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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한국 철학의 문제점
지은이는 서두부터 냉철한 시각으로 한국 철학의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그래서 도대체 지은이가 누구인가 살펴봤다.
김교빈.
물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서점에서
펼쳐들었고, 원효 부분을 봤는데,
지루하지 않고 제법 쉽게 씌여져서 골랐다.
우리나라 철학자들에 대한 상식에 도움이 될 듯 싶었다.
즉 책을 처음 선택할 때는 지은이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책의 서두에서 비판적인 문체때문에 지은이가 누구인지 살펴보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우선 현재 우리나라 철학의 문제점에 대한 자기 비판부터 하려는 의도인듯 싶다.
그런 지은이의 비판정신이 마음에 든다.
지은이 김교빈은 호서대에 교수를 하면서,
진보 학계의 일원으로 있음을 인터넷으로 알게 되었다.
그가 비판하는 한국철학의 가장 큰 문제는
한마디로 한국철학이 없다는 점이다.
일제치하에 서양학문이 들어오면서,
당시까지만 전해지던 한국철학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물론, 일제에 의해서 사라졌다곤 쳐도,
해방 후에는 다시 한국 철학에 대한 연구가 재점화되었어야 했는데,
그때는 이미 우리나라에는 독일 철학과 미국 철학으로 양분되어 있어서
한국 철학은 설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미국 철학이야 해방 후 미국이 신탁통치를 해서 자리를 잡았다쳐도
왜 독일 철학인가?
독일 철학은 바로 일본이 수용한 철학이었던 것이다.
일제시대 번성했던 독일 철학이 광복 후에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과 함께 남아 이어온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에서 한국 철학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우리나라 철학의 문제점은 문제점인가보다.
전에 읽었던 탁석산의 <철학 읽어 주는 남자>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을 제기했었던 기억이 있다.
1. 왜 철학을 하는가?
철학은 삶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삶을 떠난 학문이 될 수 없다.
현재 우리 나라 철학의 또다른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바로 삶과 분리된 학문적 접근으로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공부가 공부로만 끝나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래, 독일 철학이든, 미국 철학이든 연구하고 공부하는 건 좋다.
그런데 그 연구와 공부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철학 사상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여 결국 우리 사회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철학을 하는 것이다.
외국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 많이 배웠다.
무조건적인 흡수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배타도 아닌,
우리 문화에 절충하여 또다른 발전된 문화를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로,
우리 외래 철학의 도입으로 우리 철학이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2. 인물로 보는 우리 철학의 흐름
이 책의 부제는 <인물로 보는 우리 철학의 흐름>이다.
총 9명의 사상가를 소개하고 있다.
귀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우리나라에서 성행했던 철학의 대표인물들을 통해
우리 나라 철학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그동안 생소했던 양명학이라든가,
조선시대 주자학의 계보에 대해서도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지만,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3. 원효와 지눌
일체유심조로 유명한 원효를 통해
초기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기본 교리에 대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어떤 불교 교양서보다 쉽게 쓰였다.
교종과 선종의 의미를 정확히 알수 있었고,
불교의 계파가 왜 생겼는지도 알게 되었다.
..
원효의 불교는 합침의 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는 인도의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고,
중국에서 받아들인 것인 이미 석가모니 사후 수백년이 지난 뒤였다.
그랬기 때문에 교리 해석이 저마다 달랐고,
기준이 되는 경전에 따라 화엄종이니 법화종이니 열반종이니
등으로 갈라졌다.
원효는 이런 다양한 경전 해석을 모두 옳게 보는
합침의 불교를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왕족과 손잡은 다른 승려와 달리
걸인 행세를 하며, 불교를 민간들의 가슴에 전달하면서
대중화에 힘쓴 큰 공로를 가지고 있다.
..
한편 고려시대 지눌은 조계종의 창시자로써,
신라 말 이후 교리를 중시하는 교종과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의 대립으로 나타난
5교9산의 갈등을 아우르는 게 된다.
이 또한 원효의 합침의 종교를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 지눌은 우리나라 불교의 선종을 정착시키기도 한 것이다.
고려말 많은 혜택을 가지고 있는 불교와 사찰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조선 개국과 함께 억압을 받게 된다.
4. 서경덕과 이언적, 유학의 기반을 닦다
조선 개국과 함께
내세를 중시하고, 현세를 부정하는 불교는 물러나고,
현실세계를 중시하는 유학이 국가의 이념이 된다.
이때 들어온 학문이 성리학이다.
성리학은 성(性)이 곧 이치(理)라는 것으로,
理는 관념적인 존재론을 중시하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지은이가 서경덕을 중시하는 이유는 그런 기존의 성리학보다
물질론적 존재론의 氣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은 기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과학적인 접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성리학자들 뿐만 아니라
후세의 성리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
이언적은 자신의 외삼촌 손숙돈과 조한보의 이론 논쟁에 끼어들면서 이어진
이언적과 조한보의 논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언적은 조선 초기부터 이어진 사림학파의 계보를 이으면서
理를 연구하게 된다.
그가 비록 을사사화에 의해 귀양가서 죽게 되지만,
그 이전 사화에서 공신에 이르러 비판을 받기도 한다.
지은이는 이언적이 그렇게 행동한 것이
사림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었을 거라 변호하기도 한다.
