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생활성서에 실렸던 글입니다. “누나와 나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거친 세상을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중학교 중퇴가 고작인 누나는 택시 기사로 일하며 내 공부 뒷바라지를 하느라 시집도 가지 못했습니다. 누나는 승차거부를 한 적이 없으며, 노인이나 장애인이 차에서 내리면 헤드라이트를 비추어 어두운 길을 밝혀 주었습니다. 누나는 파스칼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남모르는 선행이 아름답다”는 파스칼의 말을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 누나가 중앙선을 넘어온 덤프트럭과 충돌하여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두었던 내 여자 친구는 누나와 같이 산다면 자신이 없다고, 누나와 자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왔습니다.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날 때쯤 어느 날 오후 누나가 후원하는 고아원을 방문하기 위해 누나와 외출을 하여,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휠체어를 탄 누나를 보고는 도망치듯 지나가 버려 한 시간 넘게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둠이 깔리는 때가 되자 분노가 솟구치고, 누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추더니, 뒤 트렁크가 열리고, 내가 누나를 안아 택시에 태우는 동안, 휠체어를 뒤 트렁크에 넣었습니다. 기사는 여자였습니다. 고아원에 도착한 것은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내가 휠체어를 밀고 가는 동안 여자 기사는 헤드라이트로 길을 환히 비추어 주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아름다운 두 여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 여 기사와 결혼을 하여 누나와 함께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믿음이 부족한 그 세대를 한탄하시는 말씀을 하시며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치유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사랑이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사랑을 실천합니다.
노인과 장애인들의 길을 환히 밝혀주던 두 여인, 남모르게 남을 사랑하고 봉사하던 두 여인은 사랑이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살았던 사람입니다. 반면 장애인을 위해 봉사할 수 없다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를 버리고 떠난 여인, 장애인이 있다고 도망치듯 지나치는 택시운전기사들은 세상의 묵은 사람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의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