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감동시킨 '농구소녀', 20년 지난 후 어떻게 살고 있나? ♡
다리를 절단한 4세 소녀는 20년 간 부단한 노력으로 사지가 멀쩡한 또래가 바라 보는 인생의 높이에 서 있다. 불의의 장애를 가진 어린 소녀가 장애인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성장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갑자기 닥친 불행, 네 살 소녀의 다리를 앗아가다
첸훙옌(钱红艳, 현재나이 만 24세)은 1996년 윈난성(云南省)의 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돈을 벌기 위해 1년 내내 밖에서 생활했고, 모친은 집에서 양잠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가정은 부유하진 않았으나 첸훙옌은 부모의 사랑 아래 걱정없이 지냈다.
불행은 그가 4살이 되던 해인 2000년에 일어났다. 어느 날, 길을 건너던 중 신발이 벗겨져 다시 줍기 위해 돌아가던 첸훙옌을 향해 화물차 한 대가 돌진했다. 부상이 심각했다. 다리를 절단해야 첸훙옌은 살 수 있었고 하루 아침에 그는 두 다리를 잃은 몸이 되었다.
막 퇴원하고는 상처가 너무 아파 앉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가끔 함께 놀던 친구들이 길거리에서 노는 장면을 보면 어린 나이에도 좌절감에 목놓아 울었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망이 샘솟았다. 그의 부친은 늘 탄식했고, 모친은 하루종일 눈물을 흘렸다. 첸훙옌은 암흑과 같은 긴 시간을 오롯이 견뎌냈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늘 그를 아꼈던 할아버지는 손녀가 혼자 걸을 수 있도록 농구공 하나를 잘라 하체 커버에 끼웠다. 농구공이 바닥과 닿는 면적을 줄여주고 이동을 조금이나마 쉽게 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또 팔로 지탱해야할 것을 고려해 나무로 된 버팀목을 만들어줬다.
이것이 당시 가난했던 가족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처음엔 균형이 잡히지 않아 크게 고생했다. 손바닥 지문이 닳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늘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를 저버리지 않았고 1년 가까이 노력해 마침내 다리를 대신해 팔로 걸어나갈 수 있었다.
주변 귀인들의 도움, 그리고 수영에 발을 들이다
진학할 나이가 되자, 특별 제작된 휠체어를 이용해 등하교를 했다. 그는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생활해 이내 지역 내 유명인사가 됐다.
2007년, 그가 11살이 되던 해에는 공안부의 지원으로 재활센터에서 1년간 재활훈련을 받게 됐다. 재활 훈련을 통해 의족을 착용할 수 있게 됐고, 의족 착용 시 키가 127cm정도로 또래와 비슷했다. 그는 4살 이후, 처음으로 설 수 있게 됐다.
재활센터 수영장에서는 물 만난 고기였다. 물에서는 땅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많이 해소됐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평생의 귀인, 수영 코치 장홍후(张鸿鹄)를 만나게 된다. 장 코치는 그의 낙관적인 삶의 태도와 뚝심을 발견하고, 자신의 수영클럽에 가입시켰다. 비용도 받지 않았다. 첸훙옌은 스스로 훈련시간을 늘렸다. 그러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1만 미터를 돌고, 4시간 이상의 훈련을 받았다. 두 다리가 없어 수영할 때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는 비장애인보다 몇 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다.
하늘도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그는 빠른 속도로 실력 향상을 이뤄냈고 장 코치로부터 인정과 찬사를 받았다. 2008년, 12살의 첸훙옌은 윈난성 장애인수영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2009년에는 전국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땄다. 2010년 같은 대회에서 은메달 3개를 따냈다.
2013년, 17세의 첸훙옌은 베이징 재활연구센터에서 제작된 두 번째 의족을 받았다. 새 의족을 한 첸훙옌의 키는 164cm였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다닐 수 있게 됐다. 치마를 입으면 그 나이의 풋풋한 학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2016년에는 리우패럴림픽에 출전해 여자 평영 100m에서 4위에 올랐다. 2019년 8월 출전한 수영대회에서도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거머쥐었다. 이후 그는 수영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첸훙옌은 올해 24살로 모 회사의 장애인 서비스센터에 다니고 있다. 첸훙옌은 자신의 강인함으로 또래의 삶의 궤도에 어렵지만 당당히 안착했다.
차이나랩 임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