이렇게 조선 초기 유학의 기반을 잡은
서경덕과 이언적은 각각 이이와 이황에게 영향을 주어
사상적 논쟁을 이어가게 된다.
5. 이황과 이이
이황이 이이보다 30년 정도 먼저 태어났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황은 이언적의 사상을 이어받았으며,
이이는 서경덕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이 둘이 만난 것은 이이가 이황의 도산서원을 찾아가 만난 며칠이 전부였지만,
이 둘은 당대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나아가 우리나라 철학의 양두산맥으로 부른다.
영남학파의 줄기를 이룬 이황은 리(理)와 기(氣)는 다른 것으로 분리하여 보아 이원론을 주장하였는데
理는 추구해야 할것으로 보았고, 氣는 버려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의 이런 생각은 리(理)와 기(氣)를 하나로 본 기대승과의 논쟁은 유명하다.
이황은 리(里)를 중시하였기 때문에 그 리(里)를 연구하기 위해
벼슬에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학문정진에 힘썼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
하지만, 이이는 기대승과 같은 선상의 주장을 하였다.
이는 리(理)와 기(氣)는 하나로 보는 일원론을 주장하였다.
氣를 통해서 理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이는 벼슬에 있으면서 유학사상을 실천해 나갔다.
이이는 주로 경기, 서울에서 학문을 연구했기 때문에 기호학파로 불린다.
...
솔직히 이황과 이이 부분을 읽을 때는
그래서 이들이 오늘날 이렇게 유명하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몇줄로 정리하고자 하니 쉽지 않다.
몇번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포기한다.
그들의 사상을 몇줄로 정리하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다.
6. 정제두의 양명학
관념주의 위주의 주자학에 대한 비판으로 양명 왕수인에 의해 발생한 학문이
바로 양명학이다.
우리 나라에 많은 학자들도 이 학문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워낙 주자학에 대한 비판이 강했던 학문이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사학이라는 비난을 받았기에
모든 학자들이 곧 손에서 놓았다.
하지만, 정제두는 달랐다.
주의 동료, 스승, 선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명학에 정진하였으며,
예순 살에는 강화도에 들어와 강화학파를 만들어
실천 위주의 양명학 연구에 불을 피우게 된다.
그의 제자들은 대를 이어 양명학에 실천에 힘쓰고,
그 명맥을 유지하던 후세들은
일제에 의해 조선이 침략당하자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온몸을 마치게 된다.
많은 수가 친일 세력으로 넘어간 주자학파의 후손들과 다름을
지은이는 지적하고 있다.
7. 이용후생 박지원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통상의 문을 닫았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 통상의 문을 닫았다.
우리 뿐이었다.
뿐만인가?
사대부들이 그렇게 동경하던 명나라도 망했다.
이제 주자학을 이어받고 있는 나라는 조선뿐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당시 조선 중기 이후는 소중화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야말로 우물안 개구리 신세였다.
옛서적 뒤지면서 명분만 찾고 있던 그시절
백성들의 생활은 점점 핍박해 가고 있었다.
아무도 그런 백성들을 신경쓰지 않고,
이 논리가 맞니 저 논리가 맞니 논쟁뿐이었다.
이런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잘 살고,
우리 나라가 발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들도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우물 밖 좋은 기술들을 우리나라도 도입하려던 노력이 있었다.
사대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청나라의 선진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북학파들이다.
그래야 우리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중심에는 연암 박지원이 있다.
박지원은 청나라 기행을 하고 쓴 열하일기와
호질, 허생전, 양반전 등의 소설들을 통해
형식적이고 관념적이면서 부패에 빠진 사대부를 비난하고,
백성들을 위해 상업을 장려하는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에
능력을 펼치지 못한 이들을 제자들인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과
뜻을 같이 하기도 한다.
후에 정조의 개혁 정책에 의해 그의 서얼 제자들이
벼슬길에 진출을 하게 된다.
8. 경세치용 정약용
총애를 주던 정조의 사망 이후 순조가 즉위하면서
정약용을 시기하던 집권세력은
천주교박해를 빌미로 귀양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강진에서의 18년 귀양살이와
그 귀양살이가 끝난 뒤 죽기 전까지
그의 사상을 집대성한다.
그의 사상의 기본은
모든 학문은 우리 생활에 이용되어야 한다는 경세치용이다.
그렇기에 그는 목민심서 등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고,
그에 앞서 기중기 등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실용학문은 후세에 이어졌으며
오늘날에도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로써 정약용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9. 철학의 통일
지은이가 책을 정리하면서 역설하는 것이 있다.
한국철학이 앞으로 해야할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북의 철학적 통일이다.
짧은 반세기의 분단이지만,
외모만 비슷하지, 우리의 사상과 문화가 너무나 멀어지고 말았다.
외형적인 통일을 이루기 전에
그런 사상과 문화와 생각의 골을 좁히기 일이 한국철학이 앞으로 할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남한은 자본주의 입장에서 철학을 이야기왔으며
북한은 사회주의 유물론 입장에서 철학을 이야기해왔다.
이제는 통일된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할 시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철학적 통일이 있으면 남북의 이질감 해소에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다.
책제목 : 한국 철학 에세이
지은이 : 김교빈
출판사 : 동녁
독서기간: 2006.8.07- 8.10
페이지: 294 page