카 안이타야 안아트만입니다.
후대 대승불교에 용수보살이 등장을 함으로 사실 슌냐라고 하는 잣대가 되지만.
초기 불교 수행자들의 수행을 해 나갈 때의 지침은 듀카 안이타야 안아트만....고 무상 무아일뿐이지요.
법인이 무엇때문에 중요한 것인가는 사실 수행을 해 보시지 않은 분들은 잘 모릅니다만..
수행자에게는 나침판이다고 보시면 됩니다...
잡아함 제일 첫 페이지를 열면 색을 무상한 것이라 관찰하라는 한줄의 글이 나옵니다.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세친 논사는 색을 유루의 색과 무루의 색이 있다고 정의를 합니다만..
수행자는 구차제정으로 봐서 색계4선정과 무색계4선정과 멸진정의 길을 가게 되지요..
색을 거칠다 미세하다 어떠어떠하다 지식적으로 분간을 해 놓았습니다만..
색은 색계 무색계밖에는 없습니다..
수행자는 그 색을 보고 무상한 것이다라고 통찰을 하라는 이야기지요..
그때의 색이란?
선정에서 보고 듣고 만져지는 색을 말하게 됩니다.
사실 초기불교에서 논리는 너무나 단순하고 간결하지요..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을 통칭해서 오온이라고 하고
수행법은 구차제정대로
색온을 제거한다
수온을 제거한다
상온을 제거한다
행온을 제거한다
식온을 제거한다.........아주 밝고 맑은 선정에 드는 식하나가 남게 됩니다..
그 식하나를 하나의 지점에 몰두하는 것을 무색계 선정이라고 합니다..
무색계선정은 부파마다 논사들마다 주장은 다르지만.
식음을 제거한다
행음을 제거한다
상음을 제거한다
수음을 제거한다
색음을 제거한다가 됩니다.
색계선을 마칠 때 수행자는 사하스라라라고 하는 머리가 열리게 됩니다.
사하스라라는 다른 말로 관세음보살의 천개의 눈이라고도 하지요..
혹은 관세음보살의 소리라고도 합니다..
불교 교학에서 무색계 다섯가지를 초기에는 다섯가지덮개로 말하기도 했고
교학이 발전해가면서 오온으로 세분화된 것뿐이지요.
순관이라고 하는 색계4선정에서 제거가 되는 것은 잡념 혹은 의식적인 생각이 제거가 된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역관은 자기 내부에 잠재한 오취온의 고를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간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색음 수음 상음을 무명이라고 했지요..
선정에 들때에는 순수해진 맑고 밝은 의식이 하나의 지점에 몰두되고
색음 수음 상음 행음 식음이 동시에 존제하는 허공장에 들게 됩니다.
의식이 존제하는 곳 무한한 허공이 되지요.
무색계는 사리를 분별하는 의식이 한 지점에 몰두된 상태임으로 사리를 분별하지 않고..
저절로 드러난 자기 내부에 잠재한 무의식의 세상이 됩니다..
해서 부파에 따라서 제거가 된다고도 하고 든다고도 합니다만..
선정상태에서 식음인 허공장에 들었다 나오면 식음은 제거가 됩니다...
식음 행음 상음 수음 색음이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제거가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식음인 허공장은 머리 속의 공간
행음은 식처정으로 시공간 존제 비존제
상음은 무소유처정으로 감성적인 부분...포근함 안락함
수음은 비상비비상처정으로 미세한 의식
색음은 멸진정으로 아주 미세한 의식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무색정으로 가면..사하스라라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점차 강해지는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강해진다기보다 나머지는 제거되고 그 느낌만 남게 된다고 보셔도 됩니다.
허공장과 식처정은 영상이 있는 선정이 되고
공간 시간 존제 비존제 나아닌 존제들까지 보고 듣고 만지는 선정상태가 되지요.
해서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도교와 같은 단체들은 그것을 고로 보지 않고.
사실로 보고 수행을 하다가 그러한 것을 신통이라는 말로 포장을 하기도 해서
공간을 뛰어넘는다거나 과거생 현재생 미래생을 이야기하게 됩니다만..
불교에서는 그러한 것을 마장이라고 할 뿐이죠..
무소유처정은 그러한 영상이 없어진 포근함 안락함만이 남는 세상이 됩니다.
무소유처에 입정할 때부터 사실 사하스라라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강해져
팔만팔천 챠크라가 다 일렁거리는 상태가 되고 몸은 식음 행음이 제거가 되어
육신이 잠에 드는 상태를 스스로 알게 됩니다...
잠에 들었다 꿈의 경계를 지난다...
해서 불교 수행의 과위 중 무소유처를 마친 수행자는
아나함 혹은 부동지가 되고 통찰지를 얻게 되면 오하분결을 한 성자라고 하지요..
교학에서는 다섯가지에 대한 욕망을 끊은 성자라고들 합니다...
비상비비상처정에서는 피부에 팔만팔천챠크라와 머리 윗부분에 관정이라고 하는 8번째 챠크라가
각성을 하는 상태가 됩니다.
흔히 다음에 올 부처님..부처님께 수기를 받는다...라고 이야기되어지는 상태가 됩니다.
순수해진 식은 감성이 제거 된 상태고 아주 미세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다 의식의 찰라적멸 상태가 있게 되지요.
멸진정상태에서는 그 의식이 더 미세해진 상태가 되고
숨과 의식이 찰라적멸하는 상태가 됩니다.
수행자가 사마타 수행을 마치면 통찰을 합니다..
법의 잣대가 되는 고 무상 무아라고 하는 스승님이 주신 잣대를 들고
자신이 사마타 수행 중 보고 듣고 만진 모든 것들을 돌아보는 수행을 하는 것을 위빠사나라고 합니다.
해서 사마타와 위빠사나라고들 합니다.
불교에서 무명을 색음 수음 상음이라고 하고 멸진정을 마친 수행자는 무명이 제거 된 성자라고 하지요.
초기 불교 교학에서 지식적인 교학들이 각 부파별로 전해지고 전해지면서..
사실 너무나 방대해지고 해석을 하는 바와 주장에 따라 달라졌을 뿐...
사실 같은 주장일뿐이지요..
흔히 아라한검증이라고 하는 부분도 사실 제가 보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나온 교학으로 보입니다만.
스스로 아라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왔을 때...사실 그 내용도 여기저기 조금씩 다르지만..
싸우지 말고 물어보라..
석가모니 제세 시에는 육체에 드러난 수행의 흔적이 되는 피부를 본다...
후대부터는 다섯가지 덮개에 대해 물어 본다..오취온을 보고 듣고 만진 것에 대해 확인한다.
여섯가지 대문 중 어떤 문을 통해 색계선을 통과 한 것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앞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물어 본다...고 하더군요...
사실 불교는 수행의 목적이...
자기 내부에 든 고를 스스로 알려고 하는 것이지요..
해서 이고득락을 위해 수행을 합니다..
해서 정견..타타가타...팔정도의 첫번째가 성자의 팔정도냐 범부의 팔정도냐의 차이일뿐..
사는 것은 같고..
고 중에 제일 큰 고는 민생고일뿐이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만큼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사는 것일뿐이지요...
제가 수행을 조금 해보고 팔만대장경을 뒤적여보니..사실은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도..
해석을 하는 차이와..
견해에 따라 차이가 날 뿐....별반 다를 것은 없다고 봐집니다만...
여기는 사실 저보다 너무 학식도 높으시고해서...
조촐하게 제가 보는 불교에 대한 소견을 남기고 갈까 합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반갑습니다.
.....
혹시...
색계 초선정에 대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 어려운 질문을 하시네요..봄봄님은 이미 초선정보다 더 나가신 분으로 보입니다...그런데 사실 저는 사회인들은 수행을 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입니다....불교라는 종교도 믿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잘못하면 평생 허송세월을 하게 됩니다...
(참고로 올려봅니다.)
◌ 어떤 아비담마 강의 자료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복사해 오면 :
1cittaṁ 2ārammaṇe 3appeti 4abhiniropetīti 5appanā
1결합하는 마음을 2대상에 3맡긴다.(몰입시킨다) 4보낸다. 5그래서 일으킨 생각을 본삼매라고 한다.
원래는 일으킨 생각이 본삼매
주석서: 초선정때 일으킨 생각과 함께 결합한 마음과 마음부수도 ‘동행(sahacaraṇa)방법’에 따라 본삼매라 함.
근본복주서: 제2선 등에는 일으킨 생각이 없지만, 장애로부터 떠나 대상에 확고하게 머무는 것으로는 동일하기 때문에 ‘유사근접(sadisūpacā)’방법에 따라 본삼매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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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법문 들은 것을 필기함 (혹시 제가 잘못 필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 본삼매에서:
1.일으킨 생각을 초선의 본삼매라 한다.
2.혹은 일으킨 생각과 함께 일어나는 초선의 마음과 마음부수들도 초선의 본삼매다.
* 다른 동영상 강의에서 듣기로는 : (표현을 한 두개 수정했음)
“일으킨 생각의 대상은 표상입니다.”
예를 들어 백골관을 수행하는 사람은 해골을 보게 되면 (그래서 해골에 대한 어떤 표상이 일어나기만 하면) 아주 희열이 생기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래야 초선에 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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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이란 간접정보인 '의미기억'에 기댄 의견이지 싶고
실참하신 분들의 의견은 '일화기억' 즉 직접경험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지 싶은데..
교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같은 문장, 같은 단어를 보고도 다른 의미로 해석하거나 받아들이는데
하물며..... ㅎㅎㅎ
두 부류, 교학자와 실참자가 피력하는 의견에서, 표현하는 단어가 의미가 같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될 수..... ㅠ
그럼에도 본인은 어떤 길을 간다고 하는데
직접 가보지 않은 넘^^이 그건 그 길이 아니지 싶다고 한 마디^^
tassa kismiñcideva pasādanīye nimitte cittaṃ paṇidahat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ayati .
그가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마음을 향하면 환희가 생긴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긴다.
마음에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고요하다. 몸이 고요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정형구]
so iti paṭisañcikkhati — ‘yassa khvāhaṃ atthāya cittaṃ paṇidahiṃ, so me attho abhinipphanno.
handa, dāni paṭisaṃharāmī’ti.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마음을 향하게 한 그 목적이 이제 성취되었다.
이제 나는 거두어들이리라.'라고,
so paṭisaṃharati ceva na ca vitakketi na ca vicāreti.
오온을 선정에 억지로 끼워 맞추어 한 설명으로 보입니다 너무 이상해요
요즘 불교를 접하시면 억지스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현대에 맞게 평준화되고 일반화 되고 종교화 되어버린 불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배우다 보면 사실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요...그런데 불교에서 아주 오래된 유명한 말 중에 오음성고라는 말과 오온개공이라는 말을 그 역사적인 유래부터 그 말들이 나오는 과정들을 찾아들어가다 보면 아시게 될 날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